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게토] 이카루스는 날지 않는다
현대AU / 공군 사관생도 고죠 X 아마추어 클라이머 게토
* 포스타입 재업로드
* 사망소재 有 (Trigger Warning : 가까운 사람의 죽음, 산악사고, 추락사)
* 북미의 어디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실존하는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습니다.
BGM : Something Just Like This [Acoustic Version] - The Chainsmokers & Coldplay
https://youtu.be/6UgAjRu6ZEI?si=7JE0vT9b56YrdKDc
아스팔트 위로 작열하는 중부의 폭염에서 벗어난 여름휴가 첫날, 고죠 사토루는 옛 연인의 부고를 들었다.
그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며 매달렸던 로맨티스트야 신상명세도 두엇 댈 수 있지만 정말로 누군가 죽어버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 소식을 죽은 사람의 직장 동료를 통해 들은 것도 이상했다. 비상연락망에 번호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진심인가, 재작년에 헤어졌는데.
전부 이상한 일들뿐이었다. 문제의 애인이 어느 국립공원의 석벽에서 죽었다는 것까지.
고죠는 습관처럼 제복으로 향하던 손을 멈춰 세웠다. 게토 스구루는 전사자이기는커녕 군대의 문턱조차 밟지 아니하였으므로 군례를 대기에는 부적절하다. 애초에 장례식도 아니었다. 관련된 절차는 열흘 전에 모두 끝났다고 한다. 게토가 재직하던 작은 신문사는 그의 물품을 인도받을 가족을 한참이나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비상연락망의 연락처를 더듬어나간 것은 그들이 옛 동료에게 보낼 수 있는 최선의 호의였다. 그 연락망이 2년째 갱신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지만.
유품이라고 해봐야 중형 폴딩박스 한 개를 간신히 채우는 수준이었다. 그 단출함이 남의 눈에도 궁색했는지 상자를 들고나온 직원은 자리에 있던 것을 빼놓지 않고 담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고죠는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조금만 뒤적여보아도 반쯤 남은 진통제나 에너지바 껍질, 조금 구겨진 담뱃갑 같은 것들이 손끝에 걸려 나왔으니까. 정말 남아있던 것들을 전부 긁어모은 모양이었다.
두통은 끝내 달고 산 것이 분명하고, 끼니를 쉬 거르는 버릇도 고치지 못했던 것 같다. 심지어 금연도 실패했다. 이렇게 살 거면 산은 대체 왜 탄 거야? 수지 타산 안 맞지 않아?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아냐? 고죠는 조수석에 박스를 내려두며 혀를 찼다.
뭐, 굳이 따지자면 게토 스구루는 처음부터 예사로운 편이 아니었다. 그 샌님 같은 얼굴로 양아치 같은 귀걸이나 하고 다니던 하이스쿨 시절부터.
이상한 앞머리의 아시안 소년. 비슷한 핏줄을 보는 것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하여튼 앞머리가 꽤 웃겼다. 그래서 꽤 자주 말을 붙였고, 놀렸고, 싸웠고……. 간신히 화해한 다음에는 이상하게 붙어 다녔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동선이 비슷했다. 머잖아 고죠는 이 우연에 대해 운명? 이라며 상쾌하게 웃었다. 게토는 질색을 했다.
어린 게토는 반응이 박했다. 그런 점이 얄미워 치근대던 것이 어느 날 고백이 되었다. 게토는 그날도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너 좋다는 여자애들로 학교 본관을 감으면 세 번은 족히 감을 텐데 무슨 그런 농담을 하냐며 고개를 돌렸는데, 고죠는 알고 있다.
게토 스구루는 고죠 사토루를 좋아했다. 여느 어린 연인들이 그렇듯이.
고죠는 운전석에 기대앉은 채로 생각한다. 모처럼의 여름휴가 첫날. 어디서 어떻게 휴가를 보낼지는 정하지 않았고, 귀찮은 연락들은 전부 막아버렸고, 에어컨을 실컷 틀어놓고 옛날 시리즈 영화나 볼까 했는데.
가끔은 트래킹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그날 밤은 신문사 근처의 호텔에서 묵었다. 들어가는 길에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이 보이기에 트래킹화를 샀는데, 아무래도 신고 있던 스니커즈와 과히 다르지 않다. 사기를 당했나. 고죠는 고개를 기울인다. 설사 그렇대도 확인해줄 이가 없으니 영 모를 일이다.
호텔에서 국립공원의 입구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빠듯한 휴일로도 오가기 넉넉한 접근성 덕인지 코스 초입이 붐볐다. 사람이 죽은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으나, 고개를 들면 먼 곳에 화강암으로 된 거벽이 보였다. 그것은 완만한 사면 사이로 삼엄한 신처럼 서 있다.
게토 스구루는 저곳에서 죽었다. 낙석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앞서간 이의 부주의로 발생한 뜻밖의 변고였다. 어느 산에서는 해마다 기십이 같은 사고로 죽는다. 게토 또한 통계의 숫자 하나로 남을 것이다.
고죠는 안내 표지판을 바라보다 우편의 길을 골랐다. 길의 끝에서 암벽의 정상과 만난다는 코스였다.
고죠가 기억하기로, 게토가 뜬금없이 암벽을 오르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이었다. 무슨 답사에 끌려갔다가 클라이밍 팀을 만났다던가. 야밤의 휴대폰 너머에서 들리던 잠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장거리 연애에도 익숙해지던 중이었다.
‘운동 안 좋아하잖아? 산은 무슨.’
‘높은 곳은 좋잖아. 시원하고.’
‘그럼 케이블카를 타지.’
‘직접 올라가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까.’
고죠는 웃었다. 스구루, 높은 곳 좋아해? 나 제대할 때까지 기다릴래? 경비행기 태워줄까? S사의 소형기 모델이나 의무복무기간 후의 민항기 조종 자격 따위로 길어지는 이야기를 게토는 끊어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갈무리했다.
고죠는 그날의 대화를 잠시 잊었으나, 정론주의 모범생은 지나가는 말을 할 줄 몰랐다. 그놈의 산 때문에 게토의 아파트 문 앞에 버려져보고 나서야 알았다. 철두철미한 깜짝 방문이었는데, 산에 가는 날인 줄을 미처 몰랐다. 돌덩이 기어오른다고 나를 버려? 물론 버릴 생각까지는 없었겠지만.
저녁때가 되어서야 마주 앉은 게토는 나름의 성심을 다해 연인을 달랬다. 그는 이야기를 들어줬고, 웃어줬고, 고죠가 허리에 매달려 있어도 그대로 두었다.
‘사진 볼래?’
게토는 고죠에게 붙들린 채로 손을 뻗어 낡은 랩탑을 당겨왔다. USB 포트에 카메라를 연결하면 팬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날 밤은 불을 끈 채로 붙어 앉아 게토가 찍은 사진들을 구경했다. 고죠가 기억하는 사진들을 몇 장 지나고 나니 모퉁이를 돈 것처럼 풍경이 변했다. 어두운 방 안을 모니터 불빛이 푸르스름하게 밝혔다.
그곳에는 바위와 비탈과 하늘뿐이었다.
때로 새가 날았는데, 게토는 새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 사진에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고죠는 헤어지는 순간까지 이해할 수 없었다. 봉우리의 이름이나 해발고도 같은 것을 설명하는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저씨 같은 사진이라며 타박이나 놓았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도 그것이 틀린 평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인에게 보여주겠다고 꺼내온 것이 본인은 결국 한 장도 나오지 않은 사진들. 사람을 찾느니 바람을 세는 게 더 빠를 정경.
알 수 없다. 오르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높은 곳이 좋다면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백 년 전에 이미 하늘을 날았다. 사람은 철조 날개를 단 채로 대륙을 횡단했고, 바다를 건넜고, 기어코 달에 발을 디뎠다. 태양신의 이름을 딴 우주왕복선이 성층권을 향해 날아갈 때는 더 이상 어느 산도 인간보다 높은 곳에 있지 아니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진 후로도 세기가 계절처럼 바뀌었으니 하늘은 더 이상 미지의 첨단이 아니다.
그럴진대 등반은 대관절 어떤 종류의 야만인가?
고죠는 이마의 땀을 닦아낸다. 체력으로 둘째가라면 조국이 서러울 장교 후보. 개중에서도 고죠의 피지컬 테스트 스코어는 충분히 상급이었다. 그런데도 땅이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감각에 근육에서 열이 올랐다. 짐이라고 해봐야 간소하다 못해 한빈한데도 군장을 멘 것 같다. 땅 위에서 질량은 중력과 교차해 무게가 된다. 걷는다는 것은 이런 일이다. 고죠는 습관처럼 그것을 비행과 비교한다. 조여드는 폐부. 그레이 아웃. 중력을 뿌리치는 속도와 심장이 멀어지는 고양감 같은 것.
시선을 모로 들어 올리면 석벽이 어느새 제법 가깝다. 그곳에 밧줄 하나를 늘어뜨려 두고 온몸으로 중력을 거스르는 거미 같은 그림자들이 있다.
고죠 사토루는 구태여 애인의 취미생활을 단속할 뜻이 없었다. 어쩌다 사진 구석에 등장하는 태닝 마초들도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고죠 사토루였으니까. 프레임 모서리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것이 건치의 미남이든 할리우드 타입 미녀든 고죠 사토루를 애인으로 둔 사람이 그편에 한눈을 팔 일은 없다고, 고죠는 불식간에도 믿었다.
그러니 두 사람이 헤어진 것은 최소한 바람 탓은 아니다. 이별에 대해 말하는 간결한 말씨에서도 다른 사람의 이름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고죠 사토루가 차인 이유는 최소한 누군가에게 밀려났기 때문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딱히 위안이 되는 사실은 아니지만.
‘너는 어린애가 아니고,’
게토 스구루는 정확하게 고죠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네가 아니야, 사토루.’
그리고 웃었다. 마른 뺨 위로 입매가 말려 올라갔다. 대체 또 무슨 속 모를 소린지 알 수가 없었는데,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난 고죠에게 게토는 덧붙였다. 사토루, 너는 네가 모는 전투기가 애들 자전거인 줄 알아? 전투기에 대해서라면 당연히 고죠가 가장 잘 알았는데도 게토는 정갈하기까지 한 투로 일갈했다. 그 앞에서 고죠는 자신이 무엇을 알거나 모르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조용한 낯 뒤로 대체 어떤 계산기를 수천 번씩 두드렸는지 고죠는 알고 싶었다. 낡은 아파트와 엘리트 파일럿과 남자 애인과 고죠의 이름과 학자금 대출과 하여튼 더하고 뺀 것이 모두 무엇인지 궁금했다. 고죠는 그것들을 모두 없던 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었다. 제아무리 복잡한 수식이라도 0을 곱해버리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고죠는 이미 그 말도 안 되는 연산에 대한 답을 들었다. 나는 그렇게 못해. 네가 아니니까.
헤어진 이후로는 각자 살았다. 온종일 붙어있던 하이스쿨 시절이나 틈나는 대로 그리워하던 성년의 초입이 도끼로 찍은 듯 떨어져 나갔다. 밤마다 오가던 전화 통화가 사라지고 나니 우습게도 인생에서 게토 스구루도 사라졌다. 선물 받았던 만년필이나 시계에도 남은 것은 고죠의 이름뿐이었다. 보통 이런 건 자기 이름도 새겨주지 않나. 혹시 줄 때부터 헤어진 다음을 생각했나. 그렇다면 두 배로 억울한 노릇이었다.
고죠는 땀에 미끄러진 시계의 버클을 다시 조였다. 조종사의 눈에 방해가 될까 상표조차 새기지 못한다는 파일럿 워치의 스트랩에 지져 새긴 알파벳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의 이름이었던 것이 나머지가 긁혀나가고 머리글자만 남은 것 같다. S와 G 위로 땀방울이 떨어진다.
고죠가 시계를 버리지 않은 것처럼 게토도 고죠의 연락처를 지우지 않았다. 그저 연락망 갱신을 잊었을 뿐이라고 항변할 사람은 죽어 사라졌으니 멋대로 오해해도 좋을 것이다. 더불어 그는 게토 스구루가 여전히 자신이 알고 있는 저층 아파트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높은 곳이 좋다면서 길가의 가로수보다 낮은 곳에 오래도 살았다. 차로에 트럭이라도 지나가면 창문이 흔들리던 곳에.
경비행기가 아니라 전세기를 태워준대도 싫다고 했으니 그보다 높은 집으로 데려다주겠다는 프러포즈는 어림도 없었겠지. 그러고도 밧줄 하나에 매달려 바위벽을 오르는 짓을 하다가 영영 죽어버린다. 고죠는 바위를 오르는 게토의 모습을 상상한다. 사진도 한 장 보지 못했지만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묶은 머리나 땀이 흐르는 옆얼굴. 뻗은 팔이나 디딘 다리나 올려 뜬 눈. 비가 오면 젖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달궈진 바위가 살갗을 할퀴는 허공. 그 사이에 못을 박고, 무릎을 끼워 넣고, 매달리고 붙들어 기어올라서, 기어코 끝에 도착하면,
바람이 분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고죠는 눈가로 흘러내리는 땀을 그대로 둔 채로 맞은편의 사람들을 본다. 헬멧을 쓰고 하네스를 비끄러맨 사람들이 봉우리 끄트머리에 모여 앉아 있었다. 개중 몇은 하강 준비를 하는지 일어나 장갑을 고친다. 고죠는 묻고 싶어진다. 이곳에서 뭘 하고 떠나는 길이냐고. 저기요. 제 애인이 이 짓을 한다고 저도 바람맞혔는데요. 혹시 저만 모르는 뭔가 있나요? 뭐가 있어서 고작 몇 주 전에 사람이 죽은 곳에 다시 매달려 올라? 높은 곳이 좋아? 그러면 케이블카나 타시지 왜.
‘직접 올라가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까.’
저 아래에는 아직 네 핏자국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대단한 절경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부직포 같은 평야나 성냥갑 같은 도시나 핏줄처럼 늘어진 길 같은 것들 뿐이다. 하늘이 가까운가 싶었더니 구름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천사의 음악 소리 같은 것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더운 얼굴에 식은 바람이 분다.
자리에 주저앉으면 눈높이가 순식간에 떨어진다. 사진을 찍는다며 수선을 떠는 트래커들의 목소리가 정수리 위로 멀어진다.
‘나는 네가 아니야, 사토루.’
너는 두통을 달고 살고 끼니를 잘 거르고 가느다란 담배를 피운다. 오래된 아파트의 2층에 살고 운동은 좋아하지 않는다. 귀걸이는 항상 비슷한 종류만 사고 손톱 끝이 늘 단정하고 당겨 안으면 나무줄기 같은 향이 난다. 비밀은 많고 말수는 적은 주제에 빈정대기 시작하면 질 줄을 모르고 그러면서도 순식간에 꽉 막힌 서생 같은 표정을 지을 줄 안다. 너에 대해 아는 것이 이렇게 많은데도 나는 네가 아니다.
내가 너였다면 이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었을까?
‘사토루,’
그랬으면 헤어지지도 않았겠지. 몸을 뒤로 젖히면 가느다란 비행운이 보인다. 고죠는 웃는다. 어쩌면 너는 높은 곳이 좋았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대신 낮은 곳이 지겨웠을지도. 피차 땅바닥에 붙어사는 것들을 계산기에 두드려 넣는 일에 질려버렸는지도.
그래서 너는 낮은 것들을 전부 버렸고,
‘───.’
이 땅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왜 산에 오르는 것일까? 편평한 대지가 두렵기 때문에 높은 곳으로 이끌리는 것일까? 인간 사회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그곳으로부터 도망치고, 그들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을 시도하는 것일까? 갈 길은 멀고 험하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화환을 씌워 줘야 한다. 설령 그가 추락한다고 해도, 일종의 영광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 로저 젤라즈니, 『이 죽음의 산에서』 中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