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arus
Oreste O'Flynn
어린 시절의 베아트리스는, 삼촌의 까끌까끌한 수염이 싫었다. 제대로 빗어 묶지 않아, 비죽 튀어나온 깔끔하지 못 한 꽁지머리도 싫었다. 자신을 부르는 그 애칭도 싫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삼촌을 못마땅해하셨다. 그야 가문에 어울리지도 않고, 다른 가문 구성원들과는 달리 깔끔하지 않은 차림에다가, 자꾸만 머글 사회를 들락날락하고는 궁금하다며, 신기하다며 그들의 물건을 가져오는데. 어찌 마음에 들어하겠는가.
가식 없는 웃음을 짓는 얼굴. 새하얀 눈을 닮은 머리 색과 긴 속눈썹, 아버지와 꼭 닮은 보라색 눈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그를 에버화이트 가문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모습과 행보만을 보였으니까.
“베아트리스, 우리 귀여운 아기 사자.”
“그렇게 부르지 말래도! 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베아트리스가 솔직하게 대할 수 있었고, 제 안의 모든 감정을 드러내기에 거리낌이 없었던 사람.
어쩌면, 단 한 번도 싫어했던 적이 없을지도 모를 사람.
제가 밟고 있는 자리를 위해 완벽하게 잊어야 하는 사람.
이제는 떠올려서는 안 되는 사람.
베아트리스는 오레스테에게서 삼촌을 겹쳐 보았다. 자유를 손에 쥐고 해방된 사람 특유의 눈이, 그 표정이 너무나도 닮았으니 말이다. 오레스테의 눈에 비치는 빛이 지독하게도 부러웠다. 그 빛을 바라보는 것이 눈부시지 않아 보이는 것이 부러웠다. 그럼에도, 베아트리스가 볼썽사납게 질투만 하고 손을 뻗어 움켜쥐거나 눈을 뜨지 못 하는 것은… 이제 와서 그 빛을 꿈꾸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진창에 빠져 겨우 숨만 쉬고 있는데… 아니, 사실은 숨조차 멎었을지도 모르는데. 진창인지도 모르고 쉰 숨에, 폐부 가득 진흙이 들어차버렸으니 말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마지막 한 움큼의 날숨이 오레스테에게 보인 질투일지도 모르겠다.
“너를 진창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너를 거기서 건져낼 거야. 그 사람들이 망가지면 네가 더한 진창에 빠진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아닐 거야. 넌 자유로워질 거야. 내가 그렇게 된 것처럼, 너도.”
‘넌 삼촌과 말하는 것이며, 생각하는 것 마저 비슷하구나.’
“자유로워질 수 있어.”
서로를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살아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대로 손가락이 터져서 붉은 피가 흘러넘칠 것만 같이 손 끝이 아려온다.
“말로는 무슨 말이든 못 하겠어.”
베아트리스는 오레스테의 자유를 약속하는 말에 표독스러운 목소리와 비웃음으로 일괄했다. 그 말을 믿기엔, 그간 베아트리스가 봐온 오레스테는 회피하고, 도망가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모습이었으니까. 비록, 그것이 베아트리스가 아는 오레스테의 단면일 뿐일지라도 당장 그 머릿속엔 그런 모습만이 가득했다. 사람은 원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에게 유리한 생각만 하는 법이니까. 게다가 그 근거 없이 낙천적이기만 한 말을 믿기엔, 베아트리스는 많은 것을 포기했으며, 포기한 것들을 주워 담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고. 행복을 연기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익숙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베아트리스는 아마 자신은 오레스테와 같은 표정을 짓거나, 같은 눈빛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제된 사자에겐 움직이거나 변화할 근육이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어째선지 베아트리스는 기대하고 싶어졌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오만하리만치, 자신감 넘치는 그 말에. 그 녹색 눈에 비치는 세상의 빛에. 제가 나아갈 곳을 눈 앞에 두고도, 자꾸만 빛을 향해 고개가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제 안에 꿈틀대는 그 기대감이란 감정에, 베아트리스는 속이 메스꺼웠다. 오롯하게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말하는, 현실적이지 못하고 거창하기만 한 말 몇 마디에. 몇 년 간 짓이기고, 꾹꾹 뭉쳐, 깊숙한 곳에 파묻어둔, 절대로 커져서는 안 되는 ‘베아트리스’가 꼭 물을 빨아들이며 몸집을 키우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는 절대로 아니 되었다. 그간 노력한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버릴 테니까.
“…나를 이곳에서 구하려고 하지 마. 나는 세상을 진창으로 만들 거야. 진창 속에서 모두가 자유를 잃고 숨을 쉬지 못할 때,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자유롭게 활공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건져내니 뭐니 하는 헛소리는 하지 마. 이곳을 포기하는 순간, 지금껏 포기해 온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서 사라질 테니까. …내가 뿌리 박혀있는 곳에서 뽑아내지 마. 그거야말로, 나를 죽이는 길이야.”
언젠가 세상의 빛을 봤던 적이 있다.
그 하늘에서 활공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하지만 밀랍으로 만든 날개는, 태양 아래에서 비상할 수 없다.
그러니, 태양이 없는 진창 속에서 날갯짓해야 한다.
그것만이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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