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ken
To. Oreste O'Flynn
*Warning: 가스라이팅 및 수위 있는 욕설
“트릭시, 그러니까 넌 그렇게만 살면 되는 거야. 쉽지?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야지. 그게 옳은 길이니까. 너는 똑똑한 아이잖아? 네가 본 세상이 틀렸다는 건 이제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해. 무엇이 옳은 것인지, 이제는 정말로 잘 알겠구나. 응, 그럼. 모를 리가 없지. 누가 가르쳤는데…. 이대로만 계속 하면 돼. 이대로만 하면, 부모님도 집안의 어른들도 전부 널 자랑스러워할 거야. 이 집이 아니면 어디서 네가 행복할 수 있겠어? 어디를 가도 집만큼 좋은 곳은 없을 거야. 게다가, 오로지 널 위해서 옳은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다니, 넌 정말 축복받은 아이라니까. 나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내가 먼저 느낀 걸 네게 알려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는 나처럼 고생하지 않을 테니까. 사랑스러운 동생이 힘들길 바라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어. 그렇지? 이게 다 내가 널 사랑하고 아껴서 하는 말이야.”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부터 눈을 감는다. 진실을 노래하는 소리에 귀를 막는다.
눈 대신 단추를, 고막 대신 솜을.
인정은, 사랑이 되고, 사랑은 양분이 되어 그 집에서 생존할 수 있게 해준다.
이곳은 벗어나고 싶은 곳이면서도, 나는 이곳 외에서는 행복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을 테니까.
베아트리스는 오레스테가 페레그린에 들어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야, 예전에 그와 나눴던 말들을 떠올리면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베아트리스의 생각엔, 오레스테와 자신은 닮은 구석이 있었으니까. ‘인정받고 싶다.’ 이건 당신과 자신을 이루는 핵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겹겹이 쌓여 이뤄진 진주를 깨트리고 깨트렸을 때, 가장 중심에서 절대 바뀌지 않을. 그 티끌 같은 것 말이다.
“걔보단 내가 더 잘할 것 같은데…”
“나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자꾸 질투하고 배 아파하는 거지만.”
“…어쩌면 완전히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을 해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 점이 비슷한 것 같아? 어떤 면에서든 베티랑 닮으면 나는 좋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랑 내가 앞으로 어떻게 변한다 하더라도 네 편이 되어 줄게. 맹세할 수 있어.”
그러니, 베아트리스는 막연하게 오레스테 역시 자신과 같은 길을 걸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정받기 위해서 고개를 숙이고, 순응하면서 말이다. 그야, 그건 오레스테의 핵심일 테니까.
하지만-
“반가워야 할 사람이 반갑지 않은 곳에 있는데,”
“유감이지만 약속은 이대로 파기야.”
“내 인정욕은 이미 충족됐어.”
“이제 가족들한테 인정받는 것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아버렸거든.”
“그 숨 막히는 곳에서 단 한 순간도 살아 있는 채로 견딜 자신이 없거든.”
베아트리스는 오레스테의 행보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오레스테가 가출을 했다는 소식은 건너건너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야, 자신과 당신은 비슷하지 않던가. 줄곧 그렇게 믿어왔으니까.
‘오레스테, 우린 비슷한 욕망을 품은 사람이잖아. 같은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어째서 너는…’
‘어째서 너만 거기서 벗어난 거야?’
베아트리스의 핵심을 둘러싸는 막이 타오른다. 추악하고, 저열하고, 악취 나는 감정으로.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그 모습이, 자유로워 보이는 그 모든 것이 짜증났다. 너도 나처럼 살아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기점으로 감정이 번져나간다. 추악한 감정이 비어버린 껍데기 속을 채워갔다.
‘네가 나처럼 인정욕에 몸부림치면 좋겠어. 네가 나와 같은 진창에 빠지면 좋겠어. 네가 나와 같은 무게를 짊어지면 좋겠어.’
‘나는 네가…’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꽉 쥔 오레스테의 손이 베아트리스의 눈에 들어왔다. 치고 싶은 것을 참는 듯한 그 모습에 심사가 더욱 뒤틀렸다. 꼴에 참는 건가 하는, 그런 못된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니, 일부러 혀로 칼날을 만들어낸다. 저와 달리 착한 넌 하고 싶은 행동을 참고, 제게 기회를 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참을 거면, 네 그 집에서 버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가 한 대 치겠다? 머글처럼 굴지 마, 할 거면 지팡이를 들어.”
순식간이었다. 자유가 사라진 베아트리스의 손을 오레스테가 당기자, 중심을 잃는다. 몸이 휘청이자, 느리게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아, 이 좆같은 구두. 세상에서 가장 좆같고, 불편한 이 굽이랑 구두! 어머니가 좋아하시지만 않았어도…!’
당기는대로 쉽게 몸이 끌려가면서도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새로 다잡는다. 베아트리스는 이 상황이 견딜 수가 없었다. 오레스테가 지팡이를 겨눴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그냥, 이 모든 상황이 화가 났다. 오레스테를 도발한 것도 제 선택이었고, 오레스테와 달리 인정욕구에 순응한 것도 제 선택이었던 주제에 어이없게도 말이다. 그러니, 이성을 잃은 베아트리스가 구속된 손에 힘을 주며 비틀어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이거 놔!! 뭐? …참아 줘? 참기 싫으면, 참지 마!! 누가 너한테 참으래?! 애초에 넌 안 참고 도망갔잖아!!”
베아트리스는 몇 번 더, 비틀어대다가 되려 장갑 안의 손가락 끝이 아파오자 악에 받친 숨을 고르며 노려본다. 저열하고 추잡한 눈빛. 그리고 그 이면의 또 다른 감정. 대화가 아니라 악을 쓰는 소리에 가까운 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나한텐 아무 일도 없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너도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했어야 하는 거잖아!! 얌전하게, 네 형이라는 틀을 기준 삼아서… 너를 그 안에 집어넣어야 하는 거였잖아!!! 왜 너는 거기서 벗어나? 왜 너는 자유로울 수 있는 건데? 왜 자꾸, 책임에서 회피하는데? 너도 순수 혈통이잖아. 너도 집에서 하는 말에 따라야 하는 거잖아. 집이 주는 가르침대로 걸어가야 하는 거잖아! 그 집을 벗어나면 행복하지 않아야 되는 거잖아!! 왜, 어째서, 너만!!!”
전혀 성장하지 않은 아이와도 같은 고집, 자신만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그저 네 발목을 부여잡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몸부림이 입 밖으로 흩어진다. 소중한 친구의 행복을 빌어주지는 못 할 망정, 그저 자신과 같은 진창으로. 한없이, 끝없이 저와 같은 시궁창에 함께 할 것을 바라는 말이나 입에 올린다. 아직 구속되지 않은 베아트리스의 손이 지팡이를 쥔 오레스테의 손목을 힘주어 잡는다. 그리고 비틀린 미소가 얼굴에 떠오른다.
“…오레스테 오플린. 나는 네가 나처럼 인정욕에 몸부림치면 좋겠어. 나는 네가 나와 같은 진창에 빠지면 좋겠어!! 나는 네가 나와 같은 무게를 짊어지면 좋겠다고!!!”
“나는 네가!!!!”
‘…지독하게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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