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Colony

블루 콜로니. 4

CN by BX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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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발단

노먼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 밖에도, 내부에도 경찰차는커녕 어떤 인간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경관님이 여기엔 또 무슨 일이죠?"

경관? 이번엔 안드로이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쓸었다. LED는 뚜렷한 형태를 드러내며 잘 박혀있었다. 제이든이 그를 인간이라 착각한 것 같진 않았다.

"클라인 의원 자택 침입과 관련한 추가 조사를 위해 왔습니다."

"침입자에 대한 단서를 찾았나요? 여기에 그 단서가 있고요?"

"요원님도 이곳에 오신 걸 보면 아무래도 두 사건에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 모양이군요."

"그야 당연하죠. 의문사한 의원의 집에서 며칠 간격으로 절도사건이 벌어졌는데, 논리적으로 동일범의 소행일 확률이 높잖아요. 그래서 사망이든 침입이든, 이 사건은 전부 FBI가 맡아야 하는 거고요."

"안 그래도 디트로이트 경찰서 서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 건에 관해 FBI에도 협조공문이 갔을 겁니다."

협조공문? 노먼은 벌써 머리가 아파지는 기분이었다. FBI 배지를 달고 수사를 진행하는 이상 지역 경찰과 부딪히는 건 밥 먹듯 일어나는 일이었고, 그럴때마다 매번 느꼈지만 유쾌한 일은 결코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죠. 그런데, 당신은 무슨 단서를 쫓아 여기까지 오신 건가요?"

"그건…."

안드로이드가 말하려다 말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공문이 갔을 뿐, 정식 승인은 아직 떨어지기 전이니 그전까진 서 내 정보를 함부로 외부인에게 유출할 수 없습니다."

눈썹을 치켜세운 노먼이 헛웃음을 흘렸다. 방금 먼저 협조 요청을 했다 하지 않았나? 안드로이드의 쓸데없는 변덕과 견제에, 기분이 나빠진 노먼이 이죽댔다.

"아아. 그렇겠죠. 그럼 전 제 할 일 할 테니, 경관님은 그쪽 일 잘 하십시오."

노먼이 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안드로이드는 이번엔 인간의 실수를 지적했다.

"전 경관이 아니라 수사 보조용 안드로이드입니다."

노먼이 고개만 틀어 어깨 너머로 그를 쳐다봤다.

"그거나 그거나. 당신은 디트로이트 경찰서 소속이 아닌가요?"

"지금으로선 그렇지만-"

"그럼 맞네. 뭐가 문제예요?"

"제 본 소속은 사이버라이프란 겁니다. 요원님이 디트로이트 경찰서에 협조하게 된다고 경위나 경감이 되는 게 아니듯이요."

안드로이드의 주장에 노먼은 할 말을 잃었다.

별거 아닌 거로 시시콜콜 따진다고 하기엔 필라델피아 경찰서에서 마주한 블레이크의 얼굴이 절로 떠올랐다. 만약 누군가 자신을 그 자식과 동급으로 취급한다고 생각해보니 단박에 기분이 불쾌해졌다. 그 끔찍한 상상에, 노먼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노먼의 잔뜩 구겨진 표정을 보며 이어질 행동에 대한 계산을 돌렸다.

인간이 그의 말을 무시할 확률 33%. 비웃을 확률 28%. 거친 욕을 내뱉을 확률 15%. 주먹을 내지를 확률 8%. 기타 난폭한 반응이 나올 확률 4%….

그리고 노먼이 입을 열었다.

"그건, 제가 크게 실수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안드로이드가 눈을 깜빡였다. 사과받을 확률은 그의 계산에 없었다. 혹시 비아냥대는 건가? 안드로이드는 여전히 비아냥거리는 행동에 대한 충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대답 없이 서 있는 그를 향해 돌아선 노먼이 평이하게 물었다.

"그럼 뭐라고 불러드리면 될까요?"

"저는…" 안드로이드가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에게 입력된 가장 기본 인사말을 읊었다.

“제 이름은 코너. 사이버라이프에서 파견된 안드로이드입니다."


"코너…."

노먼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요, 코너. 그럼 전 제 할 일 할 테니 코너는 그쪽 사건 잘 조사하시길 바랍니다."

코너가 바보 같은 얼굴로 눈만 깜빡였다. 노먼은 시큰둥하게 공장 문을 나섰다. 창고는 부지 끝 쪽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그가 밖으로 발을 내딛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따라왔다. 노먼이 눈을 가늘게 뜨며 뒤에 선 안드로이드를 돌아봤다.

"또 뭡니까?"

"공장 안에는 별다른 단서가 없어서요. 밖을 조사하려 합니다."

"……."

노먼은 코너를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조금 걸어가 나온 창고의 문은 보안 카메라에서 보던 대로 활짝 열린 상태였다.

안은 어둑하고,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더 정신이 없었다. 천장 타일이 군데군데 떨어져 그 사이로 얼기설기 엮은 철근 구조가 드러나 있고 모퉁이마다 거미줄이 쳐졌으며 각종 기기와 물건들 사이에도 망가진 흰 실들이 늘어졌다. 디트로이트 슬럼가 뒷골목에서 볼 수 있을법한 낡은 천이 사람 키보다 두 배는 큰 상자 더미 위로 길게 덮여있었다.

노먼은 가까운 상자로 다가가 철제 상자의 겉면을 확인했다.

'부품 RN24. 2,000개. 생산 일자 2038.11.20. 납품처: 사이버라이—'

가려진 글씨를 보기 위해 천을 휙 넘기자 그 부주의한 손짓에 먼지가 폴폴 날려 비강을 간질였다. 노먼이 크게 재채기했다. 코를 훌쩍이며 박스에 쓰인 글자를 자세히 읽으려는데,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신가요?"

노먼이 깜짝 놀라 돌아봤다. 어느새 안드로이드는 옆에서 뒷짐을 지고 고개를 기울인 채 노먼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사할 것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따라오는 거예요?"

노먼이 미간을 좁히며 그에게 따져 묻자, 코너는 한결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흔적이 이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요원님은 어떤 단서를 보고 이곳에 오신 건가요?"

이번엔 노먼이 그의 말을 반복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공문이 왔을 뿐 아직 정식 승인은 안 났으니까. FBI의 정보를 함부로 외부인에게 유출할 수야 없죠. 특히, DPD에게는요."

"……."

코너의 LED가 푸른색으로 빙글 돌았다. 노먼은 실소하며 자리를 옮겼다. 보안 캠에서 봤던, 의원이 의문의 안드로이드와 대화했던 장소가 분명 근처일 터인데 워낙 장소가 뒤죽박죽인 데다가 화면상으로 보는 각도와 실제 현장감이 달라서 정확한 위치를 특정해 내기가 어려웠다.

다시금 창고 문 앞으로 걸어간 노먼이 ARI를 빼내어 콧등에 얹었다. 먼지가 자욱한 바닥 곳곳에 신발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코너는 창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그의 아래로 또 다른 발자국이 생성됐다. 노먼은 코너의 발자국과 자신의 발자국 형태를 화면에서 지워냈다.

최근에 생성된 발자국의 종류는 이제 3종류가 떠올랐다.

‘플랫 힐 추정, 250mm. 보폭 70cm.’

‘옥스퍼드 추정, 280mm. 보폭 83cm.’

‘전투화 추정, 310mm. 보폭 98cm.’

앞서 표시된 두 개의 정보가 보안카메라에 비쳤던 의원과 안드로이드의 것일 터였다. 마지막 하나는 클라인의 집에서 봤던 것과 정확히 같은 보법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 크기와 걸음 폭을 보았을 때, 발자국의 주인은 2미터가 넘는 거구일 가능성이 높았다. SQ800 외형과 일치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으나 SQ800은 창고 중간을 맴돌다 다시 뒤를 돌아 바깥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이 자는 언제 여기에 왔던 걸까? 아까 그 금발의 안드로이드와 연관이 있을까?

ARI를 벗은 노먼은 두 손을 포개어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노먼이 콴티코에서 디트로이트로 파견된 후부터 쭉 관찰해 왔던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정확히 같은 행동 양상을 보였다. 그들은 선하기도, 악하기도, 다정하기도, 비열하기도 했다. 인간처럼 성실히 일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더 빠르고 쉬운 길을 추구하며 범죄를 일삼는 자가 있었다. 그중 많은 범죄는 단연코 금전과 얽혀들어 갔다. 많은 수사관이 안드로이드의 이런 범죄 동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먹을 것도 잘 곳도 필요하지 않은 기계가 돈이 있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노먼은 안드로이드 역시 인간처럼 인정받고 싶어 하며, 명예와 권력에 대한 갈망이 있음을 알았다. 인간처럼 허영심도 있고 남들 위에 서고자 하는 욕구도 있었다. 약자를 향한 통제 본능과 지배욕이 안겨다 주는 희열감마저 가졌다. 그러려면, 금전과 자본은 모든 안드로이드에게 기본적인 범죄 동기가 될 수 있었다.

아직 안드로이드가 마약 거래를 했다는 신고는 들어온 적이 없었으나 발견하지 못했다고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특히나 레드아이스의 주성분은 티리움, 바로 안드로이드의 피였다. 제조 방법만 알아낸다면 유통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고객은 오직 인간일 테니, 양심의 가책조차 사그라들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의원에 대한 정보와 그의 생활 패턴, 그리고 과거 기록을 찾아보았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레드아이스에 손을 댈 여자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노먼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작은 유혹에도 언제고 쉽게 흔들리는 법이었다. 노먼 자신조차 마약성 약물을 항상 품속에 지니고 다니면서,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는 사람이 중독 요인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할 수는 없었다.

일단 퍼킨스와 의견을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노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드로이드는 노먼을 등진 채 아까의 상자 아래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코너가 두 손가락을 들어 바닥을 훑더니 혀를 내밀어 가져다 대었다. 그 행동을 지켜보던 노먼이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코너의 미간에 박힌 LED가 한차례 빙글 돌더니 이번엔 옆으로 걸음을 옮겨 똑같은 짓거리를 했다. 노먼은 한차례 얼굴을 흔들고는 그로부터 등을 돌렸다.

더는 여기서 볼 것이 없어 보였다. 노먼은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려다 멈칫했다. 흙먼지로 뽀얀 창고의 바닥 위로 밝은 햇살이 비춰들고, 어지럽게 퍼진 발자국 속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SQ800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 옆에 동그란 흔적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

마치 물방울이 떨어져 증발한 듯한 모양새로, 점점이 만들어진 원형 자국이 쭉 이어졌다. 육안으로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기에, 노먼은 다시금 ARI를 착용했다. 가뜩이나 어두운 창고 안의 채도가 낮아지며 한층 더 깜깜해졌지만, 노먼이 보고자 하는 정보만큼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건……”

안드로이드의 증발한 핏자국. 누구의 것이지? 노먼은 좀 더 상세한 분석을 보기 위해 외부 분석 데이터를 불러오려 장갑 낀 손을 들었다.

그때,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공장 기기가 웅웅대며 돌아가는 소음이 머리통을 울렸다. 노먼은 귀를 막고 고개를 수그렸다. 위에서 무언가 내리찧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흡사 창고가 무너지는 굉음과 함께 부서진 잔해가 머리를, 뇌 속을 쾅하고 내리쳤다. 노먼은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들었으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귓가로 축축한 액체가 흐르고 극심한 현기증이 찾아옴과 동시에 숨이 턱 막혀왔다. 무릎이 너무 아팠고, 자신이 바닥에 쓰러졌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노먼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코너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그는 지금 자신이 무릎을 꿇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몸이 떨리고 이마의 LED가 마치 벌레의 날갯짓 같은 미세한 소음을 내며 거세게 돌아갔다. 그는 지금 상황에 대한 분석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돌아가던 생체시계와 지금의 시간을 대조해 보니 정확히 53초 동안 가동 중지 상태에 빠져있었다.

정지되기 전 무슨 일이 있었지? 주변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고 물리적으로 그에게 상해가 될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단서를 찾아 창고 안으로 들어왔고, 인간이 문 근처에서 조사를 벌이는 것을 보며 자신은 더 깊숙한 내부로 고개를 돌렸다. 상자 아래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머문 흔적이 보였다. 코너는 그 발자국에 대한 분석 프로그램을 돌렸다. 인물이 특정되자 관련된 모든 정보를 받기 위해 서버실에 접속했고 거대한 용량의 데이터가 다운로드됨과 동시에, 그의 모든 시스템이 셧다운되었다.

코너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이버라이프 회사가 크게 휘청이고 서버실의 관리가 부실해질 무렵부터 작은 작동 오류가 발생하던 전송시스템은 어젯밤 완벽히 문제를 일으켰다. 그때는 단 7초가량 멎었다지만, 지금은….

30초가 더 흐르고 완벽히 정상 감각을 되찾은 코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짓단에 먼지가 잔뜩 묻어있었다. 손으로 다리를 탁탁 털어내며 머리를 매만지고 넥타이를 고쳐 맨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고 내부는 좀 전에 봤던 그대로였으나, 지나치게 조용했다.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인간의 구둣발 소리도 부스럭대는 옷자락도 가끔 혼잣말로 중얼대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창고를 나간 건가? 코너가 바깥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오의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활짝 열린 문 근처에, 검은 물체가 환한 빛을 받으며 놓여있었다. 코너가 들어올 땐 분명히 없었던 그 물체 옆으로 흘러내린 빨간 액체가 반짝이며 그의 시각 처리장치에 맺혔다.

“요원님?”

노먼 제이든. 모로 돌아간 얼굴은 바닥에 처박혔고 코와 귀에서 흘러나온 피는 목과 뺨을 빨갛게 물들이며 바닥으로 한 방울씩 떨어져 내려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코너는 빠르게 그의 곁으로 다가가며 사방을 살폈다. 공격당한 건가? 자신과 제이든 외에 새로 찍힌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코너가 남자의 몸을 바로 눕혀 어깨를 강하게 두드렸다.

“요원님. 제이든 요원!”

제이든은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미동 없는 그의 눈에는 여전히 선글라스가 씌어있었고, 코너가 경동맥에 손가락을 갖다 대니 맥박이 잡히지 않았다.

코너가 제이든의 얼굴에서 안경을 벗겨내려 했지만, 렌즈에 손가락이 닿자마자 스파크가 강하게 튀었다. 코너는 빠르게 손을 떼고 눈을 찡그렸다. 그의 시각 정보에 안경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명시되었다.

ARI. FBI 요원에게 지급된 수사 보조용 도구.

렌즈와 다르게 안경다리는 절연체였다. 그가 조심스레 제이든의 귀 뒤로 손을 돌려 천천히 안경을 벗겨내었다. 인간의 확장된 동공이 갑작스레 들어온 빛에 의해 약간 수축하는 것을 그의 시각 처리 장치가 면밀하게 잡아냈다. 아직, 생체 반응이 있었다.

인간을 바로 눕혀 신속하게 목에 매인 넥타이를 풀고 셔츠를 빠르게 열어젖혔다. 단추가 투둑 떨어지며 시멘트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코너가 깍지 낀 손으로 그의 흉골을 강하게 누름과 동시에 관자놀이의 LED가 노랗게 반짝였다. 인근에 있는 병원에 구조신호를 보낸 그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심장 압박을 시도했다.

재가동하고 인간을 발견하기까지 2분가량 걸렸으나 호흡과 심장이 멎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다. 뇌에 산소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각한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심장을 압박하던 그는 요원의 이마와 턱에 손을 얹어 벌려진 입안으로 필요한 양의 산소를 적당한 세기로 불어넣었다. 옆눈으로 본 제이든의 가슴이 위로 부풀었다가 꺼졌다. 두어 번 더 숨을 불어넣은 코너가 다시금 그의 가슴을 압박했다. 그 모든 과정은 한치의 지체도,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이뤄졌다.

코너가 처치를 시작한 지 1분 48초가 지났을 무렵, 축 늘어진 제이든의 손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코너는 손 아래서 아주 약하게 뛰기 시작하는 맥박을 느꼈다. 인간이 들숨을 들이키더니 눈을 여러 차례 깜빡이다 거칠게 호흡을 내뱉었다.

소생 징후. 코너는 손을 떼고 인간의 맥박을 다시금 확인했다. 미약하지만 확실히 박동하고 있었다. 남자는 몸을 떨며 기침했다. 끈적한 피가 그의 얼굴과 머리카락에 엉망으로 엉겨 붙었다. 코너는 제이든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제이든 요원. 괜찮으신가요?”

“…….”

제이든은 정신이 없어 보였지만 의식은 확실히 돌아왔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초점 없던 눈동자가 창고의 천장을 여러 차례 훑고, 코너의 얼굴로 고정됐다.

햇빛을 받아 하얗게 변색한 속눈썹이 은색 홍채 위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가닥가닥 마다 물기가 맺혀있었다. 코너는 그것이 마치 사람을 가두는 쇠창살 같다고 생각했다.

제이든은 조금 불명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심정지가 왔습니다.”

일어나려는 그의 등을 받치며 코너는 바닥에 떨어진 넥타이를 주워서 건네주었다. 코피가 턱을 타고 흘러 그의 새하얀 가슴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심정지….”

인간은 말하다 말고 머리를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코너는 또다시 제이든이 발작을 일으킬까 봐 유심히 지켜봤으나 인간에겐 다행히도, 얼마 안있어 구급차가 도착했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창고 앞에 세워진 차량에서 몇 명의 대원이 뛰어내려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코너는 대원들에게 제이든의 증상과 자신의 조치를 간단히 설명한 후 자리를 비켜주었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제이든은 다른 인간이 그의 상태를 확인하는 대로, 질문하는 대로 띄엄띄엄 응답했고 이내 차에 태워졌다. 그렇게 구급차는 공장 부지를 나가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코너는 모든 인간이 떠난 자리에 남아있었다. 제이든이 누웠던 자리엔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졌으며 그가 착용하던 안경, ARI가 그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코너가 팔을 뻗어 안경다리를 집어 들었다.

파랗게 깜빡이던 불빛은 이젠 꺼져서, 그저 평범한 선글라스처럼 반대편에 놓인 사물을 검게 물들였다. 코너가 손가락을 들어 렌즈 위로 천천히 가져다 댔으나 이번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ARI는 완벽히 작동정지 상태였다.

코너는 안경다리를 접어 품속에 밀어 넣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로 잠깐 미뤄졌지만, 그에겐 아직 조사해야 할 사건이 있었다.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아까 읽지 못한 정보를 다시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 연산장치 한편에선 방금 벌어졌던 일에 대한 분석 역시 끊임없이 돌아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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