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화 - 마이너스와 마이너스 (4)
‘콰가각!!’
아슬아슬하게 레인의 곁을 비껴간 얼음이 땅바닥에 박히며 균열을 일으키가, 스틱을 뻗고 있던 습격자가 공격을 피해 옆으로 몸을 날렸다. 얼음 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고 푸른 냉기가 어찌나 매섭던지, 꽤 멀리 피했음에도 습격자의 몸이 크게 떨리고 있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감은 날카로운 모양인지, 그리 날린 걸 가뿐히 피해버린 것에 언짢아진 노아가 혀를 짧게 차고 레인의 앞에 다가가 섰다.
“마법사?”
노아가 레인에게 덮어주는 푸른 단복을 알아본 습격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아를 바라보았다. 마법사의 단복은 정식 마법사가 되면 지급받는 것으로 샬레를 섬유로 가공해 만들었기에 독특한 푸른 빛이 감돌았다. 현장 파견이 잦은 마법사들의 안전을 위해 방어 마법식을 옷감과 단추에 새겨둬서 방어구 역할도 톡톡히 해냈기에 부상자인 레인에게 덮어준 것이었다.
목끝까지 단추를 단단히 여며준 노아가 레인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터진 입술이 붓고, 안경알 파편에 긁힌 눈가가 찢어져 피가 조금 흘렀지만 다행이도 뼈가 부러지거나 깊이 베인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상처가 더 무서운 법이었기에 당장에라도 의료실로 가야했다.
일단,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었지만.
“괜찮습니까?”
뒤늦게 노아가 물어보자 레인이 고개를 겨우 끄덕였다. 의식은 아직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레인을 안아들고 일어서려던 그 때, 노아의 등 뒤로 살기가 날아들었다.
“이봐, 사람 무시해?”
순식간에 날아든 얼음을 스틱으로 막아낸 노아의 시선이 그제야 습격자에게 향했다. 길목은 하나 뿐이니 어찌되었든 싸움을 피하긴 글렀다.
곁눈질로 주변을 살핀 노아가 적당한 구석에 레인을 조심스레 내려두고 지면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빙벽이 솟구쳐 레인을 돔처럼 감싸안았다.
“당장 이동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아주시죠.”
레인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결계가 완성된 것을 확인한 노아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스틱은 여전히 손에 쥔 채였다. 그의 스틱을 본 습격자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마법사란 녀석이 어린애들 장난감을 쓰나? 그게 정말 스틱이긴 한거냐?”
스틱이란게 마법사의 샬레인을 의미했지만, 샬레만 셋팅해서 사용할 수 있다면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도 보통은 나뭇가지 형태를 쓰고, 주머니가 넉넉한 이들은 스태프에 각종 샬레를 장식해서 화려하게 만들곤 했다.
그런데 노아의 스틱은 통상적인 스틱과는 많이 달랐다. 언뜻보면 총신이 조금 긴 리볼버처럼 보였으나 탄창이 있어야 할 곳에 샬레가 장착되어 있었고, 총의 재료도 철이 아닌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었다. 재료야 샬레 안에 마가(MAGA)의 활성화를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그냥 총의 형태가 아니라 아이들이 흔히 갖고 노는 고무줄 총과 닮아있어서 습격자의 말대로 도무지 스틱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노아는 크게 개의치 않고 방아쇠에 손가락만 걸쳤다.
“맘대로 생각하시죠.”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무엇이든 하나 깨닫는게 있기 마련이다.
지금같은 경우엔,
‘탕-!’
말 한마디보다 손가락 한 번 까딱이는 것이 더 빠르고 정답이라는 것을 깨달은지 오래였다.
공기중의 수분이 일순간 멈췄다가 표적을 향해 사납게 날아가는 차가운 바람을 따라 뭉쳤다. 응집된 물방울은 곧 매섭게 얼어붙으며 칼날처럼 시리게 변했다. 동시에 허공을 채우듯, 바람길이 적을 향해 몰아쳤다. 그 길을 따라 지면에서 얼음이 솟아오르며 표적을 노렸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칼날 얼음을 피하려던 습격자보다 바람길이 더 빨랐다. 달아나려는 그의 다리를 지면에 묶은 채로 단단히 얼어붙은 것이다.
다리를 당기며 용써봤지만 그는 피할 수 없었다.
새파랗게 얼어붙은 땅이 그를 놓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눈 한 번 깜빡이는 사이에 벌어졌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런 미친..!”
바로 앞까지 솟아오른 얼음에 눈을 질끈 감은 그가 거친 욕설을 뱉었다.
끝이 다가왔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탕-!’
총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습격자가 감았던 눈을 살짝 떴다. 턱 바로 아래까지 치솟은 얼음 끝이 부서진 채, 그의 목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있었다. 다리상태도 잊고 바닥에 주저앉을뻔한 습격자가 정신을 차리고 노아의 스틱을 보았다.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총구 끝에 연기대신 서리가 희게 내려 앉아있었다. 이번에는 주변으로 시선이 향했다. 얼음 파편이 산산이 부서져 사방에 널려있었다. 발동된 마법을 제지하기 위해 마법을 마법으로 부순 것이었다.
모든 상황을 이해한 습격자의 마른 목으로 침이 넘어갔다.
들고있던 스틱을 바닥에 던지고, 양 손을 머리위로 든 습격자가 외쳤다.
“하, 항복…!”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그의 현명함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그제서야 노아는 들고있던 스틱을 홀스터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
바닥에 나뒹구는 습격자의 스틱을 회수한 뒤 돌아온 노아가 레인을 감싼 결계를 깨트렸다. 단단히 입은 마법사의 단복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한 덕분인지, 조금이나마 기력이 돌아온 덕분인지 아까보다 의식이 돌아온 레인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노아가 또 물어왔다.
“괜찮습니까?”
“아까보다도..훨씬 나아졌습니다.”
“그래도 누워는 계시죠, 그것도 제대로 입고 계시고요.”
목깃의 단추를 푸르던 레인의 손이 멈칫했다. 일방적이긴해도 어쨌거나 빌린것이고, 주인이 돌아왔으니 당연히 돌려주려던 참이었던 것이다. 사양할 처지도 아니었기에 노아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뭐, 그렇다면야.”
예의상으로 갖춘 태도였던걸까, 뻔뻔한 레인의 태도에 어이 없었지만, 노아는 굳이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더 급한 게 있기에. 노아가 홀스터 옆에 차고 다니는 작은 힙색을 열어 상비용으로 들고 다니는 샬레들을 살폈다. 그러나 레인의 상처를 치료할 만한 게 없었다.
“이거 어쩌죠. 응급처치용 샬레도 없으니..”
“됐습니다. 그걸 쓸 정도로 심각한 상처는 아니니 그냥 두시죠. 간단히 소독하고 약 바르면 그만인 정도입니다.”
말은 그러면서도 풍기는 혈향이나 어그러지는 미간은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기에 그저 흘러내린 외투만 잘 가다듬어 덮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수사관은 아직인건가?’
이제는 열린 길목을 바라보며 노아가 호출기를 쥐었다가 손을 풀었다. 자신만 그들을 부른게 아니라 도망치던 이들 중 몇몇도 신고를 했을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너무나 조용했다. 상황 마무리를 못할 건 아니었지만 부상자가 있기에 신중히 움직여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노아가 뒤늦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상체를 일으킨 레인이 외투 가슴팍에 달린 브로치를 가리켰다.
“이거, 비상 호출용 샬레인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아마 아무도 안 올 겁니다.”
“왜죠?”
말할까 말까, 망설이던 노아가 쓴 입맛을 다시며 물음에 답했다.
“저는 눈엣가시니까요. 그것도 형식상 어쩔수 없이 지급된거라 달고 다니는 거지,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이번만 있는 게 아니었고 주어진 건 당연히 사용했다. 다만 돌아오는 답이 없을 뿐. 응답이 간절한 상황에서 침묵 혹은 뒤늦은 답이 돌아오면 노아는 쓰디쓴 배신감과 그럼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향한 혐오감에 몸부림쳤다.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던 그 감정들을.
겉으로 내보이면 입방아에 오르는 게 노아뿐이 아닌 것을 아는 이들이라, 보이는 부분의 대우에서는 차등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배급받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써야 의미 있는 것을 그 의미를 퇴색되게 하여 스스로 지치게 하는 것이 중앙 마법사단이 노아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처음의 순진함은 불러도 불러도 답하지 않는 이들에 의해 꺾여버리고, 기대는 메말랐다.
사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자신을 거슬려하면서도 버리지 않는 것인지.
노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은 레인이 고개를 기울였다.
“흐음… 그럼 ‘당신’이 쓰는게 아니라면 괜찮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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