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

[오수이한]드라마의 법칙上

헤어지라고 하면 없던 애정도 생겨난다

보존도서관 by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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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차 주제 : 물싸대기

목표 글자수 : 6596/5000


왜, 그런 전형적인 드라마의 클리셰가 있지 않은가. 이한이 전생에 드라마를 잘 보는 편은 아니었다지만 아침드라마의 전형적인 클리셰로 하도 유명한지라 기억하고 있었다. 재벌가의 아들과 사귀는 서민층의 여자 주인공. 행복했던 그 둘 사이에 예비 시부모가 나타나서 여자 주인공에게 물컵에 든 물을 끼얹으면서…….

 

“오수 고나달테스. 당장 내 아들과 헤어져라.”

-……워다나즈. 다짜고짜 와서 무슨 헛소리냐? 이 에인로가드에서 이런 소란을 피워? 네놈이 네 아들을 에인로가드에 보내놓고 갑자기 사제 관계를 끊으라니?

 

그래, 저렇게……. 이한은 갑자기 나타나 해골 교장을 공격하는 가주……그러니까 자신의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제 관계?” 심기가 불편한지 이한을 똑 닮은 입매가 이윽고 비틀렸다. 아니, 아니……. 그런데 본인이 에인로가드에 가라고 하셔놓으시고서는?! 심지어 저 대사나 표정이 묘하게…….

 

“내 아들을 꼬여서 워다나즈가에 결혼하겠다는 통보까지 해놓고 아주 당당하구나. 당장 헤어지지 못하겠나? 나보다 나이도 많은 놈이 양심이라곤 없군.”

-……?

“예?”

-아니 갑자기 와서 무슨…….

“이한 워다나즈. 지금 당장 나와 가문으로 돌아간다.”

 

아니, 요즘 대륙에 막장 드라마가 유행하나? 사제가 굳어져서 멍하니 올려다보는 것을 바라본 가주가 손을 휘저었다. 마력의 흐름을 타고 검은 머리카락이 하늘거리며 흔들린다. 위에서 올려보니 과연, 이한과 놀랍도록 흡사한 인상이었다. 서늘한 호흡 한 번에 곧장 날카롭게 벼려진 스물네 개의 마법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보며 오수가 분노해 손짓으로 마법을 해제하고는 외쳤다.

 

-다짜고짜 무슨 소리냐! 평소 나한테 일을 떠맡긴 후 틀어박혀 제 연구만 하던 주제에 그런 저주받을 소리를? 저런 핏덩이와 내가 뭘 어째?

“맞습니다 가주님! 제가 미쳤다고 결혼을 합니까, 저 리치랑?! 저는 무고합니다! 왜 그런 저주를 하십니까!”

-당장 그 막말 사과하지 않으면 당분간 외계 탐사는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저는 가주님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아닙니다!”

 

이한도 오수가 분노하는 것을 보고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함께 분노해서 소리쳤다. 아무리 자신의 아버지라지만 이게 무슨 막말이란 말인가! 차라리 죽으라고 고위 저주를 날렸어도 이것보단 덜 서운했을 것이다! 합심해서 항의 하는 모습에는 어찌 된 영문인지―사실 당연하게도!― ‘서로 사랑하니 결혼하겠다’고 워다나즈 가문에 전쟁 선포를 날린 이들 이라고 보기엔 애정의 한 획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수가 돌려보낸 마법을 해제하며 동시에 반격하려던 가주는 그 기류를 느끼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상하군. 자신이 라야나에게 운명을 느꼈을 때는 저런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아.”

-…….

“…….”

“……너무 과하게 예지를 썼군.”

-저 미친 놈이 지금 뭐라는…….

“잘못! 잘못 보신 거겠죠!”

 

아아, 괜히 관장님과 결혼한 게 아닌가……. 이상한 걸 보고 오고서 대는 핑계까지 아주 똑같았다! 이한은 예지라는 말에 기겁해서 손을 마구 내저었다. 아니, 아니지! 차라리 관장님이 나았다! 차라리 미래의 마령관이나 교장이 낫지, 자신이 누구와 뭘……?

 

“예지 마법을 잘못 쓰신 게 분명합니다! 설마 그것 때문에 외계 탐사까지 멈추고 여기에 오신 겁니까?”

“이한 워다나즈. 너도 알겠지만 내 마법은 잘못될 리가 없…….”

“관장님과 정말 똑같은 소리를……. 그럼 제가 정말로 저 해골……교장 선생님과 결혼을 하겠다고 워다나즈 가문을 찾아간다는 겁니까 가주님? 진짜로 확실합니까? 정말로?”

“…….”

 

아, 지금 고민한다. 확실히 고민하고 있다. 가주는 지금, 늦게 얻은 막내아들의 미래를 받아들이기 싫어서라도 드높은 자존심을 꺾고 자신의 지고한 마법이 이번만큼은 빗나간 것 같다고 이야기할 것인지, 그냥 저 미래를 받아들일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한참 말이 없던 워다나즈 가문의 가주가 싸늘하게 오수를 노려보고는 짓씹듯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내 예지가 아니라 미래가 틀렸겠군. 오수 고나달테스. 지켜볼 테니 처신을 잘 하도록 해라. 그리고 이한 워다나즈 너도.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당장 데리고 가겠다. 결혼 허락 같은 걸 받을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도록.”

“죽어도 그런 일 없습니다!”

-저 어린놈이 틀어박혀 연구만 하더니 진짜 미쳤…….

 

오수가 참지 않고 욕을 뱉든 말든 워다나즈 가문의 가주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뒤에서 수군대는 소리. “무슨 소리야?” “결혼? 누가 누구랑?” “워다나즈랑 교장 선생님…….” “……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한의 등 뒤에서 살짝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 내 뒤에서 내 사회적 평판이 작살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가주님……!!

 

 

**

 

 

“이한 학생! 이야기는 다 들었어요!”

“다 오해입니다! 오해라고요! 가주님이 잘못된 미래를 보고 착각하신 겁니다!”

 

다른 마법사라면 몰라도, 워다나즈 가주 정도 되는 대마법사가 미래를 잘못 보는 일은 거의 없을 텐데……. 가르시아 교수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한의 필사적인 발버둥이 너무 가여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한의 손에 버두스 교수에게서 가져온 아티팩트를 쥐여주었다. 투척하는 형태의 아티팩트였다. 그 안에 담긴 대단한 공격 마법의 편린이나마 눈으로 좇은 이한이 잠시 입을 벙긋거렸다. 설마……설마?

 

“……이게 뭡니까?”

“교장 선생님이 갑자기 다가오면 쏴버리도록 해요. 어떻게 쓰는 건지는 알겠죠?”

“……그거 정말 아닙니다…….”

 

그나마 자신은 낫지, 오수는 지금 교수들과 학생들, 데스나이트들에게 욕을 얻어먹으며 해명하고 다니고 있지 않던가……. 그런 짓은 안 할 것 같은데? 그렇지만 이한은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감사한 얼굴로 가르시아 교수가 준 아티팩트를 챙겼다. 에인로가드에서 주는 것을 받지 않는 것은 바보짓이니까…….

같은 사유로 쌓인 아티팩트들이 좀 많긴 하지만, 음…….

 

“그런데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가요?”

“교수님……. 정말 가주님이 착각하신 겁니다…….”

 

이한은 정색하며 답했다.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는데 듣지를 않다니? 안 그래도 요즘 자꾸 몰려들어서 이런 질문들을 해대는 통에 꿈에서 오수와 자신이……. 어제 꾼 꿈을 다시 상기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끔찍해진 이한의 낯이 어두워졌다. 어두워진 얼굴로 입술을 문지르는 이한을 본 가르시아와, 지나가다가 문득 상황을 발견한 디레트가 대경실색해서 외쳤다.

 

“그 해골 교장이 진짜 미쳤나 설마 후배 너한테 키스했어?!”

“교장 선생님이 이한 학생한테 입 맞췄어요?!”

“그건 또 누가 퍼트린 미친 소립니까?!”

“뭐?”

“이게 무슨 소리야!”

“그 해골이 드디어 노망이 났구나!”

“……선배님들은 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오신…….”

 

미치겠다, 진짜……. 이한은 진심으로 집을 나가고 싶었다. 기왕이면 이 지옥 같은 에인로가드도…….

 

 

**

 

 

-너 나한테 불만 있냐?

“그럴 리가요. 하늘 같으신 교장 선생님께 무슨 불만이 있겠습니까?”

 

사실 넘쳐났지만 이번만큼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수습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음에도 소문이 수습되기는커녕 더 불어나 버리는 바람에 이제 소문은 지나치게 구체화 되어있었다. 예를 들어 그 둘이 침대에서…… ……아니 됐다. 말을 말자. 끔찍하니까. 이한은 다짜고짜 자신부터 추궁하는 해골교장을 보며 억울함을 느꼈다. 지금 나도 피해자가 됐는데 왜 나를 의심하시는 거지?

 

뭐, 한창 나라를 부수고 왕관을 녹이고 있을 때……아니, 아니지. 그것마저 다 관두고 에인로가드의 교장 일을 하고 있을 때 아직 태어나기는커녕 부모들도 세포로 존재 했을 어린애를 유혹해 취했다는 소문이 도는 어디의 누군가가 이한 자신보다 더 억울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겠지만.

교수들 몇이 심층 징벌방에 다녀오고 학생들도 징벌방에 들락거리는 횟수가 지나치게 늘어난 것만 봐도 이번 사태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황제에게 가려던 투서 수십 개가 발각당하고 오수는 황제에게 불려 갔다 오기도 했다. 페르쿤트라가 오수가 제정신이냐고 물어보던데……그것도 넘어가자. 교장을 유혹해서 수석을 갈취했단 소리 안 들린 게 어디냐. 공부한 보람이 있군……. 이한은 이제 그렇게 합리화하기로 한 것이다.

 

‘내 일이 아니었다면 내 알 바가 아니었을 텐데 아쉽군……. 대체 가주님은 어떤 헛것을 보셨길래 아들의 평판을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트리시는 거지?’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아, 가주님 생각을 좀. 뭐라고 하셨습니까?”

 

오수는 이한을 의심스러운 얼굴로 노려보았다. 이한은 찔리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뻣뻣하게 고개를 들었으나, 글쎄. 평소에 잘못하고도 시치미 떼는 것을 워낙 많이 봤어야지. 오수는 차라리 이한도 징벌방에 넣어버리고 싶었다. 그래봤자 시선을 피하려고 어린 연인을 징벌방에 넣다니 제정신이냐, 당신부터 들어가라, 이딴 소리나 들을 테지만…….

 

-…….

“왜 보십니까?”

-진짜 아니냐?

“증거 있으십니까?”

 

……정말 성물함 깨지겠군! 워다나즈 가주나 이 워다나즈의 애송이나 정말 이미 죽은 리치의 골을 아프게 만드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오수는 무어라 더 말하는 대신 짜증스레 손짓을 했다. 습격을 하기 위해 간을 보고 있던 학생들 몇이 곧장 징벌방으로 날아갔다. 네가 저지른 짓의 결과를 봤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중요합니까? 눈빛을 첨예하게 주고 받은 두 사제는 짜증스레 제 갈 길을 가기로 했다. 상황 파악을 못하(시)는군!

 

-타기나 해라……. ……쿠 교수. 지금 뭐하는 거요?

“교장 선생님, 지금 워다나즈를 데리고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워다나즈는 지금 오고닌에게 환상 마법을 배우러 간다만.

“워다나즈, 정말이니?”

“……예.”

“네가 오고닌님께 환상 마법을 배우고 있는 건 알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교장 선생님의 협박이라면 당근을…….”

 

당사자를 앞에 두고 아주 지랄을 하고 있었다. 결국 오수가 참지 못하고 교수에게 하던 최소한의 존대도 집어치우고 으르렁거렸다.

 

-……너희는 내가 정말 워다나즈와 침대라도 공유하길 바라나 보지?

 

침묵. 이윽고 뜻을 이해하기가 무섭게 기겁해서 자신을 향하는 여러 시선을 보며 오수는 자신의 실언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위대한 대마법사라도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사방에서 숨죽여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교수와 학생들이 벌떡 일어나 튀어나오며 마법을 휘둘렀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투서! 투서 보내!”

“아니, 교장선생님, 제정신이십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지금! 저한테 불만 있으십니까? 누가 누구랑 뭘 공유합니까!”

-내가 바란다고 했느냐, 저놈들이 바라는 것 같다고 했지!

“워다나즈, 다시 생각해! 네가 뭐가 아쉽다고 저런 해골이랑!”

“이한, 이한! 혹시 정신 마법에 당한 거야?”

“아니다, 아니라고. 교장 선생님! 빨리 해명하십시오!”

-내 말을 듣고는 있는 거냐?

 

아우성과 광기가 가득 찬 소란 현장에서 교수들과 학생들을 전부 징벌방으로 떨쳐내고(중간에 반항하는 데스 나이트들 몇몇도 지하에 처박아 두었다.) 출발한 마차 안. 아까 전의 소란이 있으니 당연하게도 지옥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인간형으로 변한 채 턱을 괴고 창밖만 노려보고 있는 오수를 노려보던 이한이 툭 뱉었다. 그냥 이렇게 된 것,

 

“……가볍게 만났다가 헤어졌다고 하죠.”

“……너 제정신이냐?”

“어차피 이미 소문은 퍼질 대로 퍼졌습니다. 사귀고 있었다고 긍정해봤자 역시 그랬다는 소리 밖에 더 듣겠습니까? 이미 저희는 소문 속에서 할 걸 다 했단 말입니다. 차라리 그런 거 안 했고 그냥 조금 만났다가 금방 헤어졌던 걸 가주님이 오해하셨다고 하면 됩니다.”

“…….”

 

제자의 광기에 오수는 전율했다. 저게 제정신으로 나올 수 있는 소리인가? 자신도 자신이지만 가끔 워다나즈의 광기는 자신도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었다…….

 

“애초에 내가 너와 가볍게 만날 이유가 어디 있다고?”

“제 얼굴이 곱상해서 봐줄 만 하긴 하다면서요?”

“내가 언제…….”

 

……그랬던 적이 있긴 한데. 오수는 입을 다물었다. 이미 자신의 실언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사실 만났던 게 맞고 헤어졌다고 변명해도 달라질 것이 있긴……한가?

 

“…….”

 

어라? 없을지도? 오수는 곰곰히 이한을 뜯어봤다. 확실히 곱상한 얼굴이긴 하지. 이한 워다나즈에게서 마법 실력과 성실한 태도, 스승에게 순종적인 모습과 천재성을 빼고 굳이 더 볼만한 것을 찾으라면 얼굴 정도가 있겠다. 자신의 얼굴이야 말할 것도 없고. 물론 그게 자신이 만나야 한다는 이유가 되지는 못하지만, 뭐……결혼을 전제로 한 것도 아니고, 가볍게 만났다가 헤어졌다는 이유 정도로는 납득할 수도 있…….

 

“……정말 제정신이냐?”

 

……을 리가 없지! 되긴 뭐가 된단 말인가, 저 핏덩이랑! 얼굴이 곱상하다는 이유로 어린애와 가볍게 만났다가 헤어지는 쪽이 더 쓰레기가 되는 것 아닌가? 워다나즈의 확신 가득 찬 광기에 말려들 뻔 했다! 오수는 짜증스레 자신을 똑같이 관찰 중인 이한의 얼굴을 밀었다.

 

“될 리가 없지 않으냐.”

“왜 안됩니까? 저와 같은 침대를 쓸 거란 망언은 되는데 사귀다가 헤어졌다는 말은 안 됩니까? 그럼 현재진행형으로 연인 사이라고 할까요?”

“지금 뭐라는…….”

“교장선생님, 그거 아십니까?”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마주한 오수가 말을 잠시 멈췄다. 서늘하게 식은 갈색 눈이 녹빛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동시에 마력이 일렁이더니 오수의 머리 위로 물이 쏟아졌다. “…….” “교장선생님, 정말 최악입니다. 이거나 먹으십시오.” “……잠깐, 워다나즈. 기다려라!” 마차가 멈춘 것을 확인한 이한이 문을 벌컥 열고 나가 마탑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을 보며 오수는 마법으로 물을 날려버린 후 그의 뒤를 따라가며 속으로 생각했다.

 

……당분간 에인로가드에서 문제가 생기면 워다나즈부터 의심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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