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XIV(夢)

기울어진 술잔 속

2828자 / ⚠️창천 이후 ⚠️시간선•멤버•설정 날조

봄은 길다 by 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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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엄청난 날조 주의… 멘퀘 서사 왜곡됨 주의… 모두가 행복함 주의…

빛의 전사는 술에도 강했다. 하지만 본인은 그 사실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았다. 엘린은 말하자면…, 술을 퍼마시기 위해 태어난 생명은 아니다. 그럴 시간에 맛있고 달달한 풍미를 더 느끼고 싶어 한달까. 입맛이 까다롭다는 건 아니다. 대륙을 모험하며 이것저것 먹어왔지만, 보통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행복을 유발하는 물질을 주입받는다고 하니.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런 의미에서 도수 센 칵테일은 그에게 적격이었다. 칵테일은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기대감을 높여주는 몇 안 되는 귀한 주류다. 빛깔 고운 것이 맛도 좋은 것이라고 하던가. 그리고 잔을 들어 한 모금씩 홀짝홀짝 마시면, 생각대로 입안에서 달달한 과일의 향을 퍼뜨리며 목을 타고 기분 좋게 넘어온다. 엘린은 주점에서 술을 마셔야 하면 가장 먼저 메뉴에 칵테일이 있나 찾아보았다. 어느 때는 값비싼 술을 시켜 고맙다는 소리를 듣고, 어느 곳에서는 영웅이 이렇게나 비싼 입맛을 갖고 있었냐며 놀라워한다. 뭐⋯, 엘린은 미식에 돈을 아끼고 싶지 않아하니 틀린 말은 아니려나. 먹을 수 있을 때 감사히 먹자는 신조가 험한 모험길 중에 따라붙은 영향이기도 했다.


…그런 엘린은 눈을 떴다. 몽롱한 자신을 감싸고 있는 감촉은 푹신하고, 포근했다. 자신이 담요를 덮고 누워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는 꼭두새벽 이르게 꿈결에서 깨어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곧바로 눈을 뜨기엔 천장을 밝히는 샹들리에가 너무나도 눈부셨다. 엘린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보았는지 커다란 손이 조심스레 눈 위로 올라와 이 인공적인 빛을 가려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세심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아 이런, 제법 많이 떠오른다. 엘린은 우선 자신과 가장 연대가 깊은 사람을 찾았다.

“⋯오르슈팡?”

“응, 나일세. 몸은 어떤가?”

어지럽지는 않고? 여러 사람의 이름으로 난잡했던 머릿속에 익숙하고 기분 좋은 중저음이 들려와 엘린은 금방 긴장을 풀고 사르르 미소 지었다. 정말이지 사람의 마음을 편히 잠재울 수 있는 음색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런 걱정을 하다니⋯. 곧 자신의 마지막 기억이 술을 마시던 것이었다고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오늘 유독 페이스 조절을 못 했던가. 입안에 남은 술맛이 아주 달았다.

엘린은 잠결에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우선 자신의 가림막이 되어주었던 손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엘린은 가만히 이마며 볼에 그 손을 부비며 자신이 타인에게 이렇게까지 기댈 수 있단 걸 새삼 깨달았다. 술에서 깨어나니 입이 그를 바랐다. 제 입술에 그를 맞이하고 싶었다. 엘린은 답지 않게 충동적으로 굴었다. 눈도 못 뜬 채로 그 팔뚝에 제 손을 휘감아 당겼는데⋯ 주변의 공기가 싸늘했다. (이 방의 난방은 더할 나위 없이 아주 좋았지만)

엘린은 조심스레 눈을 떠 시야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분명 눈앞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푸른 눈동자는 오르슈팡이 맞았다. 다만 그렇게나 기뻐하던 평소답지 않게 당혹스러워 보였다. 이렇게 몸을 당겨진 그가 순순히 다가오지 않는단 것은, 분명⋯ 지금은 마음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엘린은 본능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꺄ー”

그런 동시에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엘린이 눈을 동그랗게 떠 끔뻑이면 그 옆에서 “안 돼요 타타루. 잠복에는 침묵이 필수랍니다.” 하고 타이르는ー하지만 이 상황을 재밌게 보는 것 같은ー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타타루…? 잠, 복…? 멍한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찬물을 끼얹은 듯 싸해진 엘린은 눈만 굴려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에는⋯ 대충 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숨을 죽인 채 자신과 은빛 기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스티니앙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려 헛웃음을 흘렸다) 이들이 새벽의 맹우와 이슈가르드의 전우ー자신이, 그리고 자신과 가까운 동료들ー임을 깨달았을 때는 정말이지 엘린은 수치심에 피가 귀 끝까지 솟구치는 줄 알았다. (실제로 정신이 맑아짐과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얼굴과 귓가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 언제부터?”

다들 언제부터 계셨던 건가요? 저는 언제부터 이렇게 모두가 있는 곳에서 널브러지게 된 건가요? 어느 질문이든 하나같이 만취자의 것 같았다. 일단 상황이 파악된 엘린은 서둘러 일어나 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깨에 살포시 닿는 손끝에 순순히 저지됐다. 갑자기 일어나서 두통을 얻으면 곤란하단 뜻일까. 대충 이해한 엘린은 고분고분 오르슈팡의 팔뚝에 휘감은 손부터 떼었다. 차마 갈피를 찾지 못한 질문을 던지고, 눈만 데굴데굴 굴려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시간 자체는 얼마 지나지 않았네. 단지 자네가 피곤해하길래 오르슈팡 경이 소파에 눕혀두었을 뿐이야… 음.”

어찌나 각별하던지. 그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는데. 하는 용기사의 퉁명스러운 목소리는 작아도 엘린의 기다란 귀에 틀림없이 꽂혀 들어왔다.

“거, 걱정 마세용! 이 자리에 있는 분들만의 비밀로 해두겠습니당!”

타타루가 이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 양팔을 펼쳐 보였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갑자기 졸기 시작하길래 어디 편찮으신 줄 알았어요.”

⋯잘 어울려요. 야슈톨라가 어깨를 으쓱이며 살풋 웃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곳은 용시전쟁을 끝낸 기념으로 포르탕 가에서 새벽의 혈맹과 그 동료들에게 만찬을 대접해준 자리였다. 때문에 이곳에는 포르탕 가 장남과 차남까지도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마넬랭은 아예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다 보고 있지만) 에드몽 백작은 영웅이 취기가 돌기 시작할 때부터 자리를 비웠다지만…. 이곳에 자리한 시중들과 포르탕의 성을 받은 자제들(특히 차남 쪽)의 입이 얼마나 무겁냐에 따라 그들의 관계가 백작의 귀에 들어갈지 말지 결정될 것이다.

모두가 자신을 에워싸 애정 담긴 한마디를 건네고, 한바탕 웃는 소리에 엘린은 소용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층 더 빨개진 얼굴을 양손으로 한껏 감싸 자신을 가려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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