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란 무엇인가

Taku by 395

언뜻 굉장히 사색적인 타이틀이지만 이것은 푸념이다. 글쓰기가 일종의 재활이 되고 있는 왕년의 오타쿠가 방 한구석에 찌그러져 끄적이는 푸념. 왜 왕년의 오타쿠인가. 지금은 오타쿠가 아니라는 기만을 하는 것인가. 그런 건 아니고 나는 오타쿠로서 개빡세게 2차 창작을 하던 젊은 날에 비하면 너무 낡아버렸기 때문이다.

매주 1시간 전력으로 7,000~8,000자 팬픽을 뽑아내던 그시절.(지금은 5,000자 쓸 때 2시간 걸리는듯) 알바 늦게 끝나면 전력 참여 못 할까봐 마을버스 기다리는 시간마저 아까워 그냥 졸라 달려서 집에 갔던 그시절.(물론 마을버스 5분 기다렸다가 타고 가는 게 훨 빨랐음 패기 도랏나) 삿되는 미감으로 굳이굳이 포토샵 끼적여 지인 부스에 꼽사리로 무료배포할 중철제본 만들었던 그시절.(소*프린트 사장님 잘 지내시나요)

그때의 열정 넘치던 오타쿠는 어디로 사라졌나. 최근 외장하드 정리하면서 그때 썼던 글 보니까 쫌 쪽팔리긴 한데 걍 너무 기특함. 부지런함 미쳤나. 아무래도 그때 평생 쓸 오타쿠열정 다 소진해서 지금은 걍 방바닥에 누워 궁뎅이나 벅벅 긁고 있는듯.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오타쿠가 아닌 건 아니야. 하지만 머글이라기엔 너무 먼 길을 떠나와 돌아갈 수 없어. 그치만 오타쿠라고 하기엔 어딘가 어중간 상태 아닌가.

[대충 이 정신머리로 살고 있음]

제목 이야기 하다 왜 갑자기 추억팔이로 튀었는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글 제목을 정하는 것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아직도 2차 창작을 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글을 쓰면서 글에 어울리는 제목을 짓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됨. 예전에는 기깔 나는 것까진 아니어도 꽤괜ㅎ스러운 제목을 한 번씩 뽑아냈던 것 같은데 창의력이 바닥났나 아니면 이것 또한 열정이 부족한 탓인가. 뭔가 지금 내가 정하는 제목은 뭔가 하나같이 두루뭉술애매모호아부지돌굴러가유 느낌이란 말이다. 아 이런 걸 고민하는 것도 진짜 과한 오타쿠 같다.

물론 통상적으로 제목을 정하는 형식이 있긴 함. 내용을 함축하는 형용사+명사의 조합이라든가 그냥 명사형 단어 한 개. 나는 옛날 오타쿠라 신식 라노벨처럼 제목을 짓지 못한단 말임. 뭐랄까 좀 내용을 알 것 같으면서 모를 것 같으면서 제목에 나만의 어떠한 의미를 담아내는 제목을 지어보고 싶단 말이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직관적인 제목을 갖다 붙이고 있는데. 뭐 욕망은 가질 수 있지 않나요.

새삼 제목 짓는 걸 참 못함. 따지고 보면 오타쿠짓하는 트위터 계정 닉네임도 일종의 제목 아닌가. 근데 닉 짓는 것도 어려워서 걍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 써놨다가 자주 듣는 노래 장르에 오타쿠 갖다 붙인 게 닉이 됨. 너무 얄팍해 보임. zl존モト쿠乃(。•̀ᴗ-)✧까지는 아니어도 좀 그럴듯한 닉을 떠올릴 만한 영감조차 바닥나 버린 거야 나는. 개슬프네. 근데 이런 걸 슬퍼하는 것 자체가 진짜 과함. 정말 오타쿠로서 적절한 덕목을 잘 갖추고 있는듯. 지금 이렇게 오타쿠라는 단어 남발하는 것도 결국 스스로를 정의하는 명사 외에는 적절한 명칭을 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잖슴 이런 젠장.

어쨌든 하고자 하는 말은 제목 짓는 건 어렵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노래나 책 제목을 따오기도 했는데 요즘은 어째 그대로 긁어다 쓰는 건 좀 고민된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치고 Shape of Water 너무 잘 빨아쓰긴 했는데 마 길예르모토토로 아리가또네~ 그건 근데 썰이라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거라고 변명을 해봄ㅋ

냅다 과거를 돌려보자면 한창 열정 넘치는 패기 미친 새끼갓타쿠 시절에 제목을 먼저 박아놓고 글 쓴 적이 없는 것 같다. 지금은 걍 숫자 아무거나 넣어놓고 쓰다가 문득 떠오르면 교체해서 넣어놓고 올리기 전까지 제목이 이게 맞나 10초 고민하다 뭐 떠오르는 거 없는데 어캄ㅋ 깊생 포기하고 올리는듯.

[제목 ㄹㅇ 이렇게 해놓음]

지금 이렇게 푸념하는 것도 제목 정하다 현타가 왔기 때문이란 말임. 저 두 개 제목 어캄. 떠오르지 않음. 난 창의력도 딸리고 논리력도 부족하고 사회성도 부족하고 이 거친 세상 살아가기 너무 적합하지 않은 인간상인듯. 하지만 어쩌겠음. 평생 이렇게 살았는데 뭐 어찌저찌 계속 이래 살것지. 갑자기 떠오른 제목 있어서 한 개는 걍 그걸로 해야지. 나머지 한 개도 벼락 맞듯이 떠오르겠거니 하겠음. 뭘 어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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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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