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말소]

밀담

폐허 by 필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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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파우스트였다.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파우스트는 이 버스를 만든 사람이었고 그 버스에 통로를 붙인 것도 그였다. 직접 만든 것이니 밝혀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알고 싶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걸어 갈 이유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 중 심히 이상한 방이 있었는데 그 방은 다른 방에 비해 문이 아주 작았고 또 좁았다. 그 문은 문 크기와는 반대로 매우 큰 자물쇠가 달렸고 그것도 모자라 쇠사슬이 걸려 엄중히 잠겨 있었다. 안쪽을 엿 볼만한 작은 창 조차 나있지 않아서 그는 잠시 안으로 들어 갈 방법을 모색했지만 달리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필시 자물쇠라면 짝이 되는 열쇠가 있을 것이며 힘으로 체인을 끊거나 잘 풀어내면 열지 못할 것은 없어보였다. 열쇠가 있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 문제였지만⋯ 기이한 일 투성이인 이곳에서라면 저 방 안에 무엇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함부로 열었다간 오히려 화를 입을 수도 있으니 문을 여는 시도를 하진 않았다. 저 복도에 끝은 있는지, 안으로 들어가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 것은 파우스트만이 아니었는지 차츰차츰 버스에 있는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그 방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자물쇠로 단단히 잠긴 문이 아주 작은 방. 파우스트는 한때 베르길리우스에게 그 방의 정체를 아느냐 물은 적이 있었지만 그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한동안 그 방은 그런 식으로, 버스괴담처럼 존재하기만 할 뿐 알려진 것은 없는 미스테리로 남았다.

그것의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열 두 명의 수감자들이 전부 모이고 며칠 되지 않아서였다. 아침부터 베르길리우스가 보이지 않더니 그는 점심 쯤 하여 복도로 가는 문을 열고 버스로 들어왔었다. 왜 안에서 나오는거지? 수감자들의 시선은 절로 베르길리우스를 향했다. 그러나 곧 그가 어디서 나왔는지 따위는 눈꼽만큼도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버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은 그의 뒤를 따라가는 조그만 것을 향했다. 한겨울의 눈보다도 새하얀 머리칼이 바닥에 끌렸고, 쏟아지는 시선이 불편한지 그 위로 면사포처럼 천을 뒤집어 쓰고 걷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비틀비틀 그를 따라 나가는데 천의 사이로 아무 무늬 없는 하얀색 원피스가 살랑거렸다. 발목까지 덮는 긴 스커트여서 사실상 드러나는 살점은 거의 없었으나 그마저도 붕대로 감겨 살색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기묘한 모습이었다. 천을 붙잡고 있는 손은 족쇄로 구속되어 베르길리우스의 손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상 역시 그 연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순간, 그것이 이쪽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얼굴이라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아무래도 잘못 본 것이려니 싶었지만 일부러인 것처럼 마주친 순간 고개를 홱 돌리는 것이 보였다. 필사적으로 반대쪽을 보고 어색하게 걷는 모습이 수상했다. 베르길리우스는 그 느릿한 걸음에 맞춰 천천히 복도를 지나 그것을 데리고 버스 바깥으로 나갔다.

베르길리우스가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버스 안은 수학여행 통솔버스마냥 시끄러워졌다.

"뭐야, 뭐야? 아는 사람이야?"

"그런 것이오?!"

"으, 으음⋯⋯"

응당 당연하다는 듯 이제는 모든 관심이 이상에게 쏟아졌다. 그들은 낯선, 그리고 누가 봐도 수상한 기류가 흐르는 그것이 뭔지 궁금해했다. 그들은 이상이 그 정체를 알아 낼 단초를 알고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잠시 생각에 잠긴 이상은 곧 모두가 실망할 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낯선이요.

그리고 예상 가능 했듯이 모든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잠깐 동안은 모르는 사이라는 이상을 닦달하며 뭐라도 알고 있지 않느냐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이내 저들끼리 이런저런 추측을 떠들어 댔다. 이상은 그 모든 실없는 억측에 끼지 않고 가만 창 밖을 내다봤다. 바깥은 장마여서 며칠 내 비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빗방울은 맺히기도 전에 다른 빗줄기에 쓸려 사라졌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유리창 끝에 방금 밖으로 나간 베르길리우스의 구두가 보였다. 그는 비를 맞는 것도 아랑곳 않고 하나 있는 우산을 천을 덮어 쓴 그것에게 기울이고 있었다. 시선은 이유를 모른 채 정체불명의 이상한 것에게 향했다. 그것은 여전히 천을 뒤집어 쓴 채로 서 있었다. 문득 그것이 이쪽을 돌아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빗방울이 창을 흐리게 만들어 확실친 않았다. 빗방울은 끝도 없이 떨어져서 이윽고 그것과 베르길리우스의 모습을 쓸어 가버렸다. 이상은 무언가 남은 흔적을 찾고 싶어 저도 모르게 창문에 눈을 들이댔지만 남은 것은 그림자가 진 자신의 두 눈 뿐이었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물줄기 속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탁한 모습으로 텅 빈 회갈색 진흙탕을 보고 있었다. 무엇을 찾으려고 했을까. 먹에 억지로 물을 탄 듯 기분이 언짢아져서, 이상은 창가에서 고개를 돌리고 쓸데없는 잡담에 끼고 말았다.

베르길리우스는 하루를 꼬박 비웠고 돌아왔을 때 그것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싱거운 해프닝 정도로 대부분의 수감자가 그 일을 잊으려고 할 쯤 그것은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올 때의 모습은 갈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것은 완전히 죽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베르길리우스의 팔에 안겨 돌아왔다. 여전히 도포같이 큰 천으로 감싸여 있어서 얼굴이 보이진 않았으나 그 아래로 힘없이 늘어진 팔이 보였다. 버스 안에 재밌는 가십의 대상이 되어 준 그것이 돌아왔다는 사실 보다는 다들 그것의 생사가 궁금한지 저마다 죽은 거냐며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죽었는지 말았는지 확신할 증거도 없었을 뿐더러 그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죽음이라고,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 자신이 제일 잘 알았지만 어쩔 수 없는 불안이 덜컥 솟았다. 주위의 수근거림이 불안한 마음을 부추겼다. 심장이 무겁고 빠르게 박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은 저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인상을 쓴 채 지나가는 베르길리우스를 향해 버스 좌석 사이의 복도로 한 발 내딛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닿기 전에 베르길리우스는 그것을 데리고 안쪽 복도로 사라졌다. 문이 쿵 닫히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다행히 주변은 그것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열띤 토론에 휩싸여서 이상의 행동에 관심이나 의문을 갖는 이는 없었다. 입 속에선 타는 호흡이 조금 뱉어졌다. 원인 모를 갈증이 느껴졌다. 속이 애타게 끓어서, 그는 재빨리 자리에 다시 앉아 여전히 비가 쏟아지는 창문에 조용히 머리를 기댔다. 연일 비가 내려 차가운 유리에 닿자 머리가 식는 것이 느껴졌다. 식어가는 머리와 다르게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었다. 죽은 것일까? 얼굴도 모르는 이의 숨이 궁금한 이유를 몰랐다. 잠시 감았던 눈은 미련스럽게 이미 닫힌 문을 향했다. 그러나 문은 한참 동안이나 다시 열리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그것만이 신경 쓰여서, 이상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피로가 가득한 눈 밑은 평소보다도 짙은 검은색이었다. 그는 기어코 알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버스로 걸음을 옮겼다. 소리소문 없이 닫힌 문에도 베르길리우스는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다른 수감자도 카론도 없는 새벽 두 시의 버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손에는 두터운 서류가 들렸는데 제목이나 내용까진 보이지 않았다. 이상은 괜시리 오른쪽 손목을 문지르며 앞좌석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둔 채로 질문했다.

"그 자는 죽은 것이오?"

그는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덧붙이고 싶은 말들을 참아냈다. 며칠 전만 해도 살아 있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것은 대체 무엇이냐고. 묻고 싶은 것은 산 하나만큼이었지만 그는 용케 기다렸다. 잠시 후에 대답은 차갑게 떨어졌다.

"알려 줄 의무는 없군."

더 묻지 말라는 그 나름대로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이상은 포기하지 않고 한 번만 더 그를 떠보기로 작정했다.

"그 자물쇠로 잠긴 방이구료."

낮은 한숨 뒤에 베르길리우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한 마디만 더 하면 무사치 못한 새벽이 될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상은 더 묻지 않고 일어났다.

"실례했소."

돌아 선 이상은 그대로 복도로 돌아가 망설임 없이 안쪽 어두운 곳으로 발을 디뎠다. 이미 그 역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안쪽으로 가 본 적이 있었기에 새삼스럽게 두렵진 않았다. 불도 거의 켜지지 않아 으스스한 안쪽에 아주 작은 문이 그때와 똑같이 굳게 닫혀 있었다. 예의 자물쇠는 그때보다도 녹이 슬어 지저분 했고 두 손으로 쥐어야 할 만큼 무겁고 큼지막했다. 무엇이 그렇게 비밀스러워서 사슬까지 얼기설기 얽혀서 고정하고 있을까. 안으로 들어가려면 상체를 숙여야 할 정도로 문이 작아서 잠금 장치들이 괜스레 더 도드라졌다. 당당하게 앞까지 온 것 치곤 문을 두드리는 것이 퍽 망설여졌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거지? 그저 문을 노크할 뿐이었다. 혹시 무언가 위험한 존재는 아닐까? 괜히 문을 두드려서 깨우는 바람에 곤란한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냥 둘 수 없는 존재라면 이렇게 엄중하게 잠궈놓은 것도 설명이 된다. 아니면 제 자신으로선 접근 못할 정보를 함부로 알려고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회사의 처분이 기다리고 있겠지. 베르길리우스는 간접적으로나마 그에게 경고했고 충고를 무시하고 문을 건드렸다간 어떤 입장에 처하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아니다. 이제와서 그런 것이 두렵진 않았다. 무언가 반응이 있다면 오히려 기꺼울 것이다. 그는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다. 정말로 이제는 살아 움직일 수 없는 존재가 되어서 영영 대답하지 못하게 된 쪽이 좀 더 절망적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것보단 희망적이리라. 결심은 한참 후에 섰다. 이상은 무거운 손을 끌어 올려서, 중지 관절로 문을 조용히 두드렸다.

똑똑똑.

문에 귀를 대고 한참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또 다시 불안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니, 아직 아니야. 못 들었을 수도 있고 무언가 준비가 필요할 수도 있었다. 문이 두꺼워서 안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일 수도 있어. 이상은 답지 않게 반응이 없는 일에 자기 세뇌에 가까운 변명을 덕지덕지 붙였다. 그는 확인 받고 싶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반응이 없던 것이라고. 그래서 그는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다. 이번엔 전보다 큰 소리였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아무도 없는 새벽의 복도에 작게 울렸다. 손이 떨어지자 복도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쥐가 기어가는 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이상은 다시 한 번 문에 귀를 댔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아주 작은 인기척을 들어냈다.

철그럭, 차라락⋯⋯

확실히 그건 일반적인 방 안에서 날 법한 소리는 아니었다. 문에 마구 꼬인 이 사슬을 들어낸다면 그런 소리가 날 듯 했다. 사슬이 떨어지고 바닥에 뱀처럼 질질 끌리는 소리가 났다. 이상은 소리가 문쪽을 향해 가까워져 오는 것을 알면서도 귀를 떼지 않았다. 한참 후에 문고리 쪽에서 다 쉬고 갈라진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베르길리우스?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상은 한숨을 쉬며 문에서 멀어졌다. 그저 살아 있음에 안도했다. 생면부지의 타인의 삶에 이토록 집착한 밤은 처음이었다. 아니. 처음이었을까. 문득 상념에 빠질 뻔 했지만 지금은 부름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베르길리우스가 아니었고 거짓말은 이 상황에 좋은 선택도 아닐 뿐 더러 분명 베르길리우스와 그는 목소리가 달랐으니 속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도대체 뭐라고 대답하면 좋단 말인가? 그저 손님이라고 할까. 문을 열어 줄 열쇠도 없고 명분도 없으며 안쪽에선 열 수도 없고 반길지 말지도 모르는 것을. 이상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렵게 말문을 뗐다.

"미안하지만⋯ 그대가 찾는 사람은 아니오."

말을 끝맺기도 전에 문고리가 안쪽에서 덜걱였다. 물론 열리진 않았다. 열리긴 커녕 조금의 틈새도 나지 않았다. 이상은 갑작스럽게 문이 움직이자 한 두 발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것이 적의인지 혹은 단순한 놀람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나? 그러나 문이 한 두 번 정도 덜컥 거린 것 뿐 그 뒤론 다시 얌전해졌다. 문을 돌리는 소리가 나지도 않았고 뭐라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이상은 잠시 시간을 두고 문고리 틈을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넸다.

"몸 상태는 좀 괜찮은 거요."

한참 후에 무슨 대답이 들렸지만 목소리가 갈라진 탓인지 원체 조용한 탓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괜찮다는 것일까? 이상은 다시 되물을까 하다가 이내 생각을 고쳤다. 그는 잠시 기다리시오, 라는 말을 남기고 제 방으로 돌아가 몇 장 없는 질 좋은 종이에 몇 자 적어 돌아와, 문 아래의 얇은 틈으로 편지를 슥 밀어 넣었다. 종이는 다행히 밀어 넣는대로 들어갔고 반 정도 걸쳐 넣자 상대방도 종이를 발견한 것인지 나머지 반은 안쪽으로 슥 사라졌다.

그대와 밀담을 하고 싶소.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5분 정도 뒤에 넣었던 종이가 그대로 돌아왔다. 종이 뒷면에는 철없는 어린 아이 같은 글씨로 답장이 쓰여 있었다.

좋아!

죽어가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밝은 말투로 쓰인 글과 조그만 웃는 그림에 그는 그만 작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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