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말소]

CAKEVERSE(下)

폐허 by 필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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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윤리적, 비도덕적, 인격 모독적, 불법적 설정 및 식인과 카니발리즘을 소재로 한 케이크 버스 기반 글입니다.

 

  하루종일 속에 있는 것들을 게워냈다. 나중엔 더 토할 게 없어서 위산만 뱉어냈다. 그래도 종일 속이 메스껍고 역겨웠다. 사람을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했다. 미맹인 것은 알았지만 포크였다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드물게 나타나는 미각 이상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이 포크인 것을 알았던 건 먼 옛날, 어떤 세계여서 였지만 그 기억은 이제 없었다. 계기는 생각보다 로맨틱했다. 그러나 그 결과까지 로맨틱하진 못했다. 그는 언젠가 이상에게 입을 맞췄었고 피부가 입술에 닿은 그 순간에 제 자신이 포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알아 챈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 끓어올랐다. 평생을 모르고 살았던 달콤함에 빠져서, 그는 이상의 목을 물려고 들었고 그 이빨이 짐승의 그것과도 같이 이상의 살갗을 물어뜯으려는 순간에 그는 스스로의 팔을 콱 물며 떨어졌더랬다. 그리고 뒷걸음질 치며 이상에게서 천천히 멀어졌다. 불꽃 같은 욕망이 벌겋게 타올랐지만 그는 이상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제 팔을 세게 씹어댔다. 뜯어질 듯 물었지만 여전히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은 제가 물어 뜯길 뻔했다는 건 까맣게 잊은 채 그를 걱정했지만 조금씩 멀어지던 소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도망쳤다. 그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죄악감이 몰려왔다. 사람을 먹는 것은 금기였다. 윤리관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칼로 누군가에게 상처 내는 것도 어려운 그에게 사람을 먹었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약을 먹었던 그날부터 였으리라. 그렇다면 한 번도 아니고 계속, 그날 이후로 줄곧…… 스스로 상처를 내서 살을 잘라내고 피를 담았을까. 짧지 않은 나날들이었으니 필시 단테가 도와줬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단테 역시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을……. 죄악감은 그대로 자기 혐오로 바뀌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천 년 동안 제 미맹을 낫게 해주려고 했던 사람들은 숱하게 많았지만 결국 한 번도 고치지 못한 채였다. 상처 하나 낫지 않는 몸이 평생을 앓은 병을 이겨낼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 간밤에 무슨 아픔을 겪었는지도 모르고 그저 당장의 행복이 좋아 웃었다. 그는 스스로 내는 상처가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 알았다. 알면서도 그랬을까. 자기 자신이 너무나 싫어져서, 그는 참지 못하고 차가운 벽에 머리를 박았다. 쿵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박아서인지,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박아서인지 정신 차려 보니 머리에서 피가 한 줄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깨질 듯이 아파왔다. 차라리 아파서 다행이라는 생각 마저 들었다. 이 고통에 참혹한 절망을 묻고 싶었다. 문득 숨이 막혀와서,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을 헉헉 거리며 뱉었다. ……바보같아. 쉴 새 없이 눈물이 떨어져서, 그는 참지 않고 혼자 울었다. 울다 지치면 갑자기 자기자신에 대한 분노가 몰려와서 근처에 있는 물건을 마구 던지고 난동을 부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이틀 째 되는 날은 더 끔찍했다. 어느샌가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주변은 토사물과 망가진 물건들로 지저분했다. 눈을 뜨자마자 공복이 느껴졌다. 위장에 있던 건 전부 다 토해냈고 위액도 남지 않을 정도로 뱉어냈다. 텅 빈 위장에서 음식을 요구했다. 뭐라도 먹어야 했다. 그는 바닥에 던져 버린 먹다 남은 빵을 집어들었다. 한 입, 두 입 삼킬 때마다 전에 없던 거북함이 느껴졌다. 마치 고무를 씹는 기분이 들었다. 한 번 맛을 느낀 혀는 도저히 다른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보통 케이크는 달다고 하지만 이상이 주었던 음식들은 달진 않았다. 때론 새콤하기도 했고 맵고 쌉싸름하거나 은은한 신맛이 있기도 했다. 그 다채로운 맛이 그저 행복해서, 맛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어떻든 배는 고팠고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가진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그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서 벌을 주려는 듯이 제 팔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한 번 물었을 뿐인데도 심하게 아파왔다. 반사적으로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으려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한 번도 이리 아픈 것을 매일 밤을 반복했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저주와도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차라리 죽어버려."


 

   진실이 밝혀졌어도 이상은 평소처럼 매일 아침 저녁 그를 찾아갔다. 굳게 잠긴 문을 억지로 열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에 매번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며칠 내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 신경 쓰였다. 그렇지 않아도 식사를 거르고 바짝 야윈 몸이 버스에 유폐된 이후로 허약해졌는데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 필시 몸에 크게 해가 될 터였다. 첫날엔 그저 제 자신이 원망 받을 뿐이길 바라며 다른 수감자에게 식사를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었다. 그러나 불러도 대답조차 않았고, 문앞에 두고 가도 저녁에 가면 그대로 차갑게 식어버린 채 놓여 있었다. 그 다음 날엔 ■■를 설득하려고 했다. 평범한 음식이니 힘들겠지만 조금이라도 먹어 달라고, 안 그래도 약한 몸이 병들 수도 있다며 솔직하게 걱정을 건네기도 했다. 밤엔 문만이라도 열어줄 수 없겠냐고 부탁했지만 동이 틀 때까지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사흘 째 되는 날엔 그저 애원했다. 그날 그때처럼 그가 또 다시 도망쳐버리지 않았을까 두려웠다.

 

   "……벌써 사흘 째요. 무언가를 잃을까 심히 두렵고 불안하오. 말 한 마디라도 나눌 수 있게 해주시오."

 

   방 안에 있는 사람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죄책감에 마음이 무겁고 아파왔지만 그보다 싫은 것은 이상에 대한 갈망이었다. 다시 마주한다면 정신을 잃고 그를 집어 삼키려 들 것만 같았다. 그럴 순 없어. 지금 당장이라도 널 먹고 싶다고, 무릎이라도 꿇고 빌고 싶었다. 말하고 싶어질 때면 그저 손으로 입을 막고 제 팔을 씹었다.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지옥에 떨어진 듯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매일을 찾아와 말을 건넸다. 참아내는 것도 3일 쯤이나 되자 더는 누군가를 위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잊을 정도로 괴로웠다. 문득 제 안에 야속하게 속살거리는 악마와도 같은 욕망이 있었다.

 

   차라리 널 잡아먹을까.

 

   더는 끔찍하다곤 생각도 못할 정도로 심신 모두가 만신창이였다. 튀어 나온 것은 차가운 자조여서. 문은 잠그기가 어려웠지 여는 건 손쉬웠다.

 

   고작 3일 뿐이었는데도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었다. 결국 이렇게 될 걸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잠깐의 웃음을 받아 간 대가는 생각보다도 크고, 또 최악이었다. 그 모든 게 아파와서 절로 표정이 구겨졌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지를 생각할 틈도 없이 ■■는 문 앞에 선 이상의 팔을 잡아당겼다. 먹지 않은 탓인지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그렇게 강하진 않아서, 이상은 제 발로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는 붙잡은 이상의 손목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전에 빛이 없어도 밝게 반짝였던 눈은 안광조차 잃은 채 죽어 있었고, 그저 눈앞의 먹잇감에 정신을 잃은 것처럼 흐릿했다. 조금 벌려진 입에선 무언의 욕망이 숨결처럼 쏟아졌다. 눈앞의 포크가 저를 집어 삼킬 것을 알았다. 그 사실이 두렵고 공포스럽기 보단 차라리 기껍게 느껴졌다. 그의 식욕이 기뻤다. 그게 설령 자기 자신을 향할 지라도. 그에게 잡아 먹힌다면, 용서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다시 또 네 옆에 있을 수 있을까. 이상은 스스로 소매를 걷어 올렸다.

 

   "뜻대로 하시오."

 

   그리고 눈앞의 포식자에게 팔을 내밀었다.

   

   내밀어진 손목은 차갑게 팽개쳐졌다. 이젠 더 울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자신을 포기한 것만 같은 그 말이 너무나 아파서 기어이 눈물이 맺혔다. 한 순간 욕망이 불타 올라서 문을 열고 그를 방 안에 들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는 고개를 푹 떨궜다. 차라리 그가 어디론가 도망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영영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그럼 이 끔찍한 식욕도 사그라들 것만 같아서. 닦아내지 못한 눈물은 팔을 잡고 있던 손과 함께 떨어졌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결국 너는 먹지 못할 것을. 새겨진 죄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네 올곧음을 이용할 정도로 나약한 나와는 다른 그 상냥함을 사랑했으니까. 이상은 어깨에 걸친 코트 안에 손을 숨기고, 등 뒤에서 조그맣게 상처를 냈다. 그리고 그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 그 입술에 상처 낸 손가락을 갖다댔다.

 

   "억지로 먹인 것이라 생각해도 좋소."

 

   그의 피는 달았다. 처음으로 느낀 단맛에 미맹인은 홀린 듯 그 손가락을 입에 담았다. 그 단맛을 모조리 집어 삼키는 것 외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했다. 가라앉은 고요 속에 사냥 소리만이 들렸다. 눈물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불 붙은 욕망만이 멈출 줄 모르고 그의 손가락을 통째로 잘라 삼킬 듯 일렁였다. 피가 멎자 애가 닳았다. 더 먹고 싶어. 혀로 상처난 곳을 핥았지만 맛이 옅었다. 조급해진 ■■는 결국 손가락을 세게 물었다.

 

   "윽…!"

 

   그는 잠깐 앓았지만 곧 표정을 지웠다. 차라리 그대로 잘라냈으면 더 나았을 것을, 그저 잇자국이 남을 정도였다. ■■ 역시 놀란 것인지 이내 입을 떼냈다. 저도 모르게 욕망을 참지 못하고 물고 만 것이 싫었다. 알아채지 못한 사이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상은 또 다시 그가 사라질 것만이 두려워 채 멀어지기도 전에 그를 품 안에 가두고 말았다. 그리고 곧장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그 연약함에 절박하게 매달렸다.

 

   "……이 몸을 전부 가져가도 좋으니, 그때처럼 영영 모르는 곳으로 떠나지 말아주시오."

 

   통증이 그쳐도 여전히 마음은 욱씬거렸다. 마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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