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를 기억하는 무아르에게

다섯번째 편지


기억력이 좋은 무아르 에게.


무아르가 친구가 없는 편이라니, 괜찮아. 나도 친구는 무아르 뿐이니까. 무아르는 인기가 없는 편이야?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인기가 달라진다는 말은 처음 들어봐. 그럼 누군가에겐 인기가 많으니까 인기 많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내 키에 절반도 되지 않는 크기의 무아르가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귀찮게 구는 건 상상만으로도 너무 즐겁다! 어쩌면 나는 육아를 잘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어. 귀여운 아이가 해달라고 하는 건 전부 들어줄 게 뻔하니까! (아이가 아닌 어른 무아르가 무언가를 요구해도 아마 다 해줄 거 같은데….) 아, 하지만 잠은 적절하게 잘 자야 해. 적정 수면시간을 채우지 못해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인지 활동과 신체 능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거든. 특히나 어린아이는 말이야.

쿠키와 머핀이 너구리라니! 우리 말들은 다리가 길고 늘씬하게 뻗은 데다 근육도 많아서 오랫동안 달릴 수 있는 멋진 말이거든. (불만스러운 심정으로 문장을 작성해서 필체가 조금 거칠다) 떠돌아다닐 때 초반엔, 그러니까 아직 내가 제작된 지 1년도 채 안 됐을 땐, 이동 수단이 자동차였다고 해.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숲이 늘어나고 도로가 망가지고, 더욱이 기계들도 함께 망가져서…. 최근에 이동할 땐 주로 말을 타고 이동해야 했어. 그래서 쿠키와 머핀을 데려오게 된 거지!

무아르가 우리 주인님을 천재 과학자로 인정한다는 편지를 봤다면 주인님도 정말 기뻐했을 거야. 아쉽게도 주인님한테 해당 발언을 전달할 수는 없지만…. (알다시피 주인님은 죽었잖아?) 하지만 주인님이 무아르에게 보는 눈이 있다고 대답했어! (완전히 나의 추측이지만) 축하해. 이로써 무아르는 주인님의 호감을 완전히 얻었어.

무아르가 가득한 세상에선 무아르와 무아르가 싸우는 거야? 이거 곤란한걸. 나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하지…. 역시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있는 세계가 더 나을 것 같다. 무아르들이 싸워서 다치면 안 되니까!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에 내 키가 도움이 되는 건 좋은 소식인걸! 인간들은 키만으로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거야? 흠…. 그럼 키를 좀 더 키워야 할까…. (작성 도중 자신의 몸을 길게 개조할 생각을 했다. 얼마나 키워야 하지?) 그쪽 세계와 우리 세계의 인간은 비슷하게 생겼구나! 비슷한 것에 동질감과 호감을 느끼기 쉬우니 다행스러운 점이네! 그나저나 뭔가 오해하고 있는데, 내 코는 삼각형이 아니야. 아마도 무아르가 가진 코와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작성 도중 무언가를 깨달았다) 어? 이거 나를 놀린 거야? 그러는 무아르는 사람 코를 얼마나 잘 그리길래!

사람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불법 안드로이드’를 좋아하는구나. 하지만 사람이 땅에서 바위를 뽑고 안드로이드는 옆에서 그걸 지켜보는 모습은 조금 웃긴걸. 그쪽 세계는 기계가 할 일을 인간이 하고 있잖아. 아무래도 나는 만들 당시 주인이 혼자였기 때문에 나를 ‘지나치게 인간적인 불법 안드로이드’로 만든 것이 아닐까 추측 중이야. 정확한 정답은 주인이 말해주지 않아서 모르거든. ‘나를 왜 만들었어?’라고 물어보면 ‘일 시켜 먹으려고 만들었다, 왜!’ 이런 답변만 지금까지 돌아와서 말이야.

직업 이름이 정말 ‘자원봉사자’였다니….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그래도 전투를 한다는 건 조금 걱정스러운데…. 그쪽의 범죄자가 많아? 전투나 싸움을 자주 벌이는 건 아니지?

이런 사소한 과거의 싸움에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거야? 내가 뭐라고 반박하는지가 중요해? 그래도 물어봤으니까 대답하자면, ‘주인님이 사람들을 직접 못 본 것뿐이지 사실 지구 반대편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 그건 성급한 일반화에 불과해. 좀 더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을 만날지 어떻게 알아.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서 움직이자.’라고 했었지. 무아르는 주인에 대해서 잘 파악했네! 맞아 주인은 고집이 엄-청나. 고집스럽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 주인에 대해 절반은 파악한 거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고집스러운 주인이지.

음식을 먹을 수 있긴 하지만 사람처럼 소화하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건 아니야. 섭취한 소량의 음식들은 내부에서 태워서 삭제되니까. 그러니까 에너지를 섭취하는 행위가 아니라 주인에게 맞춰주기 위한 정말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주인은 나랑 같이 밥 먹는 걸 좋아했거든. 사실 내가 음식을 먹으면 의미 없이 버려지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왜 좋아한 걸까?

귀찮은 일이 줄었지만 아쉽고 가슴이 서늘한 감정을... 상실감이라고 부르는 거구나? 처음 알았어. 지금까지 주인과 지내면서 이렇게 큰 상실감을 느껴본 적은 없거든.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이 처음이니까........(길게 작성된 점에서 무언가 감정이 묻어난다) 소원 말이야? 지금까지는 주인님이 사람과 만나게 해주세요, 를 빌었는데 이번엔 라이가 사람과 만나게 해주세요, 라고 빌었어. 나는 안드로이드지만 아무도 없는 쉘터는 너무 커다랗게 느껴지더라고... 주인님도 예전엔 그랬을까? 이건 무슨 감정이지? 사실 내가 알고 있는 감정들은 모두 주인님과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된 것들이라 모르는 게 참 많아. 아마 초기의 막 제작된 나는 생각보다 합법적인 안드로이드였을지도!

그쪽에선 크리스마스까지 한 달이 남았지만, 여기 기준으론 두 달이 남았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잊지 않고 무아르의 세계 기준으로 크리스마스인 날에 축하 인사를 보낼 테니까. 무아르는 생일을 특별히 챙기지 않는다지만, 나에겐 특별한 날이거든! 이곳에서 무아르 없는 작은 생일파티를 열어도 괜찮을 거 같아. 어차피 난 할 일도 없으니까 말이야.

답장이 오지 않는 날엔 무아르가 미친 듯이 바쁘다고 생각하면 되겠네. 그래도 혹시 다친 건 아닐까 걱정이 들 것 같기도 해. 물론 별로 다치는 일이 없다지만- 하지만 다칠 수도 있잖아? 답장 쓰고 있는 중에 재촉 편지라니 그거 좋은 생각인데? 만약 우편함이 계속 제자리에 있었다면 시간마다 재촉 편지를 보냈을지도 모르겠어! 불행히도 우편함이 편지를 넣으면 바로 사라져버려서 불가능하지만... 반송할 수 없어서 무아르가 아쉽게 됐네.

 

지나치게 인간적인 불법 안드로이드 보냄.


P.S. 생일 다음 날을 또 축하해줘서 고마워!

P.P.S.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네! 무아르가 기억력이 좋아서 다행이야. 😀

P.P.P.S. 편지가 평소와 달리 조금 구겨져 있는데, 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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