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

진흙 속에 피다

글창고 by 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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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컾으로 생각해주십셔. 근데 진샤오 중심인 거 같기도 하고?

*타장르 최애들도 정신이 피폐한 애들이 많아서 좀 글도 약간 피폐한 느낌.

*철권7 이후 철권8 이전 시점이라 생각하고 썼습니다. 근데 보고 싶은 장면만 썼음.

살아 있는 것조차 사치다. 버팀목인 그녀는 죽었고, 나름 소중히 생각한 그들은 실체를 알면 증오하고, 실망해서 떠나버리겠지. 데빌 인자를 알게되고 버팀목이 없어진 그는 지칠대로 지쳤다. 서재에서 데빌에 대한 서적, 자료를 찬찬히 읽었다. 데빌 인자는 아자젤로부터 온 힘이며, 아자젤의 봉인 해제 조건은 인간들의 부정적인 감정이다. 

이거다. 아자젤을 부활시켜서 함께 죽으면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어쩌면 이 모습을 보고 실망해서 만날 수 없겠지. 하지만 그는 지쳤다. 너무 지쳐서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손을 내밀어준 소중한 친구도 자신에게 싸우는 열기를 알려준 녀석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이 녀석들도 내가 변한 모습을 보면 적잖게 실망할거야. 그리고 할아버지로 생각했던 놈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사람을 믿을 수 없다.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려 무언가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앙증맞고 귀여운 디자인의 늑대 인형 열쇠고리를 보며, 그는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미시마 공고에서 재학하고 있을 때, 수학여행으로 놀이공원에 다녀왔었다. 그 아이는 밝고 다정했다. 놀이공원을 함께 다니며 들뜬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놀이공원은 모두가 행복하게 웃고 있어. 놀이공원에 있을 때만큼은 슬픔도 불행도 잠시 잊을 수 있잖아. 그래서 좋아! 진도 잠깐이나마 슬픈 기분을 잊고 이 순간을 즐겼으면 해!' 잡은 손이 너무나도 따뜻하고, 그녀의 미소는 너무나도 눈부셨다. 눈부시고 따뜻해서 좀 더 곁에 있고 싶었다. 같이 사진도 찍었고 기구도 함께 탔다. 기념품으로 열쇠고리를 사서 검은색 늑대 인형 열쇠고리를 건네주었다.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 후로 늑대 인형 열쇠고리를 늘 가지고 다녔다. 소중한 추억이니까 버리고 싶지 않았다. 총수가 되어도 마찬가지였지만, 돌려줘야했다. 나는 네가 알던 내가 아니니까. 

씁쓸한 미소가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화면에는 죽어가는 사람들과 오열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총수가 되어 전쟁을 일으킨 후로 진은 쉽게 잠들지못했다. 혼자 있을 때 화면을 보며 입을 틀어막고 소리없이 흐느꼈다.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저질렀지만 저런 끔찍한 참상을 보니 견디기 힘들었다. 버티자, 버텨야 해. 그 녀석이 부활하면 모든 게 다 끝나. 내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작자도 데빌 인자를 잃고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이 될거야. 

문이 열렸다. 냉정한 분위기의 여성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다가왔다. 목적때문에 일부러 고용한 암살자다. 

"니나인가. 라스는 지금쯤 어디있지?"

"그 남자는 알리사 보스코노비치가 잠든 캡슐을 발견했다. 기동 시간은 맞춰놨으니 제때 기동할거야."

"일단 그 녀석은 내버려둬. 그리고 샤오유는 함부로 손대지마. 발견하면 그냥 돌려보내."

"그래."

니나가 무어라 말하려다 짧게 대답하고 말았다. 샤오유가 걸리적거리니 죽이는 게 편하지 않냐고 말한 순간, 역시 믿을 수 없다며 살기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살기를 드러낼 정도로 소중한 여자인가. 정말 귀찮고 연약한 남자군. 뭐, 나는 하던 일만 착실히 처리하면 그만이지. 니나는 혀를 차며 총수실을 나갔다.


"……네가 둘러보고 싶다던 놀이공원, 전쟁 때문에 재건할 수 없다는군."

"……"

아자젤 봉인의 여파로 혼수상태가 되었다가 깨어난 진은 절망했다. 분명 죽었어야했다. 그러나 자신은 생존당했다. 왜 살아있을까. 헤이하치가 죽었어도 카즈야가 G사를 이끌고 세계를 침공한다고 라스와 리에게 들었다. 그래. 내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는 그 녀석이 있어서다. 내가 죽더라도 녀석을 죽여서 전쟁을 끝내라고 날 살린거야. 라스도 전쟁을 일으킨 진이 끝내야만 한다고 말했다. 막 깨어났을 때는 작전 회의를 조용히 듣고 혼자서 밥먹고 훈련하는 것 외에는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알리사가 설득한 덕에, 넷이서 얼굴을 보고 밥을 먹으며 얘기를 할 정도로 발전했다. 

알리사는 라스와 리에게 진상을 들었다. 물론 진은 그녀에게 고철덩어리라고 비웃은 죄책감에 라스와 알리사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맘에도 없는 말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큰 상처임을 알고 있다. 진은 여전히 라스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진, 손을 내밀어 봐라."

손을 내밀었다. 라스는 진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샤오유가 선물해줬던 늑대인형 열쇠고리다. 생기없는 눈에 빛이 돌았다. 

"이거…누구한테 받은거야?"

"한때 네 옆에서 일했던 여자한테 받은거다. 걸리적거리니 만나면 돌려주라고 하더군."

"이번만은 그 여자에게 고마워해야겠군. 믿을 수 없는 여자지만."

열쇠고리를 지긋이 보던 그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항상 조소만 지었던 그가 이런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그 열쇠고리, 너한테 소중한 물건인가보군."

"응.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놀이공원을 갔었어. 친한 친구가 사준거야."

"…그럼 네 소중한 사람의 얼굴을 보러가는 건 어떤가?"

라스의 물음에 진은 다시 입꼬리를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 나는 샤오를 만날 자격이 없어."

"그래도…"

"나는 어차피 그 놈과 함께 죽어야 하니까."

"…만약에 네가 살아있으면 어떡할건가?"

"생각해 본 적 없어서 모르겠어."

"……넌 죽을 생각 밖에 없는건가?"

진은 라스를 잠시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는 장탄식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진, 지금의 너는 혼란스러운 상태일지도 모르지만, 이 말만은 말하게 해줘. 주먹을 맞대는 것만이 싸움의 전부가 아니야. 싸움이란 살아가는 것 그 자체다. 일찍 삶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다들 자신만의 삶을 지키거나 찾기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

"나한테 그럴 자격이 있나?"

"분명히 있을거다. 넌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뿐이야. 그 열쇠고리를 보고 누군가를 떠올리며 웃지않았나. 사실은 그 아이와 함께 살고싶을지도 모르지. 일단은 미시마 카즈야를 막는 것에 집중하자. 지금은 그게 제일 급한 상황이니까 그 뒤에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아."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했다. 뿌연 안개가 조금은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미시마의 피가 흐르는 그를 무작정 증오했지만 얘기를 들어주고 소중한 물건을 돌려주었다. 이 사람들이라면 믿을 수 있다. 진은 또 다시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아버지에게 배신당한 적이 있어서 사람을 믿지 못하지만, 당신들은 그나마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은 위로가 되었어. 고마워. 그리고…알리사를 고철이라고 말해서 미안해. 당신에게 소중한 존재인데."

"총수였을 때 했던 말이 맘에 걸렸나?"

"응."

"…그래. 아직도 그 말을 들으면 화가 나지만, 네 태도를 봐서 사과는 받아주지."

"당신 머리를 보면 미시마 헤이하치가 생각나서 거부감이 들긴하지만."

이 자식이! 진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라스가 주먹으로 때리려다 손을 거두었다. 그러더니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니 다행이군." 그렇게 말하고 앞장서는 라스의 뒤를 따르며 진은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리다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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