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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31_소설 타입

L님 커미션

조각 글 by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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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친 소냐는 재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카페에서 레인을 기다리기로 했다. 손잡이를 잡고 출입문을 열면 위에 걸린 작은 종들이 서로 간 부딪히며 맑은 음을 내었다. 밝게 인사하며 맞아주는 직원의 음성은 기분 좋게 낭랑했고 소냐는 가을 한정 출시 메뉴를 훑고자 카운터 옆에 세워둔 배너 앞으로 향했다. 세로로 긴 배너에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호박과 해골 캐릭터가 잔뜩 그려져 있었고 그 위로 통통한 검은 박쥐 인형이 두세 마리 정도 매달려 있었다. 소냐는 이 배너에 담긴 메뉴가 무엇을 기념하기 위함인지 금세 알아차렸고 적혀있는 메뉴명을 묵독했다.

 

‘핼러윈 펌킨 슈페너, 초코 몬스터 라테, 그린 윗치 프라푸치노, 고스트 모카….’

 

10월 31일, 핼러윈 데이를 테마로 한 음료들이 차례로 나열되어 있었다. 본래라면 그냥 10월의 마지막 날이 왔나보다 정도로 가볍게 넘기고 말 소냐였지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든 건지 귀엽게 장식된 핼러윈 음료들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벤트 음료를 주문하면 박쥐 모양의 버터 쿠키를 무료로 증정해 주는 모양이었다.

 

‘레인은 아직인 것 같고….’

 

기다리는 동안 제가 마실 음료를 주문할 겸 그의 몫도 챙겨줄까 싶은 마음에 소냐는 핼러윈 메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평범하게 늘 마셨던 아메리카노를 주문해도 좋겠지만, 일 년 중 단 한 번 있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 나온 한정 메뉴이지 않나. 한 번쯤 다수가 즐기는 축제에 저 또한 발을 들여봐도 좋을 것 같단 마음에 이벤트 배너 앞에서 열심히 고민을 했다.

 

‘역시 핼러윈이면 호박이지. 그러면 펌킨 슈페너 한 잔이랑…. 무난하게 초코 라테를 고를까.’

 

가장 핼러윈다운 음료를 그에게 선물할 생각이었지만, 만약 호박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 무난하게 마실 수 있는 초코 라테로 바꿔줄 심산이었다. 메뉴를 고른 소냐는 카운터에서 대기 중인 직원에게로 다가가 살가운 얼굴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

  

─딸랑.

 

맑은 종소리가 카페를 울리고 조금 빠른 걸음을 한 레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업무를 처리하는 데 생각 이상으로 시간이 걸려 퇴근 시간이 그만큼 지체되고 말았다. 저를 기다리고 있을 연인 생각에 초조해져 다리가 달달 떨리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고 실수 없이 서류를 처리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지막으로 검토한 서류에 도장을 찍어내자마자 그는 앉은 자리에서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옷걸이에 걸어둔 외투는 대충 옆구리에 끼고 그대로 부랴부랴 카페로 달려갔다. 날이 덥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연인에게 땀에 푹 절은 몰골을 보이고 말았을 것이다.

 

‘소냐는 어디 있지?’

 

잠시 자리를 비운 게 아니라면 소냐가 즐겨 앉는 장소는 늘 정해져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발길이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테이크 아웃 잔에 든 음료를 빨대로 쭉 빨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소냐가 시야에 들어온다. 조급한 마음이 피워낸 불씨는 제 연인을 발견한 동시에 단번에 사그라들었고 그제야 레인은 웃을 수 있었다.

 

“늦어서 미안해, 소냐. 나 많이 보고 싶었어?”

“음~ 별로.”

 

소냐는 부러 새침한 답을 내놓았지만, 레인은 그런 소냐의 반응을 제법 귀여워했다. 레인은 싱글생글 웃으며 마주 보는 자리에 놓인 의자를 살짝 뒤로 빼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 자신이 앉은 쪽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음료와 눈이 마주쳤다. 노랗게 물든 색이 퍽 예쁘다고 생각하며 한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다 물었다.

 

“이건 뭐야?”

“펌킨 슈페너. 할로윈 한정 메뉴라서 시켜봤어.”

“아, 하긴. 시즌이긴 하지.”

 

딱히 싫진 않은 듯, 레인은 음료에 꽂혀 있는 빨대를 잡고 둥글게 두어 번 저어낸 뒤 쭉 한 모금 빨아냈다. 달달한 단호박 향이 끝맛에 살그머니 걸쳐지며 씁쓸한 커피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내 제법 감칠맛이 났다.

 

“오, 꽤 맛있는데?”

“정말?”

“바꿔서 한 모금씩 마셔볼래?”

 

소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마시던 음료를 교환했다. 초코 몬스터 라테는 단맛이 강한 초콜릿을 베이스로 깔고 그 위에 하얀 생크림을 올린 뒤, 딸기시럽과 쌉싸름한 초콜릿 가루를 뿌려 만들어진 음료다. 달곰함과 씁쓸함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며 이 또한 물리지 않고 먹기 좋은 맛에 속했다. 두 사람이 마주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어 보이곤 본래 마시던 음료로 다시금 교환하려던 그때였다.

 

“Trick or Treat!”

 

조그마한 뿔이 달린 후드를 입은 꼬마가 이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소냐는 순간 놀라 딸꾹질이 나올 뻔했고 레인 또한 벙찐 얼굴이었다. 처음 본 낯선 아이는 두 사람의 반응에 아랑곳 않고 더더욱 내민 손을 쫙 펼쳐 보였다.

 

“Trick or Treat!!”

 

아이는 꼭 두 사람에게 맡겨둔 사탕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당당하게 먹을 것을 요구해왔다. 소냐는 이에 심히 난처함을 느꼈다. 아무리 상대가 어린아이라고 해도 갑작스러운 요구에 그만 적잖이 당황하고만 소냐였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든 소냐는 그저 입술을 꾹 문 채 외면하듯 아이의 시선을 피했다. 아이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은 모양인지 금방이라도 테이블을 뒤집을 것처럼 표정이 우락부락해졌다. 어떡하면 좋지…. 안절부절못하며 테이블 위에 둔 손을 꼼질거리던 찰나, 레인이 테이블 위에 올려둔 쿠키를 하나 집어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어떡하지? 사탕은 없고 쿠키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가질래?”

 

금방이라도 심통을 부릴 것 같던 아이는 레인이 건네는 쿠키를 확 낚아채더니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작은 호박 모양 바구니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단 듯, 뚜벅뚜벅 걸어선 카페 문을 열고 나갔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소냐는 푸욱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에 얼굴을 묻었다. 레인은 그런 소냐를 보며 쿡쿡 낮은 소리로 웃었다.

 

“긴장했어?”

“갑자기 말이 걸리니까….”

“그래봤자 어린애인데.”

“그래도…….”

 

과자를 내주기 전, 그 애 얼굴을 떠올려보면 대체 무슨 장난을 쳤을지 통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곱게 넘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불만으로 잔뜩 구겨져 빵빵하게 부어오른 볼을 다시금 상기하며 소냐는 그리 확신했다.

 

“과자가 없었다면 무슨 장난을 쳤을까…?”

“글쎄? 소냐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당겼으려나.”

“쪼옴~!”

 

아무리 장난이어도 그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이 들어서인지 이번엔 이쪽이 불만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진짜 그런 장난을 치고 간 것도 아닌데, 상상만 해도 싫은가 보구나 싶어 웃음이 터진 레인이었다. 그런 레인의 팔을 찰싹찰싹 때리며 소냐는 웃지 마! 작게 소리쳤다. 소냐의 이런 반응을 볼 때마다 레인은 행복했다. 잘 웃지도 않고 표정 변화도 적던 이전에 비해 요즘의 소냐는 작은 자극에도 톡톡 튀어 오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레인은 소냐에게서 어떠한 생동감을 엿보았다. 생기로 가득 넘치는 너를 보는 것이 좋았고 동시에 안심이 드는 자신이었다. 그 때문인지 근래 들어 부쩍 장난을 치는 횟수가 늘어났는데, 소냐 한정 장난꾸러기가 오늘 같은 날을 그냥 두고 지나칠 리가 없었다. 슬그머니 테이블 위에 남아있던 하나 남은 쿠키를 훔쳐 제 주머니에 쏠랑 넣은 뒤, 소냐에게 손바닥을 내보이며 말했다.

 

“Trick or Treat.”

“어?”

 

소냐는 또다시 당황스러운 얼굴이 됐다. 왜? 나는 처음 보는 사람도 아니잖아.

 

“뭐야, 장난치지 마 레인.”

“진심인데? Trick or Treat. 아니면 장난칠 거야.”

 

짓궂게 웃는 레인을 보며 소냐는 그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단 걸 깨닫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넌 애도 아니면서…. 음료 두 잔을 시켰으니 무료로 받은 쿠키도 두 개다. 하나는 아이에게 줬고 다른 하나를 레인에게 주면……. 어라? 어디 갔지?

 

“쿠키, 분명 두 개였는데?”

“그랬어?”

“바닥에 떨어졌나?”

“…소냐.”

 

─늦었어. 

레인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인 뒤, 그의 뺨 위로 쪽, 입을 맞추었다. 소냐는 벙찐 얼굴로 굳어있다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 박자 늦게 자각하곤 두 손을 들어 제 얼굴을 폭 가려 감쌌다. 그런 소냐를 보며 레인은 유쾌한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고 마저 음료를 마시면서 빨갛게 달아오른 열이 식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주기로 했다.

소냐에게 있어 매 10월은 늘 울적함에 젖는 달이었으나, 올해 10월은 어쩐지 잘 익은 호박처럼 감미로 꽉 찬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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