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송백] 용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

청명이가 뭐 사주면 이송백은 막내동생이 용돈 모아서 선물주는것처럼 보일거 아냐


-날조, 적폐, 퇴고 안 함

-캐해석 마음대로 함

-종남봉문러버 (원작 1100화까지 봄)

"청명아. 한참 찾았다."

잠깐 내려와 보거라. 처마 아래로 하얀 손이 청명을 불렀다. 간만에 방해하는 이 없이 햇빛을 쬐며 명상하고 있는데. 하여튼 이 놈의 화산은 제가 없으면 하루라도 제대로 굴러가는 법이 없다. 속으로 투덜거린 청명이 도복을 툭툭 털고 아래로 폴짝 뛰어내렸다.

"백상 사숙이 나한테 무슨 볼일인데?"

"줄게 있어서 왔다. 자, 이거 받아라."

반사적으로 내민 청명의 손바닥 위에 주머니 하나가 올라온다. 제법 두둑하고, 흔들어보니 주머니 안에서 잘그랑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전낭이지? 이거. 그런데 이걸 왜 백상 사숙이? 묵직한 전낭에 기뻐하기는 커녕 의심쩍다는 표정이나 하며 저를 올려다보는 사질의 불손한 표정에 백상이 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장부가 비길래 찾아보니, 너만 녹을 받아 가지 않았더구나. 다른 놈들은 기한이 되기도 전에 미리 달라며 아우성이라 받아 가지 않은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다."

청명이 제 손에 쥐어진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무게나 안에 들어있는 은전의 개수로 보아하니 일개 삼대 제자에게 지급될 금액이 아닌데, 아마 장부를 정리하며 그간 받아 가지 않은 몇 개월 치의 녹봉을 전부 계산한 모양이었다. 어째 녹이라기보다 후손들에게 용돈을 타는 기분이라 청명이 어색하게 백상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나 돈 많은 거 알잖아 사숙. 나는 빼도 되는데..."

"그래도 너만 녹을 주지 않는다면 문파가 어찌 되겠느냐. 어차피 네게 지급되었어야 하는 돈이니 개의치마라."

이제 장부가 맞아. 이제 잘 수 있어... 퀭한 눈으로 사특한 웃음을 짓는 백상을 보는 청명의 시선이 짠해졌다. 어쩐지 큰돈을 답싹 주더라니. 더 거절했다가는 장부 어지르지 말고 썩 들고 가라는 호통이나 들을 것 같아 청명은 슬그머니 행복해 보이는 백상에게서 도망쳤다.

아닌 말이 아니라, 청명은 정말로 녹봉이 필요가 없었다. 아니, 필요하지 돈. 좋지, 돈. 그런데 이런, 삼대 제자에게나 주는 코 묻은 용돈은 필요 없다는 말이다.

자고로 돈을 부르는 건 돈인 법인데. 화산이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요런 잔돈이 더 추가된다고 눈에 띄게 이득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며 모아둔 돈도 제법 되니 재경각에 녹을 타 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장문 사형이 조금씩 더 얹어주는 돈도 모자랐는데. 지금은 안으로는 병아리들을 키우고 밖으로는 호시탐탐 화산을 노리는 살쾡이들 틈바구니에서 밥그릇을 챙기려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전처럼 팔자 좋게 주향이나 음미할 시간이라고는 없다는 얘기였다.

개방도들보다 더 거지 같고 빈곤하던 문파에 졸도할 뻔한 적이 몇 번인가. 돈을 받아 쓰기만 하다가 돈을 버는 입장이 되니 전생의 청문이 왜 그리 은자 하나에도 아쉬워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물론 그때야 앉아서 거드름만 피워도 아쉬운 놈들이 돈을 싸 들고 방문하기도 했으나, 직접 벌어 보니 한 푼, 두 푼이 주머니에서 나가는 게 그리 아까웠다. 이제 제법 먹고살 만하니 용돈도 주고 하는 건 좋지만 청명은 정말 필요가 없다. 애초에 사문에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모든 돈이 얼만데. 도리어 청명이 사형제들에 용돈을 줬으면 줬지, 받을 정도는 아닌데.

도사에게 돈을 쓸 일이 뭐가 있다고. 기껏해야 검에 치장하는 술이나, 세공된 손잡이 따위가 전부인데. 당가에서 제공받는 매화검은 손잡이부터 검날까지 대장장이들이 두드리고 장인들이 섬세하게 조각하니 별 다른 장식을 달지 않아도 모양새가 훌륭했다. 괜히 치장을 했다가 절묘한 균형을 해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이상하다. 왜 돈이 생겼는데 쓸 곳이 떠오르지 않지? 분명 백 년 전에는 더 많은 녹을 받고도 모자라 산채를 털러 다니는 게 재미였는데 말이다. 검에 관심 없고 치장에 신경 쓰지 않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데 어째서? 이쯤 되니 옆구리에 찬 전낭이 두둑한 게 오히려 신경이 쓰였다.

아니, 가만. 내가 샀다고 꼭 내가 써야 하는 법은 없잖아.

이상한 소문이 하나 퍼졌다. 그 화산 검협에게 정인이 생겼다는 소문이다. 누구는 괴소문이라 하고 누구는 참이라 하는데 으레 떠도는 소문이 그렇듯 말을 맞춰보면 엉뚱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장이 서는 날 화산 검협은 정인에게 줄 향낭을 샀다. 좁은 좌판 앞에서 어찌나 고민을 하고 이 것을 살까 저 것을 살까 살뜰히 살피며 들었다가 내려놨다가 하는지. 손님을 봉처럼 모시는 곽모도 청명의 행실에 질려 어디 정인에게 선물하실 거요? 물었더랬다. 반은 장난으로 반은 까탈스러운 청명의 물음에 질려 뱉은 질문에 화산 검협은 헌앙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소중한 이에게 줄 것이니 좋은 것을 골라야 한다 고 했다. 그 다음 날 화산 검협은 여인에게나 선물해줄 법한 연지를 샀다. 어느 날은 무인이 찰 만한 푸른 수술을 샀다. 또 어느 날은 꽃과 나비가 섬세하게 세공된 백금 비녀를 사더니 어느 날은 무늬 없는 붉은 머리 끈을 샀다. 어린 아이나 관심을 보일 동물 조각도, 청년이 읽음 직한 서책도, 노인이 좋아할 앙금 없는 흰 떡도 샀다. 상인들은 저마다 화산 검협이 내 물건을 사가며 정인에게 선물할 것이라 했노라 떠들었다.

다리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말이 있다. 이상한 소문은 그보다 더 발이 빠르다. 빠르기를 따지자면 청명의 이야기는 적토마와 다름이 없다. 소문은 화음에서 서안으로 빠르게 넘어갔고 높디높은 종남의 담벼락은 넘는 건 더 빨랐다.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한 채 검을 휘두르고 있으면 도리어 외부의 소식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게 사람의 습성이었다. 어린 삼대 제자들이 수근거리고 이대 제자들이 수근거렸다. 가장 둔하기로 유명한 이송백의 귀에도 곧 화산 검협의 정인 이야기가 들어갔다. 그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에게 정인이라니 태상노군이 놀랄 일 아닙니까.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휘휘 젓는 유백에게 하하, 실없이 웃으며 이송백은 검을 휘둘렀다. 곧 삐끗했다.

조심했는데. 언제 들켰지.

이송백이 선물 같지 않은 선물을 받아본 일은 달포 쯤 전부터였다. 한창 단 잠에 빠져있는데 무언가 박박 긁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군가 마당을 쓰나, 혹은 먹을 가는 걸까 생각하며 도로 잠을 청하려는데 킥 키익 하고 소리죽여 우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어딘지 귀에 익숙하구나 생각이 들고 나니 침상에서 벌떡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문을 여니 하얀 족제비 한 마리가 포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왜 이제야 문을 여냐며 항의를 하듯 송백의 맨 발에 팍팍 발길질을 해댄다. 사과의 의미로 물 잔을 내려주니 주둥이를 박고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목을 축이고 나니 배도 고팠는지 후다닥 다탁 다리를 타고 올라가 남아있던 떡 하나도 뚝딱 해치웠다. 의심할 여지 없는 청명의 족제비였다. 화산의 도복을 작게 줄여놓은 것 같은 옷을 입고 사람처럼 봇짐을 맨 모습이 퍽 귀여웠다. 이 시간에 종남까지는 무슨 일로 왔느냐. 다정스레 묻는 송백의 물음에 양 볼이 빵빵하게 떡을 집어먹던 족제비는 제 등을 보였다. 봇짐 사이에 작은 종잇조각이 접혀 끼워져 있었다.

[백아 편으로 선물 하나 보낸다. 장날이라 갔는데 너한테 어울릴거 같아서 샀어. 필요없으면 버리든지.]

보내는 이의 이름 하나 적히지 않은 삐뚤빼뚤한 서신이건만 보내는 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직접 오기는 보는 눈이 있으니 이 귀여운 표국을 이용하시겠다는 거구나. 청명처럼 배를 쭉 내밀고 키잇 우는 족제비를 보던 송백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후로 흰 족제비는 종종 송백을 방문했다. 열흘에 한 번 올 때도 있었고 달포에 한 번 올 때도 있었다. 등에 멘 보따리는 어떤 때는 아주 작았고 어떤 때는 어떻게 매고 왔나 싶을 만큼 크고 무거웠다. 들어있는 선물도 늘 가지각색이었다. 어느 날은 시전에서 가장 유행한다는 서책이 있었고, 한 눈에 보기에도 화려하고 값 비싸 보이는 비녀가 있었는가 하면 혼례 때나 쓸 법한 단 내를 풍기는 붉은 입술연지가, 검에 매다는 매화 모양 푸른 술이 들어있을 때도 있었다. 네가 생각나서 보낸다. 서신의 내용은 늘 비슷했다. 봉문한 사문의 안에서는 마땅히 보답을 할 물건도 없고, 백아의 등에 당과라도 매여 보내려니 펄쩍펄쩍 뛰며 반항하기에 송백은 그저 서랍 가장 안쪽에 청명이 보내온 선물과 서신을 고이 접어 넣어두었다.

화음에서부터 서안까지. 짧지 않은 거리를 달음박질하며 힘들어 죽겠다고 헥헥 거리는 작은 영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간식을 먹이는 건 송백의 몫이었다. 야밤에 잘 자는 족제비를 깨워 종남까지 다녀오라고 시키는 청명에 비하면야, 이송백은 비밀 연애에 밤늦게까지 고생하는 백아의 투정을 아주 잘 받아주는 편이었다. 첫날에는 그리 경계를 하고 송백의 손이 닿을 때마다 쉭쉭 거리던 백아는 몇 번의 방문 후에는 송백의 허벅지에 뒹굴거리며 배도 긁으라고 사지를 쫘아 벌렸다. 송백은 익숙하게 한 손으로는 백아를 긁어주며 다른 손으로 보따리를 풀었다. 척 보기에도 귀품으로 보이는 세필 붓과 푸른 빛이 도는 종이가 잘 감싸져 있었다.

[수련 잘 하고 있냐. 너는 어째 답장 한 번을 안보내주냐. 이러다가 얼굴도 까먹고 글씨도 다 까먹겠다.]

아무래도 이번 선물은 송백에게 보내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송백에게 받고 싶은 것이었나 보다. 글씨에서부터 퉁명스러운 청명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기분 좋게 배를 긁어주던 송백의 손이 멈추자 재촉하며 손 끝을 아프지 않게 무는 백아의 입에 말린 고기 조각이 물렸다.

"잠시 기다리거라. 오늘은 나도 보낼 것이 있으니."

해 줄 수 있지? 눈치 빠른 영물은 송백의 무릎에서 내려와 침상에 똬리를 틀고 고기 조각을 씹었다. 송백은 받은 종이를 펴고 차근히 먹을 갈았다. 토라진 어린 정인을 달래줄 말을 마음속으로 정리해본다.

평안하십니까 도장. 종남은 이제 슬슬 나무에 새싹이 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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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떻게 지내는지 답장하라고 했더니 종남이 어떤지 적어보내는 눈치 없는 정인 때문에 화산 검협 종남에 처들어감. 청명송백 비밀 연애 다 들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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