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현힐데] 사랑의 발명 1
"우리 바다 갈까."
예현의 서재에는 유화로 그려진 바다가 있었다.
힐데는 아무 생각 없이 아, 바다가 보고싶다. 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옆에, 예현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다요?"
"네 일정이 좀 넉넉해지면 바다나 가볼까."
"은퇴하고 싶어졌어요...."
"그건 안되지."
"그래도 바다는 가고싶어요."
그치? 하는 얼굴로 힐데가 예현을 바라보자, 예현은 양 뺨을 붉게 물들이고 조용히, 속삭이듯이 말을 이었다.
"둘이서만요...."
숨소리같은 말에, 힐데는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유화로 그려진 바다는 생동감있고, 멋있고, 아름다웠으나 예현만 하진 못했다.
이후 예현은 은퇴했지만, 바다를 갈 순 없었다.
예현은 예현대로 윤과 아미를 챙겨야 했고, 스카도 챙겨야 했다. 공적인 일에 사적인 감정은 사치일 뿐이다. 감성을 곁들이기에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치열했으며 서로를 위해 낼 틈조차도 없었다.
15코어의 휴양지따위로 힐데를 데려가고 싶지 않다는 예현의 뚝심도 있었다.
사람을 자본으로 급을 매기는 곳은 예현과도 맞지 않았고, 감히, 힐데에게 들이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은 정말이지, 감히 거만하였다.
프로메테우스, 그가 흘린 피에서 자란 파르마콘 꽃으로 즙을 내어 불로불사의 삶을 얻게 된 인간들은 마치 저들이 무엇이라도 된 양 굴기 시작했다.
그들의 프로메테우스는 과거 신이 그랬다고 했듯, 모든 인간이 똑같을순 없지. 라는 말을 했다. 삶은 그에게 몹시 거친 바람이었으며, 그는 겨우 생긴 소중한 이들의 손을 잡고 겨우 발을 떼는 나약한 나그네였다.
예현은 키르케가 된 기분이었다. 그의 피에서 피어난 꽃을 훔쳐 인간들에게 나눠주었으나, 인간들은 거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단체를 만드려 하였으나 그들 단체마저 그들의 원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공격했다.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모두 폐기할 수도 없었다.
그들을 모아두고 노호를 토했다.
인간으로서 수치심을 가져라.
너희의 모든것은 그로부터 왔으며, 그의 자비로 너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며 인간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모두 죽어 스러졌을것이라고.
수치를 모른다면 배우라 하였으며, 그것조차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그에게서 받은 영생을 폐기하라 했다.
많은 이들이 침묵했고, 얼굴이 붉은 이들이 있었다.
불.
그것이 무엇이길래 프로메테우스는 옆구리의 간을 독수리에게 영원히 쪼이는 벌을 받았던가.
그 독수리를 잡아 죽일 수는 없을까.
하지만 그 독수리는 레이였고, 카일이었다. 그의 동료, 친구, 가족.
제 손으로 죽였던, 맑게 웃을 줄 알던 그의 가족.
알고 있던 사실이었건만 구역질이 났다.
내가 당신의 곁에 있을 가치가 있을까요?
내가 감히. 어떻게.
힐데는 분명 내 지시였고, 너는 따랐을 뿐이고, 너에게는 생존의 위협이었으니 그건 당연한 자연의 법칙이라고 할테다.
그러나 그건 명백한 살인이었다.
이제와 대부 대자의 관계가 생긴걸 생각하면, 친족 살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들과 함께 했다면 대부의 친구가 되었을 사람. 삼촌이라고 불렀을수도 있었겠지. 아. 예현은 얼굴을 감싸쥐고 오열했다.
이걸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 옛날 폭력속에서 소리 없이 우는 방법을 깨우쳤을 때보다 더 아팠다.
내가 기어이 당신의 가족을 죽였군요.
예현은 한동안, 힐데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
힐데가 예현을 찾아나선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예현은 쏙쏙 잘도 피해다녔으며, 힐데는 미친듯한 직감으로 예현을 쫓았다. 그와중에 크리처 처분은 잘만 하고 있었다. 그의 기동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그 실력은 인간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예현, 말좀 해."
"싫습…."
"내가 싫어도 이해해.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기회를 줘. 잠깐이면 돼."
예현은 고개를 퍼뜩 들었다.
"제가 당신을 왜 싫어합니까!"
오히려 힐데의 표정이 어리둥절했다.
창틀에 걸터앉은 그는 한 손으로 창틀을 잡고 한손으로 얼굴을 마구 쓸며 미안해, 내가 너무 성급했지, 그치만 지금 좀 바빠서…. 같은 변명이나 했다.
예현은 소파 위에서 담요를 덮고 웅크리고 있다가 벌떡일어나 창틀의 힐데를 잡아당겼다.
"위험하니까 내려오세요. 다치면 바로 낫지도 않는 분이…."
안전하게 잡아끌기 위해 온 몸의 힘으로 조심조심 끌어당기는 모습이 힐데를 걱정하는 예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나한테 화났던거 아니야?"
"제가 어떻게 당신께 화를 내겠어요."
"그럼 왜 날 피했어?"
"…자격이 없으니까요."
힐데는 어린아이처럼 물었다. 자격이 왜 없어? 예현은 그 말 만큼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래도 물어본 말이라, 어눌하게 대답했다.
"제가 당신의 가족을 죽였잖아요."
"…그 말, 전에도 하지 않았어?"
"… …."
"그때 말했잖아. 너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너는, 살고싶었던 것 뿐이잖아. 그건 내 죄야."
내것을 가져가려 하지 말라는 것 같은 힐데의 반응은 얼핏 차갑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본심이 다정하여, 무엇보다 따뜻하기도 했다.
데일 것 같았다.
"제가 당신을 욕심내서 그래요."
"나는 이미 네 패인데, 뭐가 그렇게 무서운거야."
당신을 사랑해서 그래요.
예현은 제가 내뱉고 싶은 모든 말에 잠겨서 질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뱉지 못 한 말은 여태 많아왔지만, 이렇게까지 숨을 틀어막는 고통은 생경한 것이었다.
좌절과 굴복은 그의 성장을 죽을만큼 고통스럽게 했지만 비탄과 죄책감을 그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어느것 하나 쉬웠던 적이 없었다. 성장할 즈음에는 정말로 죽고싶었고, 죽으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물리적인 고통 없이 이렇게 허공에서 잠겨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처음이었다.
"제가 당신의 마지막이 될 수 있을까요?"
힐데는 질문의 의도를 헤아리려는 듯 눈을 맞추고 가만히 기다렸다.
"당신이, 삶이 버겁고 고통스러워서 마침내 끝의 끝에서 스스로를 버리고 싶을 때, 제 생각이 날까요?"
제가 당신의 미련이 될 수 있을까요?
"당신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죽음으로의 갈망에 사로잡히더라도 저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요?"
힐데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내 곁에 있어주겠느냐는 질문에도.
***
힐데가 공멸을 생각한다고 말했던 다음 날, 종족의 마지막 생존자를 죽일 때 그자의 말에 운명을 맡기겠다던 날 밤에, 예현은 다시 찾아왔었다.
그는 울어 온통 붉어진 얼굴로 힐데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이야기 했다.
“시를 봤어요. 사랑의 발명이라는 시 인데, 인상깊었어요.”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한층 낮고 허스키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물 속에 잠긴듯 탁했다.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가서 살게요. 거기서 곡기를 끊고 살다가, 바다로 걸어갈거예요."
예현은 당장 일어나 바다로 떠날 사람 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다. 힐데는 천둥의 전격을 흘려보냈을 때보다 더 심장이 아프게 죄여오는걸 느꼈다. 번쩍 놀란 그는 번개처럼 일어나 그를 껴안고 등을 도닥였다. 그리고 너를 사랑해야겠다고, 너를, 나의 마지막으로 삼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겨눈 동료에게 제 운명을 맡기겠다고 했으니, 그 전까지는 네가 나의 마지막 돌아갈 곳이라고.
***
모든것이 끝나고, 힐데베르트는 살아남았다.
그 상태를 '살아있다'고 표현 할 수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살아있는 생존자였다.
무정한 신은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한다.
힐데베르트 탈레브는 모두를 공평이 사랑하는 신은 아니었지만, 그의 바운더리 내에 들어온 인간들을 몹시도 사랑하는 신이었다.
그래, 이예현이라는 인간은 단 한순간도 힐데베르트 탈레브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무정한 신 아래에서, 사랑이라는것을 탄생시키기 위해 애썼다. 그 사랑이 분명 그의 삶의 원동력이 되리라 확신하면서.
사랑을 발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을 찾아갔지만, 그들도 사랑은 발명할 수 없다고 했다.
뮐른과 윤은 가라앉은 눈으로 예현을 바라보았다.
"네가 미친건지 아닌건지 구분이 잘 안 되는군."
윤의 말에도 예현은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걸 발명한다면 혁신적일 것 같지 않아?"
"그게 발명한다고 될 일이냐? 애초에 발명이라는 게 성립할 순 있고?"
윤의 신랄한 말솜씨 틈새로 존 뮐른의 궁금증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호르몬을 좀 조작하는 방법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존 뮐른의 청천벽력같은 말에 사랑의 발명이 시작되었다.
과학동 일대가 마비되었다.
~사랑의 묘약 개발중~
이라는 문구는 존 뮐른이 직접 내건 슬로건이었고, 지나가던 이들 모두가 눈을 비비고 제 머리를 쳤다.
"정말 미친건가…?"
릭은 신랄함도 빠진 어이없음을 표현했다. 뼛속깊이 이탈리안인 그는 모두에게 공평한 사랑, 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플러팅의 대가였다. 강 주 덕에 그의 빛이 얼마간 퇴색한 듯 싶었지만, 그건 그 인간이 이상한 거니까. 아무튼 배저 본부 내 대부분의 인간들은 플러팅의 고수 중 한 명으로 리카르도 소르디를 꼽았다.
"사랑의 묘약이 반응이 있을거라 생각하십니까?"
딱 한 명, 그저 생생한 궁금함에 물음표를 띄운 인간이 있었으니, 힐데베르트 탈레브였다.
이 사건의 원흉. 하지만 본인은 모르는.
힐데는 릭과 함께 과학동 정문 앞에 서서 사랑의 묘약 개발중이라는 팻말을 보고 머리를 갸우뚱 갸우뚱 기울였다. 그러고보니 릭이 알기론 힐데는 여태 연애라거나 사랑이라거나, 호감같은 이슈에 손가락을 올린적이 없었다.
"연애 해 본 적 있어, 힐데?"
싱그러운 웃음을 지은 릭은 알쏭달쏭하다는 얼굴로 팻말을 바라보는 후배에게 말했다.
"연애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없습니다."
"그럼 누굴 좋아 한 적은~?"
"예? 저는 릭 좋아하죠."
"… …."
"아미랑, 예현이랑… 윤 선배님도 나름대로는…. 그리고 저희 애들이랑…."
글렀다.
릭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랑의 묘약, 왜 개발되고 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최윤이 묵인하고 존 뮐른이 흥미를 가지고 뛰어들었는데도 본부 내에서는 '기존 일정에 차질이 가지 않는 선 내에서 진행할것'라는 답변만 내려왔다고 했다.
그말인 즉슨, 이 일은 예현의 묵인, 혹은 그의 주장에 의해 진행되는 일이렷다.
그리고 그는 최근 힐데를 붙잡아두기 위해 온갖 짓을 다 벌일 기세였다. 대자로 삼아달라고 한 것 부터가 심상찮았다. 그런데 뭐? 사랑의 묘약~? 세상이 망할 징조를 이렇게 알고싶진 않았는데. 하지만 딱히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었다.
힐데베르트 탈레브는 최근 몹시 위태로운 분위기를 하고 있었고, 넋을 놓는 일이 잦아졌다. 아마 과거가 되어버린 모든 시간을 곱씹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카일이라는 자가 한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는, 제국어를 모르는 릭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힐데는 그걸 알려주지 않았고, 윤은 의외로 그런 선은 분명히 지키는 자였다. 그리고 이 어이없는 작전명에 동참하고 있는걸 보니, 관련이 없진 않으리라 싶었다.
텅 비어버린 사람에게는 무엇을 주어야 할까?
기쁨, 행복, 사랑, 빛과 소금, 설탕과 탄수화물….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달짝지근한것을 넣어 채워주고 싶었다. 그러면 슈가하이의 영향으로나마 활기차게 굴 수 있지 않을까,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많은 이들이 힐데에게 휴가를 권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휴가를 보내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동료를 보는건 그들로서는 마음이 깎여나가는 일이었다.
불로장생의 육신은 불멸자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죽음을 완전히 피할순 없었다. 그들도 피가 부족하면 실혈사 할 수 있고, 목이 베이면 죽는다. 심장이 꿰뚫려도 죽음에 이른다. 보통의 인간보다 회복력이 빠른것은 그들을 마지 다치지 않는 괴물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상은 일반인이 죽을 수 있는 수단으로도 죽을 수 있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일 뿐이다.
그렇지만 힐데는 그들의 원류다.
그들보다 상처가 낫는게 더디고, 실혈사 할 위험에 더 노출되어 있다. 그가 만약 다친 후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그는 쉬이 죽음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배저들은 하나같이 힐데와 함께 임무에 나가길 원했다. 포털을 넘어온 것들은 인간의 생존을 위헙했고, 그를 물리치고 영토확장을 하는 일은 아직 건재했다.
시내를 순찰하는 일에 배정된 힐데는 각 선임들과 함께 일주일에 다섯번 출근했고, 두번 쉬었다.
쉬는동안은 타이탄들과 함께했으며, 힐데가 자고있는 동안에도 타이탄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사이에 사랑의 묘약은 성황리에 개발되었다고 팡파레를 울리고 있었다.
***
"자아, 힐데, 초코우유!"
아미는 지나가던 힐데를 붙잡아 앉혔다.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는 그에게 빨대꽂힌 초코우유를 내밀었다. 흔한 상표였다. 힐데는 나의 빛과 소금이 주는 선물인가봐, 하는 얼굴로 빨대를 입에 물었다.
심장이 콩닥거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합의되지 않은 지점이 있었다.
과연 누구에게 사랑에 빠지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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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대단한 코알라
아니 젤중요한걸 빼놓고 개발을 햇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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