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Dexter

회색 부엉이 한 마리가 덱스터 그레이의 집으로 날아든다. 부엉이가 들고 있는 것은 한 통의 편지, 그리고 작은 소포 꾸러미다.

(깔끔하게 타이핑된 종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툭 떨어지는 작은 쪽지. 이 역시 깨끗하게 프린팅된 주소가 적혀있다)

안녕. 이 편지는 집으로 초대하기로 한 모두한테 똑같이 보내는 편지야.

어차피 다 같은 내용인데, 여러 번 쓰기는 나에게 너무 중노동이잖아? 귀찮은 과정을 훨씬 효율적으로 해결해 줄 수단이 있으면, 써먹어야겠지.

방학이 시작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설마. 그런 말을 할 사람은 부디 없길 바라고 있어.

초대에 응할 여건이나, 시간이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어디 감금당한 게 아닌 이상 거절의 답장 정도는 보내도록 해. 보름이 지나도 아무런 응답이 없으면 오지 않는 걸로 생각할 거야. 그 뒤에는 우리 집까지 찾아와서 문을 두들겨도 소용없어. 안 열어 줄 거니까.

덱스터 그레이, 라위야 패러웨이, 리암 블레이크, 리히터 맥닐, 메이들린 라보프.

혹시 이 중 싸운 사람 있어? 있으면 알아서 해결하고 와. 우리 집에 와서까지 싸우거나, 냉한 분위기를 풍기느라고 다른 사람이 눈치를 보게 만들면 애쉴린의 낚싯대로 흠씬 두들겨 맞은 뒤 쫓겨날 줄 알아. 미리 말하지만, 아일랜드는 여름이라도 해가 지면 추워.

주의할 점 한 가지 더. 우리 집은 머글 세계에 있어. 자세한 주소는 같이 보낸 종이에 따로 적어뒀으니 그걸 확인해. 포트키, 플루가루, 빗자루 등등 전부 사용 못 해. 집이 잉글랜드에 있다면 비행기나 배, 그리고 기차…. 아마 전부 이용해야 할 거야.

중요한 거 또 한 가지. 우리 엄마나 아빠가 나에 대해 허튼소리를 하면 귀담아듣지 말 것. 그리고 너희도 절대 그런 소리는 하지 말 것.

짐은 알아서 챙겨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일랜드는, 여름에도 추워. 얇은 옷만 가지고 왔다가 감기 걸려 고생하는 건 내 쪽에서 사양이야. 방학 동안 아픈 사람 병간호 같은 걸 하는 건 딱 질색이니까. 다들 스웨터 한 벌 정도씩은 가져오는 게 좋을 거야. 좀이 슨 것이라도. 아, 기왕이면 스카프도 챙겨.

여자애들은 나랑 같은 방을 쓸 거고, 남자애들은 다 같이 손님 방을 쓸 거야. 둘이 같은 침대를 쓰거나, 한 명이 간이침대를 쓰거나. 원하는 쪽으로 골라.

집 근처에 바다가 있어. 준비에 참고하라고 알림.

참, 그리고 집에 할아버지의 요트가 있어. 혹시라도 뱃멀미를 하는 사람은 각오해. 그걸 안 탄다는 선택지는 없으니까.

그리고 난 방학 동안 근처에 있는 서점에서 파트 타임 일을 하게 됐어. 큰 서점은 아니고, 오래되고 낡은 곳이지만 꽤 알찬 곳이야. 오래된 판본이든, 중고 책이든, 고서적이든 악보든……. 원하는 게 있으면 찾을 수 있을 확률이 높아. 찾는 건 도와줄 수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내가 서점에서 일하는 동안 그곳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도 돼. 어차피 웬만해서는 손님이 없는 서점이고, 주인 할아버지께 허락을 받아뒀으니까.

엄마가 친구들…이 머무는 기간은 얼마나 머물든 상관없대. 우리 엄마는 저런 말 빈말로 하는 거 아니고,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이니까 혹시 민폐일까? 같은 건 신경 안 써도 돼. 세 사람과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내기엔 좀 넓은 집이기도 하니까.

괜히 선물 같은 건 사 들고 오지 마. 집에 둘 자리 없어.

그리고 아빠가 원한다면 주말에 아일랜드를 구경시켜 주겠대. 난 아일랜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고, 우리 아빠가 말이 좀 많기는 해도 안내인으로 나쁘진 않을 거야.

초대에 대한 참고 사항은 여기서 끝. 중요한 건 이게 전부야. 이 뒤에도 편지가 더 있긴 하지만, 이 앞부분만큼 중요하진 않아. 여기 적힌 것들은 잊지 말고 기억해.

추신. 이 편지들은 라넷과 베넷이 함께 배달하고 있어. 너희 집에 둘 중 누가 도착할진 모르겠지만, 그게 누구든 괜찮다면 걔한테 뭐라도 먹여줘. 배달 하느라 고생했을 테니까. 답장은 내 부엉이 편에 딸려 보내도, 따로 보내도 상관없어.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깔끔한 타이핑된 글 대신 길쭉한 필기체로 적힌 편지가 이어진다)

안녕, 덱스터. 잘 지내고 있어?

아마 이 편지는 네가 가장 먼저 받아볼 것 같네. 잉글랜드에 있는 다른 애들과 달리 너랑 나는 둘 다 아일랜드에 있으니까.

만약 네가 아일랜드에 없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

넌 아마 사고를 치지도, 휘말리지도 않았을 것 같아서 별다른 걱정은 안 되네. 다른 애들과 다르게 말이야.

이렇게 안심하고 있던 도중 네가 누구보다 큰 문제를 일으키고 오면 웃길 것 같긴 해. 그럴 일은 아마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안 일어나겠지? 넌 분명 얌전한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서, 종 잡을 수가 없단 말이야.

아무튼 이렇게 모두를 우리 집에 초대하게 됐어.

넌 아일랜드에 사니까, 우리 집으로 오는 게 좀 편할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남부 끝자락에 있는 곳이라 그렇게 가깝진 않을 수도 있겠어.

아일랜드에 관한 것은 분명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우리 아빠가 없을 때는, 네가 훨씬 좋은 안내인이 될지도 모르겠어.

난 아직도 아일랜드가 낯설고, 집 주변이나, 시내에 관한 것도 일부 밖에 알지 못하거든.

이렇게 말했는데 네가 오지 못하면…. 난 좀 곤란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잘 해볼게. 다들 착한 애들이라 내가 안내를 좀 못 한다고 해서 나를 비난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같이 보낸 소포 꾸러미를 열면 카드가 하나 보일 거야.

그거, ‘곱스톤 챔피언 곱스 톨스 시니어'의 유니크 카드야. 그래, 내가 호그스미드에서 개구리 초콜릿을 사고 얻었던 거.

이걸 서로한테 주는 게 우정의 표시라나 뭐라나. 믿거나 말거나 긴 해. 그래도 의미를 부여할 순 있잖아? 곱스터 엠퍼러 그레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같이 보낸 책의 책갈피로 써도 되겠고.

또 책 한 권이 있을 거야.

같이 보낸 책은 ‘클라이브 루이스C. S. Lewis’의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의 두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책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이야. 마음 같아선 전권을 다 보내는데, 그랬다간 라넷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겠지. 네가 이미 다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야. 그래서 그중 한 권만 골라 보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사실은 ≪말과 소년The Horse and His Boy≫을 보낼까도 생각했는데, 역시 이걸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 아름다운 삽화가 가득 든 삽화본이니까, 이미 읽었더라도 또 한 번 읽는 재미가 있을 거야.

너는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모르겠고, 호불호도 없는 것 같아서 어떤 책을 선물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어. 굳이 루이스를 고른 이유를 묻는다면 그가 아일랜드 작가이기 때문이야. 내가 너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네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객관적인 사실 정도고, 그건 너와 나 사이의 유일하게 확실한 공통점이니까. 마음 같아선 터키쉬 딜라이트 한 꾸러미도 같이 보내는 건데, 그걸 같이 보냈다간 라넷이 하라는 배달은 안 하고 그걸 먹어 치울 것 같아. 부리가 끈적끈적한 데다 주변에 하얀 가루가 잔뜩 묻은 부엉이라니, 그건 좀 이상하잖아? 만약 먹고 싶다면, 우리 집에 와서 먹도록 해. 준비해 두도록 할 테니까.

다른 유명한 아일랜드 작가가 많지만, (사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도레이언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을 보낼까도 생각했어. 네 이름을 보면 떠오르는 책이거든. 그래도 역시 마음을 바꾼 게 나은 것 같지?) 기왕 선물하는 거, 재밌는 책을 선물하는 게 좋잖아? 그리고 내가 생각했을 때 ≪나니아 연대기≫만큼 재밌는 아일랜드 작가의 소설은 없어. 네 의견은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애쉴린의 수염 하나도 같이 보내. 고양이 수염은 행운의 부적이니까.

그럼, 보름 뒤에 우리 집에서 보자. 그러지 못한다면 9월의 호그와트에서.

June, 1995

Niamh W. Redmo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