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탄
바다의 외전...? 또는 그런 것...?
히바리가 돌아왔다.
그가 죽은 지 딱 일년이 되는 날이었다.
*
카나토가 시골에서 일상으로 복귀한 지 두 달이 되어갈 때쯤이었다. 런드리에 울리는 벨 소리. 셋이 머리를 맞대고 다음 임무에 관해 상의하고 있을 때, 카나토의 핸드폰에서 착신 음이 들렸다. 저기, 카나토. 제가 회의할 땐 무음으로 해두라 했죠? 아니, 아. 어? 나 무음으로 분명 해뒀었는데? 세라랑 같이 설정했었단 말이야. 그치, 세라. 아, 어, 어, 응. 그랬지. 근데 왜 이런데. 카나토 핸드폰 고장 난 거 아냐? 에이~ 설마, 낡긴 했어도. 아직 쓸만한 걸…. 일단 핸드폰 얘기는 나중에 하고, 누구한테 온 겁니까? 아, 음? 발신번호표시제한? 이러면 누구인지 모르잖아. 카나토~ 요즘 누구 원망 살 일 있었어? 요새 이상한 스팸도 오고, 역시 번호 어딘가에 넘어간 거 아냐? 세라,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음, 그래도 일단 받아볼까.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 카나토 있나요?”
“...”
...
...
...어?
생글생글 전화를 받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상석에 앉아 카나토의 표정을 살펴보는 아키라, 카나토의 옆에 바짝 붙어 핸드폰 너머의 소리를 들으려는 세라. 저기~, 후우라 카나토씨 거기 있나요? 자세를 비틀어 폰 너머의 소리를 듣던 세라는 순식간에 곧은 자세를 유지했다. 뭐야, 왜 이래. 단체로 사이버 메두사한테 걸린 건가? 줘보세요. 라는 말과 함께 카나토의 손에서 핸드폰을 강탈한 아키라는, 핸드폰을 귓가에 대었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아, 아키라, 오랜만이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자에 앉으려 하던 아키라는 어정쩡한 자세로 굳었다.
“타, 타라이?”
“응~ 나야, 나.”
“당신이 왜... 당신은 일 년 전에 ㅈ…”
다음 말을 잇기도 전에 쥐고 있던 폰을 뺏기고, 그 폰은 다시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다.
“히바리, 너 지금 어디야.”
“여기? 카나토랑 본 바다.”
“왜 거기 있어.”
“몰라, 눈을 뜨니까 여기 있어~, 카나토. 나 데리러 와 줘.”
“알았어, 거기 가만히 있어.”
“응, 기다릴게. ㅇ…”
뚜 뚜 뚜…. 뒷말을 듣지 못한 채 전화가 끊긴다. 뭐야, 장난 전화? 그런 건가? 아니면 신종 보이스피싱에 쓰인다는 수법? 빙글빙글, 자리에 앉지 못한 채 자리만 배회하던 카나토를 소파에 앉히고, 상황을 다음으로 넘긴 건 세라였다. 나기쨩, 장난전화일 확률은? 있습니다. 조금은. 다른 가능성은? 한가지가 더 있긴 합니다만. 이건 가능성이 더욱 낮습니다. 뭔데, 말해봐. 요샌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타인의 목소리를 수집해 AI로 만들어 목소리 주인의 가족들이나 지인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수법입니다. 그렇지만, 돈 요구는 아니었잖아. 다른 걸 노릴 수도 있죠. 목숨이라던가? 정답.
“히바리가, 데리러 오라 했어.”
순간의 정적. 짧은 침묵이 이리 매서울 수 있던가. 분명 여름일 텐데, 바깥엔 매미가 시끄럽게 소음을 내지르고 있는데. 런드리 안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침묵을 깬 건 아키라의 깊은 한숨. 그래서, 당신은 뭐라 대답했습니까. 알겠다고, 거기 가만히 있으라고. 하아…. 아키라의 깊은 한숨이 다시 이 공간을 짓눌렀다. 이 짓눌린 공기를 계산하자면 얼추 21g 정도일까. 정말 가벼운 무게인데. 무게일 텐데. 그래야만 하는데. 어째선지 그 21g은 계속 우리를 짓눌러 올 것 같았다.
카나토, 그래서 갈 겁니까. 응, 갈 거야. 히바리가 거기서 기다려. 하지만…, 하지만, 타라이는 죽지 않았습니까. 카나토. 정신 차리세요. 우리 세 명에서 분명 거기서, 뿌렸잖아요. 가루를. 그 가루를 뿌린 게 당신이면서, 그 모습을 처음 목격한 게 당신이면서. 왜 부정합니까. 타라이는 못 돌아옵니다. 그 바다에서. 응, 그래서 확인하러 갈 거야. 히바리가 맞는지. 아니면, 그땐… 글쎄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가볼게. 정 불안하다면, 세라. 같이 갈래? 응, 가자. 나기쨩은 여기 있어. 금방 다녀올게. 라며 나와 카나토는 런드리를 벗어났다. 그 21g의 무게가 남겨진 곳에, 아키라만을 남겨둔 채.
“카나토, 만약 아니면 어떡해?”
“... 내릴래?”
“미안.”
차 안은 침묵에 잠겼다. 우리 노래라도 듣자. 응, 아무거나 틀어. 세라는 익숙하게 차량 라디오를 틀었다. 아, 이거. 무슨 노래였더라. 분명, 히바리가 좋아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 그때. 어땠더라.
감긴 눈을 뜨니, 밖은 모래사장이었다. 아, 세라. 일어났네. 피곤했어? 응? 아니, 그냥. 햇빛 받으니까, 기분이 좋아서…. 뭐, 나도 가끔 그랬지. 얼른 내리자, 혹시 모르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응. 알았어. 한참 전에 꺼진 듯한 음악, 가라앉은 카나토의 목소리. 모든 것이 그날과 비슷했다. 우리가 히바리의 뼛가루를 뿌리러 바다로 모인 그날. 카나토는 차 문을 닫은 채 창밖에서 손짓했다. 일단 대기. 별일은 아니겠지만, 카나토는 가끔 이렇게 자기 몸을 먼저 움직였다. 당연하게, 마치 그래야 한다는 듯.
카나토는 공중전화 부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탄을 장착한 총을 홀스터에 넣어놓은 채. 빨간 공중전화 부스 안에는 인영이 있었다. 키는 자신과 엇비슷해 보이는 남성의 인영. 눈을 가늘게 뜨고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정말 히바리라면, 나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다시 만나서 반갑다고 웃어보여야 하나, 죽은 줄 알았었다며 울어야 하나. 왜 우리를 두고 떠났었냐며 원망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딱.
밑에 있던 나뭇가지를 밟아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옆으로 샜던 생각이 다시 돌아온다. 저기에 닿았을까. 눈을 굴리며 생각한다. 기습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세라 혼자 도망치게 둬야겠다. 하는 생각과 동시에, 부스의 문이 열리고 인영이 실체가 되었다. 카나토가 본 실체는 분명, 분명 그였다. 와타라이 히바리. 카나토는 움직임을 멈추고, 앞에 있는 남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뭐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친구가 살아 돌아왔음에도, 카나토는 마냥 반가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슬픔을 이겨냈는데, 그렇게 아픔을 참아왔는데. 상처를 내딛고 새로 마주한 소꿉친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그저 밝게 웃었다. 예전에 나를 이끌었던 그 밝은 미소로. 그 웃음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얼마나 기억에서 지우기 위해 노력했는데, 얼마나 살아가려고 노력했는데. 너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밝게 웃었다. 그날의 햇빛처럼. 카나토, 오랜만이야. 왜 여기 있어? 마치 있으면 안 될 곳에 있다는 카나토의 질문에, 히바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눈을 뜨니까, 여기 있었어. 눈을 뜨니까? 응, 눈을 뜨니까. 혼자 있었어? 응, 눈을 뜨니까, 아무도 없던데. 눈을 뜨니까, 눈을 뜨니까….
머릿속을 헤집는 말을 뒤로 하고 카나토가 꺼낸 말은 딱 한 마디였다. 돌아가자. 어디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런드리? 응, 런드리. 거기 아키라가 있어. 세라는?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네’가 ‘네’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혹시 모르니까. 응, 세라오도 왔구나. 빨리 가자. 그래.
히바리의 기억은 거기서 끊겨 있었다. 그러니까, 바로 그날. 우리가 바다를 보러 갔던 바로 그날. 이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히바리는 알 길이 없었다.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추억인 것처럼 말을 꺼내기도 그랬다. 우리는 너무 많은 아픔을 견뎌내야 했으니.
사실 어제 꿈에 히바리가 나왔었다. 히바리의 집에서, 내가 처음 보는 모습으로 히바리는 서 있었다. 나는 입을 떼지도, 발을 떼지도 못한 채 꿈에서 깼다. 다시 그 꿈을 상상하려니, 숨이 턱 막혀오는 느낌이었다. 네가 매달려 나를 맞이하던 그날의 공기와 지금의 기분이 맞물렸다. 왜, 왜 돌아온 거야. 카나토는 묻지 못했다. 바닷속에 잠긴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얼른 돌아가서, 넷이서 웃고 떠들고 싶은데. 그게 지금 상황에서 가능할지 만무했다. 아키라를 그곳에 혼자 두고, 세라도 혼자 두었다. 나만 혼자가 아니었다. 이젠. 이게 무슨 기분일까,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기분에 카나토는 뒤를 돌아봤다. 응, 왜 그래. 카나토? 아니야, 아무것도. 얼른 가자. 기다리겠다. 응….
차에 기대 칼을 돌리던 세라프는, 다가오는 발소리에 칼을 숨기고 고개를 들었다. 들려오는 발소리는 두 사람의 몫. 그렇다면, 어쩌면, 어쩌면. 흐렸던 형상이 밝아지고, 이윽고 익숙한 두 사람의 형체가 된다. 카나토. 카나토는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아니, 침묵이 그가 건넨 대답이었을까. 가자. 얼른 타. 카나토는 그리 말하며 운전석에 올라탔다. 쨍쨍한 여름, 데일 만큼 뜨거운 내부 안에서 세 사람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
저녁 늦게 도착한 런드리는 싸늘할 정도로 조용했다. 카나토가 히바리의 집에 갔을 때와 같은, 그런 싸늘함. 아키라. 런드리 안의 불을 켜자, 아키라는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추웠는지 본인의 겉옷을 이불처럼 꽁꽁 싸맨 채. 세상을 등에 이고 자고 있었다. 아키라, 일어나. 카나토가 아키라를 흔들어 깨웠다. 나기쨩, 일어나. 나 배고파. 세라프가 소파를 비집고 들어가 앉으니, 아키라는 곡소리를 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혼자서 챙겨먹으세…. 아, 타라이. 왔습니까. 삐뚤어진 안경을 고쳐 쓰고, 소파에 앉았다. 저녁은 혼자서도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세라오. 넷이 한자리에 있는데, 혼자 먹어야 해? 세라프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아키라는 앞에 놓은 커피를 홀짝였다. 런드리에 먹을 게 남아있던가? 카나토의 말에 히바리는 확인해 보겠다 며 자리를 떠났다. 히바리는 그렇게 런드리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 ‘어서와.’라는 인사치레 따윈 멋쩍고 거추장스러운 걸지도 모른다. 카나토는 부엌으로 향한 히바리를 바라보았다. 언제 떠나갔었냐는 듯이 익숙하게 움직이는 히바리를 보고 카나토는 고개를 기울였다. 사람의 그림자가 저렇게까지….
그날 런드리는 시끌벅적했다. 함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다가. 얼마나 웃고 떠들었는지 모르겠다. 주변 주택에서의 ‘너무 시끄러워요.’ 같은 민원 사항은 우리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듣지 못한 건가. 먼저 뻗은 세라프와 아키라, 주황 랜턴의 불빛 아래서 싸구려 맥주캔을 기울이는 카나토와 히바리가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캔을 흔들며 흥얼거리는 히바리를 카나토는 빤히 바라보았다.
“히바, 너무 마시는 거 아냐? 평소라면 벌써 뻗어 있었을 텐데.”
“아, 그런가. 근데 너무 즐거워서, 자꾸 들어가네.”
또 콧노래. 히바리는 처음 들어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 곡, 오늘 자주 흥얼거리네. 아, 그런가. 돌아올 때 핸드폰으로 찾은 노래거든. 나중에 같이 듣자. 히바리가 배시시 웃는다. 카나토는 졸린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 졸린지, 감정 소모를 많이 해서 그런가. 카나토, 졸려? 응, 조금만 잘래. 응, 잘 자. 아침에 보자….
*
눈을 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색은 짙은 푸른색. 아직 새벽녘인가. 책상에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본다. 아직도 뻗어 있는 세라와 아키라, 히바리는 주변에 없다. 히바, 히바리?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새벽에 어디로 간 거지. 일어남과 동시에, 책상에 무릎을 박았다. 비명을 지르면 자는 두 명이 깬다. 일어났나?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둘을 빤히 보면, 살짝 찌푸려진 미간이 눈에 들어온다. 아, 시끄러웠나. 잠꼬대로 뭔갈 웅얼거리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잠시 바람 쐬러 나간 건가? 뒤늦게 아려오는 다리를 질질 끌어, 몸을 움직이니 욕실에서 히바리가 나왔다.
“응? 카나토, 일어났어?”
“아…. 응, 히바. 어디 가게?”
“어, 바다에 가고 싶어서.”
…
…
… 어?
바다에는 왜. 카나토는 물었다. 우리 어제도 바다 갔잖아. 근데 왜? 그냥, 가고 싶어서. 카나토도 같이 갈래? 아, 아, 어, 응. 같이 가겠냐는 질문에 카나토는 대답했다. 지금 바로 가도 돼? 조금 추울 건데. 기차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아, 아, 응. 당황스러움의 연속. 흐려진 판단력 아래, 카나토와 히바리는 첫 기차를 타러 런드리를 벗어났다.
와, 진짜 추워. 좀 더 껴입을 걸 그랬다. 플랫폼의 노란 선 안에서 히바리는 즐거운 듯 말했다. 양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고, 열을 올리기 위해 제자리에서 뛰는 모습은 여느 때의 히바리와 같았다.
지금 00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노란 선 안쪽에서….
덜컹거리며 들어오는 기차 안엔 사람 따윈 없었다. 주말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첫 기차라서 그런가. 카나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기차에 몸을 실었다. 문이 닫힙니다. 빈 기차 안, 사람은 두 명. 문이 닫힘과 동시에, 기차는 덜커덩 소리를 내며 두 명을 실은 채 출발했다. 카나토와 히바리는 말이 없었다.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죽었던 사람이 돌아온다면 너는 어떨 것 같아?’라는 만약을 놓고 하는 질문도 지금은 타이밍이 이상할 것이다. 깜빡깜빡. 바다에 가까워지면서도 두 사람 사이는 멀어지기만 했다. 서로에게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다가오는 깜깜한 현실을 마주한 것이었다. 터널을 지나면서도 카나토는 맞은 편의 창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히바리와 나누는 수다도, 기차 안에서 읽을 책도 없었다. 카나토는 눈을 깜빡이며 창문을 바라보았다. 터널 안의 불빛은 교차한다. 수도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같은 것이다. 흥미 따윈 없었다. 깜빡깜빡. 빛이 점멸한다. 그사이에 나와 히바리는 앉아 있었다. 깜빡깜빡, 깜빡깜빡. 깜빡…. 창문에 비치는 히바리는 웃고 있었다. 저를 보는 ‘나’를 인식한 듯, 창문을 바라본 채 보라색 눈을 빛내며 웃고 있었다. 우리 열차 터널을 빠져나옵니다…. 길었던 터널을 빠져나왔다. 카나토는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감았다 떴다. 창문에 살짝 비치는 히바리는 자고 있었다. 아까 전부터 고개를 자꾸 바닥으로 떨어트리며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었다. 환상이었나. 별로 못 잤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카나토는 마른세수를 하며 들려오는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역은 00. 00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오른쪽….
히바, 가자. 아! 어, 응. 살짝 기대고 있던 내가 벌떡 일어나자, 히바리는 의자에 엎어진 꼴이 되었다. 아하, 미안. 아니, 아냐. 같이 가자고 했는데 졸아버린 내가 나쁘고. 일단 가자. 문 닫히겠다. 응, 가자.
*
기차에서 내린 둘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분명 그때는 해가 들고서야 집으로 돌아갔는데, 지금은 완전 반대네. 신고 온 슬리퍼 사이사이로 모래가 들어온다. 이래서 바다가 싫은데. 카나토는 혀를 차며 슬리퍼를 벗었다. 나중에 발 씻고 다시 신어야겠다. 몸을 숙이자, 히바리는 옆을 지나갔다. 응? 같이 걷는 거 아니었나. 몸을 펴자, 히바리는 몇 걸음 앞에 서서 바다를 빤히 보고 있었다. 카나토도 시선을 돌렸다. 애매하게 걸쳐진 태양. 부서지는 바다. 흩어지는 포말. 카나토는 바다를 싫어했지만, 좋아했다. 제 발을 적시고 달아나는 바다에 시선을 꽂자, 히바리는 “카나토~”라 부르며 카나토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왜 그래, 히바. 카나토, 눈 떠봐. 눈? 뜨고 있잖아. 아니, 그 눈 말고. 눈 떠봐. 응? 무슨 말이야. 내 눈은 이거 하나인데. 하나 더 있잖아. 응? 하나 더 있잖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히바. 하나 더 있잖아. 아니, 없다니까. 하나 남았잖아. 물려받은 눈. 히바리는 웃었다. 그날처럼. 그걸 왜 지금. 왜 ‘지금’이냐고? 음, 그 눈을 뜨면 카나토의 눈이 더 빛나 보이니까? 의문문. 히바리는 영문을 모르는 말을 늘여놓았다. 눈이 어떻고, 저렇고. 카나토는 고개를 숙였다. 히바리의 그림자가 보인다. 착실하게 그것은 발끝에 붙어있었다. 끈질기게, 무언가 갈망한다는 듯이. 카나토는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저 검은 형상의 ‘내’가 그곳에 서 있었다. 아무 욕망도 없는, 아주 순수한….
카나토는 눈을 떴다. 히바리가 그렇게 갈망하던 그 눈을. 카나토의 그림자와 같은 방향에 있어야 할 히바리의 그림자가 반대편에 있었다. 이게, 무슨.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카나토는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움직여 뒤로 물러났다. 모래가 자신을 빨아들이는 느낌이었다. 벗어날 수 있을까? 제 앞에 놓인 형체를 무시한 채,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카나토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익숙한 목소리였다.
“카-나-토.”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 자기를 부르던 목소리에 카나토는 익숙하게 반응한 것이다. 응, 겨우 여기 봐줬네. 고개를 든 카나토에 만족한 듯 히바리는 웃었다. 터널에서 마주한 그 웃음. 그 가슴이 내려앉을 듯한 웃음을 지닌 채 히바리는 말을 이었다. 같이 와줘서 고마워, 카나토. 침묵. 카나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사 인사를 건넨 쪽에서 대답을 원했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호의적 표현은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다. 카나토는 얼굴을 찌푸렸다. 히바리는? 나 여기 있잖아, 카나토. 생글생글 웃는 그것은 히바리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성당에 가면 있을 법한 신부복을 입은 채, 머리에는 기분 나쁜 광배를 달고 있던 그것은 이제 됐다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작년에 죽었잖아. 걔.”
히바리는 모래사장을 툭툭 쳤다. 그림자는 계속 흘러내려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바다는 평소와 다르게 붉었다. 카나토는 눈을 뜬 채, 히바리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았다. 얼굴, 체격, 목소리. 잠깐잠깐 튀어나오는 그 작은 행동들까지. 히바리와 똑같았다. 근데 왜 이제서야 나타난 거지? 카나토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제 앞에 있는 형체는 바뀔 리 없는데 말이다.
“왜 왔어?”
“음?”
“왜 왔냐고. 온 목적이 뭐야, 목숨? 재미?”
“음. 전화 받았을 때 카나토가 그랬지? 여기 가만히 있으라고.”
“나는 가만히 있었고, 나를 데려간 건 너야. 가만히 있던 나를 데려간 건 너잖아. 그래서 난 내 자리로 돌아오려 했지, 근데 끼어들었잖아. 네가.”
말을 마무리 짓는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때의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 카나토는 제 앞에서 발장난을 치는 히바리를 가만 바라보았다. 지금 멱살을 잡아도. 그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나를 여기 데려온 이유는?”
“나랑 가자.”
“어딜.”
“걔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걔가 누군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히바리가 있는 곳, 그곳이 어딘데? 여기 아니던가. 모든 것을 불태우고, 다시 돌아온 곳이 아니던가. 카나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안 가. 왜? 가기 싫어. 걔가 기다리고 있는데? 응, 그래도 안 가. 진짜? 응, 진짜. 걔가 기다리고 있는데…. 도돌이표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 상태로 히바리에게 가면, 내가 파도에 흘려보낸 그 시간은 무엇이 되는가. 세라가 나를 찾아온 이유가 없어지지 않는가. 덤덤하게 넘기기 위해 노력한 그 시간이 다 허사가 되는 셈이었다. … 안 가, 내가 알아서 죽기 전까지. 그렇지만, 걔는 네가 오길 바라고 있는걸. 그래도 안 가? 응, 안 가. 진짜? 응. 진짜. 진짜? 응, 진짜…. 누가 열 번 찍으면 한번은 넘어간다고 했는가. 카나토는 갈 생각이 없었다. 히바리가 만약 나를 그곳에서 기다린다 해도, 갈 생각이 없었다.
“알았어. 뭐, 그럼.”
히바리는 흥미가 떨어진 듯, 쭈그렸던 몸을 세웠다. 아, 사람 홀리기 고되네. 혼자 중얼거리던 히바리는, 몸을 숙여 카나토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보라색 눈, 뭐가 그리 재밌는 건지 실실 웃던 히바리는, 나중에 또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
“카나토!”
카나토는 저를 깨우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몸이 찌뿌둥하다. 얼굴을 찡그리자, 세라는 어디 아프냐며 물어왔다. 나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어? 몰라. 모르는 건가…. 돌렸던 얼굴을 다시 돌려 손을 바라본다. 무언가를 쥐고 있는 것 같은 감각에,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을 펼쳤다. 손에 있던 것이 떨어져 모래에 얹어진다. 작은 종잇조각. 히바리가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의 제목이 적혀있었다. 허. 카나토는 헛웃음을 치며, 종이를 구겼다.
아, 이래서 바다는 싫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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