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두운 빛은 다정한 밤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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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두운 빛은 다정한 밤을 사랑했다.

그 누구보다 다정함을 갈망했고, 그 밤이 언제나, 온전히 제 곁에 있기를 바라왔다. 

하지만, 욕심이 많은 빛은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한 채 기어코 그 거대한 다정함을 삼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욕심은 모든 것을 망치기 마련이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다정한 밤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한유라는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거리를 걸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이라면 제 다정한 밤이 좋아해 줄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다정한 그 아이라면, 거부하지 않을 거라고. 새삼스레 한유라는 제 품에 있는 작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작게 반짝이는 한 쌍의 반지가 어쩐지 그 어떤 것 빛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이런 것도 한다고 했지. 그 애도 분명 기꺼이 끼워줄 거야. 분명 좋아해 줄 거야. 그렇지 담아?

마치 자신을 달래듯, 세뇌라도 하듯 가만히 중얼거렸다. 다른 이가 봤다면, 분명 괜찮은지 물어보았겠지만. 글쎄, 한유라는 이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이 바라는 다정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이는 무릇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미래만을 생각하며 한없이 이기적으로 변하며 사랑하는 이를 상처입히기에 이른다. 


한유라는 제 다정한 밤이 머무르는 곳으로 돌아온다. 안다미로는 느릿하게 한유라를 쳐다본다. 일 절의 한마디 없이, 그저 공허해 바라보는 무감정의 새카만 눈빛. 

어쩐지 그 눈빛에, 일말의 다정함조차 사라진 것 같아 어쩐지 한유라는 조금 불안해졌다. 


“담아,내가 뭘 가져왔게? 응?”


한유라는 애써 불안함을 숨기려 애쓰며 자신을 쳐다보는 공허한 밤에 다가갔다. 다정함이라고는, 티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묶어둔 이 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한유라는 안다미로의 시선을 이끌어보고자 그의 앞에 자신이 가져온 것을 눈앞에 꺼내두었다. 작은 보석은 안다미로의 눈빛과 달리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빛 탓에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불안함을 숨기고자 한유라는 억지로나마 웃어 보이며 상자 속에서 금색으로 찬란히 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보석이 박힌 반지를 꺼내었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이런 걸 한다고 하더라, 담아. 그래서..”


떨리는 손을 숨기며, 안다미로의 손을 억지로 잡아당겨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창백한 손과 달리, 노란빛 보석은 자신이 여기 있다는 듯, 생기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반지와 달리 안다미로는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지가 역겹다는 듯, 몸을 비틀어 제 입으로 반지를 빼내었다. 마음 한편, 어느 곳에서 작은 희망의 탑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네가 내 곁에 있기만 하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어. 한유라는 조용히 중얼거리고는 떨어진 반지를 집어들었다. 보석은 여전히 제 아름다움을, 따스함을 뽐내고 있었다. 네가 비록 내 곁에 있기만 하다면, 아니.. 그 이상을 바란다면..


한유라는 분명히 이 집의 많은 걸 알고 있었다. 크게 가구가 무엇이 있는지, 방이 몇 개인지부터 시작해서 작게는 식기의 숫자와, 실과 바늘이 어디 있는지까지. 


한유라는 자연스레 제 주머니에 있는 작은 약병을 꺼내 억지로 안다미로의 입을 벌렸다. 버둥거리는 안다미로를 보며 가만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담아, 담아, 내 어여쁜 담아.

너는 어째서 자꾸 날 벗어나려고 하는 거니. 한유라는 작은 칼을 꺼내 허벅지에 찔러넣었다. 이 정도면, 죽지는 않겠지. 

안다미로의 눈빛이 희미해져 간다. 원망도, 분노도, 슬픔도 아닌 복합적인 감정이 휘몰아치며 이내 숨을 몰아쉰다. 한유라는 가만히 제 손에 쥐어진 밤을 어루어만진다. 네가, 네가 내 곁에 있어준다고 했더라면, 그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내가 이러는 일까진 없을 텐데. 이건 모두 네가 자초한 일 아니겠어. 작은 약병 속에서, 하얀 알약을 꺼낸다. 옆에 있는 물을 한껏 머금고는 잠의 조각을 머금은 밤에 입을 맞춘다. 친애도, 사랑도, 우정도 아닌 가지고 싶다는 불순한 감정. 다정함은 한없이 깊은 꿈속으로 빠져든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누군가와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 


한유라는 안다미로의 창백한 손을 잡은 채, 실과 바늘을 들었다. 네가 그리도 날 내치려고 한다면, 영원히 떨어지지 않도록 엮어두면 되는 게 아닐까. 한유라는 가만히 창백한 왼손의 약지를 잡아 문질거렸다. 나는 그저…. 생각을 떨쳐내려는 듯, 가만히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바늘의 날카로움이 창백한 손위에 붉은 방울이 하나하나 수놓아진다. 한담, 한담, 새빨간 별이 밤을 장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창백한 달 위에는 찬란히 빛나는 황혼의 보석이 빛난다. 모두, 네 잘못이야 담아. 네가 나를 사랑하게 하여서.. 내게 희망을 준 네 잘못인걸. 


한유라는 왼손을 들어 약지에 입을 맞춘다. 이제, 더는 내게서 떨어질 생각은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담아. 


수많은 밤이 지났다. 처음에, 제 약지에 묶인 반지를 보고는 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고는 그저 손을 두어 번 쥐었다 펴 보였다. 그래,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걸로, 너는 절대 내 곁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 그것은 내 안일한 생각이었다. 네가 내게서 다시는 도망칠 수 없다고 믿음, 어쩌면 자만했던걸 지도 모른다. 


너에게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선택지가 있다는걸, 나는 차마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작은 그저 사소했다. 그저, 네가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라는 작은 이유로 너를 다시금 찾아갔다. 너는, 곤히 자는 것 마냥 미동하나 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너에게 다가가니, 눈빛이 흐릿한 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다정함이 사람을 망칠 수 있는가, 한유라는 그날 가능함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안다미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많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동정을 베풀어, 데려온 상대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마지막 도피, 바닥이 없는 꿈속으로의 도피뿐이었다. 그리하여 안다미로는 제 혀를 깨물었다. 구속되었으니 달리 방법이 있을까, 이후 한유라가 돌아오지 않기만을 비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선택한 방법이, 다정함을 갈구하는 황혼의 빛에 그 무엇보다 커다란 괴로움과 두려움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것을. 


안다미로가 가장 처음으로 본 것은, 자신을 막으며 두려움에 질린 얼굴을 한 한유라였다. 두려움, 비참함, 그 외의 모든 공포의 감정들이 한곳에 뒤섞여 눈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다미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어찌 이토록 격하게 반응하는지에 대하여. 이리 쉬울 줄 알았다면, 이렇게까지 허탈한 기분을 느끼며 버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웃음이 나왔다. 아니, 우스웠다. 실없이, 한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어리석은 사람아. 




한유라는 한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언제나 그가 옆에서 머물러줄 거라는 하나의 실낱같은 희망의 줄이 툭,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안돼, 안돼, 이럴 수는 없어. 어떻게 네가 나에게 이러는 거야. 제발, 제발 담아. 한없이 후련하게 웃는 안다미로를 본 한유라는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담아… 아니야 제발 가지마 담아… 담아 내가… 제발 떠나지 말아줘 제발… 내가 잘못했어…”


“왜 사과하십니까? 뭘 잘못하셨다는 겁니까.”


한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나는 그저, 네가 내 곁에만 있어주기를 바란 건데. 차마 그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속마음은 그 무엇보다 간절했다. 널 놔줘야 할 텐데, 놓아주면 날 보지 않을 테지. 그리고 널 놓아주지 않으면 넌 날 또 떠날 거잖아. 담아, 담아. 

이 수많은 생각 속에서 나온 말은 단 한마디였다.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


결국, 또 애정이었다. 비틀어지고 일그러져 더는 형체조차 알 수 없는 뒤틀린 애정의 결정체. 정상적인 애정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는, 자신이 정의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일그러진 방법으로 피워낸다. 그리고 이는 제대로 된 형태를 아는 아이에게 그 정의가 부정당한다. 


“그 이유를 제게서 찾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건 당신이 찾아야 할 문제입니다.”


아이는 한없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왜?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나는 사실 처음부터 네게 사랑받을 수 없었던 거 아니야?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태어났는데, 사랑을 알려준 건 너잖아. 그렇다면 네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 담아, 담아…..


수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에 숨이 막혀 아이는 결국 그 어떤 말조차 하지 못했다. 한 가닥의 이야기를 다시금 꺼냈다간, 자신의 다정한 밤이 다시금 자신을 외면하고 떠나버릴까 봐.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기억은 다정한 기억으로 차마 다시 덮을 수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한유라는 두려운 것이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버림받아 그와 그 어떤 사이도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고립의 두려움이 파도치듯 밀려들어 왔다. 


“담아, 나는…..”


다정함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하지만, 동정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든다. 

동정을 다정함으로 착각한 이는, 일그러진 애정으로 상대를 대하게 한다. 그렇기에 한유라는, 절대 안다미로를 놓아줄 수 없다. 



차라리, 내가 나쁜 사람이었으면 좋았을걸. 그렇게 안다미로가 자신에게 화라도 내었으면 좋았을걸. 


가만히 잠들어있는 안다미로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어본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일 뿐. 다시금 손을 거두어 손톱을 딱딱거리며 뜯어내었다. 신경질적으로 뜯어낸 손톱 사이로 새빨간 피가 투둑, 떨어진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며 피가 맺힌 손으로 카펫을 뜯어낸다. 


달빛만이 황혼의 아이를 감싼다. 

그렇기에, 한유라는 한없이 숨죽여 운다. 그저, 울고 또 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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