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왕국의 이야기

Star Gazer

별을 사랑한 적이 있는가?

그를 처음 눈에 담은 순간, 나는 알았다. 세상에는, 날 때부터 찬란한 이가 있다. 영원히 빛날 별로 태어난 이가 존재한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신 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가 나를 보고, 내가 그를 본 순간,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웃어보인 그 순간에, 나는 내가 그를 지독하고 지독하게 사랑하게 될 것임을 알고 말았다.

나의 언니가 태어나던 날,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별무리가 떨어져 내렸다고 한다. 그 찬란하던 밤이 지나 첫새벽이 밝아올 때, 나의 언니는 세상에 났다. 위대한 왕이던 나의 어머니는, 밤을 새운 산고 끝에 그를 낳았고, 여전히 피 흘리면서도 그를 안아 왕국에 내보였다. 왕국의 모든 이들은 별과 함께 태어난 나의 언니를 칭송하고, 그를 땅에 발 딛은 별이라 불렀다. 그 호칭은 나의 언니가 자라면서 더더욱 견고해져갔다. 그는, 정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별과 같은 이였으니까.

그의 나이 고작 일곱에, 그는 왕국 제일의 기사에게 찾아갔다. 그는 나이 스물에 내로라하는 기사들을 죄 꺾고 왕국의 제일가는 기사가 된 이였다. 그러나, 그는 쉰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누구도 가르치지 않았고, 그 누구도 가르치지 않을거라 선언했던 이였다. 하지만, 인간이 별의 반짝임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기사는 위대했으나, 그럼에도 한낱 인간이었고, 그리하여 그 빛을 외면하지 못했다. 그는 나의 언니를 제자로 들였다. 그의 평생에 걸쳐 유일할 제자였다.

그가 열살이 되던 해,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왕궁 중앙의 화로에 발을 디뎠다. 왕이 될 이만이 오롯이 설 수 있다는 그 불꽃 속에서, 그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화염은 그를 불사를듯 커졌다가, 그의 몸을 휘감고, 그리고, 고요히 잦아들었다. 그 불꽃은 제 주인을 찾았다는듯 그를 섬겼다. 그 해, 그는 왕국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 누구도 이견을 내지 못했다.

나는, 그저 우연히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나고 만 이였다. 그 어떤 자질도, 빛도 없었다. 그저 운 좋게, 혹은 불운하게도 왕실에 태어나고만 쭉정이. 그것이 나였다. 나를 잉태할 때, 나의 어머니는 취해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이름조차 없는 그저 궁인이었다. 나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름 남기지 못한,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이.

다행히도, 혹은 불행히도, 나는 왕궁에서 태어나 자랄 수 있었으나, 그게 다였다. 나는 나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 그저 살아있는 무언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그 무엇도 해내지 못하는 쭉정이. 그리하여 누구도 알지 못한 무언가. 누구도 나에 대해 알지 못했고, 어떤 이들을 나를 시녀로 착각했다. 그것이 서럽지도 않았다. 제각기 재능을 인정받아, 혹은 고귀한 이들 아래에서 자라나 이곳에 들었을 시녀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랬기에,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그걸 너무도 잘 알았기에, 내게 손 내미는 이가 그리도 찬란해 보였으리라.

“저런, 길을 잃었니?”

그 다정하던 말씨와, 내게 뻗어진 크고, 굳은살이 곳곳에 박힌 손과, 다정히 날 바라보던 금빛 눈동자. 웃을 때 휘어지던 눈꼬리와, 올라가던 입꼬리, 깊게 파이던 볼우물, 내 뺨을 쓸어주던, 단단하고도 다정한 온기.

누가 별빛에 눈 멀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날부로, 나는 그의 동생이 되었다. 나는 어리다는 이유로 언니와 한 침상에서 함께 잠들 것을 허락받았고, 함께 배웠고, 한 사람의 ‘왕녀’가 되는 것 또한 허락받았다. 내게 눈길 하나 주지 않던 어머니는 언니와 함께일 때는 잠시나마 내게 시선을 두었다. 정진하거라, 하는 냉정한 목소리도 함께였다. 언니는 어머니께서 엄하셔 그렇다며, 다정히 나를 끌어안으며 위로해주곤 했다. 나는 그런 언니의 품에 안겨 생각했다. 이것은 혈육의 정인가, 혹은 그동안 갖지 못한 애정과 인정에 대한 욕망인가, 그도 아니면, 감히 가져서는 안되는 어떠한 애정인가. 나는 답을 내지 않고 그저 그 품에 파고들었다. 점차 고르게 변하는, 잠든 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채 고민했다. 이것은 무엇인가?

언니는 검을 다루었다. 마법은 도저히 못하겠다며 웃곤 했다. 그러나 검을 쥐면, 그 누구도 언니를 대적할 수 없었다.

나는 검을 내려놓았다. 대신 왕궁 도서관의 모든 마법서를 읽고 또 읽었다. 나는 황금을 녹이고 성을 무너뜨릴 불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언니는 늘상 웃었다. 양 볼에 깊은 보조개를 남기며, 이가 다 드러나도록 시원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도통 웃지를 않았다. 보조개 따위는 없는, 그렇게 시원하게 웃을 수도 없는 이의 미소는 가치가 없다. 그리 믿었다.

언니는 귀족들과 왕족들 사이에 끼어있는 것을 즐긴 적이 없었다. 위선과 가식은 늘 불편하다 말했다.

나는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한 이들 사이에서 차라리 편안했다. 그곳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거짓말을 하니까.

그는 늘상 몰래 거리에 나가 길거리의 음유시인들의 류트에 맞춰 발을 구르곤 했다.

나는 홀로 거리에 나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언니는, 왕국을 지독하게 사랑했다.

나는, 왕국을, 단 한 순간도…….

언니가 열다섯이 되던 해, 그는 대륙의 모든 이들을 수용하는 아카데미로 떠났다. 그리고, 학기가 끝나 돌아올 때마다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가끔은 왕국에 돌아오는 것을 미루고 타국으로 여행을 가곤 했다. 나는 그들의 소문을,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찬란했다. 마치 별과 같은 이들이었다. 어떤 이는 차디찬 설산의 군주였고, 어떤 이는 새파란 바다의 주인이었으며, 어떤 이는 하늘을 찌르는 마탑의 우두머리였다. 어떤 이는 온 대륙의 산천을 제것마냥 누비고 다녔고, 어떤 이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음률을 자아냈다. 어떤 이는 신의 사랑을 받아, 수없이 많은 이들을 치료하고 살려냈다. 누구 하나 평범하지 않았고, 누구 하나 아름답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들은 빌어먹게도 아름답고, 빛났으며, 나의 언니는, 정말 빌어먹게도, 그들을 사랑했으며……. 그들은 지독하게도 잘 어울렸다.

그들의 존재가 내게 외치는듯했다. 너는 자격이 없다고. 그의 옆자리에 설 자격 따위는 없다고. 비천하게 태어나 적선으로 구원받은, 그 주제에 저를 구한 제 자매를 사랑하는 이는, 결코 그의 옆에 설 수 없다고.

그리하여, 왕위에 오른 것은 나였다.

나는 귀족들의 불안함과 열등감을 자극했다. 완벽한 정통성과 자질을 가진 이. 왕국을 지독히 사랑하고, 거리의 아이들마저 칭송하는 이. 모든 이에게 관대하나, 귀족에게는, 힘있는 자에게는 엄격한 이. 그러나 도저히 깎아내릴 수 없는 이를 선망하고, 열망하면서도, 어떻게든 추락시키려 하는 이들을 이용했다.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닮았으니까. 그들과 나는 칼자루에 손을 올린 채 악수를 나누었다. 우리는 서로가 가진 것을 잘 알았고, 그렇기에 서로를 이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하여 추악한 것들은 손을 맞잡아 아름다운 것을 끌어내렸다. 그 과정에서 신비로운 검증이나, 고귀한 이의 인정 같은 것은 필요가 없었다. 그런 것은 제것을 가지는 이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다. 권력과 힘. 그렇게 나는 왕관을 손에 넣었다. 동시에, 나의 언니 또한 내 손 안에 쥐여졌다.

언니는 화내지 않았다. 그것이 너의 선택이니? 하는 질문만을 하나 남겼다. 나는 답하지 못했다. 그저 그를 저 탑 위로 모셔라, 그저 그리 말했다. 제것이었던 궁에서 쫓겨나 한갓진 탑 위에 갇히면서도, 그는 분노 한자락, 울음 한자락 보이지 않았다. 배신감조차도 비추지 않았다. 그저, 여느 때와 같은 미소, 괜찮다는 말 한 마디. 그저 예전과 같은, 적선과도 같은 태도.

그 모든 것이,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는지.

그러나 나에게는 희망 같은 것이 있었다. 결국 나는 그를 내 손아귀 안에 쥐었다. 그는 영영 저 안에 갇혀 살아갈 것이다. 그의 옆에는, 아니, 적어도 그의 곁에는 나만이 있을 것이다. 그는 영영 이곳에 있을테니까. 이곳에, 내가 손에 쥔 이 왕국 안에. 그래, 나는 그리 스스로를 위로하며 내가 한 일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마침내 내가 탑의 문을 열었을 때, 언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왕국의 모든 곳에,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이들을 보냈다. 모든 거리를, 모든 숲을, 모든 바다를, 사막을, 집을, 전부 뒤졌다. 거리에서 죽은 이들이 도착하는 안치소마저 뒤졌다. 그러나 그는 없었다.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흔적 하나 없이, 그는 사라진 후였다.

나는 그제야 깨닫는 것이었다. 그는 잡힌 적이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은 그의 용인 하에 일어났으며, 나는, 별을 내 손 안에 넣었다 착각했으나, 태양을 향해 손을 뻗어 잡았다 장난치는 어린 것들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나는 텅빈 왕좌 앞, 왕의 홀에 놓인 화로를 바라본다. 그 언젠가, 언니는 저 화로 위에 맨발로 올라서, 저 불길을 굴복시켜 제 종복으로 삼았더랬다. 시녀들의 조잘거림을 들으며, 그 광경을 내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던가.

내가 만일 저 위에 맨발로 올라선다면, 저것은 나를 송두리째 집어삼켜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태워 먹어치울 것이다. 먼 옛날, 감히 왕비를 노린 주술사를 불살랐듯이, 나를 불태워 없앨 것이다. 그리되면, 아마 언니는 돌아오겠지. 왕이 사라져 혼란에 빠진 왕국을 가만두지 못할테니까. 언니는 이 왕국을 언제나 사랑했으니까.

그래, 언니는, 이 왕국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래서, 나는 차마 이 나라를 내버리지 못했다. 저 화로 위에 올라서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나의 집무실로 향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언니가 자랑스러워할만한 이가 되면. 이 나라를, 이 왕국을, 나를 사랑한 적 없었던, 단연코 단 한 순간도 사랑한 적 없는 이 왕국을 아름답게 가꾸면. 그래서, 이 왕국이 그가 보기에 만족할만한 곳이 되면, 참 어여쁘다 말할 수 있는 곳이 되면, 그러면, 언젠가는 돌아올까? 언젠가, 하늘에서 사라진 별이 이듬해 다시금 같은 자리에서 반짝이듯이, 그렇게 돌아와줄까? 돌아와서, 나를 끌어안아줄까? 예전처럼 칭찬해줄까? 참 고생했구나, 잘했구나, 하고, 그렇게 말해줄까? 내 손 안에 쥐여줄까?

참으로 멍청하고 미련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별을 쥐고자 하면, 그 손이 다 타버릴 것이 뻔한데.

그러나, 내게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은 그것뿐이므로.

그리하여, 나는 묻는다.

별을 사랑한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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