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ris
05
“하하! 우리를 발견하다니 역시 듣던 대로야! 육감이 짐승 같네!”
“어머, 자기는 숨을 생각이 있긴 했어? 이렇게 덩치 큰 녀석하고 있는데.”
“내가 듣기론 시력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여인은 낄낄거리며 남성의 손으로부터 내려왔다. 동시에 바닥으로 내려온 선배는 재빨리 사야샤 옆으로 섰다. 땅이 무너질 때부터 예측하기는 했지만 이런 곳에서 적을 만나니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은 옆에 있는 이가 자신은 제어할 수 없는 사야샤라서 더욱 그럴 거다.
“야, 사야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무작정 덤벼들 생각은 하지 마. 이 녀석들이 여기 있던 이유가 있을 테니까.”
“아, 그쪽이 바로 그 유명한 사람이구나. 웬만한 건 다 창조해냈던 군부 과학계의 전설. 반가워, 나는 테나라고 해. 그리고 이 아이는 탄이야. 내가 직접 만든 경호원이지.”
테나는 아주 발랄하게 인사를 했다. 선배는 사야샤에게서 시선을 떼며 인상을 팍 구겼다. 인간을 직접 만들었을리가 없다. 특히나 저 덩치를 보면 평범한 인간일 수도 없다. 결국 어떤 식의 실험이 진행됐는지 예측할 수 있었기에 선배는 눈살을 찌푸렸고, 사야샤의 호승심은 더욱 강해졌다.
“옆에 있는 사야샤는 신체 능력으로는 웬만한 녀석은 따라올 수 없었다지? 이 시간을 얼마나 기대했는지 몰라. 당신의 기술보다 내 생명공학이 더 쓸만하다는 걸 보이는 순간이 말이야. 두 사람을 이기면 한 번에 모든 걸 인정받을 수 있어.”
테나는 미치광이처럼 깔깔거리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허나 그 정도의 미치광이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바로 여기 있었다. 선배는 그의 도발에 집주하기보다도 재빨리 사야샤의 손을 덥썩 잡았다. 이미 사야샤는 주먹을 쥔 채로 입꼬리가 위로 향해 치솟는 중이었다.
“진정해, 사야샤. 저 말에 넘어가지 마.”
“왜? 저쪽이 먼저 도발하는 걸? 샤샤를 이길 수 있다는 저 자신감이 기대 돼.”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 거야! 그러니까 파악할 때까지만이라도 좀 진정을…!”
“그런 건 샤샤한테 안 어울려!”
결국 손을 뿌리치고 사야샤는 탄에게로 뛰어들었다. 그의 주먹에 불꽃이 휘감겼다. 쾅! 인간의 주먹에서는 날 수가 없는 강한 폭발음이 터지고, 그것은 연달아 탄에게로 내리꽂혔다. 탄은 양팔을 교차하여 사야샤의 공격을 막았지만 쏟아지는 난타를 이겨내지 못하고 점점 뒤로 물러섰다. 아니, 솔직히 날아가지 않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였다. 그래서 사야샤는 더욱 크게 웃었다.
“대단한데! 샤샤의 주먹에 날아가지 않는 인간은 오랜만이야!”
샤샤의 웃음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타오르는 불꽃이 안광에 서리면 그 눈빛이 마치 미치광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자라! 이 정도로 샤샤에게 이기려고 했어? 백 년은 일러!”
수없이 쏟아진 난타 끝에 콰득, 땅에 발을 박아넣은 뒤 사야샤는 결정타를 날렸다. 콰앙! 주변의 벽까지 가루로 만들어버릴 거 같은 충격파가 퍼졌다. 누가 보아도 탄은 물론, 그 뒤에 숨어있던 테나까지도 날아갔을 위력이었다. 실제로 사야샤의 뒤에 있던 선배마저도 계단처럼 사용했던 홀로그램을 정면에 만들어 보호막을 둘러야 할 정도였다. 씨익, 회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사야샤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당연히 고작 이 정도로 당신을 이기겠다 생각한 건 아니었죠.”
탄은 날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굳게 서있어 그가 서있지 않은 옆면에 바닥은 가루가 됐음에도 그의 뒷면만큼은 깔끔했다. 모든 충격을 막아낸 것처럼. 그 뒤에서 슬 얼굴을 내민 테나가 여전히 그 재수없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탄의 비밀을 알려줄까요? 탄은 자신에게 들어온 충격을 흡수할 수 있어요. 당신처럼 주먹을 내지르는 타입에게는 상극이죠.”
꿈틀, 사야샤의 주먹이 맞닿아있는 팔의 근육이 움직였다. 사야샤는 얼른 한 발짝 뒤로 물러섰지만 테나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흡수한 충격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원래의 완력에 더해서 방금 당신이 쏟아낸 그 에너지를 쓸 수 있다는 거죠. 바로 지금, 이렇게!”
콰득, 콱! 팔의 근육이 어떤 원리로 뒤틀리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의 팔이 반대편 팔보다도 더욱 거대해졌다. 그것이 사야샤를 향해 휘둘러졌을 때, 사야샤는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 추측은 오산이었다. 마치 미사일을 쏜 것처럼 순식간에 날아오는 주먹이 사야샤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건 피할 수 없다. 평소라면 공격을 흘렸을 그는 재빨리 양팔을 교차시키며 뒤로 몸을 날렸다.
“크헉!”
쾅! 주먹과 부딪히는 순간 사야샤는 자신의 팔을 비롯한 몸의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그 상태로 정반대의 벽으로 날아갔고 벽 전체에 금이 갈 정도로 강하게 부딪혔다. 그가 부딪힌 자리에는 거대한 홈이 파였고, 사야샤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야샤!”
“후훗, 후후후후, 후하하하하!”
걱정스럽게 외치는 선배의 목소리와 재수없는 테나의 웃음소리가 울렸지만 사야샤에게는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땅을 박차고 달려드는 탄의 발소리와, 제길과 같은 욕짓거리를 하며 어떤 기계를 만지는 선배의 손짓이 더욱 잘 들렸다. 떨어지려는 고개를 애써 들어보았다. 시야는 흐릿하다. 코앞의 것이 아니면 아직 잘 보이지를 않았다. 그런데도 기감으로 알 수 있었다.
다시 원래의 크기로 되돌아온 탄의 팔이 무차별적으로 선배를 때리고 있었다. 허나 선배도 그냥 맞지는 않고 무언가를 방어막처럼 주변을 둘러서 필사적으로 공격을 막고 있었다. 그 방어벽은 쉴 새 없이 깨졌지만 선배는 계속해서 그것들을 만들어내며 사야샤를 향해 소리쳤다.
“야, 사야샤! 정신 차려! 정신 잃으면 끝이야!”
흐릿한 시야 속에서 거대한 덩치의 인간인 듯 아닌 듯한 괴물을 막아내는 남성의 모습. 사야샤는 갑자기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 이야기는 예전으로 돌아간다. 12살. 한창 싸움을 위해 살아가던 사야샤가 처음으로 크리쳐를 만났을 때의 일이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사야샤는 크리쳐에게 덤볐고, 그대로 무참히 쓰러졌다.
그 때 한 남성이 달려와 그를 구해줬었다. 그래, 맞아. 그 아저씨의 도움을 받았었지. 그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에 겹쳐보였다. 그리고 그 때 왜 자신이 그랬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 당시에 자신은 꿈속에 나타나는 사야샤 때문에 싸움과 승리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 때는 참 사야샤라는 이름이 싫었다. 자꾸 자신을 구속시키는 거 같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흰 배경에서조차 그 답답한 집안을 떠올리게 해서 싫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샤샤라고 마구 불렀다.
이제 와서는 신경쓰지 않았다. 꿈속에서 나오는 사야샤를 죽이고나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그 때 비로소 어둠 하나 존재하지 않게 빛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여긴 어떻지? 구멍으로 떨어진 이곳은 너무나도 어둡고, 또 기억 저편에나 있던 일을 끄집어내는 곳이었다. 기분이 나쁘다. 살랑, 사야샤의 흐릿한 시선으로 흰 드레스가 보였다.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야. 결국 빛내기를 그만둔 거야?”
아, 어린 사야샤의 목소리다. 그 악몽이 다시 시작되려는 건가. 허나 사야샤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오랜만에 꾸는 악몽에도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눈앞에 나타난 어린 사야샤의 존재는 더 이상 그에게 해가 되지 못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사야샤는 웃으며 코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날 이겨냈잖아. 그런데 이렇게 멍청히 앉아있을 거야?”
아니. 이렇게 앉아있을 리가 없지. 하이엠스에게 말했다. 금방 가겠다고. 사야에게도 말하지 않았나. 언제든 지켜줄 거라고. 이곳은 너무 어둡다. 그러니까 그 어떤 불보다도 강한, 빛보다도 센 태양이 필요하다. 사야샤의 몸이 불꽃으로 휘감겼다. 흘러내리던 피들이 단숨에 굳어버렸다. 어린 사야샤는 싱긋이 웃으며 톡, 사야샤의 코를 건드렸다. 시야가 흐린데도 미소만은 확실히 보였다.
“가, 그리고 이겨. 사야샤는 약하지 않아.”
“…물론이지.”
사야샤는 어린 사야샤가 내미는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환영은 사라지고 오감이 깨어나며 온몸으로 고통과 함께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제 곧 끝이야! 당신의 기술보다 나의 기술이 더 훌륭해! 당신은 패배자야!”
“저게 뚫린 입이라고 말을 막하네!”
“자, 끝내버려, 탄!”
“우어어어!”
안 돼. 더 이상 이 속도를 이겨낼 수가 없는데. 선배는 주먹을 꽉 쥐면서도 필사적으로 홀로그램을 만들었다. 허나 결국 주먹이 홀로그램을 뚫었고 그것이 자신에게로 날아왔을 때, 젠장, 이렇게 죽을 줄 누가 알았을까. 같은 한탄을 잠시간 했다. 아주 잠시간.
쾅!
커다란 굉음과 함께 강한 열기와 눈부신 빛이 들어왔다. 선배는 조심스레 감았던 눈을 떴다. 눈앞에는 사야샤가 서있었다. 그의 주먹이 탄의 주먹과 부딪혔고, 푸슉, 팔에서 피가 흘러넘쳤다.
“야, 너….”
“여기는 목숨이 끈질긴 게 장점인가요? 탄, 죽여버려!”
“죽인다, 라.”
샤샤는 씨익 웃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이길 수 없을 게 뻔한 상황에서도 그는 웃었고 더욱 강하게 불을 피워올렸다. 날아오는 탄의 주먹을 이번에는 반대편 손으로 마주쳤다. 역시나 충격으로 인해 팔이 부들 떨리고 피가 솟구쳤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콰과과광! 두 사람의 난타가 시작됐다. 탄의 주먹도 멈추지 않았고, 사야샤의 주먹도 멈추지 않았다. 뒤로 갈수록 점점 사야샤의 주먹이 빨라졌다. 점차 주먹뿐만 아니라 탄의 몸으로도 주먹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기가 만들었다고? 샤샤의 힘을 흡수해? 그 말은 몸에 결국 쌓이기는 한다는 거잖아?”
“말도 안 돼!”
콰과광! 점점 탄의 주먹이 느려졌다. 그의 근육들이 꿈틀거렸지만 그것이 제대로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불꽃의 주먹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탄의 몸에 점차 그을림이 생기고, 점점 몸에 더 많은 부분이 움푹 파이기 시작했다. 사야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러면 더, 더, 더 세게 몰아쳐서 흡수하지도 못할 만큼 내다꽂으면 되는 거 아니야?”
“우어, 어!”
“탄!”
어느 순간부터 탄은 주먹을 휘두르지 못했다. 사야샤는 발을 깊게 땅에다가 내리박았다. 처음 주먹을 날렸을 때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깊숙이 신발이 땅에 박혔다. 그가 좋아하는 구두 굽이 전부 땅을 파고들어갈 정도로 찔러넣은 사야샤는 주먹에다가 태양보다도 빛나고, 뜨거운 불꽃을 담아냈다.
“너희들의 패배의 이유는 하나야! 아무리 실험을 하고, 그 어떤 술수를 부려도!”
사야샤의 주먹이 휘둘러졌고.
“결국 샤샤가 더 강해!”
쾅! 탄의 거대한 몸이 직격타를 맞고 날아갔다. 뒤에 있던 테나도 역시 다 함께 날아갔고 이내 반대편 벽에 박히며 굉음을 냈다. 공동이 울릴 정도로 거센 공격이었다. 무너진 바위 무더기에 깔린 그들의 형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후우, 후우.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세를 잡고 있던 샤샤가 씨익 웃었다. 여기저기 피가 낭자하고, 불꽃을 둘러 붉게 번뜩이는 안광을 한 채로도 그는 웃었다. 그리고 외쳤다.
“샤샤의 승리야!”
그의 승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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