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검사 퍼킨스/ 변호사 노먼/ 경찰 코너
#0.
코너가 증인석에 올라섰다. 입을 열자, 흡사 기계처럼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는 피해자가 실종된 날인 11월 16일, 17시 36분에 피고의 집에서 울리는 총성을 들었습니다. 잠시 뒤 피고가 마당으로 나왔고, 손에 총을 쥐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앞서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몸에 남은 탄흔과 정확히 똑같은 41 매그넘을 장착한 총을요.”
“41 매그넘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흔해빠진 탄환입니다. 저도 옷장에 한 박스 갖고 있어요.“
그렇게 얘기한 노먼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농담조로 덧붙였다.
“오해하실까 봐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는 총기 소지 허가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피고도 마찬가지고요.“
코너가 반박하려 입을 열었으나 노먼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가로챘다.
“그리고, 증인은 피고인의 형제가 아닌가요? 두 분의 어린 시절을 조사해보니 당신은 형제와 비교해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 면이 있더군요. 사업적으로 성공한 피고와는 다르게 증인은 이렇다 할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학창 시절엔 성적으로, 성인이 되고 나선 수입 면에서 현저히 뒤처졌죠. 당신이 피고에게 가진 열등감이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퍼킨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재판장님. 증언과 무관한 내용입니다!”
“인정합니다. 변호인, 사건에 집중하세요.”
노먼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료를 넘겼다. 코너는 그저 건조한 얼굴로 노먼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럼, 한 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죠. 증인은 피고를 체포할 당시 수색영장이 없는 상황에서 사유지에 무단으로 침입했고, 과정 중에 피고에게 상해를 입혔습니다. 피고는 자신을 보호할 변호사도 없이 경찰관의 무자비한 심문을 홀로 감당해야 했고 당신에게 폭행을 당해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합니까?”
“인정합니다.”
“그럼, 그 과정에서 피고는 경찰 측의 일방적인 협박과 고문에 가까운 압박 심문을 못 이기고, 당신들이 듣길 원하는 거짓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도 인정하시겠군요.“
코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검사석에 앉은 퍼킨스는 욱신거려오는 위장에 명치를 꾹 눌렀다. 그가 심문 영상을 봤을 때 코너는 피고를 딱 한 대 갈겼고, 이마저도 피고가 피해자와 유가족을 잔뜩 조롱하며 거들먹거린 데에 대한 대처였다. 만약 퍼킨스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피고의 얼굴을 알아볼 수도 없게 짓밟아버렸을 것이다. 퍼킨스는 저 따위 범죄자를 위해 저토록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작자가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이유로 국선변호사가 아닌, 인권변호만 주로 담당하던 노먼 제이든이 1급 살인 혐의에 놓인 중죄인의 변호를 맡게 됐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가 피고석의 변호인으로 들어온단 얘기를 들은 날부터 퍼킨스는 한동안 잠잠했던 스트레스성 위염이 재발했고, 그 통증은 이 순간 이 자리에서 극에 달했다.
재판은 계속되었고 공판 검사의 요구에 따라 유가족은 차례로 증인석에 올라 눈물을 흘리며 피고에 대한 엄벌을 호소했다. 하지만, 노먼 제이든은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를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며 엄청나게 괴롭혀댔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중간에 탈진해서 밖으로 실려 나가기까지 했다. 퍼킨스는 분노로 이를 갈았다. 노먼이 법정에서 내뱉는 주장은 항상 날카로웠지만 오늘은 아주 작정했는지 입에 칼을 물고는 매섭게 떠벌댔다. 다른 사건이었다면 퍼킨스도 노먼의 말에 감화되었을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상시 퍼킨스가 봐왔던 노먼은 제 나름의 신념과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비록 그게 검사인 자신과 충돌되는 지점이 많더라도, 어찌 됐든 퍼킨스는 노먼의 도덕성을 높이 사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 사건의 변호인을 자처한 이후, 퍼킨스의 이러한 생각은 완벽히 산산조각 나 부서졌다.
노먼은 재판 내내 검사 측에서 내놓은 주장 속, 숨은 허점을 일일이 까발렸다. 그리고 판사가 노먼의 말을 유심히 듣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을 때, 퍼킨스는 저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웃으며 제 발로 법정을 걸어 나가는 듯한 환각에 빠져들었다. 노먼은 화려한 언변으로 피고의 정신감정 진단과 불우한 환경까지 들먹여가며 사건 전체를 개인이 아닌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고,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는 인간말종 쓰레기를 단박에 안쓰러운 피해자로 둔갑시켰다. 퍼킨스는 노먼의 말을 듣는 내내 숭고한 법정에서 변호인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으려 부들대는 손을 맞잡고 있어야 했다.
기나긴 공방은 몇 시간에 걸쳐 지속됐고 잠깐 휴정 시간이 주어졌다. 노먼은 눈을 내리깔고 피고인의 속닥거림에 귀를 기울이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퍼킨스는 주변에 양해를 구하곤 따라나섰다. 저 멀리 화장실로 들어가는 인간을 본 퍼킨스가 곧장 그리로 걸어가 문을 열어젖혔다. 노먼은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히고 얼굴에 물을 끼얹는 중이었다.
퍼킨스가 어깨를 잡고 거칠게 일으켜세우자, 노먼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허여멀건 턱 밑으로 물이 뚝뚝 떨어져내렸고 퍼킨스는 노먼을 노려보며 이를 드러냈다.
“정말 대단한 인물이야. 내 평생 너처럼 훌륭한 변호사는 본 적이 없어.”
노먼은 눈매를 찌푸렸다. 그가 팔을 뻗어 수도를 잠그며 말했다.
“저한테 져본 일이 한두 번도 아닌데, 오늘따라 왜 그렇게 날을 세우세요?”
퍼킨스가 눈을 치켜뜨고 노먼의 멱살을 잡았다. 축축하게 젖은 셔츠가 손아귀 안에서 형편없이 구겨졌다.
“돈이 그렇게 좋아? 그 인간이 네 뒷구멍에 꽂아주는 지폐가 몇 명의 피로 얼룩진 건진 알고 이러는 거야?”
노먼은 차가운 얼굴로 퍼킨스를 바라봤다.
“직업적 존중이 참 없으시네요. 검사님이 검사님의 일을 하듯, 전 그저 제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지랄 마. 몇십 명을 죽인 인간을 바깥세상에 풀어놓는 게 직업이라면, 나 같으면 진작에 때려쳤어. 네가 모욕한 피해자는 대학에 갓 입학한 어린애야. 그리고 이제 너는 그 불쌍한 가족의 영혼마저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고.”
노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두운 눈으로 퍼킨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그 빌어먹을 눈깔을 손가락으로 콱 찔러주는 대신, 퍼킨스는 노먼의 발치에 침을 뱉었다.
“그렇게 평생 범죄자들 좆이나 빨아주며 살아라. 언젠가 네 놈도 배때지가 뚫리는 날이 올 테니.“
퍼킨스는 노먼을 퍽 밀치고 화장실을 나섰다. 노먼은 잠시 그대로 있다가 고개를 떨궜다. 구둣발에 튄 끈적한 침을 바라보며, 그는 오랫동안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휴정 시간이 끝나기 직전에 노먼은 법정 안으로 들어왔다. 다시금 재판이 재개되고 퍼킨스는 공판 검사와 함께 그간 준비했던 모든 반박 자료와 증거를 판사의 앞에 들이밀며, 피고가 가진 36건의 청부 살해 혐의와 세금 탈세 의혹, 마약 거래 의혹, 대형 범죄자와의 거래 정황 사실까지, 갖고 있는 패를 전부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추측성 의견일 뿐이었고, 때문에 퍼킨스는 뻔뻔한 얼굴로 자료를 제출하면서도 초조하게 주먹을 쥐었다 펴야했다. 노먼, 저 자식이라면 그가 내놓은 주장의 뻥뻥 뚫린 구멍을 모조리 파악하고도 남을 터지만 3심까지 오고 나니 더는 손에 쥔 카드가 없었다. 이젠 배심원단의 정의로운 판결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노먼이 거하게 실수하길 바라거나. 하지만 후자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기에 퍼킨스는 차라리 배심원에 모든 희망을 걸어야했다. 판사가 자료를 검토한 후 노먼을 바라봤다.
“피고 측, 해당 주장에 반박할 내용이 있습니까?”
노먼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법정 안의 모든 인간이 그를 쳐다보았으나 이 순간, 노먼은 옆에 앉은 피고의 시선만을 생생하게 느꼈다. 그는 숨을 들이마시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증인석에 선 코너와 눈이 마주쳤다.
갈색 눈동자가 노먼의 은회색 눈동자와 얽혔고, 피고와 똑 닮은 그 얼굴에 노먼은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목을 조르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는 머뭇대며 반박 자료가 가득 담긴 문서를 손가락으로 만지작대다가 눈을 찡그렸다. 종이 가장자리에 베인 손바닥에서 피가 스며 나왔다. 노먼은 엄지로 상처를 쓸어 붉은 액체를 닦아냈다.
“네. 검사 측이 주장한 바는….”
노먼은 시선을 돌려 검사석을 바라봤다. 퍼킨스의 싸늘한 표정을 마주 하며, 노먼은 입을 다물었다. 뒤쪽에 앉은 유가족의 적의 서린 눈동자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다. 노먼은 호흡이 가빠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검사 측이 주장한 바에….”
작은 헛기침 소리가 들리고 노먼은 고개를 돌렸다. 피고는 수갑 찬 손을 책상 아래로 내리고 있었는데, 무릎에 얹힌 손 중 하나가 슬며시 움직였다. 엄지와 검지를 쭉 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안으로 접은 채로, 긴 손가락 하나만 노먼을 향했다. 피고는 엄지를 살짝 까딱이며 노먼만 들릴 정도로 작게 바람 소리를 냈다. 노먼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얼굴엔, 오직 체념의 빛 하나만 떠올랐다.
“…반박할 내용, 없습니다.”
판사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무슨 말이죠? 추가로 변호할 의견이 없다는 뜻인가요?”
“네. 없습니다.”
노먼은 자리에 앉았다. 얼굴에 꽂히는 시선이 여기저기서 느껴졌을텐데도 그는 그저 심판석만 바라볼 뿐이었다. 퍼킨스가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노먼을 쳐다봤지만 그 창백한 낯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배심원은 저들끼리 속닥거렸고 잠깐의 평결 시간을 가진 뒤, 판사가 나와 법봉을 두들겨 방청객을 정숙 시켰다. 그는 작성된 판결문을 읊어 내려갔다.
“세금 탈세 혐의, 마약 거래 혐의와 1건의 살인, 25건의 청부 살해 혐의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합니다. 다만, 2건의 살인과 11건의 청부 살해 혐의는 검사 측에서 제출한 자료와 증언의 신빙성, 공범이 작성한 진술의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진바, 유죄를 선고합니다. 피고인의 범행은 계획적, 의도적인 것으로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을 면할 수 없고 제반 사정들을 모두 종합할 때 피고인을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바, 사형을 선고합니다.”
퍼킨스는 몸에 긴장이 쭉 풀려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고 천장을 바라봤다. 그는 오늘 정말로 이길 자신이 없었으나, 결국엔 승소했다. 옆에 앉은 공판 검사가 그의 어깨를 두들겼고 퍼킨스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피고석을 바라봤다. 노먼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고, 피고는, 빙글대며 웃고 있었다.
피고가 책상 위에 놓인 펜을 들고 낙서하듯 무언가를 끄적였지만 퍼킨스는 더 이상 저 사이코패스 같은 새끼에게 휘둘리기 싫어서 고개를 틀었다. 유가족이 다가와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고 퍼킨스는 그들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가 다시금 피고석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노먼은 어두운 안색으로 문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피고, 아니 이제 범죄자로 확정된 그 인간은 끌려 나가기 직전 웃는 낯으로 노먼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퍼킨스는 약간 눈살을 찌푸렸지만 노먼은 쪽지를 읽고는 별다른 반응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법정을 나섰다.
퍼킨스는 주변에 양해를 구하고 가방을 들고 따라나갔다. 노먼은 빠르게 주차장으로 향했고 퍼킨스는 그를 잡으려 거의 뛰어가야 했다. 노먼이 차에 오르기 직전, 퍼킨스가 큰소리로 외쳤다.
“어이! 너무 염려하지 마. 이딴 사건에서 승소한다고 해서 네 명예가 땅에 떨어지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노먼은 멈칫하며 지붕 너머로 퍼킨스를 바라봤다. 퍼킨스는 이죽거리는 말투로 충고했다.
“아직 젊은 놈이 그렇게 돈만 밝히는 거 아니야. 정신 차리고 앞으로는 제대로 된 놈을 변호해.”
노먼이 퍼킨스를 뚫어져라 응시하더니, 말없이 운전석에 올라탔다. 퍼킨스는 피식 웃으며 멀어지는 세단을 바라봤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진 게 엄청나게 분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지금 사회의 쓴맛을 보는 게 낫겠지. 퍼킨스는 머리를 흔들며 돌아서서 자신의 차로 향했다. 그리고, 꽝! 하는 거대한 충돌음이 고막으로 꽂혀 들어왔다.
퍼킨스는 몸을 딱딱하게 굳히고 뒤를 돌아봤다. 주차장 입구 앞 도로에, 자동차 두 대가 뒤엉켜있었다. 세단의 옆면이 완전히 우그러졌고 그를 덮친 검은 밴에서, 한 남성이 내렸다. 그 손에 들린 물건을 본 퍼킨스의 눈이 커졌다. 퍼킨스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을 더듬거렸지만 법정에 들어가기 전 모든 무기를 두고 내린 걸 기억했다. 그는 재빨리 차로 달려가 보조석을 열어젖히고 글로브 박스에서 권총을 꺼냈다. 퍼킨스가 머리를 들자 남성은 어느새 세단의 운전석으로 다가가 팔을 앞으로 쭉 뻗는 중이었다. 남성이 총을 발포함과 동시에 퍼킨스도 방아쇠를 당겼다. 남성은 몇 발 더 사격하려 했으나 갑자기 날아드는 총탄에 허리를 수그렸다. 퍼킨스는 계속해서 발포했고, 남성은 차를 엄폐물로 삼아 밴에 잽싸게 올라탔다. 퍼킨스는 총탄이 떨어질 때까지 쏴댔지만 어느덧 밴은 모퉁이를 지나 사라졌다.
퍼킨스는 지체 없이 세단으로 달려갔다. 운전석의 창문은 산산조각 났고 안에 앉은 남자는 고개를 옆으로 늘어뜨린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찢어진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얼굴을 흠뻑 적셨다. 퍼킨스는 열리지 않는 문을 억지로 열어젖혀 노먼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직, 살아있었다. 퍼킨스는 고개를 돌려 구경꾼에게 소리쳤다.
“구급차를 불러요! 당장!”
자욱하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퍼킨스는 노먼이 맨 벨트를 풀어재꼈다. 조심해서 옮길 여유가 없었다. 노먼의 상체를 붙잡고 밖으로 끌어내자마자 보닛에 불길이 확 옮겨붙었다. 사람들이 그를 도와 부상자를 멀찍이 옮겨놓았고 몇 초 뒤 자동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퍼킨스는 피투성이가 된 손을 옷에 문질러 닦다가, 노먼의 바지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작은 종잇조각을 발견했다.
퍼킨스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저 종잇장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는 종이를 꺼내어 내용을 읽고는, 떨리는 눈동자를 굴려 핏물에 잠긴 젊은 변호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배에 뚫린 총상을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퍼킨스가 다급히 재킷을 벗어 상처를 압박했다. 노먼은 약하게 신음을 흘리며 여전히 생명징후가 남아있단 걸 드러냈으나 퍼킨스는 도리어 그 몸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만 같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어딘가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웽웽대는 소음이 신호탄이라도 된 것처럼, 검사가 떨어트린 종이 조각이 바람에 날려 공중으로 떠올랐다. 흰 면 위로 새빨간 핏자국이 번졌고 그 아래엔 반듯하게 눌러쓴 글씨가 적혀있었다.
[패소를 축하해. 노먼 제이든. 말했듯이, 첫 타자는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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