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학교 세계관

클로버의 과거 이야기

아이는 그저 사랑을 했을 뿐

단편 by 시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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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어렸다.

그래, 아이는 어렸다. 어리고 또 어려서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떨어지는 사과도 날아다니는 나비도 자신을 보면 꺄르륵 웃어주는 아이들과 미소짓는 어른들도 풀냄새도 옷에 묻은 먼지들도 모두 저를 사랑하는 줄로만 알아서. 그래서, 그래서 아이는 세상을 사랑했다. 결국엔,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단지 그것뿐이었어서.

정말 그것뿐이었다. 아이에겐 단지 그것뿐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어서. 아이는 다만 사랑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러지 말아요!”

그랬다. 단지 아이는 사랑이 중요했다.

그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고.

창살 사이로 들어온 달빛이 피부에 스며들었다. 아이는 등이 쓰라려 눕지도 기대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엎드려 숨을 쉬었다. 늘 그랬듯 열이 이마로 몰려 어지러웠다.

끼익, 끽, 쇠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이는 고개를 돌려 들어온 이를 쳐다보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메리. 어젯밤 아이를 데리고 탈출하려 한 주동자이자 아이의 등을 그렇게 만든 원인이었다. 아이는 메리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메리는 아이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마을에 들어온 도적들을 막아선 그 날부터 아이는 괴롭힘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건 괜찮았다. 아이는 정말로 괜찮았다. 아이에게 자신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뿐더러 못 견딜 정도로 다치지도 않았다. 다만 세상이 변하는 게 싫어서. 자신을 사랑하던 생명들이 일그러지는 건 정말로 끔찍한 일이라. 그러니. 그러니, 마을 사람들이 아픈 것보단 차라리 자신이 아픈 게 나으므로.

그래서, 아이는 말했다. 아픈 것은 모두 자신이 받겠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그저 그것이면 된다고.

도적들은 웃었다.

그렇다면 우리야 편하지.

아이는 그 날부터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 가끔 앞을 볼 수 없어 넘어지고 온몸에서 비릿한 피비린내가 맡아질 때면 아이는 그 때를 생각하곤 했다. 내가 잘못했던 걸까. 그러지 말아야 했던 걸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최선이었다. 아이에게는 그게 최선이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는 역시 그게 최선이었다고 믿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까.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혹은 불행하게도 용케 죽거나 미치지 않고 자라 건강한 청소년이 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성정이 잔혹한 도적들은 마을 사람들의 잘잘못을 오직 아이에게만 따졌다. 무언가 심정이 뒤틀리는 날이면 아이는 끌려나와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매를 맞아야 했다. 그러면 도적은 밤이 되면 아이를 치료하라며 그 원인이 되었던 사람들을 들여보냈다. 그게 메리가 들어온 이유였다. 자신이 뭔 짓을 저질렀는지를 인지하라고.

아이는 등을 돌려 조용히 치료를 받았다. 등에 약을 바르는 메리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이는 메리가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메리의 심장 소리가 손을 타고 아이의 가슴을 울렸다.

그러나 메리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옥 안인데도 비가 오는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로부터 다시 몇 년.

아이가 태어난지 19년이 되기 조금 전의 때.

아이는 왠만한 성인보다 더 큰 키로 자라 있었다. 잘 먹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자랄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아이는 무사히 컸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바꿀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과 아이에게는 서로가 서로의 족쇄였다. 적어도 아이는 그렇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래서, 아이는.

웃고 있는 메리를 보고.

메리는 손쉽게 아이의 족쇄를 풀었다. 얇은 철사 하나만 가지고 이리저리 비틀더니 철컥, 하고 평생을 달고 살아가야 할 것만 같았던 것이 바닥에 뒹굴었다. 어릴 적부터 하고 있어 잔뜩 억눌려 짓물렀던 피부에 약초를 짓이겨 덧바르고 단단한 나무판과 함께 붕대를 감았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가자. 사람들이 네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메리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아이가 비틀거리자 메리가 아이를 업고서 쇠문을 열었다. 끼익, 끽, 쇠문이 소음을 내며 열렸다. 그 과정까지 너무나도 쉽게 일어나 아이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불이 난 것 같았다. 그러나 메리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아이를 업고 달렸다. 바들바들 떨리는 메리의 몸이 그 때와 같았다. 들려오는 심장 소리도 그 때와 같았다. 그러나 무언가 달랐다. 메리가 웃었다. 저 멀리 달려가는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손에 도끼나 낫 같은 걸 들고 있었다. 메리를 스쳐 지나가던 여자가 클로버의 머리를 쓰다듬고서 다시 달렸다.

급격하게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비명과 고함과 무언가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와 그 외의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여러 소리들이 아이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하고 있었다. 아이는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메리는 마을 가장자리의 숲에 와서야 아이를 내려주었다. 아이는 메리를 내려다보았다. 이젠 눈높이가 바뀌었으나 메리는 여전히 아이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메리는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빼내어 아이의 목에 걸었다. 메고 있던 가방 또한 아이의 어깨에 걸었다. 그러고서 메리는 아이를 끌어안고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고개를 숙인 아이가 영문을 모르는 눈으로 메리를 쳐다보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제 이런 일은 없을 거야. 너만큼은 행복해질 거야. 사랑해.”

메리가 웃었다. 그리고 아이의 가슴팍을 밀었다.

“이제 가, 클로버. 뒤를 돌아보지 말고 뛰어!”

그 이름을 마지막으로 입에 담은 메리가 다시 마을로 달렸다. 클로버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을이 불에 휩싸이고 있었다. 아이의 사랑이,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제서야 클로버는 깨달았다. 비명과 고함과 무언가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와 그 외의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여러 소리들이 아이에게 무얼 말하려 하는지.

아이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발을 떼었다.

클로버는 달리기 시작했다.

클로버는 아팠다.

그저 아팠다. 누군가 칼을 들어 심장을 내려찍는 것처럼 아팠다. 가슴에 구멍이 나 심장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서 금방이라도 뒤를 돌아보아 떨어진 심장을 줍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됐다. 그건 불가능한 짓이었다. 아무리 어리석은 클로버라도 그래선 안 된다는 건 알았다.

심장을 잃어버렸는데도 어떻게 숨이 쉬어지긴 해서, 그래서 클로버는 숨이 망가지도록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려서, 숲이 자신을 막지 않는 만큼 뛰어서, 불의 냄새와 그을음이 다시는 클로버를 잡지 못할 만큼 도망쳐서.

클로버는 그제서야 엎어져 울음을 뱉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서 그저 끅끅대며 울고, 그러고, 그러고 나서는.

그러고 나서는, 아이는 빌었다.

제발, 그들의 아픔을 저가 가지게 해 달라고. 부디 고통을 자신이 안게 해 달라고. 그들의 심장에 고통이 남아 있게 하지 말라고. 본래 자신의 것이었던 아픔을 그들이 가져가게 두지 말라고.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열기.

살이 타들어가는 것 같고, 몸 곳곳이 찢어지고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불이 눈에 가득 들어차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클로버는 손톱으로 온몸을 긁었다. 그럼에도 말을 물리지는 못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하나하나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 느껴져서.

차라리, 차라리 한 명이라도 더. 부디 그들이 웃으며 눈을 감을 수 있도록. 살리지 못한다면 고통이라도 거둘 수 있도록.

그럼 자신은 백 번 천 번을 불에 타 죽어도 좋으니. 정말로 그건 아무래도 괜찮으니.

아이는 단지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이 고통받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아이가 그들을 사랑하는 만큼 그들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저 아이는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사랑해서.

그래서 클로버는 아팠고 또 아팠다. 그러나 그건 몸이 아픈 게 아니었다. 그건 정말로, 정말로 별 게 아니었다. 차라리 클로버는 그 고통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나하나 연결이 끊길 때마다 클로버는 가슴이, 가슴이. 이미 떨어진 심장이 몇십 번이고 몇백 번이고 찢어발겨지고 짓밟히는 것처럼 아파서.

‘클로버, 우리 마을의 행복아.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거라.’

그래서.

‘응? 왜, 배고프냐? 이거라도 먹을 테야?’

그래서,

‘어떡해, 클로버는 언니가 평생 업고 살아야겠다!’

그래서...

뒤늦게 알게 되지만 그건 클로버가 발현한 첫 ‘마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특정 감각 전이와 감각 차단.

클로버가 훗날 대마법사로 불리게 되는 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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