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발링크] 마지막 인사
밝지 않는 밤은 없으니까
"동이 트면 하이랄 성에 갈 거야."
또 왔냐고 빈정대는 목소리에, 링크는 그렇게만 답했다.
오랜만에 신수 바・메도의 곁을 찾았다는데, 반갑게 맞아주긴커녕 밉살스런 말만 하는 그의 입을 한번쯤 다물게 만들고 싶다는 유치한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내뱉고 보니 통쾌하기보다도 어쩐지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걸 아는데도 고개를 들어 메도를 올려다본다.
너는, 지금 어떤 심정으로――――
그래. 드디어 가는구나.
초조해한 것이 무색하게, 돌아온 대답은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링크는 쓴웃음을 짓는다. 끝까지 속내를 허락하지 않는 그가 야속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이런 사내라고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
....그래서.
우리 용사님은 결전의 날을 앞두고 이런 곳에서 뭘 하는 걸까나?
"......."
사실 링크도 그 답을 찾고 있었다. 자신은 과연 이 남자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무슨 말이 듣고 싶어서 이곳에 온 걸까.
설마, 내 이 미성으로 격려해주길 바랬다던가?
긍정하기엔 부끄럽고, 부정하기엔 틀린 말도 아니라서 곤란하다. 링크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볼만 긁적이고 있으면, 그는 다 들리게 웃음을 터뜨렸다. 기분 좋은 바람 같은 목소리가 링크의 귀를 간질인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말야.
이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잖아?
....아아, 그래.
동이 틀 때까지, 그저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지금입니다, 링크!"
그녀의 목소리에 흐려진 의식이 돌아온다.
정신이 들면 팔다리가 비명을 지를 차례였다. 휘몰아치는 원념의 소용돌이에 그만 중심을 잃고 말에서 굴러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링크는 각오를 다지고, 지면에 한쪽 무릎을 꿇어 자세를 잡는다. 이것은 그녀가 만들어준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기회. 그렇기에 원념의 불꽃이 만들어낸 불안정한 상승기류보다도 확실한 바람을 택한 것이다.
몇 번이고 자신의 등을 밀어준 바람을.
결국 나한테 기대는 거야? 링크!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반가운 대사였다. 링크는 긴박한 순간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 그러니까 부탁해!
두둥실 떠오른 몸은 가볍고, 시야는 더없이 선명하다. 세상 만물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가운데, 링크는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빛을 발하는 화살은 직선 궤도를 그리며 마수의 중추에 꽂힌다. 검붉은 액체가 피처럼 뿜어져 나오더니 마침내 빛의 구체를 뱉어낸다. 그것이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을 확인하고 링크 역시 땅에 착지한다. 지금부터는 그녀의 무대였다.
검붉은 거구와 대치하는 그것은 작지만 그 어떤 빛보다도 강렬하고 밝았다. 마수의 땅을 뒤흔드는 듯한 포효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는다. 비애의 눈으로 마수를 똑바로 응시한다. 빛의 파동을 견디지 못한 마수의 거구가 썩어 문드러져 뿔뿔이 흩어진다. 가논은 최후의 발악을 하듯 높이 소용돌이치지만, 눈부신 빛은 검붉은 하늘마저도 전부 삼켜버렸다.
그것이 재앙 가논의 최후였으니. 어둠을 가둬버린 빛은 급속히 수축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재앙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백년에 걸친 길고 긴 싸움이, 마침내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링크가 해냈어...!"
수면 위에 물 한 방울이 똑 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여전히 나지막하고 상냥한 목소리였다.
사명을 마치고 작동을 멈춘 신수 바・메도의 위, 찌푸린 구름이 걷혀 겨우 모습을 드러낸 푸른 하늘을 만끽하고 있던 참이다. 뜻밖의 손님에 리발은 조금 놀랐지만, 곧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한다.
"그야 당연하잖아, 미파. 이 내가 도와줬는데."
"오우. 그것도 제일 먼저 말이지!"
불쑥 어깨 위로 단단한 팔이 둘러졌다. 고론 사내 특유의 호쾌한 목소리가 귀에 따갑다. 리발은 노골적으로 팔을 뿌리친 다음 제 어깨를 툭툭 털었다. 그러자 이번엔 성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뒤따른다.
"뭐였더라? '말해두지만 널 위해서가 아니야' 였던가? 그러고 보니, 한때 우리 겔드의 연애 교실에서 츤데레라는 게 유행했는데...."
어이쿠, 줄줄이 행차하셨군. 한숨을 내쉰 리발이 마침내 뒤를 돌아보면,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같이 입꼬리를 실실 올리고 있었다.
"신수뿐만이 아니야. 마지막의 상승기류도, 리발씨가 도와준 거지?"
"작은 변덕이야. 신경 쓰지마."
"흐응?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본데."
"하!"
우르보사의 추궁에 리발은 코웃음을 쳤다. 새삼스러운 얘기였다.
"백년이나 지나면 제아무리 나라도 변하지 않겠어? 더구나, 인정하긴 싫지만 일단은 녀석에게 구원받은 몸이니까."
그답지 않게 비교적 솔직한 리토의 말에, 세 사람은 놀란 얼굴로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링크는 좋은 녀석이니까 말야."
"후후. 언젠가 알아줄 거라고, 나 믿고 있었어."
"이거 마지막에 좋은 구경을 했군."
"시답잖은 얘긴 그쯤하고. 왜 자기들 신수는 내버려 두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우리 공주님을 마중 나가기 전에 너희랑도 만나고 싶어서 그랬지."
"응. 그치만 리발씨는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
"정곡인가본데? 크하하하!"
"시끄러워. ...모였으면 가자고. 마중."
화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었지만, 시간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세 사람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지고, 쓸쓸한 미소가 번진다. 그러나 곧 마음을 다잡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인사를 앞두고 리발은 지난밤을 떠올렸다. 끝끝내 하지 못한 말들, 전하지 못한 마음을. 그런 주제에 동이 트지 않길 바랐던 제 어리석음을.
하지만, 밝지 않는 밤은 없으니까.
이렇게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을 마주하고 나서야 뼈저리게 깨닫는다. 자신은 이 하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고. 후회도 미련도 전부, 이런 하늘 앞에선 아무래도 좋아져 버려. 지금이라면 한 점의 후회도 없다고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단언할 수 있다. 그러니까―――
너도 후회 따위 남기지 말고, 오래오래 웃으면서 살아.
그리고 죽어서도 내 곁엔 오지 마!
마지막에 전한다면, 그건 역시 뒤늦은 고백 따위가 아니라 조금은 밉살스런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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