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화 - 거래(2)
“쓸데없는 짓거리를.”
얼음 파편과 눈이 짓밟혀 깨지는 소리가 노아의 등 뒤에서 들렸다. 못마땅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낸 목소리는 정돈된 고요에 불협화음처럼 끼어들었다. 하지만 노아의 신경은 목소리보다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기척이… 있던가?’
레인과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는 간극은 고작 3초 안팎의 짧은 시간이었는데, 언제 나타난 것일까. 심지어 공터로 향하는 길은 노아가 뛰어들어온 방향에 있는 것이 전부였다. 허공을 가르고 튀어나오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기척도 없이 순식간에 나타나는 건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혹시나 자신에게만 보이는 환영인가 싶어 레인을 바라보자 당혹스러운 표정이 마주쳤다.
환상도, 환영도 아닌 실체가 분명한 존재라는 얘기다.
“누구……?”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레인이 그에게 물었으나, 그의 시선이 레인을 돌아보는 대신 여전히 붙잡혀 있는 습격자에게 향했다. 심상치않음을 감지한 노아가 레인을 제 등뒤로 보내고 스틱을 손에 쥐었다.
파삭, 파삭.
얼음길이 그의 여유있는 걸음을 따라 발밑에서 부서져 내렸다.
마른침을 삼킨 노아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치고, 총구를 그에게 겨누며 주시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노아의 곁을 스쳐지났다.
마침내 그의 걸음이 당도한 곳에는 창백한 낯빛으로 온 몸을 떨고 있는 습격자가 있었다.
“적당히 하라고 했을텐데.”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어차피 죽여 버릴거..!”
“어차피지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그들이 얘기하지 않았나? 아직은 쓸데가 있다고도 했을텐데?”
“..한 번만..기회를…”
“이미 얼굴도 다 알려졌고, 스틱도 빼앗긴 놈에게 뭘 믿고 일을 맡기지?”
“제발..!”
“어차피 네 역할은 여기서 끝이다.”
그가 손을 들었다. 후드가 달린 검은 로브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것도 모자라 조금의 노출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끼고 있는 검은 장갑의 중지에 흰 보석이 박힌 반지가 있었다. 노아는 그것이 좀전까지 보고있던 스틱에 셋팅된 것과 같은 종류의 샬레인 것을 알았다.
샬레가 있다면 그건 스틱이고, 그 말은 이 정체모를 로브도 마법사라는 의미였다.
“당신 누굽니까? 중앙 마법사단에 당신과 같은 스틱을 쓰는 마법사는 등록된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그러나 그는 노아의 말에 답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그저 자신이 할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중지와 엄지가 맞부딪치며 ‘딱-’, 청아한 소리가 울리가 주변에 흩어져 있던 얼음과 파편이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모두 노아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뾰쪽한 끝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자, 순간 멈칫했던 노아가 그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채고 재빨리 습격자와 로브 사이에 마법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그가 조금 더 빨랐다.
‘퍽! 퍼퍼퍽!’
‘탕-!!’
습격자 주변을 에워싼 얼음 파편이 한 지점을 꿰뚫고, 비명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뒤늦게 노아의 마법이 발동되었지만 얇은 얼음벽은 날아드는 파편에 모두 깨지고 말았다.
이를 악문 노아가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로브자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바람에 흩날리던 천자락에 구멍이 뚫리고, 바람길 뒤를 따라온 거친 바람에 크게 펄럭였다. 그 덕분에 머리에 뒤집어 쓰고 있던 것이 벗겨지며 흰 머리카락이 허공에 휘날렸다.
“당신, 뭐야?!”
격분을 담아 외쳤지만, 노아의 물음에 답하긴 커녕 뚫린 구멍을 더듬던 그가 퉁명스레 되물었다.
“그걸 내게 물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뭐?”
“질문을 바꿔볼까, 네가 구한게 뭔지 아나?”
“이상한 소리 말고 제대로 대답..컥…”
옆구리를 깊이 파고드는 고통에 노아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가까스로 흔들리는 시선을 모아 통증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니, 조금전까지 허공에 떠 있던 얼음 파편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노아!!”
레인의 목소리가 경악에 물들었다.
휘청이던 다리를 간신히 땅에 붙인 노아가 흩어지는 정신을 다잡았다. 목구멍을 타고 피 비린내가 올라왔다. 노아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지..마…”
놀라 제게 다가오려는 레인을 만류한 노아가 떨리는 손으로 파편 끝을 잡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관통한 물체를 그냥 두는게 출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노아에겐 상관없는 얘기였다. 그걸 제거하고도 좀 더 버틸 수 있었기에, 오히려 지금은 움직임에 거슬리는 것을 없애는 게 나았다.
숨을 깊게 들이쉰 노아가 호흡을 멈추자, 동시에 파편이 뽑혀나왔다.
“흐윽…”
지면에 부딪친 얼음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이어서 한 손으로 상처를 눌러 지혈하고, 다른 손으로는 스틱을 쥔 노아가 로브를 견제했다. 붉게 물든 손바닥이 미끄러워 자꾸만 스틱이 제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럼에도 스틱 손잡이를 고쳐 쥐며 노아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쓰러질 수 없었다.
“흐음…”
어찌보면 미련하다 할 그 악바리 같은 근성에, 로브가 비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대단한데? 그래, 그렇게 버텨야지. 그래야 누군가는 마음 먹지 않겠어?”
“헛, 소리를…”
“헛소리인지 아닐지는 나중에 가보면 알겠지. 그 때 되면 넌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 거야. 반드시.”
“후회…?”
노아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를 놀리듯, 간신히 서 있는 노아의 주변을 한 바퀴 돈 그가 레인에게 시선을 보냈다. 살기와 원망이 뒤섞인 눈빛이 닿자, 레인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그가 몸을 기울여 노아에게 속삭였다.
“근성이 기특하니, 말해줄까. 왜 중앙이 너를 그대로 두는지?”
그 말에 노아는 이제껏 억눌렸던 무언가가 터져나오는 듯 했다.
마치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은 진실이 눈 앞에 와 닿은 것처럼.
“네가 쓸모있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붙잡아두기 위한 수단으로 쓰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네 가치는 딱 그 정도인거지. 왜인줄 알아? 네 존재를 알면 널 살리려고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할 사람이거든.”
“거짓..말…”
눈앞이 어두웠다가 밝아지길 반복하는 것은 빠져나간 피가 제법 되기 때문일 것이다. 동요하는 게 아니다. 누군지도 모를 이가 맘대로 짓거리는 말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고, 노아는 애써 마음을 붙잡았다.
그러나,
만에 하나 진실이라면-
“나를, 그 따위..로.. 취급 하지, 마…!”
아주 조금, 의심이란 놈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을 도로 덮기 위해 노아는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 그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는 가뿐히 피하며 노아가 허리춤에 챙겨두었던 습격자의 스틱까지 챙긴 뒤였다.
“그거, 내 ㄴ..!”
“싫은데? 내가 왜?”
취조 대상이 사라져 버린 지금, 이 모든일에 대한 유일한 증거였다. 그러니 뺏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닿기도 전에 노아의 무릎이 결국 지면에 닿았다. 한계까지 다다른 몸뚱이는 의식을 유지하는 것에 남아있는 기력을 몰아 쓰고 있었다. 그 모든걸 지켜보던 레인 역시 체력이 바닥나 주저앉은지 오래였다.
노아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삑-!! 삑-!!’
“아, 이런. 벌써 시간이 됐나?”
기적처럼 호루라기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이들이 온 것이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겠군.”
품에서 손바닥만한 나침반을 꺼내든 그가 노아와 레인을 번갈아 보고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든 것이 무엇인지 알아본 노아가 닿을리 없는 손을 뻗었다.
“앞으로 기대해. 너도 똑같이 진창으로 끌어내려 줄 테니.”
그리고는 코웃음 치며 나침반을 밟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것이 노아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노아는 잠을 잘 못 잤다. 정확히는 깊이 잠들려다가도 정신이 강제로 끌어올려졌다.
잠의 저편에는 무의식이, 무의식속에는 묻어놓은 것들이 혼재한다.
수면아래의 빙하는 거대하고 무방비해서, 안에 넣어둔 내포물을 그대로 내보이고 떠 다니고 있을것이다. 고정되어버린 기포나 벌레의 흔적따위는 기억이자 그 순간에 있었던 모든 시간이다. 하지만 이 모든건 잠들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아는 부디 깊이 잠들기를 바랬다. 어쩌면 꿈에서라도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공백을 메우길 갈망하는 오랜 소망을 풀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돌아오면 안돼.]
가라앉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경고였을까, 높낮이 하나 변하지 않는 건조한 목소리에서 울려퍼진 파동탓에 노아를 둘러싸고 있던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힘없이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아무것도 없을 공간이 아니라 작고 오묘한 빛 조각들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기이한 곳이 보였다. 아무것도 신지 않은 발바닥에 부드러운 촉감이 전해졌다.
빛을 쥐려는 듯, 노아가 손을 뻗었다.
[안돼.]
무언가가 노아의 등과 어깨를, 그리고 손을 덮었다. 그건 무겁고 축축했지만, 이상하게도 따스했다. 마치 누군가의 눈물이 스며든 새벽처럼.
“왜 안 됩니까?”
그 슬픔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이유라도 알고싶었다.
“언제까지 몰라야 합니까?”
[....미안해.]
고개를 돌리려는 노아의 눈을 ‘그것’이 덮으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제 눈을 가린 ‘그것’을 치우려던 노아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몸을 품에 받아든 ‘그것’이 넘실거리는 빛무리를 등지고 어둠으로, 다시 ‘아무것도 아닐 곳’으로 노아의 몸을 띄워보냈다. 실낱같이 남아있던 의식마저 점점 사그라드는 와중에, 노아는 ‘그것’의 속삭임을 들었다.
[아이야, 아이야. 너만은, 너희만은…]
또 그렇게, 잠들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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