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온화상

[리발링크] 너와 나, 그 모순에 대하여

나를 정면으로 부정해온 주제에


"있잖아, 날 좋아해?"

입 밖으로 꺼낸 순간 후회했다. 정말이지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리발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 시선에 위축되어 서둘러 덧붙인다. 

"미안. 괜한 걸 물어봤어."

"그걸 지금 묻는 거야? 이 타이밍에?"

지금 이 타이밍이란 건, 둘 다 옷을 벗고 같은 침대에 누워 어떠한 행위를 시작하기 직전이라는 걸 말하는 거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서로 몸 뿐만인 관계는 아니라는 자각이 있을 터다. 몸을 섞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니, 어이없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리발이 과장되게 한숨을 쉬었다.

"싫어하는 녀석이랑 이런 짓을 하는 취미는 없는데 말이야. 너는 아닌가 봐?"

"미안하다니까. 잊어버려."

"아, 그래."

말만 "아, 그래" 였다. 실토하지 않는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라는 무언의 협박에, 결국 나는 백기를 들었다. 한달만의 재회를 허투루 보낼 수는 없다. 

별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야. 굳이 이 타이밍에 물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정말, 문득 그런 의문이 들어서. 

"....왜냐면, 한번도 말한 적 없잖아. 내 어디가 좋다던지, 반한 계기라던지, 그런 거...."

하물며 좋아한다는 말마저도.

언젠가의 고백을 떠올려보면 그걸 고백이라고 해야 할지도 의문이었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엉망진창이야. 그러니까 책임져."

그야, 그런 막무가내에 고개를 끄덕인 나도 나지만.

그때 받은 군청색 깃털 장식은 침대 옆 서랍 속에 잠들어있다. 

쌍방과실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밝히지도 못하는 이런 관계에 뒤늦게나마 의문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 어쩌면 줄곧 서로 모른 척 해왔는지도 모른다.

"계기라. 굳이 말하자면 너츠 케이크이려나."

"너츠 케이크?"

"기억 안 나? 내가 널 죽을 뻔한 위기에서 구해준 날."

기억이 안 날 리 없다. 생각지도 못한 우연에 가슴이 간질거린다. 

"....나랑 똑같네."

"헤에, 의외군. 백마 탄 왕자님이 취향이었어?"

"아니, 그것보다는...."

리발이 나를 몸 바쳐 구해준 것은 의외였고, 고마웠다. 하지만 정말로 결정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말해주었잖아. 뭐든 혼자서 해내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말 했던가?"

리발은 기억이 안 나는 건지, 안 나는 척을 하는 건지 시치미를 뗐다.

"솔직히 자세히는 기억 안 나. 그 너츠 케이크를 먹은 뒤로 어딘가 이상해졌다는 거 빼고는. 독이라도 넣은 거 아닐까 싶었다니까."

"너무하네."

"그 정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야."

"그건 역시, 그 정도로 내가 마음에 안 들었다는 거잖아?"

내 의문에 리발이 코웃음을 쳤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지금도 변함없어." 

어딘가 차가운 목소리에 심장이 철렁 가라앉는다. 나는 대체 뭘 기대했던 걸까. 

"당연한 거 아냐? 내 말에 반했다는 사람치고는 너, 내 말 따위 들을 생각 전혀 없잖아. 얼마전에도 무리를 해서 병원 신세를 졌다던데."

"........"

아직 다 낫지 않은 상처 부위가, 정곡을 찔려 욱신거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가 아니야, 라던가. 좀 더 의지해라, 라던가.

그렇게 말해주는 건 비단 리발 뿐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쩔 수도 없이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싸움은 나 혼자 하는 것이라고. 나 혼자 해내야만 하는 거라고.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체념이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말았다. 

"....나한텐 사명이 있어. 퇴마의 검을 지닌 자로서의."

"알고 있어."

"나라고 원해서 된 건 아니지만." 

"응."

"불쌍하다고 생각되는 건 더 싫으니까."

"아아."

"누가 대신해줄 것도 아니고." 

"그렇네." 

변명처럼 쏟아내는 내게, 리발은 일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이거다, 하고 깨닫는다. 다른 그 누구가 아닌 이 사내에게 흔들린 이유를. 

나를 정면으로 부정해온 주제에. 내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들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주제에. 다 너 때문이야. 기대 받는 것보다도, 치켜세워지는 것보다도, 그렇게 부정 당하는 편이 때론 훨씬 편하다고 깨달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나를, 너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너에게 긍정받고 싶은 내 욕심과 모순까지 전부. 

그거야말로 모순이라고, 사실은 진작에 눈치 채고 있었다. 평소 냉정하고 합리적인 네가 대체 왜 그렇게 무르게 구는지 이해하지 못했어. 그런데도 모른척 한 건―― 

"....만약. 정말 만약에 말이야."

―――기뻤으니까. 

"내가 전부 내팽개치고 너에게로 간다면, 어떻게 할 거야?"

어리광 부리고 싶었던 거야. 

"....그때는 나도 벌 받을 각오를 해야겠지. 하일리아 여신이 선택한, 그녀의 소중한 용사를 빼앗은 벌을."

내 볼을 감싸는 커다란 손은, 지금 당장이라도 나를 데리고 가줄 것만 같아서.

재앙 가논이 언제 다시 눈을 뜰지 모르는 이 시기에 영걸들끼리 사랑의 도피라니. 말도 안 되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 그렇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 어쩐지 조금 울고 싶어졌다.

이렇게까지 진심이 될 생각은 없었는데. 책임져야 하는 건 오히려 너야.

 

"너 말야... 내가 그렇게 좋아?"

리발이 쿡쿡 웃으며 내 눈가를 어루만진다. 민망해진 나는 리발의 손을 밀어내고 항의했다.

"얘기가 한 바퀴 돌았잖아. 그거 내가 먼저 물었거든?"

"흐음. 그럼 동시에 답할까? 내가 셋을 셀 테니까."

"....알았어."

시선을 맞추면 부끄러우니까 눈을 감는다. 리발의 하나둘, 하는 신호에 맞춰서 입을 열었다.

“좋, 아해.”

너무 기합을 줬는지 이상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 한마디만으로 목이 칼칼해졌다. 

좋아한다고 말하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아서 무서웠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고작 그 한마디를 입에 담았다고 천재지변이 일어날 리는 없어서. 방안엔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고, 대체 무얼 그렇게 무서워 했는지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라?

동시에 들렸어야 할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 삑사리가 덮어버린 걸까. 슬그머니 눈을 뜨니, 리발이 부들부들 어깨를 떨고 있었다. 곧 웃다 못해 배를 부여잡고 침대에 드러눕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크크큭. 네 마음은 잘 알았어."

"....속였겠다!!"

응징하기 위해 그 위에 올라탔다. 

마운트 포지션을 빼앗겼는데도 리발은 여유만만한 미소를 띄우고 있다. 태평하게 내 허리에 팔을 감싸온다. 

"적극적인데. 오늘은 이 자세로?" 

"~~~~!! 넌 매번 그렇게 사람을, 앗!"

"안됐지만 깔리는 건 취향이 아니라."

순식간에 몸을 일으킨 리발에게 귀를 깨물렸다. 귓가에 닿는 숨결이 뜨겁고, 간지럽다.

"한번 밖에 말 안 할 거니까 잘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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