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뿐 아니라 건넛동네, 그 건넛동네까지. 여느 체육관에 견주어보아도 규모에선 밀리지 않을 만큼 넓은 축에 속하는 ‘대우주짓수’ 한켠. 좀 사이코 결벽증 기질이 있는 편이라, 운동시간 사이사이 오픈짐마다 찍찍이며 소독제가 든 분무기와 밀대를 밀고 다니는 김관장 매의 눈도 피해간 좁은 구석탱이. 평소라면 존재하는지 인지도 못했을 그 공간과 공간 사이,
입을 다문채로 꼬고 있는 다리를 가볍게 흔들면서 현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타미를, 가경은 옆눈으로 살피며 업무수첩에 무의미한 줄을 몇 개 더 그었다. 생각보다? 예상외로? 아니.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고 해도 그다지 잘 어울리진 않을터였다. 일하는 현의 ‘스칼렛’ 본업 모먼트 같은 것을 자기가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입사 초
평소와 다름없이 느즈막히 퇴근해, 현의 정성이 가득 담긴 저녁을 함께 먹고, 각각 설거지며 식탁을 치우고 씻고 나와 각자 할 일을 하는 일상적 풍경은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그 안에서 잘게잘게 느껴지는, 신발 속 모래알 같은 어색함의 균열 같은 것이 가경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이게 저 혼자만 느끼는 어색함일까, 아님 실존하는 문제가 까슬하게
아무리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지만. 안그래도 침묵에는 좀 약한 편인 브라이언은 멀뚱멀뚱 자길 보면서 물음표를 띄워보이는 옛 동료들을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두 분은 어디까지 알고 있느냔 질문에 대고, 저희 서류에 싸인만 안했지 NDA(비밀유지계약) 체결한거 아니었던가요. 싱긋 웃으며 눈을 똑바로 마주치는 송대표가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제정신인가. 쾅쾅- 망치로 뼈를 내리치는듯한 둔탁하고 무거운 통증이 아픈 손목을 타고 올라 목 뒤를 후려치고, 이를 악무느라 온통 굳어진 머리뼈 안을 미친듯이 휘저었다. 저기 잠시...! 도무지 견딜수가 없는 고통이라, 정말 견디고 견디다 못해, 외마디 비명같은 하지만 데시벨은 고작 기계음에 덮힐만큼 조그맣게 한마딜 내질러본 가경은 살짝 기계를 떼어주는
자칭 미식가 모임, 타칭으론 '프락치 모임(약간의 농담과 애정을 담아)', 정식명칭으로 하자면 '사내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비공식적 창구' 라는 긴 명칭을 가진 점심모임에서 타미는 꽤나 레귤러 참석자에 속했다. 최소 1인 이상의 팀장 혹은 임원이 참여하고 최대인원이 6인 이하일 경우, 점심비용을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이 모임은 렙유의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타미는 습관적으로, 아니 습관이라기엔 얼마되지 않았지만 넓직한 책상 오른편 꽤나 한가득 자릴 잡고 앉은 퐁실퐁실 하얀 무민 인형의 귀때기를 손 끝으로 조물댔다. 보들부들 몰랑몰랑. 원래대로였음 조직장 보고 후, CEO 면담 및 HR 협의의 프로세스를 탔어야 할 팀장급 퇴사가 두 사람의 공백으로 인해 조직장 보고는 타미가, 현을 건너뛰고 가경과 퇴사면담
- 네 이해합니다. 앞으로 적당히 기울여 경청하고 있음을 어필하던 상체를 세운 가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식적으로 입꼬릴 올려보였다. 부정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맘을 담고 싶었으나 잘 전달이 됐을지는 솔직히 확신 할 수 없었다. 자의로 계획을 세워서 -뒷공작을 꾸미려는 계획이 아닌- 것도 순수하게 놀기 위한 계획을 세워서, 이토
선배..에? 눈을 뜨자마자 반사적으로 옆자릴 더듬었던 현은, 휑한 침대에 어리둥절하며 일어나 슬리퍼를 꿰어 신었다. 드물게 가경이 먼저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현이 일어날 때까지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다거나, 잘잤니 하며 웃는 가경이라 빈자리가 헛헛했다. 화장실에 있나 싶어 들렀다가 온 김에 볼일을 보고, 거추장스러운 잠옷바지를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