저온화상

[리발링크] 너츠 케이크 크라이시스

이상한 걸 넣은 게 분명해


"헤브라 산의 마물?"

무슨 바람이 불어 하이랄의 공주가 친히 리토 마을까지 날 찾아왔나 했는데, 막상 귀를 기울여보면 새삼스럽기 짝이 없는 얘기였다. 

"네. 최근 마물 무리에 습격을 당했다는 제보가 늘고 있어요. 근원지는 헤브라의 산기슭이라 생각됩니다만, 자세한 건 아직...." 

공주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꼬리를 흐린다. 헤브라는 가혹한 환경 탓에 원래도 마물의 출몰이 잦은 곳이다. 재앙 가논의 부활이 가까워진 것이 사실이라면 그 영향도 없지 않겠지. 그에 대해선 우리 리토족 측에서도 대책을 세우고 있는 중이고, 솔직히 공주의 지나친 걱정이라고 생각한다만....

중앙 광장의 난간 위에 서서 공주를 내려다본다. 그녀의 곁을 지키는 호위 기사와 덩달아 눈이 마주치면, 물밀듯 밀려오는 우월감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거군? 추위에 약한 하일리아인은 헤브라에선 영 쓸모가 없을 테니." 

내가 누굴 말하고 있는지 바보가 아닌 이상 알겠지. 공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정작 당사자는 언제나의 무표정이라 화가 난 건지, 아님 정말 바보인 건지 모르겠다. 뭐, 아무래도 좋아. 중요한 건 공주가 저 녀석이 아닌 바로 나, 리발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사실이니까!

"나도 그리 한가하진 않지만... 공주의 올바른 판단을 봐서라도, 이 부탁은 들어주도록 할까."

"정말 고마워요, 리발!"

그늘져 있던 공주의 얼굴이 팟 하고 밝아졌다. 그래, 마음껏 고마워하라구. 하는 김에 재앙 가논의 토벌도 내게 부탁해도 괜찮―  

"그럼, 링크와 둘이서 잘 다녀오세요!" 

"....하아?"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링크라면, 내가 아는 그 링크?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기사 녀석의 표정을 살핀다. 녀석 역시 보기 드물게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링크와 둘이서 다녀오라고 한 것 같은데."

"아주 잘 이해하셨는데요."

"저 녀석도 지금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다만?"

"그야 지금 처음 했으니까요." 

공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한다. 내 반응 따위 전부 예상했다는 듯한 말투. 뻔뻔하리만큼 당당한 모습에 아까의 풀 죽은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다. 

순간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공주. 설마 처음부터―"

"아, 참고로."

공주가 싱긋 웃으며 덧붙인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공주는 출발하기 직전까지 "둘이서" 를 강조했다. 그 말은 즉, 날지 못하는 링크의 장단을 맞춰주며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대체 왜 이런 비효율적인 명령을.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지만, 묘하게 기합이 들어가 있던 공주를 떠올리면 애초에 마물 토벌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참고로, 내가 링크를 등에 태우고 간다는 선택지는 애저녁에 기각했다. 그야, 녀석이 직접 내게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한다면 아주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만? 애석하게도 용사님은 오늘도 절찬 묵언수행 중이신지라. 아까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앞만 바라보며 걷고 있다. 

그러니까, 공주. 

이런 짓을 꾸며봤자 나랑 저 녀석 사이가 좋아질 일은 없어.

"에취." 

작게 재채기를 한 링크가 제 팔을 문지른다. 속으로 욕한 게 들켰나 싶었지만, 단순히 추위에 의한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래도 용케 얼어 죽지 않고 버티고 있군. 현재 링크가 언제나의 푸른색 튜닉 대신 걸치고 있는 녹색 옷은, 산에 사는 하일리아인들이 애용하는 방한복이라고 한다. 다만, 하일리아인들의 기술과 경험의 한계로 헤브라의 추위를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

그러고 보면, 방어구점에서 일하는 친구 녀석이 하일리아인 전용 리토의 방한복을 만들 거라 했던가. 헤브라의 추위에도 끄떡없는, 성능은 물론 디자인까지 훌륭한 것을. 가장 먼저 하이랄의 영걸에게 선물하면 왕실과 친목을 다지는 것은 물론 좋은 홍보가 될 거라면서, 나한테 링크의 사이즈를 알아오라느니, 뭐가 어울릴지 같이 생각해 달라느니, 여간 귀찮게 군 게 아니었다. 

정말이지 내 알 바 아니다. 하여간 다들 호들갑이야. 링크를 몇 번이나 봤다고 "눈동자에 하늘을 담은 용사님" 이라며 치켜세우는 마을 녀석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녀석은 날지도 못한다고!

그래. 제 아무리 잘난 용사라 할지라도 내 눈엔 그저 날지도 못하고 추위에 약한 하일리아인일 뿐이다. 그 사실을 상기하자 다시금 이 상황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이. 역시 지금이라도 넌 그냥 돌아가는게―"

링크를 불러 세운 그때였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어와 전신의 깃털이 곤두선다. 링크 역시 느꼈는지 나를 뒤돌아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쳇."

타이밍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뭐, 좋아. 이렇게 된 거 빨리 정리해 버리고 귀환한다. 아무 일 없이 임무만 수행하고 돌아가면, 공주도 뭐라 하지 못하고 제 생각이 틀렸단 걸 절실히 깨닫겠지. 

마물의 소굴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었다. 활을 든 리잘포스 보초가 넷, 동굴 안에는 모리블린과 보코블린이 수마리인가. 그리고 아마 주변에 숨어있는 적이 더 있을 것이다. 꽤 수가 많은 데다 몇몇이 화염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게 조금 성가시지만, 이 내가 상대하지 못할 건 없어. 

먼저 내 화살이 보초병들의 정수리를 뚫는다. 한번에 세발밖에 쏘지 못하는 탓에 운 좋게 살아남은 한 마리가 이상을 감지하고 꽥꽥 소리를 낸다. 그마저도 머리를 쏘아 잠재워주면, 동굴 안의 마물들이 술렁대며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서 링크가 뛰어들었다. 빠르고 빈틈없는 몸놀림으로 수마리의 적을 하나하나 처리해 간다. 나도 지지 않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활을 겨눈다. 아니나 다를까 눈 속에 의태하고 있던 아이스 리잘포스 몇마리가 링크의 배후를 노리고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놓치지 않고 불의 화살을 한발씩 선사해 준다. 약점이 정확히 찔린 녀석들은 링크에게 닿지도 못하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어느새 남은 것은 링크가 상대 중인 모리블린 한마리. 숨어있는 적도 더 남아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승리를 확신한 그때였다.

등 뒤로 기분 나쁜 박쥐 소리가 들린 것은. 

이런. 동굴 안쪽에 숨어있었나!

"조심해!"

내 경고에 링크가 대치 중이던 모리블린을 방패로 밀어냈다. 뒤를 돌아 몰려오는 키이스 무리를 확인한다. 그것들이 냉기를 두른 것을 보고도 링크는 물러서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저 바보가!

쨍! 

검을 휘두르는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링크를 아이스 키이스 떼가 둘러싼다. 퍼져 나오는 냉기 너머로, 나가떨어졌던 모리블린이 화염의 창을 줍는 것이 보였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가 불의 화살로 냉기를 두른 적을 단 한방에 처리할 수 있다는 건, 적도 마찬가지란 얘기.

지체할 시간이 없다. 지금 내가 폭탄 화살을 쏜다면 저것들을 한번에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링크까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낮게 하강해 키이스 무리에 뛰어든다. 이 정도 냉기쯤은 리토의 깃털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그대로 온몸에 힘을 실어 링크를 얼음덩어리 채로 밀쳐냈다. 쨍그랑하고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동시에, 화염의 창이 내 옆구리에 박혔다.

"리발!!!"

뭐야, 제대로 말할 줄 알잖아.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그런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했다. 

"....발. 리발!"

"....시끄러워. 안 죽었어." 

설마 내가 링크에게 시끄럽다고 하는 날이 오다니.

정신이 들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동굴 천장에 매달린 호롱불이었다. 처음부터 저걸 쐈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에 혀를 차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다행히 그리 오래 쓰러져 있지는 않았나 보다. 옆구리에선 아직 뜨뜻미지근한 게 흐르고 있고, 눈앞의 링크 역시 방금까지 싸우고 있었는지 숨을 헉헉대고 있었다.

내가 정신이 든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짓곤 스스로의 옷을 찢는다.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묻기도 전에 저릿한 아픔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꼴에 군인이라고, 지혈을 하는 손놀림이 꽤나 능숙했다. 콧등에 땀이 맺힐 정도로 집중하는 옆얼굴을,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 피가 완전히 멎은 것을 확인한 링크가 길게 숨을 내쉰 다음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하늘색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하고 싶은 말이라면 이쪽도 잔뜩 있어. 냉기를 내뿜는 적에게 근접거리로 검을 휘두르다니 제정신이냐, 라던가. 거기선 나한테 맡기고 후퇴를 했어야지, 라던가. 그럼에도 인내심을 발휘해 기다려주면,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던 링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덕분에 살았어?"

하아?

"왜 의문형인데."

"....덕분에 살았어."

"지금 장난해?"

"미안."

"사과하라는 게 아니잖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

"........"

"겨우 입을 열었나 했더니, 또야? 너란 녀석은 대체―"

꼬르르르륵

"........"

이번엔 내가 입을 다물 차례였다. 분위기를 못 읽어도 한참 못 읽는, 정말이지 난데없는 배꼽시계. 방금 죽을 위기를 넘겨 안도한 건 알겠지만, 너무 태평한 거 아니야? 그런 비아냥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문제는, 그게 링크가 아니라 내 배에서 난 소리였다는 거다.

"....날지 못하는 누구 때문에 쓸데없이 시간이 걸린 탓이잖아."

대량의 피를 흘린 건 덤이다. 나 혼자 다녀왔다면 이런 임무, 벌써 리토의 마을로 귀환해 저녁 식사를 하고도 남았다고. 수치심에 링크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데, 녀석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어딜 가나 했더니 마물이 남기고 간 냄비 앞에 우뚝 선다. 그리곤 허리에 두른 파우치에서 장작더미와 부싯돌을 꺼내 냄비 밑에 놓는다. 저 파우치는 대체 안이 어떻게 생겨먹은 구조길래, 라는 의문보다도 이 광경에 위화감밖에 들지 않았다. 이건, 그러니까― 

"요리를 한다고? 네가?"

고개를 끄덕인 링크가 부싯돌에 대고 검을 내리친다. 타오르는 불빛에 비친 얼굴은 어디까지나 진지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돌을 씹어먹는 녀석 아닌가. 요리 실력은 커녕 제대로 된 미각조차 가졌을 리 없어. 요리라 해봤자 아까 토벌한 마물의 뿔 따위를 넣은 끔찍한 음식일 게 분명하다. 헌데 녀석이 예의 파우치에서 주섬주섬 꺼내놓는 것들은 하나같이 멀쩡한 재료들이었다. 타반타 밀, 염소버터, 사탕수수, 작은 새 열매.... 잠깐. 이건 설마? 

"....너츠 케이크. 레시피가 있길래,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어."

그러고 보면, 출발하기 전에 잡화점을 기웃거리고 있었지. 화살이라도 사는가 했더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태평하게 장이나 보고 있었단 말이지."

"별로야?"

"그건 아니지만."

오히려 반대다. 왜 하필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지 따지고 싶을 정도라고. 

링크는 그럼 됐다는 얼굴로 재료들을 냄비에 넣는다. 괜히 좀 더 토를 달고 싶었던 마음은, 솔솔 코를 간질이는 고소한 냄새에 간단히 꺾이고 말았다. 

"자." 

잠시 후. 대체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링크의 손에는 꽤 그럴싸한 너츠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간다. 안 돼, 아직 안심해선. 겉만 멀쩡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단지, 성의를 봐서 한번 맛만 봐주는 거야. 

"....어때?"

한 입 작게 베어 먹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링크가, 이윽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맛없다면 가차 없이 맛없다고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맛, 있어."

맛있었다. 그 외의 감상은 어떻게 해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내뱉어 놓고 곧바로 후회했다. 링크가 여전히 날 부담스럽게 빤히 쳐다보고 있다. 무언가 안도한 듯이 조금 표정이 풀어져있는 듯도 했지만, 내쪽에서 시선을 피하고 있는 탓에 확신은 하지 못했다. 

"아까는." 

"아?"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지금 이 타이밍에 아까 얘길 다시 꺼낼 줄은 몰랐는데.

"날 싫어하는 줄 알았으니까."

대놓고 그런 말을 들으면 대답에 곤란해진다.

별로, 싫어하는 게 아니야. 마음에 들지 않을 뿐. 그 차이가 뭐냐고 물어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같이 임무 중인 거 잊었어? 널 거기서 죽게 놔두면 공주를 볼 낯이 없잖아."

"그렇다고 해도."

"!"

별 일이 다 있다. 이 녀석이 말꼬리를 잡다니.

"이번에야말로...이번에야말로 정말로, 경멸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담담한 척하지만 어딘가 처량하고 안타까운 목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섣부른 말이 나올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문다. 그러자 반대로 목구멍 끝까지 울컥하고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동정이나 연민 따위가 아닌,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착각하지 마. 이런 일로 왜 널 경멸해? 네가 무슨 완벽초인인 줄 알아? 확실히 말해두겠는데, 네 실수쯤은 내 계산 범위 안이야. 나로선 딱히 놀랍지도, 실망스럽지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참지 못하고 단숨에 내뱉은 내게, 링크가 눈을 동그랗게 떠보인다. 태어나서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다. 

하긴, 그동안 얼마나 주변에서 기대받고 치켜세워지며 살아왔을까. 왕가를 섬기는 유서 깊은 기사 집안에서 태어나,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퇴마의 검을 뽑고. 전설이니 뭐니 하는 시시한 옛날 얘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을지 안 봐도 눈에 선해. 주변이 그러니까 제 자신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거겠지. 아니, 싫어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퇴마의 검의 용사라는, 누가 무슨 권리로 정해준 건지도 모를 제 운명을. 마치 아무런 감정도 의지도 없는 기계처럼 말이다.

아아, 그래. 난 그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말하는 김에 더 해주지. 네가 뭘 짊어지고 있는지, 대체 뭐가 그렇게 무겁고 버거워서 짓눌려 있는지 나는 몰라. 이해도 안 돼. 하지만, 알고 있는 것도 분명히 있어. 너의 안 좋은 버릇도, 약점도, 서투름도."

――――네 당연하지 않은 강함을, 그걸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그러니까 잘난 척 하지마. 적어도 내 앞에선, 뭐든 혼자 해낼 수 있다고, 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고! 알아들어!?"

지나치게 흥분했다는 자각은 있다. 쏟아내고 나니 속이 후련하기도 하고, 입맛이 쓰기도 했다. 역시 내 입에서 위로 같은 게 순순히 나올 리 없었다. 나야말로,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경멸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링크의 놀란 눈이 경멸로 변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녀석은, 하늘색 눈동자를 더욱 크게 빛내더니―― 

"응. ....고마워."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녀석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내가 들어 마땅한 말인데. 뭣하면, 좀 더 고마워하라고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라고 해도 모자랄 판인데. 어째서일까. 언제나의 비아냥조차 나오지 않는 건. 고작 그 한마디를 들었다고 이렇게나 가슴이 간질간질한 건.

링크가 어울리지 않게 미소 따윌 짓고 있어서? 이럴 때 링크의 음색이, 내가 상상했던 그 어떤 것보다 훨씬 귀에 듣기 좋아서?

"케이크, 더 만들까?"

"어? 어, 어어."

얼떨결에 대답해 버렸다. 별다른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링크에 내심 안도한다. 헛것을 본 거라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녀석이 웃고 있었다니 그럴 리 없어. 분명 고개를 들면 평소와 똑같은 무표정이 무심하게 냄비를 젓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든 순간, 나는 또다시 내 눈과 귀를 의심해야 했다. 

"....♪"

링크가, 그 링크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아."

내 시선을 눈치채고 퍼뜩 노래를 멈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아래로 피한다.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라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건지 무의식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본인도 답지 않은 짓을 했다는 자각이 있나 보다. 뾰족하게 솟은 귀가, 추위도 모닥불의 불빛도 아닌 무언가로 붉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링크가 눈치 보듯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우물쭈물 감질나게 달싹이던 입술이 마침내 떨어진 그 순간, 진심으로 심장이 멎을 뻔했다.

"좋아해,"

"요리하는 거."

"아."

....위험해. 아까부터 계속 링크의 페이스에 말리고 있다. 전부 녀석이 답지 않은 짓거리를 하기 시작한 탓이다. 갑자기 말문이 터지질 않나 요리를 하질 않나 웃지를 않나 좋아한다고 하지를 않나 (※요리를)!!!

나한테 링크는 무표정에 무뚝뚝하고 무심한 기사.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은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인 채로 있으면 돼. 이제 와서 그게 다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해봤자 뭘 어쩌라는 거야. 

"?"

고개를 갸웃하는 링크에게 손사래를 쳤다. 화풀이하듯 남은 케이크를 한 입에 먹어치운다. 그런데, 입안 가득 퍼지는 나무열매의 맛이 어째선지 몹시 달게 느껴져서. 

―――무언가 이상한 걸 넣은 게 분명해.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리토 마을로 돌아온 우리를 가장 먼저 맞아준 건 젤다 공주였다. 내가 부상을 당했다는 걸 깨닫곤 아연실색이 되어 달려온다.

"어서 치료를.... 어?"

공주가 내 상처에 덧대어진 천조각을 발견한다. 곧이어 날 올려다보는 얼굴엔 차마 숨기지 못한 기대감이 어려있었다. 사람이 다쳤다는데 너무하는군. 그야, 결국 공주 뜻대로 된 감이 없잖아 있지만. 

"보고는 이 녀석한테 들어. 난 좀 쉬어야겠으니까."

링크의 양 어깨를 잡아 공주 앞에 떠밀었다. 질문공세를 퍼붓는 공주와, 그새 말주변 없는 호위 기사로 돌아왔는지 어버버거리는 링크를 뒤로 한다. 이 이상 저 둘에게 휘둘리는 건 사양이야. 등 뒤의 소란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긴다. 쉬고 싶은 마음이야 절실했지만, 그 전에 들를 곳이 있었다. 

"어라. 웬일로 다쳐서 돌아왔네."

방어구점의 젊은 주인이자 오랜 친구, 사사미는 내 부상에도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내가 여기 온 이유에 더 놀란 듯했다. 잠자코 내 얘기를 경청하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의 방어구... 모자보다는 깃털장식... 흠흠. 리토답고 좋은 아이디어네! 지금 당장 시제품을 만들어 볼 테니까, 잠깐 기다려."

이제와 친구 녀석의 부탁을 들어줄 마음이 생긴 건 그냥 변덕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 일의 원인 중 하나는 링크의 허술한 방한 대책이었으니까. 옷뿐만 아니라 머리의 방어구도 리토의 기술이라면 냉기를 두른 적의 빙결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이랄의 영걸님, 또 오셨군요! ....네? 벌써 재료를 다 쓰셨다고요?"

그때 건너편 잡화점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힐끗 고개를 돌리면 링크의 모습이 보인다. 공주에게서 겨우 풀려난 모양이다. 옷도 언제 갈아입었는지 평소와 같은 푸른색 튜닉 차림을 하고 있었다.

"또 만들어 보고 싶어서요."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링크의 목소리가, 내 귀에 닿는다. 

"평이 좋았거든요."


"....쯧. 역시 그냥 맛없다고 했어야 했나."

"응? 뭔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아직이야?"

"잠깐만. 이걸 이렇게 하고... 됐다!" 

사사미가 방금 막 완성한 작업물을 내 앞에 들이댄다. 눈처럼 새하얀 깃털의 머리장식이었다. 

"머리장식에 리토의 깃털을 쓰는 건 아무래도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좀 그러니까. 대신 설조의 깃털을 썼는데 어때?" 

태도는 가벼워도 실력은 확실한 놈이다. 화염의 힘이 깃들어있다는 루비를 장식해 방한 효과는 물론 리토의 세련됨까지 갖춘, 솔직히 하일리아인들에겐 아까울 정도의 물건이었다. 뭐, 얼굴만큼은 반반한 그 녀석이 모델이라면 적어도 리토의 명성에 먹칠을 하지는 않겠지. 

다만, 어딘가 한가지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 햇살을 받으면 황금빛으로 빛나는 갈색 머리카락과 쉽게 붉어지는 피부,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을 닮은 눈동자를 떠올린다. 그래, 녀석에게 어울리는 건 하얀색보다는 역시―

"........."

순간 머리 속에 어떠한 상상이 떠오르고, 사고가 정지했다. 도저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자극적이고 이질적인 상상. 억지로라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내저으면, 사사미 녀석이 날 이상하게 쳐다본다. 젠장,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캐묻지도 마. 이건 무덤까지 가져갈 거라고.

"....네 깃털을 쓰는 게 좋았어?"

"하아아아아아?????"

――――군청색 깃털의 머리장식을 하고 수줍게 웃고 있는 링크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가슴이 두근거린 것도, 분명 그 너츠 케이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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