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필멸
소녀는 시간여행자였다. 아니, 세계여행자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시계를 깨트리는 것으로 지금 있는 세계를 벗어나 다른 세계선으로 이동하는 게 가능했다. 우선 한 번 시계를 부수면 아무것도 없는 세계선의 교차로에 떨어졌다. 끝이 없는 것만 같이 무한한 공간에 눈부신 하얀 빛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마치 영화 필름처럼 생긴 거울 세계들이 천장을 메우
비윤리적, 비도덕적, 인격 모독적, 불법적 설정 및 식인과 카니발리즘을 소재로 한 케이크 버스 기반 글입니다. 하루종일 속에 있는 것들을 게워냈다. 나중엔 더 토할 게 없어서 위산만 뱉어냈다. 그래도 종일 속이 메스껍고 역겨웠다. 사람을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했다. 미맹인 것은 알았지만 포크였다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드물게 나타나는 미각 이상일
비윤리적, 비도덕적, 인격 모독적, 불법적 설정 및 식인과 카니발리즘을 소재로 한 케이크 버스 기반 글입니다. 세간에선 타고 난 미맹 중 특별한 이들을 포크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미맹을 앓는 자들 중에서도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하면, 케이크라 불리는 극소수의 인간의 맛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대체로 단맛이 느껴진다곤 하지만 그 맛은 천차만별로 일
해가 뜨지 않는 거리를 소녀가 걷는다. 발걸음은 잔뜩 비틀거렸고 걷는 길마다 붉은 발자국이 남았다. 천 년 만에, 아니면 만 년 만에 내린 눈은 거리에 지독히도 쏟아졌다. 하여, 발자취는 남는대로 곧장 사라졌다. 거리에 두텁게 쌓인 눈이 서둘러 걷는 소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정면으로 불어오는 칼바람이 매섭게 얼굴을 에고 긴 머리칼을 흩날려 눈을 가렸다. 앞
처음이었다. ■■가 이상에게 화를 낸 것은. 스스로도 화를 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말이 튀어나갔다. 가늠하지도 못 할 만큼의 시간 동안 이상은 한 번도 그의 분노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많은 기억이 후에 쌓였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도 ■■가 남이 들으면 아플 감정을 폭발시킨 적은 없었다. 죽이려고 들 때 조차 웃으며 괜찮다고 했으니
기억 추출은 비정기적으로 행해졌고 아침 시간이 부산스럽고 베르길리우스가 본사로 갈 준비를 한다면 그것이 신호였다.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아 떨어져서 이상이 묻기도 전에 베르길리우스는 오늘은 휴일이라며 버스 안에서 소란 피우지 말고 쉬라는 안내를 했다. 그리고 잠겨있는 안쪽 방으로 가서, 이제 막 깬 듯 부스스한 차림의 ■■를 데리고 버스 밖으로 나갔다. 처
다음 날 아침엔 그것을 찾지 않았다. 어쨌든 억지로 다친 손목을 보려고 들었으니 마주쳐도 껄끄러울 수 밖에 없었고 찾아간다 한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도 몰랐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어쩌다 그렇게 되었냐고? 아프진 않냐고. 아무 짝에도 도움되지 않는 걱정을 몇 마디 건네면 될까. 그 안을 보진 못했으니 어떤 형식으로 그것이 인간임을 증명하려고 했는진 모르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잠시 정차한 메피스토텔레스의 앞을 가로막고 쏟아지는 장맛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제일 먼저 찾아낸 것은 운전석의 카론이었다. 카론은 베르길리우스를 부르더니 앞에 서 있는 것을 손가락질 했다. 메피가 배고파해. 베르길리우스가 조금만 더 무신경 했다면 분명 저것은 곧장 공복에 허덕이는 버스의 아가리로 들어가 산산조각 났을테지.
림버스 컴퍼니 소속 패스파인더. 일반적인 정보 연소된 듯 새하얀 머리카락이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다. 머리가 매우 길어서 바닥에까지 끌리지만 딱히 자를 생각은 없는 듯 하다. 끝도 없이 시계를 돌리는 과정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듯, 풍부한 경험에 비해 상당히 앳된 얼굴을 하고 있다. 본인의 말로는 딱 스무 살 때의 모습이라고 한다. 눈은 시리게 빛나는 금색
그 방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파우스트였다.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파우스트는 이 버스를 만든 사람이었고 그 버스에 통로를 붙인 것도 그였다. 직접 만든 것이니 밝혀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알고 싶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걸어 갈 이유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 중 심히 이상한 방이 있었는데 그 방은 다른 방에 비해 문이 아주 작았고 또
아주 오랜만에 온화한 꿈을 꾸었다. 기다란 원피스를 걷어 올린 채로 커다란 소 위에 올라타서 시골의 논두렁을 지나가는 꿈이었다. 곁에는 그리운 시절의 그가 있었다. 그는 마구 흔들리는 소 위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소녀를 보며 은은하게 웃었다. 균형을 못 잡고 쓰러질 것만 같을 때 그 손을 잡곤 균형을 맞춰 주었다. 이상의 옆엔 벗이 두 명 있었다. 오랜 여
태양을 독점하고 싶었다. 해가 공평하게 세계를 비추듯 소녀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했다. 지나치며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제 몫의 식사를 나눠주었으며 때로는 손을 붙잡고 앞으로 이끌었고 소리 내어 웃었다. 남모르게 소녀를 연모하는 이들이 늘었다. 소녀 본인은 알지 못했던 것 같았지만 소녀가 검계의 많은 조직원들에게 사랑받고
기억 추출은 다소 급하고 빡빡한 스케줄로 진행되었다. 처음 버스 안에 모습을 드러냈을 땐 여려보이는 겉모습이 무색하게 건강하고 활기찼지만 황금가지를 수거하러 버스가 출발한 이후로 ■■는 빠르게 쇠약해졌다. 앓는 일이 늘었고 잠이 부쩍 늘었다. 이상의 노력으로 로쟈와 공명한 황금가지를 꺾어올 때 쯤엔 족쇄를 차고 버스 안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의 자유를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