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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한낮의 그림자 타입)_기도

2023년 작업

연습장 by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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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여름은 작년에 비해 유독 덥고 메말라 마치 사막의 기후처럼 느껴졌다. 살갗을 스치는 따끔한 볕과 메마른 바람이 뺨을 쓸고 지나갔고, 습기는 메마른 탓에 찌는 듯한 더위가 조금도 없는 화창하다면 화창하다고 칭할 수 있는 날이 계속되었다.

홉은 이전 과수원의 영역이었던 사과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청하는 맥스웰을 바라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대외용 옷을 차려입은 단정한 옷차림에, 습도가 없어 그의 머리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런 복장인 주제에 겨우 휴식을 취한다는 게 여느 가게도 아닌, 동떨어진 곳에 홀로 드리운 그늘에 드러눕다니.

맥스웰답다면 다운 일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상황은 그에게 좋게 돌아가지 않는 시기였다. 그러니 이 휴식엔 의도가 있다. 하여 홉은 물었다.

“이런 곳에서 노닥거려도 되는 거야?”

맥스웰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잠든’ 모양새였을 뿐, 그가 실은 깨어있다는 사실을 홉은 알고 있었다.

“기사단은? 이번 훈련 이야기 들었어.”

제국엔 한동안 가뭄이 이어질 전망이다. 천문학자들은 물의 중요성을 계속 짚었으나 황실은 그렇게 귀를 기울이는 눈치가 아니었다. 결국 물을 저장하고 그 상태를 보는 건 아랫사람, 그러니까 각지의 귀족이나 관리의 영역이었다.

와중에 물의 소모가 극심하게 다뤄지는 곳이라면 어디겠는가. 농법, 어업 등의 생산적 활동이 주를 이루는 곳이라면 반감을 사더라도 후일에 돌아올 일말의 ‘보상’ 때문에 목소리는 잦아들 것이었다. 하지만 황실은 군대에 투자했다. 좋든 싫든 그건 귀한 자원, 지원이었고 맥스웰에겐 사실상 거부권이 없었다.

그는 가문과 기사단의 얼굴이었으니까.

“…아가씨.”

눈조차 뜨지 않은 채로 맥스웰이 느릿한 말을 끌었다.

“이번 여름은 힘겨울 겁니다. 물을 가져올 방도로 황실은 저희에게 투자했거든요.”

“그건 알아.”

“…그렇습니까.”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수로를 탈취한다…로 포장한 말이지만, 진가는 다르지. 분쟁을 제압하기 위함이잖아. 맥스웰, 어깨가 무겁네.”

“그게 무겁다 못해 무서워져서 문제죠.”

이윽고 그가 녹빛 눈동자를 드러냈다.

“홉, 예전에 했던 얘기. 또 듣고 싶은데. 부탁해도 될까요?”

“무슨 이야기를 청하는 거야?”

“다른 나라에 물의 신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 여신은 그 물의 축복으로 뭐든 씻어 내려준다고 했죠.”

홉은 눈을 깜빡였다. 맥스웰이 드물게 약한 모습을 내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응. 그랬지.”

“하아.”

그녀는 짧게 대답에, 맥스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단정했던 제 머릴 쓸며 말을 이었다. 대외용으로 걸친 케이프가 구겨진 채 마른 풀잎을 곳곳에 장식처럼 달고 있어 그는 삽시간에 너저분한 인상으로 바뀌었다.

“파견이 힘들구나.”

“예전엔 군인이 나름 천직이라고 느꼈는데, 요즘은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요. 갈수록 생각이 많아지는군요.”

수자원을 두고 일어날 분쟁은 작은 다툼이 아니다. 피를 보는 건 틀림 없는 일이며 이제 그 피가 얼마나 쏟아지느냐의 문제지 졸아드는 쪽으로 합의를 보기엔 힘들 것이다. 애초에 그건 대외적 목적이며 실상은 제압이니까.

“시를 읽어주기엔 조금 힘들 것 같아. 알다시피, 그 구절은 대부분 ‘죄’를 사하는 문장뿐인데 네가 그걸 원하진 않잖아.”

안 그래? 홉이 고갤 기울이자 붉은 머리칼이 노란 볕을 받아 주홍빛으로 흔들렸다. 날은 여전히 덥고 건조했다. 맥스웰에겐 이 나무 그늘을 만들어주는 말라 죽어가는 이파리 하나조차도 제법 부담으로 느껴졌으리라. 그런데도 구태여 이 장소를 선택한 건 책임감을 잊지 않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그렇네. 네가 네 평안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슨 말이 그에게 도움이 될까, 한참을 고뇌하던 홉은 결국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난 네가 괜찮아지게 도와주고 싶어.”

“…감사합니다.”

맥스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럼 타는 모양인지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홉은 슬쩍 손을 가져다 대었다. 맥스웰은 거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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