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일지

단도 닛코와 성장한 부키츠

죽은 혼마루 by 겐
1
0
0

00년 00월 00일

최근 들어 검이 손에 잘 잡히는 것 같다. 검을 휘두르는 것이 전보다 가벼워졌다고 아츠시 토시로가 말했다. 기쁨에 흥분하여 검을 휘두르다가 미끄러진 검이 말리고 있던 빨래를 직격했다. 빨래 담당인 카센 카네사다에게 '우아하게 베지 않는 검은 날뛰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라고 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빨래는 아츠시 토시로와 함께 다시 빨았다. 평소 보이던 시간에 안 보이는 나를 찾던 닛코 이치몬지가 도와주겠다고 해서 내가 벌인 사고는 스스로 수습하겠다며 말렸다. 몸을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허기가 져서 저녁을 먹고 더 달라고 했더니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성장기일려나'하면서 밥을 잔뜩 담아줬다. 그건 아닐 것이다.

00년 00월 00일

셔츠가 조금 끼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져서 옷을 새로 장만하기로 했다. 헤시키리 하세베가 '주인의 식단 조절도 못 하는 녀석들'이라고 무서운 얼굴로 중얼거리길래 혹시 키가 큰 것일지도 모르지 않냐고 했더니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야겐 토시로를 불렀다. 간단하게 신체 검사를 했는데 키가 1cm 덜 되게 컸다. 이 정도는 흔한 오차 범위라는 야겐 토시로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헤시키리 하세베는 벚꽃을 피웠다. 오늘은 팥밥을 먹어야겠다는 것을 조금 더 확실하게 크면 그러자고 했다. 닛코 이치몬지가 기둥 하나를 정해 금을 그어 내 키를 표시했다. 어찌저찌하다 보니 그걸 보고 모여든 단도 모두의 키를 표시하게 되었다. 닛코 이치몬지가 그리운 일이라고 하길래 이전에도 이러한 일을 했었냐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손으로 가늠하며 헤시키리가 이 정도였다고 하는데 지금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었다. 도검남사에게도 과거가 있고 성장이 있고 변화가 있는 걸까? 나에게도 미래가 있고 성장이 있고 변화가 있는 걸까? 간식으로 먹기로 했던 당고는 취소되었다.

00년 00월 00일

24시간 원정을 다녀온 미다레 토시로가 수고의 의미로 포옹을 요구하기에 안아주었다. 한참을 자세를 고쳐 잡길래 무슨 문제가 있냐 물었더니 미묘하게 감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같이 돌아온 사요 사몬지가 멀찍이서 조용히 보고 있길래 안겨도 괜찮다고 했지만 금방 자리를 떠났다.

00년 00월 00일

최근 먹던 양을 먹어도 허기가 져서 식사량을 늘렸다. 닛코 이치몬지 또한 식사량이 늘었다. 후식을 내오던 아즈키 나가미츠가 갑작스럽게 체중이 증가하면 건강에 나쁠 것 같다며 걱정을 하니 야마부시 쿠니히로가 '그렇다면 수행을 가면 되는 것이오!'라며 나와 닛코 이치몬지를 산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야간 산행은 위험하다는 핑계를 댔더니 그러면 내일 아침에 가면 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닛코 이치몬지도 아침 산행에는 동의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00년 00월 00일

다들 바빠 보여서 내가 별실로 다과를 전해주러 갔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데 우구이스마루가 목이 안 좋은 것 같으니 같이 차를 마시자고 권유했다. 코기츠네마루가 감기라도 걸린 게 아니냐, 여우 털이라도 두르겠냐며 자신의 머리털을 둘러주었다.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변성기냐며 웃자 히게키리가 그건 아닐 것이라며 같이 웃었다. 코가라스마루만 웃지 않았다.

00년 00월 00일

아침에 옷을 입는데 유카타 아래로 셔츠 소매가 잘 보이게 되었다. 곤란하던 참에 닛카리 아오에가 슬슬 필요할 것 같았다며 소재와 생김새가 같은 유카타를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때를 맞췄나 물어보니 '아이는 금방 크니까'라고 대답했다. 새 옷인지 바스락거리고 있으니 닛카리 아오에가 다음에는 느슨한 헌것이 좋은지 뻑뻑한 새것이 좋은지 묻기에 상관없다고 하였다.

00년 00월 00일

카슈 키요미츠에게서 최근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정도냐 물으니 조금 많이 딱딱한 사람 정도라고 하였다. 원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같이 현세로 놀러 가자고 하기에 알겠다고 했다. 옆에 있던 야마토노카미 야스사다가 말하기를 연습하자며 나키기츠네를 데려왔는데 나와 나키기츠네는 몇 마디 못 하고 같이 있던 여우가 한참을 떠들었다. 카슈 키요미츠가 이 정도면 여우를 데려가는 게 나을 것이라 했다.

00년 00월 00일

신체검사를 했다. 키가 4cm 정도 컸다. 지켜보던 헤시키리 하세베의 벚꽃이 야겐 토시로의 책상에 수북이 쌓였다. 난카이 타로 쵸우손이 흥미롭다고 하여 '인간은 성장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답했다. 잠시 내 얼굴을 쳐다보던 난카이 타로 쵸우손이 웃으며 좀 더 인간에 관해서 공부하게 도와줄 수 있겠냐 물었다. 대답하기도 전에 닛코 이치몬지가 가로막아 방을 나왔다. 그대로 기둥으로 가 키를 표시했다. 확실히 큰 것이 보여서 신기했다. 키가 컸다고 의식하니 닛코 이치몬지와 시선 차이가 줄어든 것 같았다. 저녁은 헤시키리 하세베가 염원하던 팥밥을 먹었다. 먹는 내내 벚꽃이 떨어지길래 그렇게도 팥밥을 먹게 되어 기쁘냐 물으니 헤시키리 하세베는 '주군이 성장하여 기쁩니다'라고 했다.

00년 00월 00일

검술 대련 상대가 바뀌었다. 내 실력이 늘기 전까지는 적당히 체급만 맞추기로 하여 이전까지는 단도들이었는데 이젠 협차들과 대련하게 되었다. 마지막 대련이라 아쉽다며 단체로 달려드는 단도들을 이치고히토후리가 막아주었다. 나중에도 대련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상대가 바뀐 것이 아니라 늘었나 보다. 오늘은 호리카와 쿠니히로와 하였다. 내일은 나마즈오 토시로와 호네바미 토시로를 한꺼번에 상대하기로 했다. 히젠 타다히로가 나는 아직은 자신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며 빨리 성장하라 했다.

00년 00월 00일

정기 보고 발표가 있어 시간정부 청사에 갔다. 외출복을 새로 장만하는 것을 잊어서 급하게 옷을 사느라 여유 없게 들어갔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 성장한 이래로 처음 가는 것인데 직원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친분이 있는 다른 사니와들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약간 섭섭했다. 닛코 이치몬지가 못 알아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동안 대화 능력도 늘어서 그런지 발표도 교류도 이전보다 매끄럽게 흐르는 것 같았다. 영력이 약한 사니와가 잠시 대화하는 동안에 이상한 기운을 느끼는 것은 여전했다.

00년 00월 00일

키가 조금씩 크고 있다. 일정한 주기로 기둥에 금을 새기는데 때마다 크고 있다. 인간은 원래 이렇게 빨리 크는 것이냐는 아카시 쿠니유키의 질문에 나도 모른다고 답하였다. 천천히 커도 좋을텐데라는 코가라스마루의 말에 아카시 쿠니유키도 동의하였다. 하카타 토시로는 지출이 늘어나니까 천천히 크라고 했다. 아쉽지만 그건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00년 00월 00일

닛코 이치몬지의 키가 줄었다. 셔츠가 늘어난 것인지 품이 남는다는 말에 확인해보았는데 셔츠는 멀쩡했다. 세탁 당번이었던 무츠노카미 요시유키가 우스갯소리로 살이 빠지거나 키가 줄어든 것이 아니냐고 하여 설마 하는 마음에 잰 것인데 정말 줄어들었다. 크게는 아니고 저번에 야겐 토시로가 말했던 오차 범위에 비슷했다. 먹는 양은 늘었는데 살이 빠졌다면 무리하는 것인가 싶어 당장 근시부터 바꾸자고 했는데 닛코 이치몬지는 거절했다. 함께 복도를 걸으며 도검남사도 키가 줄어드는 경우가 있느냐 물었더니 말없이 창밖을 보았다. 헤시키리 하세베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00년 00월 00일

친분이 있는 사니와로부터 선물이 왔다. 꽃다발과 포도주였다. 동봉된 편지에는 못 본 사이에 금방 컸다며 곧 성인이 되면 마시라고 하였다. 지금도 꾸준히 키가 크고 있다. 요즘은 점점 머리를 쓰다듬기 힘들어 섭섭해하는 사니와들에게 머리를 숙여주고 있다. 혼마루에 방문해있던 다른 사니와들이 곧 있으면 중년이 되는 게 아니냐고 하였다. 청년일 적에 같이 마시자고 하였다. 지나가던 지로타치와 후도 유키미츠가 자신들의 몫이 사라지겠다며 슬픈 소리를 내었다. 이건 나의 성장 축하주다.

00년 00월 00일

오른 손목이 부러졌다. 출진에 따라갔다가 미처 피하지 못한 공격을 서둘러 막다가 손목에 충격이 갔다. 출진 중에는 몰랐었는데 혼마루에 돌아와 검진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 야겐 토시로부터 이젠 아이가 아니라 회복이 더디고 해도 전처럼은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왼손으로도 글을 쓰고 검을 잡을 수 있으니 상관없다. 다른 부대에 속해 원정을 떠났던 헤시키리 하세베가 나와 출진했던 검들에게 크게 화를 냈다. 닛코 이치몬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내가 원했던 출진이고 깊은 상처가 아니니 괜찮다고 말렸다.

00년 00월 00일

닛코 이치몬지가 고이 접힌 손수건을 내밀었다. 무엇이냐 물었더니 자신의 왼손 새끼 손가락이라고 했다. 멍하게 듣고 있으니 손수건을 펼치려고 하길래 말렸다. '장갑을 끼고 있어서 안 보여서 다행이네'. 닛코 이치몬지는 뜻 모르게 눈을 감았다.

00년 00월 00일

오후에 도다누키 마사쿠니와 대련을 하였다. 오전에 오오쿠리카라와 대련했을 때는 어느 정도 배려해주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번엔 가차 없이 공격해와서 방어만 해도 힘이 빠졌다. 다 같이 대련장에 누워있으니 지나가던 사사누키가 바다 아래서 햇빛을 받는 것은 자기인데 왜 우리가 더 탔냐며 농담했다. 치가네마루가 언제 바다에 놀러 갔다 온 것이냐며 추궁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살벌해지는 것을 코우세츠 사몬지가 말렸다.

00년 00월 00일

현세에서 사 왔다며 타이코가네 사다무네가 피어싱을 사다 주었다. 약간 선명한 분홍색 보석 같은 것이 박혀있는 것이었다. 닛코 이치몬지가 뚫어주겠다고 하며 한참을 내 귀를 만지작거렸다. 왜 그러냐 물으니 잘못 뚫으면 주인에게 상처를 내는 것 같아 고민 된다 하길래 너는 괜찮다고 하였다. 다행히 예쁘게 구멍이 났다.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가 다음엔 자신이 유행하는 것을 사오겠다고 했다.

00년 00월 00일

성장은 키만 크는 것이 아니라 몸이 전체적으로 크는 것. 체모도 성장하고 있었다. 꽤 길어진 머리는 자르기 아깝다며 시시오가 묶어주었다. 정말 영감이 될 때 즈음엔 이렇게 묶어도 허리까지 내려올 것 같다고 했다. 그전에 자르지 않을까 싶었다. 턱 밑에도 털이 자랐다. 톤보키리에게 정돈을 부탁하였더니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히게키리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냐 물었다. 답을 고르던 중에 오테기네가 익숙한 손길로 정리해주었다.

00년 00월 00일

닛카리 아오에가 두 번 정도 더 유카타를 가져왔다. 외출복의 폭도 크게 늘었다. 시간정부 청사에 가면 사람들이 덜 피한다. 여전히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독한 사춘기'가 지났냐며 말을 거는 사람도 생겼다.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니와들이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호쵸 토시로가 기뻐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하니 닛코 이치몬지가 정색하며 '그럴 일은 없다'라고 했다. 요즘은 나보다 닛코 이치몬지가 더 딱딱한 느낌이다.

00년 00월 00일

친분이 있는 주술사가 이건 무슨 주술이냐 묻기에 주술이 아니라 성장한 것이라 답했다. 그동안 바빠 오랜만에 혼마루에 방문하면서 나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인데, 모습이 변한 것에 놀라지 않고 성장한 것에 놀랐다고 했다. 똑같은 말 아닌가 싶다. 주술 개발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과정을 기록해둔 것은 없냐 묻길래 이 일지를 보여주었다. 일지를 가지러 가는데 이시키리마루와 마주쳤다. 언젠가부터 이시키리마루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을 걸려니 꾸벅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00년 00월 00일

이제는 가검을 차고 다니면 나를 도검남사로 보는 사람들도 생겼다. 근시인 야만바기리 쵸우기가 '가짜도 도검남사는 될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혼마루에 돌아와 닛코 이치몬지에게 말하니 말없이 선물 받았던 포도주를 꺼내 왔다. 두 잔 정도는 미리 마셔도 된다며 한 잔씩 나눠마셨다. 씁쓸한 맛이었다.

00년 00월 00일

닛코 이치몬지가 나를 베었다.

00년 00월 00일

등이 욱신거린다. 치명상은 아니다. 닛코 이치몬지가 나를 베었다. 밤중에 대련장으로 부르기에 갔더니 베었다. 옷은 찢기고 등판에도 금이 갔다. 등에 새겨진 잉어가 반으로 갈렸다. 나는 소리도 낼 수 없었다. 피가 묻은 본체를 들고 닛코 이치몬지는 '책임을 지겠다'며 대련장을 나갔다. 대련장과 침소는 거리가 꽤 있었고 기어서 가기엔 역부족이었다. 피 냄새를 맡은 고코타이의 호랑이들이 나를 발견하여 금방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야겐 토시로는 목숨을 노렸다면 더 깊게 벨 수 있었을 것이라 했다. 헤시키리 하세베는 양호실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00년 00월 00일

며칠을 내 방에 누워서 지냈다. 남사들이 종종 내 상태를 돌보러 왔다. 문 너머로도 닛코 이치몬지와 헤시키리 하세베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히 혼마루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00년 00월 00일

헤시키리 하세베가 자그마한 단도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닛코 이치몬지입니다. 바로 옆에 놓인 가검의 반절도 되지 않는 검을 내려놓으면서 헤시키리 하세베가 그랬다. 바닥에 놓인 단도를 손에 들었다. 단도의 날이 엉망이었다. 현현시키는 방법은 잊지 않았다. 다만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아 마음이 흔들렸다. 한참을 단검을 쥐고 외웠다. 결국 벚꽃이 일렁이며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 보이는 얼굴은 처음 보는 소년의 것이었지만 이름을 알 수 있었다. 닛코 이치몬지.

00년 00월 00일

이것이 '책임'이랬다. 저 스스로 제 칼날을 갈았다고 했다. 부적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까딱하면 그대로 파괴될 수도 있었다. 그것 또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작은 닛코 이치몬지가 말했다. 말은 어색하리 딱딱했다.

00년 00월 00일

가검이 걸린 거치대 아래에 단도가 놓였다. 태도를 거는 거치대라 단도에는 맞지 않는다. 새로 거치대를 구비해야 할 것이다. 다다미 소리도 내지 않고 야만바기리 쿠니히로가 물었다, 닛코 이치몬지가 된 기분이 어떻냐고.

아니다.

나는 닛코 이치몬지가 아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Non-CP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