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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차, 혜주 님
뒤늦은 택배가 도착했다
피나 유전자 같은 게 섞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닮은 구석이 많았던 우리의 조각
서른여섯 개 중 맨 처음은 꼭 우리를 담자고 했던 약속을 기억해
덕분에 나는 여행을 했다
좋아하는 색으로 맞췄던 초록빛 비즈 반지
서로의 매일을 꾹꾹 눌러 적던 육 공 다이어리
블루투스 기능을 두고 매번 흰색 줄 이어폰을 꽂았던 씨디 플레이어
삼백예순날을 함께 보냈던 오르막 등굣길
밤새 좋아하는 사람 얘기하다 결국 일출을 봤던 콘도
쫄딱 젖은 채 처음으로 입을 맞췄던 바닷가
어디에도 네가 있단 생각이 안 들어
차라리 나에게 귀신을 보는 능력이 있다면
눈물로 젖은 채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너의 창문 없는 집에서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피나 유전자 같은 게 섞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닮은 구석이 많았던 우리의 조각
덕분에 나는 여행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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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퇴근하는 산양
정말 제목에 나열된 숫자는 어떤 의미일까요? 사팔구칠일이공사구공일팔구라고 읽는 건지, 사조 팔천구백칠십일억 이천사십구만 백팔십구라고 읽는 건지도 궁금해요. 혹시 시 속에 숨어있는 숫자들을 어떻게 잘 조합하면 제목이 되는 걸까? 라고 생각했는데 6이 자주 등장하는 것 치고는 제목엔 6이 하나도 없네요! 숫자가 시선을 독특하게 잡아끌어서 퍼즐 같은 재미가 있어요. 어쩌면 시에서 계속 나열된 것처럼 이 의미 없는 숫자들이야말로 화자 고유의 기억일지도 모르겠네요. 화자에게만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숫자들일지도요. 문장이 되풀이 되는 걸 보고 한번 시를 문장 단위로 끊어서 밑에서부터 읽어봤는데, 이것도 새로운 감상이 들어요. 여행을 얼마나 오래 떠나는지, 화자가 여행을 마치는 날 돌아갈 곳은 있는지 아니면 아주 떠나서 돌아오지 않을 건지도 참 신경이 쓰여서 궁금한 여운이 남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집하는 나비
우와 제목은 무슨 뜻일까요?! 항상 제목이 독특해서 눈을 두게 되네요 1회차부터 꾸준히 말 해왔지만 저는 나열을 지독할 정도로 좋아하는데 ㅋㅋㅋㅋㅋ 나열의 천재와 함께 하게 되다니 정말 기쁩니다... 한 문장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문장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요 이 시 그냥 입에 넣고 씹고 싶어요 저 주세요 (농담입니다) 근데 마지막 행이 뭔가 급하게 조금 억지로 마무리 한 감이 있는 것 같아요 (끝낼 수밖에 없어서 문장을 쥐어짜내는 그 느낌을 제가 너무 잘 알아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마는 것일지두요...) 여행을 끝낸 것이 아닌 다른 선택지도 생각하신다면 한 번 구경해보고 싶어지는 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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