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꿈치의, 발

6회차, 소란 님

B에게 by H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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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마지막 주제 <유령이 된 나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빗소리를 듣고 네 빗장뼈를 닫는 소리를 생각했어

발의 뒤꿈치까지 일렁이는 여름

너는 새로 산 신발이 맞지 않아 발이 다 까졌다고,

보호받지 못하는 뒤꿈치에 여름이 자꾸 닿아 아프다고,

이러다 장마가 오면 발이 쓸려 내려갈 거라고 했지

너는 살갗이 아플 때마다 뼈를 잠가달라고 부탁했어

그래야만 살덩이가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무수히 많은 뼈를 잠갔어

너의 발가락, 손가락, 손등, 발등, 그리고 빗장까지

네 빗장 안에서는 고요한 소리가 들려

아무 소리 없이 소란스러워

나는 그 무소음이 들리지 않게끔 뼈를 꽉꽉 닫았어

그러나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부연 새벽

너는 발꿈치를 잃고 말았지

지나가던 장마가 마침내 너를 덮친 거야

너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걸었어

유령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지

어쩜좋지?나유령이됐는데이제평생을흰이불보아래서만

보내야하네네가꽉꽉닫아준빗장이모조리열려버렸어나는이제이름없이유령으로살아간다잘가,내친구뒤꿈치에닿을여름을지나가다멈추는장마를닫히지않는빗장뼈를주의하며살아야해이제우리는친절한바다로여름의심해로간다

너는 종언을 선언하듯 말을 마친 후에,

숙녀들의 인사처럼 이불보를 걷어

그 아래 발을 보여주었어

두 구멍을 오려 눈을 만든 이불보 아래 보였던

물바퀴가 달린 발, 여름에 짓이겨진 발

나는 탄식한다

너를 더 닫았어야 했는데,

네 빗장 안의 소리를 들으면 안 되었는데

이제 여름이 오고 있고,

나는 너의 이불을 벗길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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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댓글 3


  • 퇴근하는 산양

    첫 문장이 마음을 사로잡는 시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앞서 남겨주신 두 댓글이 같은 말을 하고 있어서 조금 웃어버렸어요. ㅎㅎ '빗소리를 듣고 네 빗장뼈를 닫는 소리를 생각했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빗장뼈 닫는 소리를 생각하게 하는 상상력의 힘은 어쩜 이렇게 대단한지요. 무수히 많은 뼈들을 하나하나 꼭꼭 닫아주면서 화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해보는 동안 공연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당연히 시의 계절이 장마철 한여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여름이 오고 있고' 라는 문장에서 헉 하고 놀라고 말았어요. 아직 여름은 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물냄새 가득한 유령이라면 진짜 여름이 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닫아두었던 빗장뼈 안에는 원래 무엇이 있었을까 상상해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인 듯합니다. 시를 읽는 내내 정말 즐거웠습니다. 좋은 시 감사합니다!

  • 즐거운 새우

    빗장과 빗장뼈를 연관시킬 생각을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래서 나는 무수히 많은 뼈를 잠갔어/너의 발가락, 손가락, 손등, 발등, 그리고 빗장까지' 이 대목을 읽고선 감탄만 자아냈습니다 그리고 하나 궁금한 건 '네 빗장 안에서는 고요한 소리가 들려/아무 소리 없이 소란스러워/나는 그 무소음이 들리지 않게끔 뼈를 꽉꽉 닫았어' 이 대목에서 화자는 고요한 심장 소리에 서운했을까요? 처음엔 그냥 넘겼던 대목이었는데 마지막 연에 '네 빗장 안의 소리를 들으면 안 되었는데,'라는 구절을 보고선 위로 올라가 다시 한 번 훑어 보았네요 꼭 마치 조금이라도 더 선명한 박동 소리를 들으려고 열어 두었다는 것 뜻하는 것 같아서요 욕심의 대가였을까요? 그렇다면 빗장의 주인이 말한 '네가꽉꽉닫아준빗장'은 대체 뭘까요? 알겠다가도 아리송한 시였던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 수집하는 나비

    1연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 기절하고 말아버린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빗소리와 빗장뼈의 이어짐, 여름의 묘사, 그 속의 발의 뒤꿈치까지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요...ㅠ ㅠㅠ ㅠ ㅠ ㅠ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소란스럽다는 모순을 이해할 수 있는 걸 보면 역시 시는 경험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평생을 흰 이불보 아래에서만 보내게 된 ‘너‘는 어떻게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전화를 걸 수 있었을까요?! 유령이 겨울보다 여름과 더 잘 어울리는 건 어째서일까요 ㅎㅎ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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