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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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고 있던 눈을 떴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기엔 몸이 무거웠다. 날씨 때문에 더 그런 건 같은 기분. 습하고 덥고, 찝찝한. 그런 8월 장마의 어느 날. 몸을 누르는 듯한 공기에, 침대에 누워 뭉그적거리던 카나토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열렸던 문이 닫힌다. 시선 끝에는 보라색 머리가 서 있었다. 보스인 카나토의 방을 허락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사람. 카나토의 오랜 동료이자 오른팔, 또는 친구.
“히바리.”
시선 끝에 닿은 히바리는 웃고 있었다. 어제보단 괜찮아 보이네. 몸은 좀 어때? 어제는 고개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했으면서. 자연스레 침대에 걸터앉아 카나토를 보던 히바리는 말을 이어갔다. 의사가 당분간은 일어날 생각하지 말래. 그냥 시체처럼 누워 있어. 그때 무리한 것도 맞으니까.
사고가 있었다. 사고라 해야 하나. 습격. 히바리가 자리를 비운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을 누가 막을 수 있었겠는가. 식사 중에도, 잠을 잘 때도, 일상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편하게 있었다는 사실에 긴장을 놓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히바리가 있어서 편한 모습을 보였던 건가. 이제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날 다친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 무리한 것도 맞았다. 부축받아야 할 사람이 제 발로 거처까지 돌아온 미친 짓을 했으니까. 그 후로 죽은 사람처럼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앞으로 며칠을 더 이렇게 있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일어나고 싶다며 칭얼거리자, 히바리는 얼른 낫기나 하라며 머리를 툭툭 치곤 방을 나섰다.
낫기는 할까.
어젠 열이 올라 몸이 무거웠을 뿐이지, 오늘은 어제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또 평소와 비교하자면 비슷한 몸 상태였다.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몸. 그런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을 카나토는 이해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누워있는 동안엔 밥도 잘 먹지 않았다. 먹어야 낫는다고들 하지만 누워있으면 음식을 어떻게 소화하겠는가? 더군다나 식사 따위는 간단하게 때울 수 있는 것이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과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이 나뉜다고 했을 때, 카나토는 후자에 속해 있었다. 살기 위해 먹는 사람. 많이 먹는 것보다는 적은 음식에서 많은 효율을 뽑아 먹는 사람. 그렇기에 카나토의 삼시세끼는 늘 일과 함께 할 수 있는 간편식이었다. 샌드위치, 토스트, 삼각김밥… 뭐, 그런 것들. 그런 것들 위주로 식사를 챙기니, 어느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효율이 있으면 뭐 하나, 건강하지 못하는데. 한참을 기절해 있다 깨어나서 처음으로 듣는 소리는 걱정과 잔소리였다. 물론 말하는 사람은 똑같다. 히바리가 나에게. 내 식사를 늘 못마땅해한 히바리에겐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언젠간 쓰러질 줄 알았다며 걱정이란 걱정을 하는 히바리에게 나는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지금 당장 잔소리를 멈추는 대신, 매일 저녁은 히바리가 주는 대로 먹겠다는 조건. 히바리는 이 조건을 승낙했지만 멈추지 않았고, 그날 이후로 히바리는 밥 담당이 되었다. 조건은 ‘매일 저녁은 네가 주는 대로 먹음.’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아침 점심도 히바리가 만들었다. 처음 요리를 들고 왔을 때는, 네 일이나 하라며 핀잔을 주었지만, 요리가 즐겁다고 말하는 것에 마음대로 하라 했다. 이런 적막한 곳에서 겨우 즐거운 일을 찾았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나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또 그런 게 즐거우면 애초에 왜 날 따라왔냐는 근본적인 물음도 함께 묻어버렸다.
유치한 질문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온 친구가 온전히 나를 따라 뒷세계로 발을 들인다는 것은 여러 감정들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너는 무얼 믿고 이 세계에 발을 들인 걸까 싶었다. 나를 따라오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네가, 그 모든 걸 감수하고도 나를 따라온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너무 늦은 건가 싶었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의구심을 지금 알아차렸을 뿐이다. 아니, 사실 알고서 외면한 것인지도 모른다.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기타를 치며 즐거운 듯 노래를 부르던 네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 옆에 온 이유가 궁금하다. 요리하며 즐거운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네가, 나를 따라 아래로 걸어들어온 이유가 궁금하다. 장마처럼 축축하고 습한 날만이 계속 되는 이곳에, 네가 들어온 이유가 나는 미치도록 궁금했다. 그렇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우울과 의문을 짊어지게 하긴 싫었다. 그래서 카나토는 입을 다물었다. 히바리가 나의 내면을 다 볼 수 없도록. 추잡하고 축축한 내면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그래서 카나토의 감정은 늘 제한되어 있었다.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면, 본인이 모르는 새 내면의 우울을 흘리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카나토의 작은 변화도 잡아내는 것이 히바리였기 때문에 카나토는 더욱더 조심했다.
가끔은 본인이 마피아가 아니었다면, 하는 가정도 한다. 태생이 여기가 아닌, 바깥쪽을 향하고 있었다면 히바리도 바깥쪽을 향해 나아갔겠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으면 늘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태어난 것 자체가 나에게는 우울이구나. 하는 그런 생각. 근데 뭐 어쩌겠는가. 이미 열심히 살아왔는데. 과부화된 머리를 식힐 겸 머리끝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한쪽으로 걷어내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분명, 마피아로 태어났어도 다른 길이 있었을 텐데. 왜 나는 이 길로 들어온 걸까. 이 길로 들지 않았다면, 분명 너도 다른 길을 향해 갔을 텐데. 새하얀 베개에 얼굴을 묻고 비볐다. 답답했다. 당장이라도 히바리에게 달려가 모든 걸 묻고 싶었다. 왜 나를 따라왔냐고. 네가 여기서 얻는 게 무엇이냐고. 이런 생각을 해봤자 닿지도 않을 텐데. 우울하다. 무얼 해야 이 기분이 나아질까. 침대에서 한참을 뒹굴던 카나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곳에 시선을 꽂았다.
15살의 생일에 받았던 총.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준 총은 카나토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어쩌면 카나토의 우울은 그날부터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응어리처럼 가슴 한편에 박혀있던 숨을 뱉었다. 이 총이 곁에 있다면 나는 계속 우울할까. 내 삶과 타인의 죽음에 닿아있는 이 총을 버린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 생각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이런 생각 계속하면 안 되는데. 지금 앓고 있는 이 감정들을 어디론가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침대에서 비척비척 일어나 서랍의 마지막 칸을 열었다. 어디론가 옮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누군가에게 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상자에 총을 담곤 뚜껑을 덮었다.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면….
닫혔던 문이 열렸다. 시선 끝에는 히바리가 서 있었다. 왜 일어났냐며 걱정하는 히바리에게, 아까 닫아버린 상자를 건넸다.
내 모든 우울을 담아 네게 선물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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