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생일 축하해

리드아이

by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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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 곧 생일이 다가오는데. 원하는 거 있어?”

“글쎄, 너만 있으면 되는데. 굳이 원한다면… 너와 춤추고 싶어.”

“춤? …알겠어! 준비해 볼게. 일이 좀 커져도 괜찮지?”

 

상관없어. 생일 선물이라며, 성대하게 준비해 봐. 리드가 상상만으로 즐거운지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부쩍 입매를 끌어 올려 자주 웃어 보기 좋다고 칭찬해 줬더니 더욱 잘 웃어 보이는 그다. 웃음에 홀려 시선을 진득히 두자 ‘잘생겼지? 많이 봐.’ 유혹하듯 그윽하게 표정을 지어 보여 시선을 피해버렸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유혹하네. 툴툴거리면서도, 손을 뻗어오는 그의 넓은 품에 안겼다.

“성대하게 준비해 볼게. 무도회 어때? 여름 무도회!”

“어떤 거든 좋아. 춤 연습은 안 해도 되겠지?”

“천외천의 무도로 어떻게든 안 되려나. 성왕청 홀에서 할까? 장소는 어디가 좋아?”

“빈체스터 왕궁 연회홀 어때. 국왕 폐하께는 내가 말하지.”

 

그가 원하는 생일 선물은 연회장에서 같이 춤추는 거였구나. 사실을 깨닫자마자 내가 한 일은 예법 책을 읽는 것이었다. 신성 언령 제국 황제로서 참석하면 좋겠지만, 리드가 원하는 건 히스펜릴 공녀로서 참석하는 무도회라 공녀로서의 예법을 최대한 빠르게 익힐 수밖에. 예법 책을 읽으며 무도회 드레스도 준비하느라 되게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사이 리드도 왕자로서 예법을 다시 익히러 갔는지 한동안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생일 하루 전, 겨우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황제로서의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길에 유리 온실에서 꽃을 보고 있던 내게 은방울 꽃다발을 안겨주며 등장한 그가 걸음을 뒤로 옮겨 뒤에서 날 끌어안았다. 목에 입술을 문지르며 체취를 확인한다.

 

“아이. 생일 선물은 좋지만. 이리 바빠서 얼굴까지 못 보게 하는 거면, 원치 않아. 네 향기가 그리웠어.”

“어어…나도. 보고싶었어 리드. 침실에도 안 들어오고. 많이 바빴던거야?”

“너와 춤추는 게 설레서. 내일, 착장 기대해도 되겠지 아이.”

 

쪽쪽, 목에 입술을 부딪치던 그가 공간 전이석을 깨트린다. 눈앞의 풍경이 바뀐다. 오두막의 침실로 도착한 그가 날 조심스레 침대에 앉혔다. 입술을 손으로 두드리며 애처로운 시선을 보낸다. 며칠 못 봤으니 키스를 재촉한다. 어이없는데도 나도 동해서. 잘생긴 얼굴이 어디 상하지는 않았나 전체적으로 둘러본 다음 아랫입술을 깨물며 입을 맞췄다. 서로의 호흡이 섞이고 흩어진다. 말캉한 혀를 문지르며 열정적으로 임했다. 곧 달뜬 숨과 함께 입술을 뗀 나는 그를 품에 안았다. 이다음으로 가고 싶지만, 내일의 일정이 있기에 그만뒀다.

 

“으응, 리드. 이다음은 나중에. 내일 춤 춰야지 같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같이 잠들까, 아일렛.”

 

자정까지 버티려고 했지만,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잠에 빠져들게끔 한다. 짹짹,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기지개를 켜며 옆자리를 확인하자, 먼저 준비하고 나갔는지 베개가 잘 정돈되어 있다. 나도 준비해야지. 침대에서 꾸물꾸물 내려와 씻고 나갈 준비를 마친 후 공간 전이석을 깨트렸다. 이동 장소는 빈체스터 왕궁 정문으로. 정문 앞에 짧은 은발의 잘생긴 남자가 왕실 예복을 입고 서 있다. 그가 에스코트하듯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맞잡으며 공녀로서 인사를 건넸다.

 

“레미닉 왕자 전하를 뵈옵니다. 오늘 무도회의 파트너 잘 부탁드려요.”

“히스펜릴 공녀. 어서 와, 기다렸어 그대를.”

 

세상이 그를 사랑하자 그는 자주 웃게 되었다. 지금도 환히 웃는 미소가 그 증거고, 나의 기쁨이다. 치렁치렁한 장식이 달린 연회용 드레스는 걷기가 불편했다. 그를 빤히 올려보자, 그가 몸을 숙여 날 안아 올렸다. 품에 폭 안긴 채 입장하는 연회장은 우리 둘밖에 없었다. 주인공은 단둘인, 하나뿐인 연회이다. 중앙홀에 내려준 그가 춤을 권한다.

 

“리드, 아니. 레미닉 전하, 예법이 약간 서투시네요.”

“히스펜릴 공녀, 그대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왕자가 춤을 권하면 먼저 절을 해야지.”

“에엑? 설마! 할아버지께서 바로 춤춰도 된다고 하셨는데.”

“뭐. 그런 건 상관없어. 이제, 나와 춤추지 않겠어 공녀.”

 

그의 말에 맞잡은 손에 힘을 주고 스킬을 발동했다. 천외천의 무도, 마왕을 죽일 때 리드 보라며 썼던 스킬을 춤추려고 쓰다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매끄럽게 스텝을 밟으며 그와 단둘이 연회를 즐겼다. 오케스트라도 없지만 그는 물 흐르듯이 다른 춤을 이어 나간다. 넓은 공간에 구두 소리만 울렸다. 연습한 춤 스텝을 다 밟고 나서야 그가 만족하듯이 웃으며 멈췄다. 호흡을 내쉬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춤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춤을 다 추면 인사를 하고 물러나는 것이 내 역할이자 신분이다. 드레스를 양쪽으로 잡고 약간 들어 올리며 절을 한다.

 

“춤, 감사합니다 레미닉 왕자 전하.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히스펜릴 공녀. 춤도 췄는데, 같이 술이라도 마시는 건 어떤가. 그대가 꽤 마음에 들거든.”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게요. 그럼 이만.”

 

그를 좀 골탕 주고 싶어 몸을 돌린 채 연회장을 걸어 나가자, 마법을 사용해 내 앞을 가로막는다. 이런 건 약속에 없었다며 동요한 표정이 볼만했다. 그래도 생일인데 그만 할까 싶어 그를 끌어안고 볼에 키스했다. 힐난하는 눈빛이 매서웠다. 눈을 도르륵 굴리다 그저 웃어 보였다. 쪽쪽, 볼에 연달아 키스하며 애교를 부리자 겨우 그의 시선이 누그러진다. 이때다 싶어 준비한 멘트를 말했다.

 

“테실리드. 생일 축하해! 같이 춤추는 걸 원하는 건 몰랐어. 왕자와 공녀로서 춤추고 싶었던 거지? 예법도 익히고, 준비도 하느라 바빴지만 이렇게 잘 꾸며진 왕자님 보니까 너무 좋아. 그러니까, 음. 왕자 전하로서 봤어도 분명 사랑에 빠졌을 거야. 이렇게 잘생긴 미남이 왕자 전하라니. 약혼자로서 맺어졌으면 재밌었을지도 몰라. 헤헤. 이제 왕자 전하가 아닌 내 남편으로, 국서로 돌아와 줄래? 생일 연회는 신성 언령 제국에서 해야지. 황제의 국서로 맞이하는 생일 연회가 리드, 너를 기다리고 있어.”

“아아. 춤만 추는 것이 생일 선물인 줄 알았는데. 생일 연회까지 준비했다니. 기뻐, 아일렛. 가끔 공녀로서의 널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진 널 보니까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부질없는 생각이겠지만. 생일 연회를 즐기러 가볼까. 황제 폐하가 준비한 국서의 생일 연회는 어떨지 궁금하군.”

 

그가 잠시 허공에 시선을 둔다. 공녀와 왕자로서의 만남을 상상한 그는 고개를 저으며 흰색의 제례복 드레스로 환복한 그녀의 손을 맞잡고 왕궁의 연회홀을 벗어난다. 춤을 췄으니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간 전이석을 깨트린다. 이제 왕궁에 남은 미련은 없다. 또한, 공녀와 왕자로서의 만나는 시간선이 부럽지 않다. 애초에 시간선은 존재하지 않지만, 상상으로 존재하는 시간선이 미련 없이 부서졌다. 그가 존재하고, 숨 쉬는 이 세계는 온 세상이 자신을 사랑하는 세계이다. 왕자보다 더 고귀한 신분인 황제의 남편이기도 하다.

 

성황청의 연회홀은 그녀의 취향대로 꾸며져 포근하고 안락한 기분이 들게 한다. 연회홀 입구에서 그녀가 먼저 손을 내민다. 왕궁에서 그가 내밀던 손이 그녀로 바뀌었다. 손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상황이 뒤바뀐 듯한 느낌이 든다. 그가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뒤로 들리는 그녀의 말에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생일을 스스로 축복하기 시작했다.

 

“크흠. 나의 국서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연회를 준비해 봤어요. 같이 즐겨줄래요?”

 

아아. 나의 황제 폐하는 어찌 이리도 다정하실까. 대답 대신 입술을 머금고 그녀가 허락하는 만큼 깊은 키스를 이어 나갔다. 숨이 벅찰 정도의 키스는 황홀했다. 젖은 입술을 훑으며 그는 입꼬리를 올려 환하게 웃었다. 생일은 별로라 생각했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새로운 추억이 그의 기억 속에 자리잡는다. 다음 생일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눈을 크게 뜬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그는 생각했다.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다고. 그녀가 정신을 차렸는지 품에 어리광을 부린다.

 

“리드으. 대답도 해줘야지. 이렇게 키스만 잔뜩 하면 어떡해.”

“너무 좋아서. 미안, 아일렛. 이제 생일 연회를 즐기러 가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연회장에 입장한다. 그녀가 손수 꾸민 연회장은 예쁘고 아름다웠다. 준비해 준 만큼 그는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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