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사사

-청명이한테 날개 생깁니다.

-자해, 훼손하는 내용 있음.

-논컾NCP.

백천은 청명의 옷깃 사이에서 솜털처럼 희끄무레한 것이 묻어있는 것을 보았다. 당소소는 이따금 청명을 치료할 때에 도복 안쪽의 옆구리께에 실낱같은 흰 털을 보곤 했다. 청자 배의 대사형은 청명더러 얌전히 잘 수 없으면 침구라도 제대로 정돈하라고 종종 이르곤 했다. 청명은 주로 검은 도복을 입곤 하였기에 이 모든 일에 족제비 놈의 털이 묻는 거라고 대꾸하곤 했다.


그리하여 딱히 의문을 가질 일은 아니었으나, 유이설이 가장 먼저 청명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그녀답지 않은, 매우 드문 일이었기에 청명조차 얼결에 끌려갔다.

묘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에 유이설이 청명을 데리고 간 곳은 수련조차 하러 오지 않는 인적 드문 산 귀퉁이 중 하나였다. 그녀의 말은 간결하고, 짧고, 청명을 흔들었다.


“설명.”


고작 한마디였지만 유이설은 종종 청명의 핵심을 파고들고는 한다. 고작 한마디기에 핵심만을 말한다. 청명이 너스레조차 떨지 않고 침묵으로 시선을 마주한다.


유이설의 왼발이 진각을 밟는다. 움푹 패이는 바닥이 흙먼지와 함께 고저를 만든다. 흙바닥과 바위 등으로 묻혀있던 것들이 기어코 드러난다. 청명은 눈을 내리까고 그것들을 꺼리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제멋대로 꺾인 얇은 뼈에 들러붙은 거죽과 흙먼지가 묻었으나 본래는 하얀색이었을 깃털이 엉클어져 있다. 유이설은 다시 한번 말한다.


“설명해.”


예민하고 기감이 가장 뛰어나기로는 청명 다음가는 이다. 오래 숨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금방 들킬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청명은 드물게 뒷목을 문지르며 답을 고민한다.


“비밀로 해줄 수 있어?”

“듣고나서.”


깊은 한숨이 터진다. 들어보고 나서 생각해보겠다는 말은 비밀로 해줄 생각은 없다는 답이다.


청명은 요대로 묶은 끈을 두어번 문지르고는 가볍게 상의를 벗는다. 수련할 때 사내놈들이 상체를 드러내는 일이야 흔하기에 유이설의 눈꺼풀은 움직이지 않는다. 청명의 머뭇거림을 꿋꿋하게 기다린다. 청명은 이런 단호함에 약하다. 결국, 뒤를 돌아 보여준다. 청명이 등을 돌리고 있어 보지 못하는 순간에 유이설의 눈꺼풀이 깜박인다. 금세 상의 다시 훌렁 주워입고는 언제 벗었냐는 듯 깔끔하게 정돈한다.


“대충 그런 거야. 이유는 나도 모르겠고……, 방해되서 잘라냈어. 도복에 구멍을 낼 수도 없잖아.”


짧은 순간이지만 유이설은 분명히 보았다.


날갯죽지 아래에 자리한 몇 번이고 덧칠된 흉터가 아물지 못하고 있다. 아물지 못한 살점 위로 삐죽 튀어나온 허여멀건 한 것은 아마도 날개뼈일 것이다.


유이설의 손이 청명의 등에 닿는다. 타인의 접촉에 움찔 떠는 청명의 모습은 드물다. 유이설은 아물지 못한 흉 자리를 검지와 중지 끝으로 확인한다. 약간 단단하게 튀어나온 모양이 새로이 자라는 날개뼈이다.


“안돼?”

“안돼.”


청명의 앓는 소리에도 개의치 않는다. 아파? 아픈게 뭐가 대수라고. 유이설의 손이 청명의 정수리를 콩 쥐어박는다.


“자르지 마. 모두 알아야 해.”


청명은 대답하지 않았으나 긍정임을 안다. 애꿎은 발끝이 잘라내었던 잔해를 덮어버린다.

 





 

잘라내지 않고 자라게 두는 일은 지난하다. 청명은 보름 정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나, 청명을 찾는 이도 없었다. 끼니는 챙기라는 잔소리만 문 너머로 소반과 함께 찾아올 뿐이다. 새로이 날개가 자라는 과정은 아픈 것보다 가려운 것이 심했다. 청명을 자주 등에 손톱을 올렸고, 더 많이 참았다. 이따금 앓는 숨소리를 죽이고 침상에 엎드려있곤 했다. 누울 수 없는 탓이다. 몇 번이고 잘라내고 싶은 손을 꾹꾹 눌러 참았기에 결국은 이불보가 헤지고 만다.


보름경이 지나고 난 후부터는 청명의 방 앞에 놓인 소반에 변화가 없다. 손을 댄 흔적도 없다는 것은 식사를 거르고 있다는 뜻이다. 청명의 거식이 사흘째 되었을 때 기어코 현종이 문을 열라 일렀다. 서로 눈치를 보며 문 열기를 꺼리는 제자들을 제치고 현종이 직접 백매관까지 찾아와 열어젖힌다.


정체된 공기가 순환하며 깃털이 현종의 시야를 가렸다. 처음 말을 전해들었을 때에 반신반의하던 일을 기어코 목격한다. 청명은 침상 위에서 무릎을 돌리고 주저앉아 있다. 도복에 구멍을 낼 수 없었기에 드러난 상체에 솟아난 것은 명실상부 조류의 날개와 닮아있다. 흰 날개가 청명의 상체보다 훨씬 크게 자리하여 날개로 감싼다면 숨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반짝이는 하얀 모든 것이 깃털이다.


사람에게서 깃이 돋아날 수 있는가? 깃이 돋아난 것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을 잃은 입들은 모두 다물어졌다. 청명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현종을 본다. 수많은 눈이 청명을 향해 있다. 사람일 수 있는가?


청명은 구역질이 나는 것을 참고 말한다.


“그렇게 되었네요. 저도 이유는 잘 몰라요.”


현종의 발걸음이 조심스럽게 떨어진다. 깃털이 내려앉는 발걸음으로 청명의 앞에 선다. 현종의 떨리는 손이 청명을 감싸 안아 날개 뿌리를 매만진다.


“아팠느냐?”

“그보단 간지러웠어요.”

“상처가 났구나. 누가 약을 가져오거라.”


대답과 함께 하나가 달려가는 발걸음 소리가 멀어진다. 현종은 말을 고른다. 청명이 상처받길 원하지 않는다. 이유를 물을 수도, 상태가 어찌하냐 물을 수도 없다. 청명은 어느 것도 올바르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현종은 청명을 아기 안아주듯 감싸 안고는 겨우 한마디를 뱉는다.


“수고했다, 청명아.”


잔뜩 위축된 근육이 떨리는 것이 현종에게 전해진다.


“예, 태상장문인.”


청명은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가다듬어 소리내려 했으나 나온 것은 목이 졸리는 것 같이 겨우 답한다.

 


당소소가 날개가 자라난 자리를 살피며 약을 바른다. 한두 번 잘라낸 흉이 아니다. 수십 번이고 살점을 뜯어낸 흔적은 쉬이 가려지지 않는다. 뒤에 자리하여 상태를 보는 유이설의 눈이 가늘어진다. 소양증에 손톱을 세운 상처까지 꼼꼼하게 약을 바른 당소소가 손을 내민다.


“뭐야?”


“손 내놓으세요, 사형.”


“뭔데?”


따스한 물에 적신 면포가 청명의 손톱 밑을 문지른다. 검게 굳은 핏물을 열 손가락 모두 닦아낸 소소가 청명의 양손을 모아 붙잡는다.


“긁지 마세요. 상처 덧나요.”


소소가 고개를 숙이고 있기에 청명을 소소의 얼굴을 읽을 수 없다. 물에 동동 떠 있는 면포에서 검붉은 핏물이 빠지는 것만은 물끄러미 바라본다.


“소소.”

“알아요, 말 안해요. 그래도 자르지 마세요.”


청명은 소소가 무엇을 삼켰는지, 어디까지 알아챘는지 알 수 없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익일 소소가 날개가 불편하지 않게끔 등이 파인 옷을 내민 것을 청명은 말없이 받는다. 아마도 불편하지 않게끔 여분의 도복을 다듬어 밤새 바느질하였을 것이다.


청명이 자리를 비운 보름여 간은 없었던 것처럼 다시 화산을 오르고, 수련을 하고, 절벽을 구른다. 드문드문 날개를 신기하게 힐끔거리던 시선들은 날개에 후드려맞은 후에 사라졌다.


청명이 산문 밖으로 나가지는 않지만, 다시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당소소가 기록한다. 청명이 항상 날개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 날개가 자라나는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 이보다 더 커질 수 있는가는 알 수 없다. 날개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날 수는 없다. 청명은 사람이다. 사람이다…….


당소소를 찾던 청명이 의약당에서 흐느끼는 숨소리를 듣고 조용히 발을 물린다. 그날 청명은 다시 날개를 잘라내었다. 조걸과 윤종이 그 모습을 발견하였고 바로 당소소와 운암과 현종을 불러왔다. 청명은 기형적인 뼈가 자라나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말 외에는 답하지 않았다. 사람의 것이 아닌 것을 잘라내어도 혈액은 흐르고 신경이 지나간다. 당소소는 울면서 지혈하고 붕대를 감는 동안 자르지 말랬잖아요, 단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날개가 자라서 커진 만큼 잘라낸 부위의 출혈은 더 많았기에 청명의 침구는 빨아도 쓸 수 없을 정도로 물들었다. 현종은 경을 치려다 말고 붉게 물든 침구와 지혈하는 과정을 보고는 침통한 모양으로 돌아섰고, 운암은 장문인의 명으로 청명이 자해하지 말 것을 명했다. 청명은 자신의 것이 아니니 자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그날은 조걸이 자처하여 청명의 곁을 지켰다. 지켰다기보다는 감시한다는 말이 더 옳았지만 조걸은 환자를 지키는 것이라고 우겼다.


청명은 다시 날개가 자라는 과정 동안 또다시 손톱을 세우고, 그보다 많이 참고, 훨씬 더 많이 붙잡혔다. 청명의 곁을 지키는 이는 조걸에 이어 윤종, 소소, 백천, 이설이 번갈아 섰으며 때로는 혜연이기도 하였다. 혜연이 곁을 지키던 날은 사슴 같은 눈망울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아야 했다.


“부디 시주께서 이를 고통으로 여기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 말하며 혜연이 울었다. 두 번째로 날개가 자라난 후에야 청명은 이것이 무엇인지 짐작하였고, 검에 손을 올리는 순간 모두가 뜯어말려 뜯어내지 못하였다.



 

보이는 것은 마음의 심상이다. 누구보다 욕망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 보면 누구보다 도사답다. 그러나 도사도 사람이고 말코도 결국은 사람이기에 청명은 수많은 후회를 안고서 후대를 밀어주면서도 살고 싶다 여긴다. 제가 설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저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끝없이 꿈꾼다. 꿈을 꾸는 끝에는 날개깃이 간지럽히며 청명을 깨운다. 날개는 마음의 심상이다…….


그렇다면 청명의 내면은 기형적인 날개뼈인가? 청명의 생각은 사람의 것이 아닌가? 청명은 사람인가? 손으로 쥐어뜯으려던 날개는 깃만 엉망으로 만들고 다시 제압되었다. 운암이 장문인의 명을 어긴 죄를 물었으나 청명은 자신의 것이 아니니 죄를 어긴 것이 아니라 답하여 운암의 말을 잃게 만들었다.


“청명아, 너는 사람이란다. …사람이야.”


청명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으로 남는 것에는 잘못이 없단다.”


청명은 눈을 감았고 공손히 읍하였다.

 




 

나흘째 되는 날, 꺾인 가지가 떨어지듯 깃털이 흩날렸다.


마침 바람이 불었고 산문 안으로는 청명의 깃털이 내려앉았다. 기형적이던 날개뼈를 이설이 줍고, 백천이 팔랑이는 깃털을 잡아챘다. 눈과 같은 깃을 모두가 하나씩 주워들었고 각자의 곳에 보관하였다.


여전히 덜 아문 살점에는 새로이 흉이 지고 청명은 이따금 손톱을 세웠지만, 날개는 새로이 자라지 않았다. 새 깃이 돋아나지 않아도 청명은 날개가 자라는 것처럼 굴 때가 있었고 여전히 옷깃이나 침구에는 짐승의 깃 같은 희끄무레한 것이 붙어있곤 했다. 그럼에도 청명이 사람으로 남았기에…….


유이설이 마지막으로 떨어졌던 날개의 뼈를 조각하여 장신구처럼 만들어 건네주었다. 조각했다고 하기엔 부족한 말이지만 유이설은 조각이라고 하였으니 조각이다. 타원형으로 둥글게 깎은 뼈에 구멍을 내고 가죽끈으로 꿰어 만든 것은 퍽 목걸이 같기도 했다. 용도를 정하지 못한 날개뼈는 청명이 보관하는 곳에 고이 넣어두었다.

 



여전히 청명은 아무것도 없는 날갯죽지에 손을 세우고, 백천이 족족들이 발견하여 잡아 말리며, 당소소가 대침을 들며 타박한다. 윤종은 온건한 깃들을 보면 청명의 것이든 아니든 곱게 모아두었고, 조걸은 아무것도 날리는 것이 없는 곳에서도 간지러운 듯이 재채기를 하곤 하였다.

 



 

그리하여 청명이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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