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화 - 거래 (3)

‘원래 색이 저랬나…?’

흐릿하던 시야가 정리되고나니 샛노란 천장이 눈에 띄었다. 익숙하게 보아온 무늬나 정렬은 분명 의료실이 맞는데 색이 달랐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단순한 착각인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조금 돌려 창문을 바라보니, 하늘 높이 떠있어야 할 태양이 산등성이를 타고 저물고 있었다. 넓게 퍼지는 석양이 흰 천장을 물들이고 있던 것이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던 노아가 복부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절로 구겼다. 용케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막은채 담요를 걷자, 흰 붕대가 어깨를 가로질러 허리에 둘둘 감겨있었다. 

    

“일어나면 안 됩니다.”

노아가 깨어나길 기다렸다는 듯, 침대 주변에 드리워진 커튼을 걷고 레인이 들어왔다. 

볼에는 흰 거즈를 붙이고 있었고, 목깃 사이로 보이는 어깨에는 붕대가 감겨있었다. 쓰고있던 안경이 깨지며 상흔을 남긴 것인지 눈가에도 작은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노아 못지않게 꽤 너덜거리는 모습이긴 했지만 노아가 당도하기 직전에 입은 상처들만 보일뿐, 그 외에는 다행이도 멀쩡했다. 

“레인.”

“내가 말했지 않습니까, 가벼운 찰과상일뿐이라고.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야하는지 잊은건 아니겠지요?”

“저도 한 마디 하자면, 이까짓 상처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정도는…”

레인의 만류에도 기어코 몸을 일으킨 노아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처럼 휘청거리는 모습에 레인은 노아의 어깨를 조심스레 밀 수 밖에 없었다. 

“상처 터져서 덧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누워 계시죠.” 

“터질것도 없을겁니다. 출혈만 멎으면 아무는 건 금방입니다.”

“왜 이렇게 고집이 셉니까? 아슬아슬하게 장기는 비켜 맞았지만, 상처가 깊었다고요!”

“난 다릅니다. 나는-”

“마법사는 사람 아닙니까? 회복력이 좋던 아니던 무리하면 나을것도 안 됩니다. 쉴 때 쉬란 말입니다. 이 때 아니면 또 언제 합법적로 농땡이 부려본다고.”

“...많이 부려보셨군요.”

“나 아닙니다. 내가 아니고 아르크가, 아무튼 환자인건 맞지 않습니까?”

“뭐…”

노아를 몰아세운 레인이 아예 그 옆에 간병용 의자를 펼치고 앉았다. 따지고보면 저 쪽도 누군가의 간병을 필요로 하는 환자임에도 자리를 잡고 제대로 쉬는지 보겠다는 기세가 한 가득이었다. 한숨을  폭 내쉰 노아가 어쩔 수 없이 자리에 누웠다. 잠깐 일어났다고 상처가 당기는 느낌이 들긴 했다.

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리를 잡은 노아가 레인을 향해 물었다.

“그놈은 어떻게 됐습니까?”

“같이 봤잖습니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 수사대랑 같이 온 마법사들이 혹시나 남아있는 마나가 있나 스캐닝도 했지만, 남은 건…”

쉼없이 말을 쏟아내던 레인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당신의 마력 흔적뿐이었습니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어쨌거나 그 자리에 마법사라 부를 사람이 셋 이나 있지 않았습니까? 레인, 당신도 그들이 사용한 마법을 보지 않았습니까?”

허무하게 놓치긴 했어도 어쨌거나 그 정체모를 자도 그 곳에서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잠시지만 노아가 붙잡았던 습격자도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니 반드시 흔적이 남아있어야 했다.

‘스틱’에 사용되는 마법식은 사용하는 마법사의 마력 적응률이 높고, 마법 성공 확률을 가장 높이 끌어올릴 수 있는 속성,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성질, 용도 등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서 개발된다. 그렇게 제작된 스틱으로 마법을 사용하면 그 마법사 고유의 흔적이 남았다.

예를 들어, 불 속성 마법을 다루는 두 마법사가 있다고 하자. 두 명의 속성은 같은 불이지만 불씨로 만들어 태우면 재가 남고, 빛으로서 사용하면 그림자가 뒤따른다. 하지만 그 불로 무얼 태우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빛도 광원으로서만 사용하는지 그 형태를 벼려 화살로 사용하지는지 등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어떤 방식이던  사용된 마법은 반드시 마력의 흔적을 남겼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던 레인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마법을 ‘이용’했지만 ‘사용’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용은 했지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네. 처음 저를 습격했던 그 자 말인데… 마법을 굉장히 급하게 쏟아내듯이 발동시키더군요. 미세한 조정도 없이.. 마치 스스로는 쓸 수 없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레인의 말에 노아는 안 그래도 복잡했던 머리가 관자놀이까지 쑤셔오는 것을 느꼈다. 감각적으로는 알 것 같은데, 세부적으로 풀어내라하면 어떻게 말로 풀어내야 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손바닥을 들어 이마를 짚으니 약간 뜨거운게 미열이 오른 듯 했다.

“잠깐 본 사람이지만 성향이 그렇게 차분해보이진 않았습니다. 단순하고 호전적인 성향이라 그런게 아닙니까?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 스틱으로 마법사를 사칭하고 다닌거면 눈치볼게 없었겠죠.”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아닌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가만히 노아를 바라보던 레인이 손을 뻗어 노아의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곧 찬물에 적신 수건을 들고 돌아와 노아의 이마에 얹어주었다. 

“일단은, 좀 쉬는게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끼리 얘기해봤자 답도 안 나올것이고 어차피 하기 싫어도 진술은 질리도록 하게 될 테니까요.”

“한시가 급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급해도 생각이 있다면 경보 마법이 진을 치고 의료실까지 쳐들어오지는 않을겁니다. 꽤나 신중해보이던데요.”

“..너무 태평한거 아닙니까, 레인. 지금 표적이 누군데…”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모양인지 노아의 말끝이 미세하게 늘어지고 있었다. 생각의 경계가 흐려지자 노아가 스스로 옥죄고 있던 혀끝마저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인은 환자에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짓인지 잘 알고있었기에, 그저 옆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림자로 덮인 눈동자속에서 수많은 감정이 뒤엉켰다. 

“...그렇기에 여유부릴 수 있는겁니다.”

“왜…”

“일어나면 제대로 설명할 테니 일단 쉬시죠. 일주일 내내 잠만자도 회복이 될까말까한 상태인데,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철제 의자가 삐걱거리다가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레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를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노아."

갑작스런 인사에 노아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랐다.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그의 세계는 쉽게 다정한 법이 없었기에. 잘하면 잘하는 대로, 망치면 망치는 대로 가시 돋친 말을 듣는 것이 되레 익숙했다. 그나마 아르크 대마법관의 배려가 없었다면 작은 온기마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날서린 세상에 덜 베이는 것만 알았을 뿐, 상처를 보듬는 법을 몰랐다.

노아가 고개를 돌렸다. 시야에 담겨있던 레인이 사라지고 밤이 내려앉기 시작한 창문이 대신 자리를 채웠다.

참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실밥은 제거됐고··· 2, 3일은 물 닿지 않게 조심하고,  당분간 격한 운동은 자제하세요.”

마지막 실밥 하나까지 모두 제거된 후에야 핀셋이 밧드위로 놓아졌다. 상처 위로 반창고까지 붙인 간호사가 자리를 정리하고 트레이를 들고 나갔다. 자리에 누워있던 노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거울 앞에 섰다.  아무리 심각한 부상을 입어도 길어야 열흘이면 완쾌했는데, 이 몸뚱아리도 닳는 모양인지 이번엔 한 달이 걸렸다.  그마저도 회복된 시간이 허무할만큼 흔적 없이 아물지도 않았다. 

‘이런건 간만인데.’

   

손끝으로 반창고를 쓸던 노아가 새 와이셔츠를 꺼내기 위해 침대 옆의 사물함으로 팔을 뻗었다. 흘러내린 소매 사이로 보이는 팔은, 오래된 흉터들로 얼룩져 있었다.

병실은 4명이 한 방을 쓰게되어있었지만, 노아와 레인뿐이었다. 그마저도 비교적 가벼운 부상이었던 레인이 먼저 나가고 이제 마지막 환자가 될 노아마저 오늘로 퇴원하니, 병실은 당분간 한산할 것이다. 입고 있던 환자복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노아가 푸른 단복의 단추를 잠그던 차였다. 담당의도 아침 일찍 다녀간 뒤라 더 찾아올 사람이 없을 텐데, 문이 열렸다.

“노아.”

“레인? 어쩐 일입니까?”

급하게 온 것일까, 레인의 얼굴이 터질듯이 붉었다. 이마에는 앞머리가 제멋대로 휘날려 붙어있었는데 시야에 방해될것이 뻔했음에도 치우지도 못하고 온 모양이었다.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관자놀이와 볼을 타고  목깃을 적시고 있었다. 호흡은 제대로 숨을 쉬는게 용하다 싶을 정도로 뒤엉키고 뭉쳤다. 

모든것이 엉망인 가운데에 눈빛만은, 그 녹빛 눈동자만은 사납게 빛났다.

“경호니 뭐니 그딴거 하지 마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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