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못한 가장 어두운 빛

원하시는대로 말아드립니다 타입(실제 커미션)

사랑도, 받아본 사람만이 줄 수 있다고 하던가.

 

한유라는, 조용히 제 곁에서 고른 숨을 쉬면서, 잠들어있는 파트너를 쳐다보았다. 아마, 아름다운 악몽을 꾸는 중이겠지. 한창 생각에 잠겨있어서 그런지, 제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느릇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가만히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어쩌면, 어렴풋하게 익숙한 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랑스러운, 나의 담."

조용하고, 단조로운 목소리. 어쩌면, 불안정한 목소리. 남자는 자세를 고쳐앉고는 제 방의 풍경을 잠시 쳐다보았다. 사람이 머물기에는 어쩌면 삭막하다 할 수 있겠지. 약병과, 마약을 만드는 도구들, 그리고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천막들. 이런 삭막한 풍경속에서도 그나마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것은 제 파트너가 누워있는, 작은 침대뿐이다. 아이러니하기도 하지. 자조가 섞인 웃음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것은,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예견되어있는 일이었을지도.

한유라는 사랑을 받아본적도, 사랑을 준적도 없다. 어쩌면, 애정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말해도 무방한 사람일 것 이다. 그렇기에 그는 제 옆에 곤히 잠들어 있는 이에 대한 감정을 정리 할 시간이 필요한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 이다. 파트너는, 그러니까 안다미로는 이 세계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집이라는 장소가 없는 나와는 달리, 돌아갈 곳이 있고 상냥하며, 정의로운 사람이니까. 하지만 본인, 한유라는 어떤 사람인가?

날 때 부터, 그림자에 속한 사람이었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내야 하고 타인을 이용해 먹는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그림자 속에서는 살아남는 이가 위대한 사람이며, 모두가 기억해주는 사람이니까. 다만 한유라는 그런 것 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고싶었을 뿐. 살기위해 타인을 해칠 수 있는 약을 만들어 팔았고, 원치 않았지만 조직에 들어가 쥐죽은듯 살아남고 또 살아남았다. 그런 그에게 안다미로라는 존재는, 혼란스러운 존재였다. 아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순전히 자신의 욕심에서 시작된 것 이었다. 자신을 보호 해달라는 목적으로 향수를 선물하고 그와 동행하자는 제안. 그는 순순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그 순간, 한유라는 자신도 모르게 기쁨이 새어나왔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은 심오하니까. 다시금 생각해보자면, 변덕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과 달리, 다정하고, 그림자에 속하지 않는 사람. 그림자의 아이는, 어쩌면 그 빛을 손에 쥐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였을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제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고는 시선을 돌려 멍하니 새카만 천장을 쳐다보았다. 기분이 나쁠정도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 파트너는 기분 나쁜 천장의 색을 닮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이리도 같은 색인데, 어째서 다른 기분이 들게 하는건지. 감정을 처음 느끼는 어린 아이마냥, 한유라는 속에서 무언가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불쾌하고, 두근거리며, 파해쳐보고싶은. 어쩌면 이 감정은 미지의 감정이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욕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이다. 

"으음.."

작게 새어나온 소리에 한유라는 천장에서 시선을 떼어내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바란대로, 파트너는 달콤한 악몽속을 헤매는 중이겠지. 그가 파트너에게 약을 먹인 것 또한 변덕이었다. 빛과 그림자는, 뗄 수 없는 존재지만, 마주칠 수 없는 존재니까. 그걸 잠시나마 부정 해보고 싶었다. 그 따스한 빛을 나도 가지고 싶어. 이 어두운 곳을 벗어나고 싶어. 왜 나는, 안되는거야? 한유라의 마음속이 요동쳤다. 나도, 나도.

잠시 머릿속을 가라앉히고자, 옆에 두었던 물을 한모금 마시고는 눈을 두어번 깜빡거렸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건, 뭘까. 내가, 담에게 느끼는 감정은.... 

한유라는,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나이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라면 똑똑한 것 보다, 행운과 눈치가 더 중요하니까. 자신의 머리가 단 한번이라도 원망스러웠던적은 없다. 하지만 이 순간 만큼은, 복잡한 제 머릿속을 정리하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동경일까,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일까. 지금까지 알아온 감정들로는 정의 내리기 힘들었다. 처음 겪는 감정이니까. 감정에 대해서 깊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일이 이토록 힘든 일이었나? 

제 머리는 과부하를 견딜 수 없었던 참이었던지, 결국 짜증이 올라오고야 말았다. 풀어낼 곳이 없는 분노는, 그대로 본인에게 피해로 돌아왔다. 머리를 식히고자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서성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저.. 그저.....

".. 그저 네가 내 곁에만 있어주었으면 했는데."

이게 그렇게도 욕심이 었던건가? 한유라는, 제 등을 타고 오르는 불쾌한 기분에 잠시 주저앉고는 눈을 감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참고, 욕심도 안부리고 살았는데. 그저 처음으로 타인을 내 옆에 붙잡아 두려고 한것이, 그렇게도 큰 욕심이었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태초의 인간은, 선악과를 탐했다는 이유로 낙원에서 추방 당했다고 했지. 어렴풋하게 거리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짜증나...."

몸을 잔뜩 움츠린채, 중얼거렸다. 머릿속의 잡념을 지우려는듯, 살살 고개를 흔들어 보이고는, 다시금 고개를 슬쩍 들어 곤히 잠들어 있는 파트너를 쳐다보았다. 어떻게든 붙잡아두고 싶은 사람. 닿지 않을걸 알지만, 괜히 손을 뻗어본다. 닿을듯, 잡히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널.. 

결심이라도 한듯, 한유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파트너에게 다가가 옆자리에 앉아 여러가지 감정이 섞인 얼굴로 쳐다본다. 밤을 닮은 새카만 머리카락, 달을 닮은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색. 조심스레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린다. 착하고 다정한, 우리 담. 뱀은 다시금 신의 피조물에게 속삭인다. 어여쁜, 내 담아. 

"난, 네가 내 곁에 있으면서, 지옥을 함께 했으면 좋겠어."

"너 혼자 벗어나는건, 너무하잖아. 난, 신같은거 믿지않아. 살아남는건 내 힘으로 살아남은거지, 신이 날 도운게 아니니까. 네가 정녕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면, 날 모른척 하지 않고, 혼자 낙원에 남지 않겠지. 응?"

달빛 아래에서 뱀은 가볍게 눈웃음을 짓는다. 밤은, 신이 간섭 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뱀은 더더욱 빛을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 빛나는것은 어두운 밤에 더욱 아름답고 탐나는것이니까. 한유라는 제 파트너에게 다정하게 이야기한다. 

"어여쁜 악몽을 꾸렴. 그래야 네가 날 찾을테니까." 

그리고, 그 악몽에 내가 있다면 더할나위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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