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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더스 게이트3

저는 어릴 적부터 감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는 했습니다. 덕분에 이 저택에 들어 온 첫날부터 주인님을 어떻게 모셔야 할지, 또 그의 반려 분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곧바로 알 수 있었죠. 그런 저의 깨달음이 제게 말하길, 이곳에서는 제가 어떤 사람이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발을 딛고 있는, 이 안쿠닌 저택에서 중요한 건 제가 모시는 분들이 어떤 분들이냐 뿐이죠.

 

발더스 게이트에서 두 분을 모르는 이를 찾는 게 얼마나 멍청한 행위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웅으로서의 두 분이 아닌, 연인으로서, 부부로서 그리고 한 집안의 주인으로서의 두 분의 모습은 저택에서 일하는 저 같은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부분이죠. 그러니 미약하게나마 제가 알고 있는 작은 편린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A 안쿠닌님께서는 티플링이십니다. 티플링은 윗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족은 아니지요. 누군가의 하인이나 애첩이 아닌 티플링은 특히 말입니다. 혹여나 그분께서 티플링이시라는 이유로 가볍게 여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분이 바알의 아들이시며, 당신 하나 정도는 가볍게 없앨 수 있다는 건 둘 째치고. 당신의 그 불손한 생각을 안쿠닌 공께서 눈치채는 순간.

뒷이야기는 말을 더 얹지 않아도 아시겠죠?

사람은 이따금, 오직 자신만이 스스로를 위할 수 있다 생각하고는 합니다. 불경한 시선이나 눈빛, 발언 같은 건 당사자만 모르면 그만이라 착각해 버리죠. 기억하세요, 이 저택에서 그러한 오만은 통하지 않습니다. 안쿠닌 공 앞에서 A님을, A님 앞에서 안쿠닌 공을 진심으로 존경하세요.

두 분께 중요한 것은 반려의 안위지 버릇없는 하인의 처우가 아닙니다.

저는 두 분 앞에 설 때, 결코 고개를 들지 않습니다. 두 분을 마주 볼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주제도 모르고 고개를 빳빳이 세우는 행동은 실수를 야기하기 때문이죠. 특히나 두 분이 함께 계실 때는 더욱요.

개인적으로 조언을 조금 하자면, 실수로라도 A님을 너무 오래 쳐다보지 않기를 추천합니다. 그 시선의 끝에 걸린 게 존경인지, 경이인지 그도 아니면 천박한 호기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그 시선이 안쿠닌 공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것만 기억하세요.

‘그분의 사람’이라 칭할 수 있는 이는 A님이 유일합니다. 감히 그런 ‘그분의 사람’께 주제넘은 시선을 던진 죄로부터 당신을 구할 수 있는 인물은 없습니다.

아, 어쩌면 A님 자신이라면, 당신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구태여 그럴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

A님을 보다 보면, 그분께서 한 줌을 자비를 내려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는 할 겁니다. 영웅이자 바드이신 그분의 쾌활함이 어리석은 하인을 잠깐의 실수로부터 구제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런 가여운 망상을 하고 있는 걸 깨달았다면, 고개를 들어보는 걸 추천합니다. 아, 너무 바짝 들지는 말고요. 그분의 손이 보일 정도로만요.

A님이 안쿠닌 공과 함께 계신다면, 두 분이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그리 어려울 일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이 품은 희망에 대한 답입니다. 만일 이렇게 말했는데도 당신이 이해하지 못했다면....

다른 하인이었다면 유감을 표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보다 조금 더 인내심이 있는 편이니 몇 마디를 더 얹어보겠습니다. 쾌활한 사람을 두려워하세요. 일반적으로 겉모습이란 선택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쾌활한 사람으로 있기를 그만둔다면, 더불어 그 인물이 이 저택에 사는 사람이라면. 저는 용서를 구하는 대신 밤사이 저택을 떠나는 것을 선택할 겁니다.

주의할 점에 대해 알려드렸으니, 이제 숙지해야 할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아침 식사는 과하지 않게 준비해야 합니다. 이 말이 ‘단출하게’와 다른 의미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죠?

화려하게 장식된 음식은 안쿠닌 공 쪽에, 반대로 맛에 치중된 음식은 A님 쪽에 놓는 것을 추천합니다. 또한, 두 분이 조찬 시간에 내려오시지 않더라도 깨워드리기 위해 올라가지는 마세요.

안쿠닌 공께서 엘프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안쿠닌 공께서 잠을 주무시는지 아니면 간단한 명상에 그치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희의 손길 없이 일어나신다는 건 확실하죠. A님을 깨우는 일 역시 저희의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안쿠닌 공의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분이 모두 착석하셨다면. 우리는 문 근처에서 대기하면 됩니다. 대부분 등을 돌리거나 문밖으로 나가서 기다립니다. 전할 말이 있거나 잊은 일이 있다면, 노크를 하는 대신 집사님을 찾아가세요.

당신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두 분께서는 신혼입니다. 그 시기의 부부는 대개 서로의 존재를 손안에 쥐고 싶어 안달이나 있죠. 두 분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 사실입니다. 두 분께서 손을 마주 잡거나 문득 서로를 끌어안고 미소 짓는 일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저는 우연히라도 그 모습을 접할 때 오히려 깨달음을 얻고는 합니다.

발더스 게이트를 구한 영웅. 바알의 자식과 고귀한 군주. 바드들이 즐겨 부르는 서사시의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그 두 분이, 입을 맞추고 서로를 마주 보고 웃는 모습은 그저 서로를 귀애해 마지않는 연인의 모습이기에. 저를 순식간에 현실로 끌고 오고는 합니다. 그리고 그제야 그 밑에 깔린 수많은....

아닙니다. 뒷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군요.

당신이 알아야 할 점은 그것과는 별개로 모시는 분들의 애정 표현을 본다고 놀란 티를 내는 건 결코 참된 하인의 행동이 아니라는 겁니다.

처음 한두 번 정도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참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두 분은 당신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실 테고 신경 쓰길 필요도 없는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고개를 숙이고 두 분의 애정사를 못 본 척하는 것이 우리의 미덕이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두 분의 결정이 필요한 일은 대부분 안쿠닌 공께서 선택권을 쥐십니다. 이 말이 무조건적으로 안쿠닌 공께만 선택을 부탁드리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느 정도 눈치가 있고 윗사람의 기분을 살필 수 있는 하인이라면, A님께서 자신의 결정권을 안쿠닌 공께 양위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먼저 두 분 모두에게 여쭤보고 A님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확인한 뒤, 안쿠닌 공의 결정대로 행동하세요.

다음으로, A님을 불편하지 않게 하는 일에 신경 쓰세요. 자주 쓰시는 물건을 늘 준비해 두고 무엇을 원하실지 끊임없이 생각하세요. 그분께서는 번거로움을 달가워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당신이 미리 준비해 두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타박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분께서는 귀족이나 바알의 아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쾌하신 분이니까요. 다만 그분이 괜찮아하신다고 해서 안쿠닌 공이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우리가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의 불편함을 그냥 넘어갈 이가 몇이나 될까요. 그분이 불편함을 감수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안쿠닌 공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지 마세요. 보았던 것을 기억 속에서 지우세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은 거울에 반사된 이면에 불과합니다.

 

제가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인 것 같군요.

하인에게 처신이란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특히 근무하는 곳이 안쿠닌 저택일 경우에는 더욱요. 하인이란 언제든 대체 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거리에 널린 것이 이 저택에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이니까요. 단순히 복지나 급여 때문은 아닙니다. ‘안쿠닌 저택에서 일한다.’라는 것은 엄청난 영예입니다. 설령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른다 해도, 다른 이가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대체 될 수 있습니다. 제 몫을 못 해서이든,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려서이든.

당신이 제 충고를 잘 받아들이고 이 저택에서 오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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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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