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ris
04
“일단은 시선 돌리기다.”
선배는 멀리 있는 적들을 염탐하며 소곤거렸다. 이미 회의 때 다 한 말이었고, 그 때의 목소리와 지금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녀석들이 정문을 활짝 열고 기다릴 리는 없어. 녀석들의 목표는 하이엠스와 사야샤니까. 충분히 힘을 뺀 다음에 쉽게 잡을 수 있다면 이득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선공한다.”
삐이이─. 날카로운 소리가 연구소의 주변을 가득 채웠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문이 열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방에서 수많은 이능력들이 몰아쳤다. 물, 바위, 폭죽, 총탄 같은 원거리 공격들이 날아갔다. 좁은 문에서 튀어나오다가 날아오는 공격에 군부의 일원들로 보이는 이들은 다급히 방어를 펼쳤음에도 버티지 못 했다.
“으악!”
개중에는 아예 공격을 막지 못하고 쓰러진 자들도 있었다. 설치해둔 기계들을 이용해 상황을 살피고 있던 선배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 자리에는 하이엠스와 사야샤를 비롯한, 몇 명의 정예부대원이 있었다.
“저곳으로 뚫고 들어가자.”
피해는 최소화하는 게 원칙. 그리고 시선돌리기 조는 적당히 공격을 가하다가 다른 곳으로 유인을 할 계획이었다. 때마침 공격이 멈추자 부대원들이 공격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퍼져나갔다. 상황을 수습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목에는 쵸커가 없었다. 케니스가 아니다. 그것까지 확인하고는 정예부대원들은 이동을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미리 보여줬던 설계도대로만 움직인다. 목표는 언제나 하이엠스와 사야샤를 보내는 거야. 명심해.”
“너희들 뭐야! 얼른 지원… 으악!”
상황을 수습하기 바쁜 부대원들을 노리고 정예부대원 중 한 명이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그의 몸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그대로 적의 몸의 전류를 흘렸다. 감전이 되어 쓰러지는 녀석들을 돌아볼 새도 없었다. 리버티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실력 좋네.”
“감사합니다.”
하이엠스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칭찬하자, 기절 능력을 가진 리버티 대원이 고개를 까딱였다. 그 모습을 보고 앞을 돌아본 얼굴에서는 금세 미소가 사라졌다. 눈앞에 일반 부대원들이나 연구원들이 나타날 때면, 기절 이능력자가 빠르게 그들을 기절시켰다. 케니스가 아니니 만큼 침투는 꽤 쉬운 편이었다. 손에 모바일 기기를 들고있던 선배는 자꾸 무언가를 띡, 띡 누르며 수시로 지도를 확인했다. 그러면서 수정을 거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개를 든 그가 한 쪽을 가리켰다.
“여기다. 하이엠스, 구슬.”
그는 일찍이 기지 안의 구조를 알고 있었다. 옛날부터 이어져온 여러번의 탐색과 전체 건물의 모양새를 보며 추정한 결과였다. 그러다가 이 기지에도 지하는 있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오는 동안에도 수정을 거쳤듯이 모든 구조가 완벽히 일치하는 것도 아니었고, 지하에 가는 법이라거나 입구를 알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하이엠스에게 남겨진 구슬에 담겨 있었다. 그 구슬은 입구의 열쇠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 입구가 있는 지까지도 기록되어 있는 기록 장치였다.
혹시나 위치 추적이나 그 외 기능이 있을까 싶어 조사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대놓고 미끼인 그것의 정보를 읽어내고는 원래의 자료에 대입하여 방금 찾아낸 문은, 마치 박물관에 물건을 올려두는 판처럼 보였다. 그 가운데에는 원형으로 파인 홈이 있었고, 하이엠스는 그 위에 구슬을 올려두었다.
“저기 있다!”
쿠구궁, 기둥이 내려가며 입구를 드러내기 전에 복도 끝에서 적들이 몰려왔다. 모두의 고개가 돌아가기도 전에 기절 이능력자와 함께 그의 옆에 서있던 대원이 각각 양복도를 향해 섰다.
“반드시 구하고 오십시오.”
“여긴 우리가 지킨다.”
한 명의 손에는 전기가 튀고, 한 명의 손톱이 짐승의 것처럼 자라났다. 그런 둘을 보던 하이엠스는 응,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사야샤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이미 그는 하이엠스를 보고 있었다. 서로 한 번씩 고개를 끄덕인 그들은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선배와 함께 남은 정예부원들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선배가 뒤를 돌아보며 둘을 삿대질했다.
“적당히 하다가 돌아가라. 목숨 바치지 마. 그렇게 구해봤자 저 녀석들 찜찜하게 할 뿐이니까.”
“나참, 이런 때까지 잔소리야. 그런 건 우리가 더 잘 알아.”
“예, 물론입니다.”
“얼른 들어나 가. 바쁘다.”
두 사람이 부대원들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선배가 안으로 들어갔고, 곧 계단에 박혀있던 구슬을 빼내 입구를 감추었다. 이제 위에서 후퇴해도 쉽사리 따라오지는 못할 거다. 그리 말한 선배는 구슬을 챙기고, 손에 든 모바일 기계를 만지작거리다 머리를 긁적였다.
“쯧, 아무리 봐도 함정인 게 눈에 훤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안 잡히네.”
“방법이 없다면 그냥 내달릴 뿐이야.”
“어, 그래. 너 단순해서 좋겠다.”
사야샤의 말은 가볍게 무시하던 선배는 기기를 두드렸다. 허나 지금까지는 지도가 나와있던 위쪽과 다르게, 지하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그저 위층과 비교해 우리가 있는 위치만이 점으로 찍혀있을 뿐이다. 하이엠스는 그런 선배를 보며 조급함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일단은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어.”
“그래. 그렇겠지. 가자.”
대원들은 모두 달리기 시작했다. 위층과는 달리 평화로운 복도에는 오로지 그들의 발소리만이 울렸다.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때쯤은 하염없이 길을 달리고 달렸을 때였다. 잠깐만! 선배는 모두를 멈추게 하고는 기기를 들여다보았다. 사야샤가 뒤돌아보며 또 왜 그러냐는 듯이 성을 냈다.
“왜 그래 또! 무슨 일 있어?”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곳을 빙빙 도는 거 같아.”
“하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착각인 거 같아. 절묘하게 공간이 뒤틀려 있어. 기기 상으로는 아래로 내려간 것처럼 보이지 않아. 인터넷에서 흔히 보이잖아. 계단으로 내려간 사람이 그대로 올라간 것처럼 보이는 영상들. 지금 이곳이 그런 상태다.”
“하지만 그건 착시일 뿐 아닙니까? 실제로는 불가능 하잖아요.”
대원들 중 한 명이 하는 말에 옆에서 가만히 들으며 고민을 하던 하이엠스가 해답을 내놓았다.
“한 명 있어. 그 때 주변의 거리와 우리가 있던 곳을 공간으로 나눈 이능력자가 분명 있다.”
“그래. 안 그래도 그 녀석 소행으로 생각 중이다. 아마도 연구실장인 카른 옆을 보좌하는 녀석일 거야. 자세한 능력은 몰라. 다만 그 녀석이 옆에 있으면 기계 같은 것들이 다 효과가 없었어. 그래서 일정 공간을 제어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설치도 해둘 수 있는 지는 몰랐어.”
“뭘 고민하고 있어? 부수면 되는 거잖아.”
화륵, 옆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주먹에 불꽃을 두른 사야샤가 보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쾅! 벽을 쳤을 뿐인데 복도 전체가 울렸고, 동시에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반대편 주먹이 또 공간을 치자 조금 전보다도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정말 이것이 방법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들의 곁에서 떨어져 벽 위를 짚던 하이엠스에게로 선배의 외침이 들려왔다.
“멈춰, 사야샤! 뭔가 이상하다!”
“내 사전에 멈춘다는 말 같은 건 없어!”
더 강하게 타오른 불꽃을 그대로 주먹으로 벽에 내다꽂은 사야샤의 영향으로 와장창,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금이 순식간에 복도 전체로 퍼져나가며 부서져내렸다. 성공이다, 라고 생각하던 순간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일행이 있던 중앙을 기점으로 하이엠스의 반대편에 숨어있던 부대원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바닥에 빠르게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사야샤는 빠르게 주변을 훑더니 곁에 있던 대원들을 옆으로 떠밀었다. 그대로 금이 간 바닥이 싱크홀처럼 무너져내리는 순간, 그와 선배가 아래로 떨어졌고, 사야샤는 웃으며 하이엠스를 향해 말했다.
“자기야, 먼저 가. 샤샤는 아래에서 조금 더 놀다 갈게.”
“그리고 하나만 약속해 줘.”
“이번에는 꼭 지키는 거야.”
“샤는 잘 버티고 있을 테니까 자기도 그래 줘.”
“그러면 꼭, 샤샤도 갈게.”
샤샤! 하이엠스가 다급히 외치며 떨어지는 그를 향해 뒤늦게 손을 뻗었지만 그들은 이미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떨어져내렸다. 쾅! 동시에 리버티와 군부의 대원들이 맞붙기 시작했다. 위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쵸커들이 적에게 달려 있었다. 케니스다. 몇 명이나 있는 지 모르겠지만 저기서 지원이 들어온다면 곤란하다. 여기서 처리하고 가야 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대원들이 소리쳤다.
“먼저 가세요, 하이엠스 씨!”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희들로는 엿부족….”
“처음부터 그 정도는 각오하고 온 거잖아! 당신의 목적을 잊었어?”
“하지만 너희들은!”
“우리를 그렇게 못 믿어요? 시끄럽고 얼른 가기나 해요. 우리는 당신이 지킬 필요 없는 어른들이에요. 하지만 저 아래에 당신이 지켜야 할 어린 아이가 있잖아요!”
하이엠스는 할 말을 잃었다. 맞는 말이다. 하이엠스는 출중한 능력이 있었지만 만능은 아니었다. 이러는 동안 시간이 늦어질 테고, 힘도 빠질 거다. 정작 사야를 찾는다고 해서 카른을 이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 녀석이 또 무슨 술수를 써놨을 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그 때 보였던 녀석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상황상 그가 있는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벌써부터 힘을 뺄 순 없었다. 하이엠스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발 끝에 불꽃이 맴돌았다. 그리고 일행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고맙다. 꼭 살아돌아 와. 원하는 요리는 다 해줄게.”
“와, 그거 기대되네요.”
“아이, 꼭 구해라.”
“그래.”
하이엠스는 그대로 땅을 박차고 내달렸다. 일행들하고 있을 때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였다. 불꽃이 타오르는 에너지를 활용해 가속력을 더했고, 이제는 막히지 않는 아래를 향해 내달렸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을 보며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
한편, 땅으로 떨어진 사야샤와 선배는 같이 허공에 매달려있었다. 사야샤가 떨어지던 중 선배의 손을 잡고 그대로 벽을 향해 손을 내리꽂아 멈춘 거다. 그렇게 매달린 채로 아래를 내려다본 선배가 한숨을 깊게 내쉬며 사야샤를 올려다보았다.
“제발 네 사전에 멈추라는 말이랑 적당히라는 말 좀 넣어둬라.”
“그런 거 넣어서 뭐하려고. 재미없는 일이잖아.”
“재미로 하는 일이 아니잖아. 어쨌든 저기 아래 잔해가 있으니까 내려가면 되겠는데.”
“샤샤는 괜찮지만 선배 자기는 괜찮을까?”
“사람 무시하냐.”
그는 제복 안쪽을 손으로 뒤적거리다가 기계 한 개를 꺼내들었다. 그것을 허공에 던지자 마치 발판처럼 육각형의 홀로그램이 생성되었고, 그 위로 발을 딛었다. 놀랍게도 육각형의 홀로그램은 발의 무게를 버티면서 공중에 둥둥 떠있었다. 그런 것이 여러 개 아래로 생겨나며 계단이 되었다. 한 발짝 아래로 내려가는 선배를 보며 사야샤가 미소 지었다.
“신기한 거 되게 많이 가지고 있다니까~”
“너도 얼른 내려와라.”
“그래, 그래~ 하지만 샤샤에게 그런 건 필요없어.”
선배를 응시하던 눈이 한 방향으로 향하며 안광이 번뜩였다. 사야샤는 허공에서 그네처럼 다리를 앞뒤로 움직이더니 팍! 손을 떼내고 바닥으로 세게 곤두박질 쳤다. 쾅! 또 다시 그의 주먹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더 정확히는 그 자리에 있던 이를 노렸으나 뒤로 물러선 탓에 애꿎은 바닥만 패인 거였다. 사야샤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았다. 그는 본 적은 없지만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는 두 명이었다. 사야를 들어올렸던 덩치 큰 남자와, 그의 손에 매달려 뒤로 몸을 뺄 수 있던 여자.
“재밌는 시간이 되겠네.”
사야샤가 손을 모아 우둑, 주먹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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