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준형] 프러포즈

2024. 02. 20 10주년 기념

결혼(結婚): [명사]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


결혼은 무엇일까. 결혼이라는 단어를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면 상대방이 동성(同姓)이라면 적어도 사전에서 이야기하는 결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결혼을 갈망하게 된다면, 이유는 하나일 것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관계가 되고 싶다는 열망 말이다.

성준형에게는 동성의 애인이 있다. 꽤 오랜 시간 그의 곁에서 있었다. 그와 같은 잠자리를 쓰고 같은 둥지에서 생활하고 서로의 시작과 끝을 마주하는 생활을 했다. 어차피 애초에 다른 곳에서 시작한 사람들인 만큼 생활을 합치면 문제가 생기는 부분은 반드시 생긴다. 당연히 맨 처음엔 서로에게 안 맞는 부분도 있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모난 부분은 닳아 없어지듯이 사라졌다. 서서히 맞아들어가는 이 생활이 안정적인 것이 놀라웠다. 애초에 성준형이라는 인간에겐 낯선 감각이었다.

성준형은 연애 편력이 화려했다. 성별도 남자 여자 가리지 않았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이 흘낏하고 시선을 줄 정도의 외모는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보고 다가오는 것은 여자뿐만이 아니었고, 남자도 많았다. 그들은 구애하면서 다가왔다. 하지만 화려한 외모와는 별개로 기질이 예민한 준형은 타인을 오래 견딜 만한 성격은 아니었다. 서비스직을 오래 한 탓도 있을 것이다. 인내심은 쓰다 보면 닳아 없지는 것이고, 그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내심은 직장에서 사람들을 대할 때 다 소모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고 해도 연애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짧은 단발성 연애는 자주 즐겼다.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만도 못한 연애. 그것마저도 몇 번 하고 나면 질린다. 그렇게 사람을 겪는 것에 질렸던 준형은 스스로가 앞으로는 연애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유 안. 외자의 이름이라 이런 관계가 되면 이름만을 부르게 되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줄곧 그를 성과 이름을 붙여서 불렀다. 그것이 익숙해지자, 유 안은 오히려 그가 이름만 부르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했나 반추해 볼 정도가 되었다. 이름을 전체로 부르는 것은 별 이유도 없었다. 그저 그의 이름을 한입에 넣어서 혀로 굴리는 느낌이 좋았다. 그의 이름을 부르면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진다. 준형은 그게 퍽 좋았다.

유 안의 연애 경력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렇게 무던한 사람일 어째서 자신을 이렇게 좋아해 주는지 준형으로선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직장도 번듯하고 돈도 모자라지 않게 버는데 굳이 자신의 곁에서 결혼하지도 않고 긴 연애와 동거 기간을 지속해 가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는 것이다. 준형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예민한 기질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날 견디고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여기는 것은 타당한 일이기도 했다.

‘역시 얼굴 때문인가.’

타인이 들으면 아무리 외모가 잘났다고 해도 기가 찰 만한 이유였지만, 준형은 자기 얼굴을 거울로 휙휙 돌아보면서 곱씹었다. 얼굴이 아니라면 그가 자신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고 오랫동안 견디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미모는 세상일에 가장 큰 개연성이라고 믿는 준형은 자기 얼굴을 보다가 슬금슬금 화장대로 기어갔다. 화장대 거울 앞에서 팩을 붙이고 나서야 그는 다시 침대에 털썩 누워서 생각에 빠졌다. 그와의 동거가 오랜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그가 자신을 견뎌주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 얼굴임에는 분명했기에 이걸 유지하는 것은 그의 연애 생활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

한동안 자신의 장점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찾지 못한 탓에 우울한 얼굴로 식사 시간이 되어서도 눈앞에 있는 샐러드만 포크로 찌르고 있던 준형을 보며 안절부절못한 것은 유 안이었다. 준형은 스스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옆에 있던 유 안은 그의 표정 변화 정도는 이제 잘 찾아낼 수 있었다. 무슨 이유가 있는지 몰라도 그는 속상해하고 있다. 그 이유가 자신이든 자신이 아니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시무룩해 있으니, 자기 밥만 퍼먹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유 안은 준형의 앞으로 그가 좋아하는 반찬을 밀어주면서 입을 열었다.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어, 준형? 안 그래도 적게 먹는데 이렇게까지 안 먹으면 쓰러지고 말 거야.”

유 안의 기준으론 준형은 평소에 새 모이만큼 먹는다. 단 것 외에는 거의 이걸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수준으로 먹냐 싶을 정도밖에 먹지 않으며 그의 품 안에 들어올 정도의 가는 허리는 그의 소식 탓이라고 자신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안 먹고 있으니 걱정할 수밖에 전전긍긍하며 그와 눈을 마주치려고 하는 유 안의 모습에 준형은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시무룩해진 마음을 완전히 떨쳐내진 못했다.

“그냥 유 안씨가 나를 왜 좋아하나 생각해 봤는데 얼굴 외에는 적당한 이유를 스스로는 찾지를 못해서 좀 기가 죽었을 뿐이에요.”

“그야 얼굴을 좋아하긴 하지만.”

부정은 하지 않는다. 유 안도 곤란한 얼굴로 그를 쳐다본다. 그는 몇 번 헛기침하더니 준형의 앞으로 몇 개의 반찬을 밀어 넣는다. 쓱 밀어주는 그의 행동에 준형은 반찬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그것만이라곤 이야기할 수 없어. 여기서 할 이야기도 아니니까 일단 준형이 지금 식사를 든든하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권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법이다. 더불어서 지금 자신을 왜 좋아하는지 알 수 없는 애인의 부탁을 안 들어주는 건 파트너로서도 취할 태도는 아니다. 준형은 체하지 않게 꼭꼭 씹어먹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유 안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도 한참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식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밥그릇을 다 비우고 나자, 자신의 1/3 양도 안 되는 밥으로도 한창 씹고 있는 준형을 향해 시선을 다시 마주했다.

“내가 준형보고 밥을 든든하게 먹어달라고 한 이유는 딴 게 아니고.”

“응.”

“내가 준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이야기하려면 밥을 놔두고 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야. 그걸 전부 말하다간 놔둔 밥이 다 식어버리니까.”

밥그릇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간다. 허가 찔렸을 때의 준형은 알기 쉽게 얼굴이 달아오른다. 약간 얼굴이 발그레해진 상태로 밥그릇을 쥔 준형은 입을 몇 번 달싹대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먹은 밥그릇과 반찬을 다 정리하기 시작했다. 유 안이 도와주려는 것을 저지하고는 자신이 혼자 다 치우고는 등을 뒤로 한 채로 입을 열었다.

“유 안씨. 내일 일정 비는 거 확실하죠?”

“응. 내일 쉬는 날이지. 왜?”

“…그럼, 오늘 밤샐 각오 해요.”

침대에서 밤새도록 이야기 해줘야겠어요. 그의 말에 유안이 피식 웃었다. 체력만큼은 자신이 있는 그였다.


-좋아한다는 말이 질리면 사랑한다는 말은 어때. 이제 좀 신선해?

-으읏. 귓가에서 속삭이면….

-뭐, 어때. 이런 것 좋아하잖아? 아냐?

체온과 체온이 달라붙는다. 유 안은 준형이 원하는 만큼 좋아하는 이유와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져주었다. 밤샘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필리버스터 하는 셈 치고 자신의 애인에게 속삭여 주니 몇 시간이 지나서 그의 애인은 꽤 후련해 보였다. 자신에게 안긴 상태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꽤 야속했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그의 애인은 자신의 풀어진 얼굴을 보여주는 것을 퍽 부끄러워한다. 이제 꽤 오랜 시간 지났으니 무덤덤해질 때도 되었건만 그는 기나긴 연애 경력과는 별개로 항상 무언가 쑥스러워했고 부끄러워했다. 그것이 그가 그를 좋아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준형, 졸려? 그러면 자도 되는데.”

침대에 누워서 나긋하게 가라앉는 목소리를 몇 시간째 듣고 있으려면 졸린 건 당연하다. 이대로 사랑스러운 애인을 껴안고 잠드는 것도 휴일의 좋은 약이 될 것이다. 준형은 그의 말을 듣고 조금 꼼지락거리더니 말했다.

“그, 그럴 거긴 한데. 유 안씨. 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나 그렇게 좋아요?”

“…몇 시간 더 말해볼까? 아직 한참 더 말할 수 있는데.”

이걸로는 모자랐던 걸까. 유 안은 다시 그가 그를 좋아하는 234번째 이유를 입에 담아볼까, 했던 찰나 준형이 먼저 선수를 쳤다.

“그렇게 좋으면…우리 결혼 할래요?”

“…뭐?”

결혼이라는 단어에 오던 잠도 싹 달아났다. 유 안은 자신의 품 안에 있던 애인의 얼굴을 자신 쪽으로 바라보게 돌렸다.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그의 시선을 억지로 피하는 걸 보면 그의 애인이 평범하게 그 단어를 입에 담은 것은 아닌 듯했다.

“진심이야? 준형은 나랑 결혼 하고 싶어?”

“그야…유 안씨가 나랑 하고 싶으면.”

“나야! 당연히 준형이 나랑 결혼 하고 싶다면 할 거야.”

오랜 시간 사귀었다. 이 정도 기간 동거를 한다면 결혼을 한 것이랑 다를 바가 없지만 그래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은 애인인 준형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준형은 어딘가 모든 세상일에 관조적인 자세를 보이고는 해서, 자신이 부담을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유 안에게는 존재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을 전부 차지한 만큼 또다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에게 무엇 하나 불안감을 주기 싫었다.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이런 관계를 죽을 때까지 이어 나가도 유 안은 상관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그가 먼저 제의해 주는 것은 기쁘다. 그도 자신과 결속되고 싶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결혼식도 하고, 신 앞에서 맹세도 하자. 남들이 하는 건 다 하자. 준형.”

“프러포즈도 해줄 수 있어요?”

“물론이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만들어 줄게.”

이런 걸 프러포즈로 하지 말고 제대로 된 곳에서 제대로 된 약속을 하자고 중얼거리는 애인의 목소리에는 쑥스러움이 묻어있었다. 물론 이렇게 침대에서 누워서 하는 것으로 끝낼 순 없었다. 머릿속에 정해 둔 것은 있다. 그가 프러포즈에 얼마나 많은 로망을 가졌는지 유 안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새로운 프러포즈를 해왔었다. 마침내, 프러포즈 이벤트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은 결혼할 테니까-.

 

2024.02.20

유안♥준형

10주년 기념


 2023 시즌 엘지 트윈스가 무사히 우승함으로서 10주년에 유안준형 커플이 웨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월 20일은 유안준형이 사귄지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긴 시간 같이 함께 해주셨던 야마님(@YAMAAA_KK )께 감사를 드리며 커미션  받아주신 치코님(@chico_9yard_st )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남깁니다. 더불어서 10년동안 지켜보셨던 지인분들에게도 감사 말씀드립니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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