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테라 / surveillance
페닝님 커미션
신임 경찰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한정되어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더 큰 일을, 중요하고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의로운 일을 바라는 법이다.
“제가요?”
테트라 지오메트릭 역시 그런 경찰관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중요한 일을 맡게 되었을 땐 기뻐해야 하건만. 출근하자마자 듣게 된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다들 그 표정을 이해한다는 얼굴이었다.
“그쪽에서 요구한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자네뿐이었어.”
“테드 파워즈라면…….”
가명이기는 하나, 테드 파워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정보상이 있다. 엄밀히 뒷세계 사람일 텐데, 그런 사람 도움까지 받아야 이번 연쇄 절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까. 테트라는 침착하게 생각하다 납득할 수 없다는 결론을 당당하게 말했으나, 상부에서도 빠른 해결을 바란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그 남자를 만나러 가야만 했다. 경찰 쪽에 뒷돈을 대주고 있는 부호들이 쪼기라도 한 모양이지. 그렇게 테드 파워즈, 하고 전해들은 이름을 읊조리면.
“루드비히 와일드.”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이가 다른 이름을 말하며 테트라의 옆에 섰다. 놀란 테트라가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흠칫하면, 갑자기 나타난 금발의 남자는 테트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픽 웃었다.
“앞으로 당신은 그렇게 부르면 됩니다.”
네? 테트라는 뜬금없는 상황에 멈추긴 했으나, 그 뒤로는 걸으면서 그 남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테드, 아니. 루드비히는 아무렇지 않게 본명을 밝히곤 테트라와 동행했다. 부호들의 개인 물품, 혹은 개인 전시회에 전시한 애장품 같은 것을 훔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동일범의 소행인가 싶으면 증거가 묘하게 빗나가고, 그렇다고 범인이 전부 다르다고 하기엔 연속성이 짙다. 솔직히 이 사건에 총력을 쏟을 정도로 경찰이 여유가 있지는 않다. 허나 피해자인 부호, 유명 인사, 정치 관련 인물들이 하도 압박하는 탓에.
“내키진 않지만, 이쪽도 해결해야 할 게 있어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고는 하지만 이런 남자와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니. 테트라는 대놓고 못마땅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반면, 루드비히는 여유롭게 테트라를 살피고 있었다. 열정만 넘치는 신임 경찰관. 상부와 어떠한 연결도 없으며, 연줄도 없고, 엮여도 성가시지 않을 적당한 감시자.
“그나저나 의외군요.”
“뭐가요?”
“어리숙해 보이는 것치곤 쓸만하다는 점이?”
그래도 머리는 좀 굴리나. 루드비히는 만족스럽다는 듯 씩 웃어주었으나, 오히려 그 웃음이 테트라의 심기를 거스른 모양이었다.
“조만간 범죄에 연루될 계획은 없으신가요? 꼭 있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이번 일은 그걸 지우러 온 거라. 슬슬 움직이죠.”
하긴, 사람에 상관없이 일어난 대규모 사기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했었나. 그저 정보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공범으로 취급되었다. 아마도 루드비히를 같이 잡아넣고 싶었던 누군가가 엮었던 것이겠지. 루드비히는 그것을 없었던 일로 해주는 것을 대가로 이번 일을 맡았다고 한다. 그나저나, 움직인다니?
“당신은 당신대로, 나는 나대로.”
허. 테트라는 헛웃음을 뱉었다. 절대 안 된다는 듯 고개까지 저었다.
“아뇨, 같이 움직여요! 눈앞에서 벗어날 생각하지 마세요.”
아무리 그래도 루드비히 와일드는 요주의 인물이다. 그리고 수사 협력이라고는 하나, 아직 루드비히는 감시를 받는 입장이었다. 그 감시자 역할은 제가 하고 있고요. 테트라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노려보고 있으면, 무심한 눈으로 그 눈을 보던 루드비히는 결국 참던 웃음을 흘렸다.
“무슨 고백도 아니고. 그렇게 열렬하게 말할 것까지야.”
“아니거든요! 당신이 얼마나 수상한지 알면, 그런 소리 못할걸요?”
테트라는 매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으나, 루드비히의 눈에는 그리 무섭게 보이진 않는 모양이었다. 예, 그럼. 내 방식도, 당신의 방식도 모두 같이 하는 수밖에요. 루드비히는 그렇게 말한 뒤 테트라를 데리고 범행 현장으로 향했다.
“이렇게 직접 단서를 찾고 돌아다니는 건 처음 하는 모양입니다?”
“……저는 당신을 감시하러 왔거든요.”
“이런, 솔직하게 배울 점이 있다고 인정하면 편할 텐데.”
짜증 난다. 정말로 배울 점이 있어서 더. 지금까지 절도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차례로 찾고, 이미 경찰 측에서 수집한 증거 외에도 다른 것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망과 인맥을 이용하여 피해자와 관련된 정보를 더 모으기도 했다. 범인 쪽에 단서가 적다면, 반대로 피해자가 도난당한 물건. 그것을 가지게 된, 전시하게 된 계기 등을 파보면 된다. 제법 모인 단서를 연결하기 전에 당신의 방식을 볼까요. 루드비히가 평가라도 하듯 말하는 것에, 테트라는 표정에 속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어른스럽게, 감시자답게, 경찰답게. 그런 생각을 하며 얼마나 이동했을까. 한 인류학 교수의 연구실에 도착한 테트라는, 그 안으로 들어가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그런 얼굴도 할 줄 알았습니까.”
“시끄러워요.”
수사에 자문을 주고 있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헤나투. 루드비히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테트라는 헤나투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루드비히에게 한마디 쏘아붙이곤, 안으로 들어가며 사 온 커피 한 잔을 건네었다.
“어서 오시죠, 테트라 양. 요즘 일은 좀 어떻습니까.”
“뭐, 늘 그렇듯 그럭저럭…….”
“엉망이죠.”
이 인간이. 아까의 경고를 무시한 루드비히가 괜히 툭 던진 말에, 헤나투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이 사람은? 헤나투가 묻는 것에 테트라는 그저 협력자라며 대충 소개하고, 서에서 가져온 자료나 루드비히와 함께 모은 단서를 헤나투에게 보여주었다.
“연쇄적으로, 같은 범인이 일으켰을 거라 추정되는 사건임에도, 특징에 공통점이 없군요.”
CCTV에 찍혔다는 흐릿한 인영, 거기에서 보이는 체격이나 걸음걸이, 절도당한 물건의 종류나 그 주인, 그들과 얽혀 있는 정치적, 경제적 관계까지. 그것들을 토대로 분석을 마친 헤나투가 결과를 알려주면, 테트라가 덧붙였다.
“배후가 따로 있다?”
경찰 쪽에서도 나온 이야기이긴 하지만, 확실하진 않았다. 함부로 인물을 특정했다가 수사의 방향이 틀어져선 안 된다. 그러니 더 신중하게. 그렇게 신중을 기하는 척 다른 사건에 집중을 돌리고, 위에서 쪼는 건 귀찮으니 신임 경찰관한테 떠넘긴 거겠지만. 지금 상황이 불만족스러운 것과 별개로, 테트라의 시선이 천천히 뒤에 서 있던 루드비히에게 향했다.
“왜 저를 보시는지.”
“그냥 고개를 좀 돌렸을 뿐인데요.”
찔려요? 그렇게 말하는 듯한 동그란 눈에, 루드비히는 좋을 대로 생각하라는 듯 어깨만 으쓱였다. 혹시 모른다. 어쩌면, 자신과 연결된 부분을 지우기 위해 협력하는 척 같이 다니며 흔적을 지우고 있는 걸지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루드비히는 그런 테트라의 시선에도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연기일까? 그런 의심이 짙어져 갈 즈음, 테트라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네? 지금요? 아, 아뇨. 헤나투 교수님 연구실에 있습니다.”
네, 팩스로 보내주세요, 교수님, 괜찮을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테트라가 정신없이 통화를 마치고 받은 팩스는 꼭 편지 같았다. 그러나 평범한 편지가 아니라, 범인이 직접 경찰에게 보냈다고 하는 예고장의 사본이었다.
이건. 그것을 본 헤나투도, 뒤이어 살피던 루드비히도 묘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사람을 바꿔가며 훔치던 이가, 갑자기 예고장을 보냈다? 사칭일 가능성도 있으며, 수사에 혼선을 줄 뿐이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는 없다. 참으로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일단 나도 같이 고민해 보겠네. 헤나투의 말에 테트라는 감사를 전한 뒤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속은 시끄러웠다.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지 않나? 이 사람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면, 이렇게 했을까? 대놓고 유치하다는 듯 비웃고, 이런 건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 슬쩍 옆으로 치웠던 사람인데. 그런 행동까지도 속이기 위함인가? 애초에, 그에 대한 내 의심이 과한 건 아닐까. 그렇게 테트라가 생각에 깊게 잠기던 그때, 딱. 루드비히가 테트라의 눈앞에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뭐, 뭐예요, 갑자기.”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어 보여서.”
이만 가죠. 그리곤 다짜고짜 팔을 잡아끌었다. 어어, 어? 빠르게 걸어가는 것을 쫓아가느라 덩달아 빨리 걷던 테트라는, 숨이 차오를 즈음 루드비히가 저를 공원 벤치에 앉히는 것에 멍하니 눈만 깜박였다. 놀라서 뭐라고 말도 못 했네. 조용하던 연구실과 다르게 공원은 시끌벅적했다. 그 탓인지 아까까지 머리를 어지럽히던 생각들이 흩어졌다. 그런 테트라의 앞에 돌아온 루드비히의 손에는, 아이스크림 두 개가 들려있었다.
“이런 건 안 좋아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이런 거 좋아할 것처럼 생겼습니다, 당신.”
합. 테트라가 그것을 물고 차가움에 눈을 찡그렸다가, 그 말에 루드비히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키득이며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지금 어린아이 같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거죠?”
루드비히는 대답 없이 어깨만 으쓱였다. 역시 마음에 안 든다. 그래도 확실히 머리가 좀 식긴 했다. 테트라가 멍하니 있다가도 또 고민하고, 자꾸만 팩스로 받았던 메모장을 매만지자 루드비히는 그것을 빼앗았다.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포기하지 않고. 그게 좋은 겁니다.”
그리곤 그것을 고이 접어 테트라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이미 내용은 다 봤고, 더 보고 있는다고 당장에 뭐가 나올 게 아니라면 좀 쉬기나 하라고. 그 작은 머리 굴린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고. 위로를 해주나 싶었건만, 금세 또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것에 테트라는 아이스크림의 콘 부분을 와작와작 씹어댔다. 인정하기 싫지만, 루드비히의 방식은 저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꼭 경찰 같았다. 비아냥거릴 때도 있으나 여유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보이기도 했다. 정보상으로만 있기엔 아깝다. 어쩌다 그런 일을 하게 되었어요? 다른 건 해보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은, 어떤 사람이에요? 예고장에 쏠렸던 생각이 루드비히 와일드로 옮겨간 것에, 테트라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왜 이걸 이리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혹시, 당신은…….”
당신은 경찰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냐고.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뭐야, 어디 갔어. 그래도 지금은 협력하고 있으니 한번 말은 걸어볼까 했건만. 테트라가 고개를 들었을 땐 루드비히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안 돼, 감시 대상을 놓치면 어떡해! 그렇게 놀라 벌떡 일어나면, 팡! 테트라의 눈앞에 돌연 작은 폭죽이 터졌다.
“안녕하세요?”
그 뒤로 눈에 들어온 것은 종이로 접은 듯한 꽃 한 송이와, 활짝 웃는 광대의 얼굴이었다. 공원 한구석에서 공연을 시작한 걸까. 광대 같은 옷을 입은 곱슬머리의 소년은, 들고 있던 종이꽃을 테트라의 손에 쥐여준 뒤 그 손을 잡아끌어 같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춤춰요, 웃어요, 같이 놀아요!”
“저기, 잠깐, 어어……!”
순식간에 테트라는 광대와 함께 광장 가운데 이동했다.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폭죽, 마술인지 갑자기 나타난 흰 비둘기 여러 마리.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 가운데에서 얼떨결에 광대와 춤을 추던 테트라는, 라이샌더. 하고 광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실례합니다, 아가씨.”
정중하게 제게 인사하는 중년의 남성. 마술사로서 이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던 그 남자를, 테트라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경찰관님이 맞겠군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화이트 클라프…….”
“이런 길거리 마술사를 다 알아봐 주시고, 영광이군요.”
상원의원으로 있는 화이트 클라프다. 아직까지 마술사로서 공연을 하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런 곳에서 갑자기? 라이샌더라고 불린 광대는 테트라와 화이트 클라프를 번갈아 보다, 마저 공연을 진행하라는 말에 다시 광장의 가운데로 향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고 춤을 추느라 주머니에 있던 종이가 빠져나와, 툭. 테트라의 발치에 떨어졌다. 바로 그것을 주운 테트라가 종이를 매만지고 있으면, 화이트 클라프는 펼쳐진 것을 슬쩍 보다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봐도 될까요?”
“아뇨, 수사와 관련된 거라…….”
“아, 그랬군요. 마술사들이 자주 쓰는 것과 비슷해서, 착각했습니다.”
화이트 클라프가 흘리듯 한 말에, 테트라는 쥐고 있던 종이를 조금 구기고 말았다.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흘려들어선 안 된다. 그러나 테트라는 앞의 마술사가 영 미심쩍었다. 서커스 단장이든 마술사 출신이든 간에, 지금은 상원의원이다. 시민들에게 인기도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이따금 서에서 관련된 말이 나오면, 모두가 일부러 피하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 탓에 경계하고 있으면, 화이트 클라프는 아까의 광대가 당황스럽게 해 죄송하다 사과를 해왔다. 일단 물어봐서 나쁠 건 없지 않을까. 그나저나 루드비히는 또 어딜 간 건지. 고민하던 테트라는 종이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혹시 이게 뭔지, 아시겠나요?”
“자주 쓰는 암호입니다. 일반인이 알긴 어렵겠지만, 곧잘 쓰죠.”
무언가 장소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요, 시간도. 화이트 클라프가 예고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테트라는 그의 말을 토대로 문장을 다시 읽었다. 여기는 두 번째로 도난을 당했던 곳이고, 시간은 오후 9시. 다시 여기에서 뭔가를 노리는 걸까? 그보다, 이 내용을 알아버린 화이트 클라프의 입단속 같은 걸 해야 할까?
“테트라.”
아. 테트라는 저를 부르는 루드비히의 목소리에 바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 볼일이 있어 다녀왔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그를 보던 테트라는, 급하게 화이트 클라프의 손에서 종이를 낚아채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런, 데이트 중이셨을 줄은.”
“아, 아니에요!”
화이트 클라프의 말에 당황했는지, 테트라는 얼떨결에 저에게 말을 걸려는 루드비히의 팔을 붙잡고 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뭡니까? 뛰지만 말고, 말을 좀. 루드비히는 얼굴을 구기긴 했으나 불쾌해 보이진 않았다.
“저 남자는…….”
“예고장의 뜻은 알았어요, 어서 가죠!”
택시! 테트라가 급히 택시를 잡는 동안에도, 루드비히의 시선은 공원의 광장 한가운데. 공연이 한창인 곳에 향해 있었다.
*
“머리 쓰는 것에 자신 있는 것처럼 굴더니, 생각보다 무식한 방법이군요.”
“때론 몸으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해줄래요?”
현재 시각, 오후 8시. 장소는 두 번째 피해자였던 미술관장의 애장품을 따로 전시해두었던 전시관. 한 번 도난을 당한 뒤로 경비가 더욱 삼엄해지긴 했으나, 관람 시간 동안 관람객이 있으니 섣불리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을 터.
루드비히의 제안에 따라, 테트라는 경찰관이 아닌 관람객으로서 이곳에 남았다. 수사 협조를 요청하면 범인 쪽에서 계획을 바꿀지도 모른다. 애초에, 예고장의 내용을 그대로 믿을 게 아니라 자연스레 그 안에 섞여 있는 편이 검거하기 쉬울 것이다. 분하게도 루드비히의 말이 일리가 있었기에, 테트라는 루드비히와 따로 전시관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도 자연스레 마주친 사람처럼 같이 다니고, 진짜 관람객처럼 구경을 하고. 그러다 앉아서 쉬는 척 접선을 해 정보를 나누었다. 수상한 이는 없었는지, 바뀐 경비의 동선은 어떠한지.
이랬는데 예고장이 거짓말이고, 다른 곳에서 범죄가 발생한다면? 테트라가 그런 생각에 말하면, 루드비히는 어째선지 그러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왜요? 당신이 이번 일에 연루되어 있어서? 아니, 꼭 그건 아니더라도 짚이는 곳이 있는 건가요? 본인 사정이 해결될 정도로 적당히 하면 될 텐데, 왜 이렇게까지 열성적으로 돕는 거죠? 묻고 싶은 건 많았으나 테트라는 입을 떼지 않았다. 루드비히는 의심인지 의문인지 모를 것으로 채워진 테트라의 눈이 저를 담으면, 저도 모르게 그것을 빤히 보고 있었다. 곧 예고한 9시다. 슬슬 움직여야 할 텐데,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지.
“아, 이런. 걸린 건 이쪽인가.”
루드비히의 말에, 테트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드비히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테트라의 팔을 붙잡고 뛰기 시작했다. 곧 관람 시간이 종료된다. 관람객들이 모두 나간 뒤 범행이 이루어질 게 뻔하지 않은가.
“루드비히?”
“됐으니 뛰세요. 아마 예측했던 퇴로로 도망치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반대라고. 자세하게 설명하진 않았으나, 루드비히는 이미 범행은 이루어지고, 범인이 도망치고 있을 것이라 말했다. 관람객들이 빠져나가고 있으니 조용해져야 하건만 이상하게도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이곳을 찾은 미국의 상원의원 한 명이, 개인적으로 꾸린 공연단을 데려와 특별 공연을 하고 있는 탓이었다. 그쪽으로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고, 한순간 테트라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루드비히는 그쪽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빙고, 찾았…….”
그리곤 무언가를 발견한 순간 잡고 있던 테트라의 팔을 놓고, 그것을 잡으려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다가도, 바로 뒤를 돌았다. 앞에 도망치는 사람이 있었잖아요. 왜 이쪽으로 오는 거죠? 테트라가 그렇게 말하려 입을 열고 그를 대신해 앞으로 달려가던 순간, 퍽. 묵직한 소리가 테트라의 뒤에서 들렸다. 무언가를 둔탁하게 후려치는 소리. 테트라의 눈앞은 어두웠다.
그 뒤로 같은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이쪽으로 달려오는가 싶던 루드비히가 그녀를 품으로 당겨와 안고, 팔을 들어 그 뒤에서 테트라의 머리를 후려치려던 공범의 둔기를 막은 채, 다리로 그것을 걷어찬 것이었다. 쿠당탕, 사람이 나가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루드비히는 테트라의 뺨을 손등으로 가볍게 찰싹 쳤다. 정신 차리고, 앞을. 아까의 충격에 팔이 부러진 것인지 그 팔은 툭 떨어졌고, 테트라는 신속하게 허리춤에 감추고 있던 총을 꺼내었다.
총을 쥔 손이 여전히 루드비히의 품속에 있었으나, 탕.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공포탄이라는 걸 알면서도 루드비히가 한 번 움찔했으나, 지금의 테트라는 그것보단 앞의 타겟에 집중했다. 총성 소리를 들었으니 이쪽으로 사람이 모일 터다. 공연 소리에 묻힐지도 모르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다. 그래, 지금 도망치고 있는 저 사람의 시선을. 총소리에 잠깐 멈춘 것으로 충분하다. 테트라는 이번엔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곤 루드비히의 어깨 너머로 조준해 탕, 한 발을 쐈다. 아까와 같이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저쪽에서 들려왔다. 신임 치고 사격 실력은 제법 된다더니. 루드비히는 정확히 도망치던 이의 다리를 쏜 그 실력에 휘파람을 한 번 불었다. 그리곤 부러진 팔을 움켜쥔 채 혀를 찼다.
“왜…….”
“글쎄요, 왜였을까요.”
방금의 총소리에 대기하던 경비들, 그리고 예고장의 내용대로 이곳을 주시하던 경찰들이 범인을 붙잡을 터다. 그렇다고는 해도, 당신은 날 두고 당장 달려 나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당신이야말로 왜 여기에 나와 같이 있습니까? 아, 죽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대 맞게 두고, 적당히 구급차나 불러 주면 되는 것이 아니었나. 왜 몸이 먼저 나가 당신을 붙잡고, 막고, 예고장에 따라 이곳에서 잠복한 것뿐인데 같이 어울려 놀기라도 한 것처럼 들떴는지.
“나중에 건배사나 생각해두세요.”
그 자리에 제가 낄지는 모르겠지만, 선배들이 시키겠네요. 루드비히가 비웃기라도 하듯 키득이면, 테트라는 팔이 부러져도 입은 살았다며 한숨을 픽 내쉬었다. 그런 테트라의 반응에 루드비히는 웃다가도, 멀리서 들려오는 공연의 음악에 짧게 혀를 찼다.
“아니지, 건배는 너무 이른가…….”
“네?”
“아닙니다. 구급차나 부르시죠, 빨리.”
걷기도 귀찮으니 그냥 실려 가야겠습니다. 루드빅이 대충 바닥에 주저앉아버리면, 테트라는 그를 두고 갈까 하다 구급차를 부른 뒤 그 옆에 쭈그려 앉았다. 그냥 먼저 가도 될 텐데. 그렇게 말하듯 루드비히가 쳐다보고 있으면, 테트라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
“예, 알겠습니다. 이쪽에서 처리하죠.”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 뒤로 짧은 숨소리가 이어졌다. 그것이 한숨인지, 픽 흘린 웃음인지 모호했다. 책상 위에 펼쳐진 신문에는 경찰이 어제 처음으로 연쇄 도난 사건의 범인을 검거한 일이 나와 있었다. 1면은 아니나 아주 작게, 상원의원 화이트 클라프가 전시회 관람객들을 위해 특별 공연을 했던 것도 나와 있었다.
“오늘 공연은 취소입니까?”
라이샌더. 그렇게 말하는 것에 고개를 든 소년은,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신문을 보고 있던 것은 화이트 클라프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에 서서 그것을 흘끔거리는 광대 소년은, 기사를 제대로 읽지는 못했으나 신문에 실린 사진만으로 상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공연을 취소할 생각이 아니라면, 웃어야죠. 관객들이 기다릴 텐데.”
화이트 클라프는 그렇게 말하곤 라이샌더와 함께 다시 거리로 나섰다. 오늘의 공연도, 어제와 같은 공원에서 벌일 예정이었다. 자, 웃어요. 박수 쳐요! 아까까지 침울해 있던 광대는 어제 제가 몰래 훔쳐 나와 전달했던 보석은 잊고,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묘기를 부렸다.
“기다리던 분이 오셨군요.”
그 말에 라이샌더는 공연 도중 시선을 돌렸다. 어제 같이 즐겁게 놀았던 회색 머리의 경찰관이었다. 그러나 어제처럼 반갑게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제 단장이 그녀에게 다가가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아아, 테트라 경찰관님, 이셨나요. 기사 잘 봤습니다.”
공원에 나와 있던 테트라는, 양손에 솜사탕을 들고 있었다. 하나는 병원에 들렀다 이쪽으로 올 루드비히의 몫이었다. 놀리기 위함일까. 그런 그녀에게 다가간 화이트 클라프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테트라는 여전히 그가 껄끄러운지, 가까이 다가오는 화이트 클라프에게서 거리를 둔 채 고개만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그때, 조언 주신 덕분이죠.”
“그런가요?”
그 암호가 이번 사건과 연관되었을 줄이야, 놀랍군요. 화이트 클라프는 그렇게 말하며 테트라를 보다가도, 그녀의 뒤쪽에 시선을 두었다.
“오늘도 일행분이랑 오셨는데, 같이 즐기고 가시죠.”
일행? 테트라는 그 말에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면 팔에 깁스를 한 채 언짢은 표정으로 서 있는 루드비히가 있었다. 루드비히, 하고 테트라가 그를 부르기도 전에, 이쪽으로 온 루드비히가 다치지 않은 팔을 테트라의 어깨에 툭 얹으며 화이트 클라프를 보고 눈짓했다.
“됐습니다. 이쪽이 술을 사기로 해서.”
“네? 제가 언제…….”
“건배사나 생각해두라고 했잖습니까.”
아니 그건 다음 회식 때, 루드비히, 루드비히? 테트라가 말하는 것에도 루드비히는 테트라를 데리고 화이트 클라프의 반대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거리가 좀 멀어진 뒤에야 루드비히는 테트라가 손에 꼭 쥐고 있던 것을 보았다.
“솜사탕?”
테트라는 하나를 루드비히의 손에 쥐여주었다.
“약해서, 이런 거 아니면 못 먹을까 봐요.”
그리곤 그 말을 한 뒤, 루드비히를 두고 앞서가 버렸다. 어울리지도 않게 솜사탕을 들고 가만히 서 있던 루드비히는,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날 따라 하기라도 한 건가. 이것이 불쾌하지 않고 정말로 웃겨서 웃음이 나오는 것에, 한참을 웃다가 테트라의 뒤를 따라갔다. 끝난 건 없고, 이제 시작이라는 걸. 당신은 알고 있을지.
“앞으로도 가르칠 게 많겠네요.”
“뭐가요, 솜사탕 취향 같은 거?”
“대충 그렇다고 쳐두죠.”
폭신하고 달콤한 건 저와 어울리지 않건만. 그럼에도 루드비히는 솜사탕 막대기를 입에 물었다. 감시자의 시선이 따갑긴 했으나, 적당한 자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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