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발링크] 미파님은 전부 알고 있어
나, 그 녀석 싫어
리토의 영걸이 왕의 부름을 받고 하이랄 성에 온 지 벌써 수일이 지났다.
임명식이니 축하 연회니 떠들썩했던 것도 처음 며칠뿐. 계속되는 지루한 나날에 온몸이 근질거리고, 커다란 성조차 새장과 다름없이 느껴진다. 답답함을 참지 못한 리발은 결국 이른 아침 몰래 자신의 방을 빠져나왔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는 맑음. 바람은 적당히 불어와 그야말로 절호의 비행날씨다. 리발은 간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하이랄 성 주변을 선회했다. 그러나 곧 저수지 근처에서 익숙한 두 얼굴을 발견하고, 모처럼 좋았던 기분이 수직낙하하는 것을 느꼈다.
조라의 왕녀, 그리고 퇴마의 검의 기사.
'...공주의 호위기사란 직책은 꽤나 한가한가 보지? 게다가, 아무리 소꿉친구라지만 왕녀 옆에서 잘도 저렇게 누워있을 수 있군. 과연, 운명에 선택받은 남자다, 이건가?'
싫은 소리 한두마디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충동이 밀려온다.
조라의 왕녀에게 악감정은 없다. 오히려, 그녀도 고향을 향한 그리움에 못 이겨 물가를 찾았다고 생각하면 동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허나 그 옆에 무방비하게 누워있는 기사는 다르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리발은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필살기를 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철가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하이랄 성에 온 이후로도 몇번인가 그의 눈앞에서 실력을 과시하거나 대놓고 도발도 해보았지만, 기사의 무표정에는 변함이 없어서. 아아, 정말이지――
"나, 그 녀석 싫어."
순간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나 싶어 리발은 깜짝 놀랐다. 곧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리발씨 말이지? 링크가 그런 말을 하다니 별일이네."
이어지는 미파의 목소리에, 잠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건 그러니까....
'퇴마의 검의 기사가, 조라의 왕녀에게, 내 험담을 하고 있다.'
상황 파악이 끝나면, 머리에 피가 오를 차례였다. 그야 물론, 링크가 리발을 싫어할 이유야 얼마든지 있다. 그가 아무리 무심하다 해도 대놓고 적대심을 드러내는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으리란 것은 리발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서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떠들 줄 알면서, 왜 내 앞에서는 벙어리처럼 있었던 거야? 혼자 고상한 척할 게 아니라 내 앞에서도 그렇게 지껄여보지 그랬어. 그랬다면 나도...!'
"정말 그렇게나 대단해? 그의 궁술이."
'........하?'
이번에야말로 한마디 해주려 했는데, 예상외의 말에 딱 멈추고 말았다. '대단'이라니, 험담에는 영 안 어울리는 단어 아닌가. 리발은 물음표를 띄우고, 수풀 뒤에 몸을 숨긴 채 귀를 기울인다.
"일단 그 높이로 날아올라서 활을 쏠 수 있다는 게 이해가 안 가."
"링크도 참. 그는 리토족이야. 하늘을 나는 건 당연한걸?"
"미파가 그걸 못 봐서 그래! 그건 같은 리토족도 따라 하지 못할 거야. 단순히 종족의 차이라고 넘어갈 게 아니라구...."
링크는 토라진 아이처럼 홱 돌아누워 한참을 궁시렁대더니, 갑자기 "아니지," 하고 무언가 깨달은 듯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어느 쪽인가 하면, 그 녀석은 리토 중에서도 체구가 작은 편이잖아. 그럼 오히려 핸디캡이 있는 거라고. 아-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싫어졌어. 그 무식하게 커다란 활도 그래. 남들은 들지도 못하는 걸 한손검인 마냥 쉽게도 다룬단 말야. 그것도 공중에서! 게다가, 세발 동시에 쏴서 전부 원하는 표적에 맞출 수 있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해!?"
흥분해 단숨에 불만을 쏟아낸 링크에게, 미파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눈앞의 청년이 꼬꼬마 시절부터 자기 몸보다 큰 대검, 창과 부메랑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능숙하게 휘두르는 모습을 보아왔기에 '너도 남 말 할 처지가 아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자신과 관련된 일이면 놀라울 정도로 둔해지는 청년이 그걸 알 리 없었다. 볼을 조금 부풀리고 뚱한 표정으로 묻는다.
"왜 웃는 거야."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전에 나에게도 비슷한 이야길 했었지,"
"지금도 창으론 미파를 당해낼 수 없다고 생각해. 아아, 정말 어째서... 이렇게 쪼끄만데... 하아...."
이길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미파에게도, 리발에게도....
끝내 나약한 말이 나오고 말았다. 하이랄의 영걸이자 퇴마의 검의 기사로서 내뱉어서는 안 되는 나약한 말. 그것을 미파는 탓하지도, 위로하지도 않는다. 그저 상냥하게 되물을 뿐.
"창과 활로는, 말이지?"
"...검이라면 지지 않아. 질 수도 없고."
"알고 있어. 하지만 링크는, 그것만으론 부족한 거구나."
링크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으로도 지고 싶지 않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해지고 싶다.
링크가 목표로 하는 장소는 미파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변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그가 어른이 되어도, 더 이상 바라보는 눈높이가 같지 않아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좋-아. 오늘부터 다시 특훈이다!"
'아아, 그래. 이 미소도.'
그러니까 나도 변함없이 네 옆을 지킬 거라고, 미파는 생각한다. 비록 링크가 그런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은 그가 기운을 차린 것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당장이라도 훈련소로 달려갈 듯한 기세를 막을 수는 없을 테니.
"그야 나는 녀석처럼 날지도,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활을 다루지도 못하지만... 그만큼 땅 위에서 힘내지, 뭐!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미파."
"으응. 오랜만에 링크와 얘기할 수 있어서 기뻤어. 특훈, 힘내."
"응. 아, 조만간 미파에게도 승부 신청할 거니까 말야!"
"후후. 언제든 환영이야."
그렇게 링크가 떠나고, 저수지에는 평화로운 정적이 찾아왔다.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맑고 시원한 경치에 조라의 왕녀는 눈을 가늘게 뜬다. 기분전환도 했고, 좋아하는 사람도 만났고, 더할 나위 없는 아침. 지금쯤 잠에서 깨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무즈리를 위해서라도, 슬슬 방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지.
'하지만 그전에....'
자리에서 일어난 미파는 빙글 몸을 돌리곤, 조금 멀리 있는 수풀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엿듣기라니, 좋은 취미는 아니네."
엄격한 말과 다르게 그 목소리와 표정은 상냥하고, 어딘가 즐거워 보인다.
사실, 링크를 짝사랑하는 그녀로서도 리토의 영걸을 싫어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는 것은 그녀가 도무지 남을 미워하지 못하는 성품인 것도 있지만, 지기 싫어하고 솔직하지 못한 리토의 청년에게서 자신이 잘 아는 누군가를 조금은 겹쳐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
마침내 리토의 영걸이 부스럭 소리를 내며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다소 꼴사나운 등장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표정도, 평소 여유 넘치는 그에게선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짙은 남색의 깃털로 뒤덮인 얼굴이 그 색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게 붉어 미파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곧 무리도 아니라고 납득한다. 그도 그럴 게, 눈앞의 청년은 방금 하이랄 최강의 기사에게서 최고의 찬사를 받은 셈이니까.
"....나, 그 녀석 싫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대사에, 미파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뒤로 비슷한 불평이 줄줄이 이어질 것은 뻔해서. 방으로 돌아가는 건 조금 더 나중의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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