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창작

달라지는 것

프리마베라 : 더 비기닝 / 다이앤-몰리엔 결혼au+토감(리안나) / 2020.03.28 업로드

"어머니- 소자, 혁명의 불씨를 지피겠습니다."

다섯 살짜리 인간-용 혼혈 아이의 폭탄 발언에 집이 뒤집혔다. 분명 시계는 초를 달리고 있는데, 주위의 공기가 뚝 하고 멈춰버린 기분이었다. 여자는 아이의 옥색 눈을 바라보았다. 제 아빠를 닮아서 꺾이지 않는 눈빛이 오늘따라 편두통을 유발하는 것 같다.

"리안나, 그게 무슨 소리야."

"용족들의 사회는 너무 거만합니다. 혼혈은 취급해주지도 않아요. 소자는, 두 분의 사랑을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사회의 썩음을 소자는 견딜 수 없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그러니까 대체 무슨 소리냐고. 여자는 해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제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남자는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 그 외에 무언가를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늘 이런 식이었다. 여자와 남자는 생각이 잘 맞는 편이었고, 그 편안함에 이끌려 사랑으로 발전한 것이지만, 막상 같이 살아보고 있자니 다른 점도 없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아이의 양육 방식이라든가. 편두통이 조금 더 심해지는 기분이다.

'충분히 생각했다면 너의 뜻을 존중할게.'

뭘 '존중할게'야. 저건 애를 뭘로 키우겠다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신경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혼혈이 용족 안에서 어떤 위치인지, 그것 때문에 어떤 일까지 일어났는지, 사절단에 속해 있었던 여자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아이는 지금 겨우 다섯 살이다. 그건 제 아빠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니케의 수장 역시 올바른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다. 단지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인데, 고작 이 나이 된 애가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있냔 말이다.

아이가 어떤 시선을 받는지 안다. 실제로 느껴본 적도 있고. 겉모습부터 혼혈인 게 티가 나는 아이를 데리고 용들의 시야 안을 지나다니는 게 어떤 기분인지 여자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갓난아기 때부터 일부러 용족의 수장을 여러 번 방문하며 위치를 밟아놓으려 애쓴 것이다.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도록.

"리안나. 네가 오백 살이 되고도 그런 생각이면 안 말릴게. 지금은 좀 이르다."

"어머니도 오백 살까지 못 사시잖습니까. 본인도 못 하는 걸 남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고 소자에게 가르치신 것은 어머니십니다."

진짜 돌겠다. 이런 말발은 대체 어디서 배워온 건지. ...그래, 어디겠는가. 자기 엄마아빠겠지. 여자는 이마가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와중에도 남편은 은은하게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하는 게 없었다. 완전히 방관자가 되셨군.

"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지금 너 다섯 살이잖아."

"살아온 세월이 다섯 해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무작정 하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공부하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나중에도 할 수 있어. 그것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게 많잖아."

"나중에 할 수 있는데 왜 지금은 못 합니까?"

입술이 딱 다물렸다. 나중에 할 수 있으면 왜 지금은 못 하냐. 평화 협정 전날에 여자가 했던 말과 놀랍도록 닮았다. 이건 유전자의 영향일까, 아니면... 남자를 힐끔 쳐다보니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이 조금 더 동그래진 것 같다. 여전히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아무래도 이건 남편이랑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오백 살까지도 말 안 할 테니까 백 살로 일단 합의 보자."

"...오십 살이요. 인간 나이로는 중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머리색이 붉은빛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문제를 마주쳤을 때, 뇌에 피가 쏠리면 두피가 붉어지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꾹꾹 누르고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를 내었다.

"알았어. 오십 살에 다시 생각해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다섯 살인데 벌써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달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대비해야 했을까. 아니, 세상에 어떤 부모가 한 자릿수 나이인 자녀한테 혁명 이야기를 듣는단 말인가.

"몰리엔, 잠깐 나 좀 보자."

'음... 그럴까.'

"뭐가 그럴까야. 너 왜 아무 말도 안 하냐?"

'난 원래 목소리가 없는데.'

"그 소리가 아니잖아. 너 일단 들어와봐."

목소리를 낮추고 대화하다 결국 여자가 먼저 남편의 팔을 잡고 방으로 끌어당겼다. 문을 잘 닫은 것까지 확인하고,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깊은 한숨을 내쉬는 아내를 남자는 또 은은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눈빛이 좋았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래 함께하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같은 눈빛으로 바라봐줄 것만 같았다.

"너 애한테 무슨 얘기 했어?"

'글쎄... 아버지와 아이의 대화란 깊은 곳까지 내려가기도 하니까...'

늘 차분한 모습도 좋았었다. 가끔 날뛰는 자신을 부드럽게 잡아 진정시키는 모습도 좋았고, 너무 낮아져 있을 때는 감싸 안아 끌어올려주는 모습도 고마웠다. 여자에게 남자는 북극성이었다. 내가 어느 곳을 항해하고 있든, 늘 그 자리에서 위치를 잡아주는 나의 별.

"정확히 말해."

'...저렇게까지 나올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어.'

"앞으로 그런 얘기 해주지 마."

'글쎄, 리안나도 알 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누가 알려주지 말래? 그걸 지금부터 알 필요는 없다는 거잖아."

올곧은 신념과 할 땐 하는 고집 역시 좋아했었다. 여자가 중요한 문제에서 망설일 때면 늘 의견을 나눠주고 용기를 주었으니까. 남자는 여자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사랑하는 애인이자 남편이었고, 같은 목표를 가진 반려자였다.

'다음부터 고려해볼게.'

남자는 여자가 좋아하던 모습을 아직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또한 여자의 마음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다만, 가끔 이럴 때마다 얄미울 뿐이다. 부부는 서로 맞춰가는 거지만, 아이는 어느 정도 크기 전까지 부모가 대부분을 맞춰야 하는 관계이므로. 여자는 그게 조금 답답했을 뿐이다.

'분이 안 풀린다면 나를 때려도 좋아.'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라."

때린다고 하면 정말 종아리라도 내어줄 것을 알아서 더 어이가 없었다. 아이를 체벌하지 않겠다고 하니 대신 자기가 맞겠다는 남편이 어디 있어. 여자는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남자가 다가와 손을 잡아주는 것을 뿌리치지 않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긴 여자의 모습을, 남자는 어쩌면 조금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에우게니아한테 가야겠다. 두 달 정도 안 갔거든. 바빠서."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 당신이 일이 많으면 내가 데리고 갈게.'

"그게 낫겠다. 아, 애 교육을 남한테 의지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의지라기보다 도움 정도가 아닐까. 당신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걸. 아이를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잖아.'

재주라면 재주일까. 남자는 매번 여자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곤 했다. 무작정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주는 가식이 아니라, 정말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을.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었다. 가장 든든한 내 편.

'내 아이가 아니라 다른 성체였다면 질투했을지도.'

그리고 가끔 이런 귀여운 말도 해주니까. 담담한 얼굴로 뱉는 달달한 말이 이렇게 로맨틱할 수 있다는 것을, 여자는 남자를 만나고 나서 알았다. 여자는 결국 조용히 웃으며 남자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등에 잔잔한 손길이 닿았다. 여자는 이럴 때마다, 이 품에서 평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의 평생이 아니라 당신의 평생만큼.

"질투해봐. 보고 싶어."

'아이한테 질투하는 철없는 아버지는 되고 싶지 않아.'

"그럼 내가 다른 성체를 신경 쓰면 질투해줄 건가?"

'...음, 어릴 때의 성격이 나올지도 모르겠는걸.'

장난스레 주고받는 말에, 토닥이는 손에, 참지 못한 웃음에 미처 다 담지 못해 흘러넘치는 애정이 가득했다. 남자의 머리카락에 자신의 볼을 부비며 '생각을 많이 했더니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투정을 부리는 여자를, 남자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꼭 안아 달래준다. 이 부부에게 있어서 달라지는 것이란 서로의 마음이나 관계가 아니라 딱 하나, 시간뿐일 것이다.

제 부모의 방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던 아이가 오늘은 몇 분 만에 화해했는지 수첩에 기록하며 얼른 제 방으로 쏙 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부부의 시계는 황혼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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