𝚊𝚏𝚝𝚎𝚛

꿈 속에서 찾아다녀요, 이 순간을 난 기다렸어요.

California Dreamin' - 중경삼림

「すいそう」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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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慶森林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ay

California dreaming

On such a winter's day


12월 15일.

낙엽이 지며 마지막 숨결을 내뿜는다.

하늘이 잿빛으로 변한 어느 겨울날, 후쿠다 쇼는 마른 잔디를 밟으며 공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찬 바람이 그를 훑고 지나간다. 담배 생각에 무심코 손이 가슴팍의 주머니를 찾는다. 하… 진짜. 굳게 입술을 깨물고 괜히 코트 깃을 치며 손을 털어냈다. 그때 툭, 누군가 부딪히고 지나간다. 뭐야?

그곳엔 금붕어 한 마리가 있었다.

……특이하게 생겼네.

그 정도의 생각을 마치고 후쿠다는 제 갈 길을 가려 했으나, 구두에 치이는 것이 있었다. …귀걸이? 붉은 매듭이 길게 늘어진 동양식 장신구였다. 평소라면 그렇구나, 하고 지나칠 텐데 누가 떨어뜨렸는지 뻔히 알고 있으니 가져다줘야만 할 것 같다. 뭐, 이것도 경찰의 일이 아니던가.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길 건너 성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으니까.

미사가 끝난 예배당엔 찬송가가 아득히 들려오고 있었다. 성당에 들어서니 엄숙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햇빛에 공기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빛나는 게 하나만은 아니지. 하얗게 흐트러진 머리로 속살거리는 처염한 주홍을 힐끗 봤다.

───────….

금붕어를 닮은 그녀는 성모상 아래에 꿇어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방해할 순 없으니 기둥에 빼뚜름히 기대어 기다린다. 무슨 간절한 기도인진 몰라도 입술이 물을 머금은 듯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후쿠다도 숙연하게 눈을 감고 묵념했다.

…톡톡. 사람 기척에 눈을 뜬다.

입을 열기 어려운 적막을 깬 것은 그녀였다.

“전도사는 추운 걸 좋아하나 봐요?”

첫 마디가 그랬다.

손안의 귀걸이를 줘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12월 31일.

킹교는 파인애플 통조림에 적혀있는 유통기한을 보았다.

그날 이후로 12월 31일이 적혀있는 통조림은 죄다 한곳에 모아두었다. 나도 그를 따라 ‘나랑 한 약속’이란 걸 만들어봤다. 그리고 그 기한은 얼마 남지 않았다.

카페에 홀로 남아 평소 좋아하는 LP도 틀어두지 않은 채 망연히 서있었다. 마른 먼지가 심장에 수북이 쌓이는 것 같다.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한다. 어항 뒤로 보이는 시계는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그게 낫다. 깨끗하게 알고 싶지 않으니까.

23:56

23:58

23:59

23:59

23:59…….

00:00

결국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

가슴 시리도록 속내를 파고드는 파인애플 통조림.

열지도 못하고 지독한 고독을 떨쳐내려 애를 쓴다.

분명 이 순간부터 썩어가겠지.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없기를 바란다.

만일 유통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다.


12월 15일.

마지막 연말 한 장이 남은 달력.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후쿠다 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겠지.

생각이 너무 멀리 나갔다. 헝클어진 머리를 넘기며 생각도 함께 정리했다. 오래된 짙은 나무 바닥과 이제는 찾기도 어려운 구식 조명으로 이곳의 연식을 가늠할 수 있었으나, 먼지 한 톨 없는 테이블과 투명한 유리잔을 통해 그녀가 꽤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묻기에 뭐, 아무거나. 그랬더니 영화에 나올 법한 레코드판 하나를 들고 부산스럽게 자랑한다. 유명한 밴드라는데 솔직히 음악과 연이 없어 잘 모르겠다. 성당에서 느낀 첫인상은 온데간데없고 시끄럽고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닌다. 마치 세상의 모든 잡음을 끊고 안식처를 찾은 듯했다.

“마사루 군, 담배는 왜 끊었어?”

“신경 끄셔.”

“에에~? 그 정돈 말해줘~”

어이없다는 눈으로 봤다.

“그냥 나랑 한 약속이다.

1년 채우면 통째로 휴직해서 쉴 거고.”

오늘 처음 봤는데 붙임성도 좋다. 귀걸이만 돌려주고 가려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렇게 됐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수 차례 거절했다. 다만 수백 번을 말리면 수만 번을 부탁했기에 결국 후쿠다는 그녀가 운영한다는 카페까지 왔다. 거기서 의미 없이 추위에 떠느리 빨리 들어가는 게 낫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마침 비번이기도 했고.

“오! 얼마나 남았어? 쉬면 뭐 할 거야?”

“그런 걸 알아서 뭐 하게.”

“재밌잖아~ 있지, LA가 좋대! 따듯하고──”

이것도 말해두지만 말도 저쪽이 먼저 놓았다. 이름부터 나이에 뭘 하고 있는지 본인이 먼저 조잘조잘 떠들더니 나한테도 똑같이 요구했다. 생일을 듣자마자 말을 놓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허, 하고 웃으니 나도 말을 놓으라고 한다. 굳이 그렇게 말 안 해도 놓았을 거다.

명함이나 주고 적당히 소개를 마치려 하니 이거 마사루라고 읽을 수 있지? 그럼, 마사루 군이라고 할게! 하며 멋대로 그리 부른다. 어릴 적에 스스로 그렇게 소개한 적도 있었으니 듣기 어색하진 않았지만… 늘 취조하는 입장이었지, 이렇게 질문 폭격을 맞으니 기분이 영 이상하다.

오묘한 색을 비추는 주홍 눈동자.

마치 모든 걸 꿰뚫어 보는 것 같다.

───가게로 올래?

그 말을 거절했어야 했나…….

킹교가 천천히 필터에 커피 가루를 넣었다. 끓는 물을 천천히 부어주고 종이와 커피가 젖어가는 향기가 은은한 물결을 일으켰다. 꾸밈없는 심플한 백색 커피잔을 제 앞에 가져다준다. 우쭐거리는 표정이 벌써부터 귀찮은데 맛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괜찮지? 맛있지? 이제 아무 커피 못 마실 걸~ 하는 말을 들으니 역시 성가시긴 하지만.

“마사루 군~ 이거 열 수 있어?”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해치워야 한다며 가져온 파인애플 통조림. 한참을 앓는 소리를 내며 통조림과 고군분투하더니 결국 이쪽으로 미룬다. 참나, 이런 것도 못 열어서 평소엔 어떻게 가게를 여는 거야. 사장 맞아?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한번 주고 캔 고리를 잡았다. ……안 열리네? 고리 부분이 녹슬어서 확실히, 잘 열리진 않았다.

…───파샥!

젠장. 갑자기 열려버린 바람에 과일즙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도 안 열려서 반대로 들고 따고 있었는데 정작 나는 괜찮고 저쪽이 젖어버렸다. 으아, 시큼해!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 아니 되려 재밌다는 표정으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건 그쪽 감상이고 황급히 닦아주려는데 내가 고상하게 손수건 같은 걸 갖고 다닐 리가 없었다.

“잠깐 있어봐.”

하는 수 없이 셔츠에 고정되어 있던 핀을 빼고 넥타이를 풀었다. 옷에는 이미 스며들어 갔고, 몸을 숙여 구두에 떨어진 방울이나 넥타이로 눌러 닦았다. 아하하, 괜찮대도~ 에? 마사루 군, 잠, 에에…? 바보 같은 소리가 짧게 흩어진다.

좀 과했나?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근데 그냥 저 여자한테만큼은 빚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고마워.”

예상치 못한 얼굴을 본 것도 나름 신선했다.


12월 1일.

킹교는 바에 앉아 위스키를 홀짝이고 있었다.

이번 물고기는 비린내가 너무 강해서 건져낼 때 심히 역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이곳의 술을 전부 사서 내 몸에 부어버리고 싶다. 샤워를 하고, 비누 거품을 내고, 온갖 향수와 담배 냄새로 지워덮으려 해도 더러운 냄새가 지워지질 않는다.

그건 틀림없이 내 존재가

본질적으로 물비린내 나기 때문이겠지.

몇 잔을 마셨는지 세기를 포기했다.

머리가 어지럽다.

───정했다.

지금부터 바에 가장 처음 들어오는 사람을

다음 물고기로 잡기로 했다.

타박, 타박.

계단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검은색 쓰리피스 수트에 두툼한 겨울 레인코트를 입고 있었다.


1월 1일.

후쿠다 쇼는 새벽 운동장을 뛰고 있었다.

최근 일어난 연쇄살인 미제사건으로 철야 근무였다. 지금까지의 범행을 분석하면 어제 반드시 살인을 저질렀어야 했을 터. 분석은 개뿔.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도 안 죽었으니 다행이네, 하고 박수 짝짝 칠 일이 아니었다. 해결된 게 하나도 없으니까. 갑갑한 마음에 운동장을 찾아 계속 뛰었다. 눈이 온다던 날에 비가 와서 운동장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운동장을 뛰었을까, 후쿠다는 벤치에 던져두었던 옷가지를 들고 그만 집에 갈 채비를 했다. 철창문을 발로 찼더니 힘 없이 딸까닥거린다. 새벽은 몸이 뜨겁고 호흡이 가빠져도 아직 잠든 도시의 조용함이 흐르는 때다. 정적이 거리를 감쌌고 도로를 가로질러 가며 어느새 후쿠다는 그 침묵에 묻혔다.

후쿠다는 드디어 긴 하루의 끝을 마치며 아파트 맨션으로 들어왔다. 복도엔 공허한 발걸음 소리만 울려 퍼졌다. 주머니 속에서 열쇠를 뒤지며 집 앞으로 가는데… 눈에 띄는 것이 있다.

홀로 놓인 술병 하나와 편지봉투.

그제야 나는 휴대폰을 봤다.

[23:57] 해피 버스데이 마사루 군

희미한 빛이 술병에 반사되어 자기 얼굴이 보였다. 얼빠진 표정이 참 일품이었다. 지금 담배를 물고 있었으면 입에서 떨어뜨렸을 거다. 일단 편지 봉투를 먼저 집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PASSENGER NAME: Sho Hukuda

TO: Los Angeles

FLIGHT: AA212

비행기 티켓 한 장이 있다.

비에 젖어서 알아보기도 어려운.

여권도 없는데 어딜 가냐 말이다.

하… 이게 진짜. 머리를 벅벅 문질렀다. 차가운 공기에 겨우 식었던 뇌가 다시 뜨거워진다. 봉투에 다시 티켓을 구겨 넣고 바닥에 있는 술병을 확 집어 들었다. 그 와중에 술은 더럽게 좋은 걸로 사놨다. 어디 사람이 할 짓거리가 없어서 축하든 이별이든 이딴 방식으로 해? 속에서 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심증을 굳혔다.

───정했다.

지금부터 나는 그녀를 찾아 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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