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런 로맨틱

[리발링크] 개구리 수프는 사양이니까

트릭 오어―――

이국(異国)의 풍습 따위에 들뜨는 의미를 모르겠다. 

....라는 게 발렌타인데이니 크리스마스니 하는 것들에 대한 내 기본적인 스탠스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다. 바로 10월 31일, 할로윈.

밤이 되면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리토의 아이들이, 이 날 만큼은 밤 늦게까지 마을을 돌아다녀도 혼나지 않는 것이다. 혼나기는커녕 과자와 사탕을 잔뜩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들뜨지 말라고 하는 편이 무리이지 않은가. 

사탕을 주는 입장인 나로서도 마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건 싫지 않다. 올해는 또 어떤 마물이 나를 찾아올까 하는 기대가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뭐하는 거야, 링크." 

눈앞의 호박 마물이 고개를 갸웃한다. 참고로 흔히 말하는 잭 오 랜턴처럼 멋들어진 게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호박을 머리에 뒤집어썼을 뿐인,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마물이다. 

"어떻게 알았어?"

푸하, 하고 숨을 내쉬며 맨 얼굴을 드러낸 링크가 묻는다. 평소 윤기 나는 금발이 땀에 젖어 헝클어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앞머리를 정돈해주면, 링크는 간지러운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당연한 걸 묻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못생긴 낯짝이잖아."

"........"

"어이쿠, 무서워라. 그래서, 무슨 일인데?"

나를 노려본 것도 잠시, 링크가 '아, 그렇지' 라는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호박을 내 앞에 들이민다. 

"잭 오 랜턴, 만들고 싶어."

"하아?"

"가르쳐줘."

그렇게 말하는 녀석은 언제나의 무표정이었지만, 푸른색 눈동자가 묘하게 반짝이고 있었던 것 같다.


링크가 만든 호박 포타주 (호박의 안쪽을 파내고 나온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로 서로 늦은 저녁 식사를 때우고, 식기를 정리하기 무섭게 링크는 다시 나에게 텅 빈 호박을 건넸다. 얌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눈동자가, 역시나 반짝이고 있었다. 

왜 내가, 라는 불평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링크의 절망적인 미술 센스를 알고 있으니까 거절하기도 뭣하다. 내 우월함을 인정받는 것 같아 솔직히 나쁜 기분은 들지 않기도 했고. 

"흐음." 

나는 잠시 고민하고, 호박껍질의 표면에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냥 눈코입을 그릴 뿐이라면 시시하니까, 하이랄에서 가장 흔한 마물을 떠올리며 코를 돼지처럼 납작하게, 커다란 입은 이빨이 듬성듬성 난 모양으로 그린다. 옆에서 링크가 "보코블린이다" 라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밑그림이 끝난 호박과 함께 나이프를 쥐어주면 링크는 의욕 넘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프 끝이 연필 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내심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나는 이것저것 지적한다. 

"처음부터 너무 깊게 파지 않아도 돼. 일단은 칼집만 낸다는 느낌으로. 밑그림의 선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조금 더 바깥을 자르는 게 더 보기 좋아." 

"이렇게?"

"그래, 그렇ㄱ... 이봐, 조심해!"

방금 주의를 주었는데도 링크는 금세 다시 위험한 곳에 손을 둔다. 정말이지, 검술과 요리를 제외하면 놀라울 정도로 서툰 녀석이다. 보다 못한 나는 링크를 내 무릎 위에 앉히고 녀석의 손을 겹쳐 잡았다. 말로 하는 것보다 몸으로 가르쳐주는 편이 더 효과가 좋겠지. 

"칼을 여기 둘 거라면 다른 한 손은 이쪽에 두도록 해. 그리고 누르는 힘은 이 정도로..." 

"........."

이 내가 친히 가르쳐주고 있다는데, 어째 대답이 없다. 

듣고 있어? 물으려다 뾰족한 귀 끝이 새빨갛게 물든 것을 발견한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집중해."

"!!!"

일부러 귓가에 대고 끈적하게 속삭이자 품 안의 링크가 펄쩍 뛰었다. 알기 쉬운 반응에 좀 더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정말로 손을 베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적당히 하기로 한다. 순순히 물러서자 링크는 안도한 것 같기도,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효과가 있었는지 그 뒤로 링크는 눈에 띄게 능숙해졌다. 무사히 칼집내기를 끝마치고, 내가 지시하는 대로 디테일과 입체감을 더해간다. 

"됐다!"

"아직이야."

이건 어디까지나 랜턴이니 불을 피우지 않으면 완성이라고 할 수 없다. 작업을 위해 켜두었던 양초를 조심스럽게 들어 호박의 안쪽에 넣었다. 그러자 아까보다도 노랗고 부드러운 불빛이 되어 어둠을 밝힌다. 이렇게 보니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였다. 

"뭐, 나쁘지 않군."

"응."

링크가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좀 더 칭찬해줘도 좋겠지만, 원래 말로 하는 것은 서툴다. 대신 손을 뻗어 링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윤기를 되찾은 금발이 손가락에 사르륵 감긴다. 링크는 기분 좋은 듯이 눈가를 휘고, 내 쪽으로 체중을 실어 몸을 기대어온다. 

"...리발."

"응?"

"트릭 오어 트리트."

그 말 왜 안 하나 했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까 그렇게 먹어놓고 또 배가 고파? 핀잔을 담아 뾰족한 귀를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깨물었다. 호박의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다. 

"안됐지만, 사탕은 아까 아이들에게 다 줘버렸거든. 장난을 칠래? 아니면, 다른 원하는 거 있어?"

"음, 그럼...."

내 제안에 링크는 잠시 고민하더니,

"트릭 오어―――――"

주문을 외우다 말고 고개를 치켜든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입술을 살짝 내민 채로. 

"안 해주면, 어떤 장난을 칠 건데?"

"..........."

나로선 애써 평정을 유지하고 물은 것이었는데, 링크는 산통 다 깼다는 얼굴로 눈을 치켜뜬다. 꼭 지금 그걸 물어야겠냐는 표정이다. 

"내일 아침 메뉴, 고고개구리 수프."

나를 노려보며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웃음기라곤 요만큼도 없어서. 여기서 기어코 장난을 고르면 아마 내일은 아침뿐만 아니라 점심과 저녁도 무시무시한 메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는 수 없지.

나는 두 손으로 링크의 양 볼을 감싸고 천천히 고개를 내린다. 별로, 이 순간을 바래왔다던가, 사실은 아까부터 키스하고 싶었다던가 하는 것은 절대 아냐. 단지,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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