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무척이나 필요해보이는 무아르에게

네번째 편지


인플루언서 무아르 에게.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니, 잠은 잘 자고 있는 거야? 인간의 적정 수면시간이 8시간인 건 알고 있지? 핸드폰 알림이 그렇게 많은 걸 보니까 무아르는 친구가 많은가 봐. 이곳에 핸드폰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예전 기록을 보니 인기가 많고 핸드폰 연락이 많이 오는 사람들을 인플루언서 라고 한대. 아무래도 이게 무아르를 뜻하는 단어인 거 같아! 인플루언서에게 내 연락이 아깝지 않은 일이라니 정말 영광인걸! 😀

나는 살면서 어린 인간을 본 적이 없는데 무아르의 말을 들으니 만나보고 싶다. 내가 만난 유일한 인간인 주인님조차 어린 모습은 본 적이 없거든. 어린 무아르와 만났다면 재미있게 놀 수 있었을 텐데! (물론, 지금의 무아르도 만나게 된다면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무아르의 추측대로 이곳의 야생 동물들은 인간이 죽어갈 때 개체수가 같이 급감소했었어. 그러다 인간이 대부분 사라지고 자연재해의 수도 줄어들자 동물들의 개체수는 자연적으로 늘어났지. 개체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서식지인 숲이 많이 늘어났으니 그만큼 동물들도 많이 있지 않을까? 동물들의 외형은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야! 아, 세계가 다르니 동물들의 모습도 다르려나? (직전 편지의 동물 그림을 보고 난 후 이곳과 그곳의 동물이 다르게 생겼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일단 이렇게 생겼는데…

(말 두 마리가 사이좋게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검은 말 밑에는 <쿠키>, 갈색 말 밑에는 <머핀>이라고 적혀있다. 그림을 그리고 보니 직전 편지에 있는 그림과 비슷한 느낌이라, 두 세계의 동물은 같은 외형인 거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참고로, 안드로이드는 그림 그리는 소프트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음, 아무래도 그쪽 세계와 우리 세계의 동물은 별다른 차이가 없을 거 같네!

 

주인님이 천재…? 그 사람 말로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하던걸. 기계가 20년이나 지나면 고물이라고 불리지만, 그래도 난 나름 쓸만해. 주인님이 이것저것 보강해주기도 했고, 스스로도 녹스는 부분이 없도록 자주 정비하거든. 확실히 세상이 망하기 전에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규제가 엄격했어. 특히나 인간형 안드로이드는. 사람들이 기계와 인간을 헷갈리면 안 된다나…? 그래서 난 과거로 가면 안드로이드 제작법 위반으로 당장 해체당할걸?

쉘터가 쾌적하지는 않아. 비가 오면 빗물이 새고, 외풍이 심해서 외투를 꼭 입어야 하고… 뭐, 이건 매일 투덜거리는 주인님 기준이고 난 나름 만족스럽지만.

 

(뭐야, 왜 말이 끊겨있지? 무아르 아무래도 편지가 쓰다 끊긴 것 같아!!!)

 

극단적인 풍경이라니, 주인과 무아르가 가득하면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세 명 이상이니까 할 수 있는 놀이도 많아지고 말이야. 하지만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다.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내 키는 180cm이야. 100년 후의 인간은 다르게 생겼으려나… 애초에 무아르의 세계가 내가 있는 세계의 과거인지도 확실하지 않으니 인간이 다르게 생겼을 수도 있겠다. 나는 이렇게 생겼어. (동그라미에 파란 점 두 개가 찍혀있고 삼각형 코와 반달 모양 입이 그려져 있다. 동그라미 위쪽엔 빗자루처럼 회색 선이 존재한다. 그 옆에 비슷한 그림이 하나 더 있는데 보라색 점 두 개와, 회색선 대신 검은 선이 사용됐다는 것이 다르다. 안드로이드는 무아르라고 생각하는 그림이다.)

 

바위를 땅에서 뽑아낼 수 없는 안드로이드라 실망했어? 나는 지극히 인간적인 불법 안드로이드야. 잘하는 건 쉬지 않고 달리기랑 오랫동안 잠수하기, 눈 안 깜빡거리고 버티기 등이 있지. 무아르의 장점은 뭐야? ‘무기 대등의 원칙’이라니 그거 진짜 신기하다. 우리 세계 기준으로 전-혀 인간답지 않은걸.

그런데 무아르가 하는 일 말이야… 무아르는 자원봉사자라고 표현하는데, 편지를 읽다 보니 왠지 내가 아는 자원봉사자가 하는 일과는 다른 것 같거든. 직업 이름이 뭔데? 다른 인간과 싸움을 하는 거야? 어디 다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거야?(문장에 걱정이 묻어난다.)

주인님과 어쩌다 싸웠냐고? 사실 우리는 사소한 걸로 자주 싸웠어.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된다거나, 양말은 뒤집어서 똑바로 놓으라거나, 좀 씻으라거나 같은? 말하고 보니 거의 다 내 잔소리 같긴 하네! 아무튼, 내가 사과했을 때는… 그때는 주인님이 ‘살아남은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고, 인류는 정말 끝났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니라고 반박하다가 말싸움으로 번진 거지! 주인님이 한동안 삐져있어서 말을 안 하는데 정말 곤란했다니까? 생각해보니 그럴수도 있을 거 같다고 내가 먼저 사과하니까 그제야 말하더라고. 

생일 축하해줘서 고마워! 작년엔 주인님과 함께 주인님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식탁 한가득 만들어 놓은 후, 주인님이 만든, 주인님은 초코케이크라고 부르고 나는 까맣게 타버린 빵이라고 부르는 것을 식탁 가운데 둔 후에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배불리 먹는 주인님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거든.

그러니까- 생일파티 말이야! 불행히도 난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과부하가 걸려서 까만 빵만 먹었지만… 아! 물론 초도 꽂아서 촛불을 불었어. 소원도 빌었고.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 보내는 생일이지만 일단 똑같이 음식을 차리긴 했는데… (주인님이 없어진 후로 오랜만에 하는 요리였어!) 혼자서 파티를 하려니 왠지 그렇게 즐겁진 않더라. 까맣게 타버린 빵이 없어서 그런가? 내가 만들어서 이번 케이크는 정말 케이크다웠거든. 그래도 무아르가 편지로 축하해줬으니 만족스러워! (다시 한 번 더 고마워!) 12월 26일이 생일이라고?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잖아? 그때까지 우리가 계속 편지를 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때가 된다면 내가 꼭 축하해줄게. 기왕이면 선물도 주고 싶은데… 세계가 다르니 그건 어려우려나.

한가해지는 때가 있다니 다행이다. 너무 바빠서 언젠가 나에게 답장하는 걸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스러웠거든. (...진짜 그때는 편지 더 많이 써도 돼?)(...그냥 한 번 물어본 거야.)

그럼 바쁜 무아르를 위해서 이만 편지 줄일게!

 

 

무아르가 이름을 한 번도 불러주지 않아 이름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걱정스러운 라이 보냄.

 

P.S. 이번 편지는 그림이 가득하고 알록달록해서 만족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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