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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한낮의 그림자 타입)_완벽하지 않은 어둠

2023년 작업

연습장 by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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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레이 크로반은 언뜻 완벽해 보이는 사내였으나 사실은 틈이 많아 언제나 불안했고, 또 그래서 변하지 않는 것을 붙잡고자 하는 어두운 사내였다. 하지만 그랬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없다. 모든 건 시효가 있고, 조금씩 변해가기 마련이다.

“마야. 날 사랑해?”

이 사실은 담레이 크로반 또한 알았다. 그는 영민했고, 똑똑한 만큼이나 세상 돌아가는 꼴을 잘도 알고 이용하는 사내였으니까. 사리 분별에 밝고 또 눈치가 빠르기까지 하다. 솔직히 말해서, 세간에서 말하는 ‘잘난 사람’의 요소란 요소는 모조리 갖춘 사내였다. 뙤약볕을 피해 숨어든 나무 그늘 밑에서, 마야는 생각했다.

“크로반─…그 질문 벌써 다섯 번째인 거 알지?”

“알아.”

그런 잘난 사내여도 가지지 못한 건 있다고. 그건 바로 상대를 향한 믿음이었고, 그리하여 마음의 안정이었다. 이것 참, 신이 공평하다고 해야 할지. 마야는 속으로 짧게 한숨 쉬곤 꾹 쥐었던 스태프를 나무에 기대어놓았다.

“하지만 마야가 날 사랑해준다고 말해주는 건 좀처럼 들어본 적이 없는걸.”

“머리나 줘봐. 나 지금 임무가 많아서 스트레스야.”

“응.”

그녀가 손을 뻗자 크로반이 머릴 숙였다. 마야는 그대로 그의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대충 머리칼을 헤집는 손길에도 크로반은 눈을 감고 기쁘다는 듯 순종했다.

“마야의 손, 좋아.”

끝이 내려가 순하게도 보이는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모습을 드러낸 붉은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었고, 그래서 볕 아래 보석처럼 빛났다.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은 한낮의 실바람에 크게 저항하지 않고 허공에서 나풀거렸다. 그러니까, 누가 보아도 ‘몹시’ 아름다운 사내였다.

“어허. 임무 중에 미인계 쓰지 마. 눈 그렇게 뜨지도 말고.”

“이젠 내 외모쯤은 신경도 안 쓰는구나…이름도 안 불러주고….”

“그런 건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는데.”

“너무해….”

슬며시 그녀를 꾀려는 담레이 크로반의 계획을 알아챈 마야가 으름장을 놓자 흑, 하고 입을 막은 크로반은 퍽 처량한 목소릴 내었다. 한참 그렇게 서러운 듯 훌쩍거리고 있자 마야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분명 연기임을 다 알아차렸을 텐데도 그의 마야는 상냥했다. 크로반은 그녀가 머잖아 그가 원하는 ‘애정’을 선사할 것을 예감했다.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당분간 그는 괜찮아지리라. 허기진 속은 조금 채워질 것이고, 그리하여 사랑하는 연인이 그에게 질리지 않도록 또 노력할 수 있겠지. 담레이 크로반은 마야를 본다. 망설이며 조금 벌어진 그 입술, 드러난 하얀 이, 잇새로 흘러나오는 숨 따위가 전부 벅찰 정도로 소중하다. ─사실은 지금이라도 입을 맞추고 싶지만 그건 마야가 싫어할 테니까….

“레이.”

하지만 예상은 엇나갔다.

“응. 또 성으로…뭐?”

“여태 애칭 고민하고 있었단 말야. 레이라고 불러도 괜찮지?”

한 번도 이름으로 불린 적 없었는데, 이름을 부르다 못해 곧장 애칭을 부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 그는 허기진 속이 채워지다 못해 꽉 차 흘러넘치는, 이른바 포화의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섰다.

“마야.”

“갑작스러운 건 알아.”

“아-아니. 나는…싫다는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그는 입을 다문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잠시나마 그 자신이 안정된 느낌이 든다. 심지어 ‘그’ 마야가 이름을 불러주었다. 당연히 행복하지 않나? 실제로도 행복했다. 그러나 두려워졌다. 크로반은 눈을 깜빡였다.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

“마야….”

한숨이 새었다. 회전이 빠른 사고는 금세 답을 찾아낸다. 애정에 관해 매정하게 굴던, 동정 비슷한 감정을 제게 던지던 그녀였다. 어쩌자고 이러는 걸까, 이러다가, 만약, 정말로 끝이, 와버리면, 나는 어떻게….

“정말로, 나를 사랑하기라도 하는 거야?”

동정이 아니라, 가여워하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뻔뻔한 미소는 사라졌고, 물기 어린 눈동자는 진실로 젖어 자신 없이 내리깔렸다. 거짓말은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영원히 찾지 못할 불안만이 들끓었다. 마야가 손을 뻗었다. 볕 같은 미소에, 그는 더는 물러나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바보, 아직도 모르겠어?”

마야의 금실 같은 머리칼이 그의 뺨을 간질였다. 그녀의 가는 손가락이 그의 어깨를 감싸 안자 뜨거운 손바닥이 등을 두드리는 게 생경했다. 낯선 감각에, 담레이 크로반은 느리게 눈을 끔뻑였다. 웃어넘겨도 될 텐데. 웃을 수가 없었다.

“─모르겠어.”

거짓말이 아닌 말. 완벽했던 미소는 부스러진다. 틈은 벌어진다.

“좋아. 그러면 알 때까지 말해줄게. 아무래도 넌 바보인 모양이니까.”

빛은 그곳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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