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크레갈로
화요일 아침이었다. 혹자는 그날에 애정을 담아 발렌타인 데이라고 부를 것이다. FDPP 내에서도 연인과의 특별한 저녁을 기대하며 조퇴를 신청한 이들도 있었다. 그건 갈로 티모스의 업무가 한층 더 바빠지리라는 것을 의미했다. 들뜬 건 제짝이 있는 동료만이 아니었다. 작년엔 루치아가 거대한 자허토르테를 본부에 반입해 왔다. 스위스산 다크 초콜릿이 1kg나 들어갔다고 하는 디저트라는 이름의 혈관 폭격기를 제거하기 위해 그날은 바리스까지 애를 먹어야 했다. 오늘은 뭘 가지고 오려나.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바지를 발에 꿰고 있던 갈로 티모스에게 뜻밖의 호출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그의 하나뿐인 동거인이었다.
“출근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테니 용건만 간단히 하지.”
“무슨 일이야?”
프로메폴리스 사정관 출신이자 전 포사이트 재단 이사장. 누가 들어도 감탄이 나오는 화려한 이력 끝에 지구 폭파 미수라는 스케일 큰 범죄 행각으로 인해 이제 속세로 내려와 그저 크레이 포사이트에 불과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한점 흐트러짐 없는 부드러운 낯이었다.
“이거 받아라.”
갈로는 얼떨결에 크레이가 밀어주는 상자를 받으며 눈썹을 좁혔다. 크레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특징적인 금발을 꼼꼼하게 쓸어 정돈하고 있었다. 목 아래로 단단히 채운 셔츠에 감색의 재킷을 걸치고 있었는데 평일 이 시간대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프로메어가 사라진 후 아침에 조금 약해졌는지 보통 잠옷으로 걸쳤던 긴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느릿하게 걸어와 에스프레소를 들이키곤 했으니까. 이른바 수상하다는 것이다.
“이게 뭔데?”
갈로는 퉁명스러운 태도로 위험 물질이라도 만지는 것처럼 상자를 쿡 찔렀다. 내용물이 가벼운지 상자는 맥없이 밀려났다. 은은한 펄감이 있는 하얀 포장지에 가느다란 금빛 공단 리본으로 한 바퀴 두른 자그마한 상자는 묘하게 눈앞의 남자를 떠오르게 하는 디자인이었다.
“초콜릿이다만.”
“뭐?”
설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 느긋하게 농락하는 말투만은 귀에 익은데 눈앞에 닥친 현실과는 다소 괴리가 있었다. 갈로는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조심스럽게 집었다. 포장지의 표면이 엄지로 쓸면 소름 끼칠 정도로 매끄러웠다. 그래도 마지막 가능성이 남아있었다.
“누구한테 주면 되는데?”
“하!”
짧은 탄식, 가능성은 붕괴하였다. 애초에 발렌타인 선물을 타인에게 맡기는 악취미는 없다며 느긋하게 턱을 괴는 남자에게 사각은 없었다. 갈로는 상자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손안의 무게는 가벼웠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무거웠다.
“…어음, 크레이 나 좋아해?”
갈로는 말을 꺼내놓고도 벼락처럼 내려꽂힐 노성을 상상하며 찔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고함 대신 의수의 서늘한 감촉만이 갈로의 손에 내려앉았다. 크레이는 갈로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래.”
끝이다. 돌이킬 수 없다. 이보다 명확한 의사 표현은 없었다. 갈로가 아는 크레이는 사리에 밝고 무의미한 짓은 하지 않는다. 이런 형태의 속임수 혹은 가학은 크레이답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 고백은 크레이다운가? 새하얀 머릿속을 비집고 호출기의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젠 정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었다.
“크레이, 미안! 대답은 오늘 돌아와서 할게.”
갈로는 붙잡힌 오른손을 미안하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크레이는 잠깐의 침묵을 보내고 의수에 힘을 풀었다. 갈로는 크레이의 손아귀 안에서 자유로워진 손을 뽑아내었다. 그리곤 뭔가 아쉬운 듯 재차 손을 내밀어 크레이의 의수를 꽉 잡았다 풀고 곧바로 일어났다.
“이따 보자.”
갈로가 현관문을 닫는 그 순간까지 크레이는 알 듯 모를듯한 미소를 유지하며 멀어지는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엑! 이게 다 뭐야?”
출근해서 옷을 갈아입기 위해 사물함 앞에 도착한 갈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형색색의 상자와 꽃다발이 사물함 앞을 채우고 있었다. 사물함 문을 여는 것 자체가 버거운 수준이었다. 갈로는 그것들을 밟지 않기 위해 까치걸음으로 겅중 뛰어 건넜다. 커피를 마시고 있던 레미가 갈로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이건 네 앞으로 온 거.”
레미가 건네준 것은 손아귀를 가득 메우는 한 움큼의 편지 뭉치였다. 본부를 둘러보니 동료들도 제각기 편한 자리에 걸터앉아 제각기 자기 앞으로 온 편지에 집중하고 있는 눈치였다. 갈로도 소파 한구석에 눌러앉아 첫 번째 편지를 펴보았다. 연노랑 빛 알록달록한 편지에 적힌 것은 감사의 인사였다. 아이가 연필로 꾹꾹 눌러 쓴듯한 편지지에는 지구의 화재로부터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켜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 후로도 이어지는 수십 장의 편지에도 제각기 정성 어린 감사 인사와 소방관에게 보내는 응원이 행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얼마 전에 보도 제한이 풀려서 말이지. 고생깨나 했지 뭐야.”
루치아가 의자를 뒤로 젖혀 벌렁 누우며 투덜거렸다. 네트워크에 대대적으로 그들의 개인정보가 퍼지지 않은 건 그녀의 공이 컸다. 파르나소스가 추락한 그날로부터 수년, 주요 참고인인 갈로 티모스를 포함해 버닝 레스큐 일동은 철저한 신변 보호와 더불어 지난한 조사를 받아왔다. 도시 재건이 시작되고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오며 사건이 모두의 기억에서 흐릿해질 무렵 당시 버닝 레스큐의 활약상이 일부나마 전파를 통해 전해졌다. 발렌타인이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과 함께 감사의 편지를 적어 보냈다. 그 안엔 마음을 울리는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는지 편지를 읽던 아이나가 더듬더듬 선글라스를 쓰거나 바리스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화장실로 사라지곤 하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잊히지 않는 건 감사한 일이군.”
이그니스는 당시의 구조 현장을 회상하는지 팔짱을 끼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 들었다. 갈로는 자리에서 몇 장의 편지를 더 읽었다. 그 중의 누군가의 차분한 펜글씨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늘날의 제가 있는 이유는 당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로는 그 문장을 엄지로 부드럽게 쓸었다. 자신도 일찍이 입에 담은 적 있는 말이었다. 그 말을 당당하게 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의외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구나. 고백은.’
벨트 포켓에 넣어둔 상자의 각진 모서리를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뜨리던 갈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루치아의 놀란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갈로~! 어디가. 곧 조정 시간이야.”
“미안, 금방 돌아올게.”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 밤중에 찾아올 사람도 없거니와 퇴근 시간을 한참 넘긴 유일한 동거인은 생전 벨을 누른 전적이 없기에 크레이는 퉁명스레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든 채 끙끙대는 갈로의 모습이 비쳤다.
“늦었군.”
“엇, 열어줘서 고마워. 오늘은 짐이 좀 많네.”
갈로는 비틀비틀 제 방으로 가더니 와르르 쇼핑백을 내려놓았다. 꽃다발은 정리해서 화병에 옮겨 두고 먹을 것들은 보존할 수 있는 것과 냉동보관 가능한 것으로 나누고 생활 소품은 실내장식을 고려해서 배치하며 포장지는 종이와 쓰레기로 분류해 분리수거함에 내놓아야 한다고 누군가가 세뇌에 가깝게 입력한 내용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하지만 일단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갈로는 뻐근한 팔을 휘휘 돌리며 거실로 되돌아갔다.
“…그러고 바이크를 탄 거냐?”
눈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이 놓였다. 낮엔 커피, 저녁 시간엔 언제나 그렇듯 카모마일이었다. 갈로의 시선이 허공을 한번 헤맸다.
“아니? 바리스가 체육관 가는 길에 내려다 줬는데.”
“흠.”
그리고 짧은 침묵. 갈로는 바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잘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해도 언제나 과보호 기색이 역력한 남자다. 갈로는 그게 번거로우면서도 달가웠다. 남자가 옛 버릇처럼 자신과의 경계를 흐릴 때마다 이쪽도 경계를 넘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아서 괜히 기뻤다.
“크레이, 나 할 말 있는데.”
제 몫의 찻잔을 들고 온 크레이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테이블 앞 의자에 걸터앉았다. 애당초 볼일이 없었다면 어정쩡하게 이곳을 맴돌진 않았을 것이다. 들어온 것만 확인하고 밤중에 너무 소란 떨지 말라는 소리나 하고 떠났겠지. 어째 크레이의 속내가 훤히 보이는 기분이라 재밌었다.
“뭐가 그리 우습지?”
크레이는 눈썹을 까딱 들어 올렸다.
“아니야. 잠깐 딴생각을 좀.”
갈로는 자신의 볼을 짝 때려 웃음기를 지우고 크레이를 마주했다. 등줄기를 곧게 펴고 무심한 듯 자신을 관조하는 이 남자는 평소보다 한창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비해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데. 크레이 포사이트는 갈로 티모스에게 분명 고백했다. 어째 그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며 상한 음식을 잘못 먹었냐고 비아냥댈지도 모르겠다. 크레이 이마에 잡힌 주름이 하나 더 늘기 전에 무슨 말이든 해야 할 텐데. 지금 당장 뭐라도….
“크레이는 내 어떤 점이 좋아.”
“…….”
결국 주름은 두 개로 늘었다. 입이 방정이지. 왜 고백을 한 쪽은 크레이인데 이쪽이 눈치를 보고 있어 있어야 하는 걸까, 갈로는 고심했다. 크레이는 여상하게 되물었다.
“내 대답 여하에 따라 네 결정이 달라지나?”
하긴 호감을 밝혔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패배하거나 굽히는 관계가 될 필요는 없지. 크레이는 크레이일 뿐이니까.
“아니.”
크레이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무게가 실린 의자 관절부에서 끼익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럼 대답하지 않겠다.”
내뱉듯이 대답하고 나쁜 짓을 한 애마냥 눈도 안 맞춘다. 그런데도 제가 좋단다.
“뭐 상관없지만….”
갈로는 볼을 긁적이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어느새 1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까지 대답을 들려주기로 했던 것 같다. 갈로는 깨끗하게 비운 머그잔을 테이블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입을 벅벅 문질러 닦았다.
“좋아. 사귀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불타오르는 듯한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저 남자가 긴장했을 때 나오는 행동이라는 것을 안 것도 최근이다.
“틀렸다!”
“엥?”
쾅! 누가 봐도 화풀이 주먹이 테이블에 내리꽂혔다. 우리 집 테이블 진짜 대리석이니까 오래오래 깨끗하게 쓰자고 말한 건 크레이였잖아! 내려친 팔이 왼쪽이 아닌 시점에서 가감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벌떡 일어난 크레이의 몸이 전등을 가려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프로메어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리오가 쓸쓸한 듯 말했던 건 착각이었을까. 방안을 메우는 열기에 갈로는 흠칫 놀랐다. 남자는 짐승처럼 몇 번 숨을 몰아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새침하게 자리에 앉았다.
“갈로 티모스, 정정할 기회를 주지.”
상냥하게 말해봐야 앞서 했던 횡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갈로의 대답도 그다지 변함이 없었다.
“좋다니까, 사귀자.”
“…하아.”
“크레이, 사람 면전에 대고 한숨 쉬는 건 좀 아니잖아.”
“애당초 한심한 결정을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크레이랑 사귀는 게 한심한 결정이야?”
한참이나 피곤하다는 듯 미간 사이를 주무르던 크레이는 눈을 들어 가만히 갈로를 응시했다. 제가 손을 댄 것 중 망가지지 않은 유일한 것이다. 남자는 침묵으로 갈로를 아꼈다.
“아무래도.”
크레이는 손을 뻗어 갈로의 입가를 눌러 쓸었다. 대체 언제부터 초콜릿 자국을 묻히고 다닌 건지 이런 점은 어릴 때부터 통 변하지 않는다. 제가 자신을 해칠 거라는 의심은 요만큼도 하지 않은 채 순순히 입술을 내주는 무방비함 역시.
“그런데 왜 눈을 감는 거냐.”
“…키스하는 거 아니었어?”
“꿈 깨라.”
갈로는 눈을 뜨고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럼 왜 고백한 건데.”
이번엔 이쪽이 입을 다문다. 자신만만하게 차려입고 좋다고 들이밀던 아침의 그 기세는 어디 갔는지 갑자기 멋대로 커져서 셔츠 단추나 날려 먹고 다 큰 어른이 빽빽 윽박지르기나 하고.
“그렇게 나한테 차이고 싶었어?”
마침내 바닥까지 털린 남자는 부정도 하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휘저었다. 그나마 단정하던 머리도 엉망이다. 분위기도 꽃도 촛불도 없는 발렌타인의 밤은 혹독했다.
“…그래.”
크레이는 잠긴 목소리로 느릿하게 대답했다. 이른바 여우와 신포도라는 것이다. 포도가 충분히 시다면 여우는 굶주림을 잊을 수 있다. 그러니 여우에게 포도의 달콤함은 애초에 상정하지 않은 것이다.
“당신도 참… 피곤한 방법을 쓰는구나.”
“너야말로 항상 내 계획을 망쳐놓는다.”
펜싱 경기같이 날카롭게 한 합씩 주고받은 뒤 두 사람의 입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말려 올라갔다. 이미 서로의 성가신 점은 충분히 알고 있다. 다만 이번 실패의 결정적인 원인만은 궁금했다.
“왜 승낙한 거지?”
갈로는 시원스럽게 가슴을 폈다.
“그야, 크레이가 진지하게 고백했으니까! 나도 전력으로 부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
“내가 진지했다고?”
“글쎄? 차이는 것만이면 굳이 발렌타인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잖아.”
“마침 일정이 가까웠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크레이 포사이트는 지독하게 성실한 인간이다. 차일 예정인 고백조차 양식과 성의를 갖추려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엔 진심이 깃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만의 품 안에서 자란 아이의 생각은 좀 달랐다.
“있잖아. 크레이, 네가 준 초콜릿 무지 맛있었거든?”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분명 신경 써서 준비한 거잖아. 쓸데없이 고급스러운 거.”
“단순한 주문제작일뿐이다. 예약은 누구나 할 수 있어.”
으르렁거리는 듯한 크레이의 반응에도 갈로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나, 크레이의 그런 점이 좋아.”
예상치 못한 말에 남자는 마치 불에 덴 것 같은 표정으로 굳었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은 크레이가 준거니까.”
갈로에게 크레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연히 떠맡게 된 어린아이에게 싫은 내색 한번 안하고, 연구로 바쁠 때도 꼬박꼬박 얼굴을 비추고, 차일 고백을 위한 초콜릿을 준비하면서도 먹는 이의 기쁨을 생각하고, 그 모든 성가심에 토를 달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당연한 일이었으므로.
“난 엄청 기뻤거든.”
갈로는 마침내 수수께끼를 풀어낸 어린애처럼 천진하게 웃었다. 크레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갈로는 비상계단에 기대어 조심스럽게 상자를 꺼냈다. 금빛 리본을 당겨 풀자 상자는 예물함처럼 부드럽게 열렸다. 얇게 덮인 유산지를 벗겨내고 내용물을 확인한다. 일견 지구의 형상을 본떠 만든 영롱하게 빛나는 터키석 같다. 갈로가 조심스레 손바닥 위에 올려 살펴보고서야 그것이 보석이 아니라 푸른 패턴으로 정교하게 글라사주 된 초콜릿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초콜릿의 가장자리엔 피스타치오 분태가 뿌려져 있었고 중앙은 젤라틴으로 둥글게 마감되어 있었다. 투명한 젤라틴 때문에 안쪽 깊은 곳에 작은 크랜베리 한 알이 정중하게 박혀있는 모습이 비쳐보이는 정교한 디저트였다.
갈로는 그것을 단숨에 입안에 던져 넣었다. 생전 이렇게 부끄러운 초콜릿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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