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 ARC-V] 제목 없음

2019.03.08 / 일부 수정 / 일상 AU / 린루리

    부엌 너머에서 기운찬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흐릿하지만 확실하게 들리는 단어들을 주워 듣는 한 아무래도 TV에서 라이딩 듀얼 중계를 하고 있으며, 그것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통이라면 언제나 함께 있는 육친을 떠올리겠으나, 지금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마침 방문객이 집에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방문객이 라이딩 듀얼을 선호하는 것도 그 이유였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아니, 왜 거기서 그걸 발동해?! 자신이 사과와 그릇을 꺼내고, 사과를 씻어 조금씩 껍질을 까, 조각으로 만드는 동안 응원하는 목소리는 더욱 크고, 열기를 띄고 있었다. 마치 직접 D 휠에 타 듀얼이라도 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나는 작게 웃으며 사과를 그릇에 담아 포크를 꽂은 후 그 아이가 들뜨고 있을 거실로 향했다.

거실로 와 그 아이의 옆에 자리를 잡고서 탁자에 그릇을 놓았다. 힐끗 TV 쪽을 보니 벌써 듀얼이 끝나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안 지났을 것인데 뭘까? 하며 그 아이 쪽을 보니 상당히 고양된, 아니 어딘가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상대의 실력이 너무 높았던 것이 아닌 다른 요인으로 빨리 끝났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아이에게 사과가 꽂힌 포크를 준다.

사과를 받은 그 아이는 그게 다 들어가는가 놀랄 정도로 한 입에 다 욱여놓는다. 몇 번 씹고서 삼키고, 자신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치면서 분노의 원인을 내게 호소한다. 들은 것을 하나로 모으자면 “저 사람(=진 사람)이 못해도 너무 못한다, 심지어 D 휠도 제대로 만질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전자는 그렇다 치고, 후자는 D 휠에는 오토 파일럿 모드가 있다고 들었기에 의문이 든다. 뭘까?

“오토 파일럿 모드도 장식으로 만들 정도로 못했다는 거야.”

그 아이의 퉁명스런 말에 나는 이해했다는 뜻으로 목소리를 흘린다. 하지만…

“긴장에 약한 타입일 수도 있지 않을까? 왜 긴장하면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거나 평소 실력이 전혀 나오지 않기도 하잖아.”

“아~ 그럴 수도 있겠다.”

내 말에 바로 납득을 하며 다시 사과를 물고서 우물우물 씹는 그 아이는 빠르게 하나를 다 먹고서 짧게 자신이 그렇게 화를 내던 상대에게 사과의 말을 말했다. 내가 너무 몰입했나 봐. 그렇게 자기 반성의 말도 하고서 소파에 등을 기댄 그 아이는 힐끗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루리는 라이딩 듀얼에 흥미 없니?”

“나?”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그 아이는 오빠도 라이딩 듀얼을 한 적이 있었으니 관심이 없지는 않지 않느냐고 하며 내 옆으로 더 바짝 다가왔다. 이미 내용물이 없어진 포크를 입술로 물면서 생각을 해보지만 자신이 D 휠을 타고서 라이딩 듀얼을 하는 모습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나는 그 뜻을 담아 고개를 저었다.

“D 휠을 타고서 달리면 그렇게 시원하고 정신이 탁 트일 수가 없어.” 그 아이는 아까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흥분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 말 자체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나는 무서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영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있었으니까.

“린은 라이딩 듀얼을 한 적 있어?”

“응? 그건…”

무심코 나온 질문이 그 아이의 입을 막았다. 어라, 나 뭔가 이상한 말이라도 한 걸까? 어쩐지 걱정과 긴장이 들어 그 아이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 아이는 그런 내 걱정은 모르는 걸까, 아는 걸까 허탈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있어. 유고랑 내가 함께 만든 D 휠에 타서 함께 달린 적도 있어.”

그렇게 말하며 그 아이는 말을 잇는다.

“D 휠을 타고 달리면서 느끼는 진동도 작은 흔들림도, 몬스터와 일체화가 되어 달리는데 그렇게 시원하고 기분 좋을 수가 없어. 고양감과 함께 자유도 느껴서, 언제까지고 달리고 싶어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유고와 함께 많은 관중 앞에서 함께 듀얼을 하며 달리고 싶어. 그게 내 꿈!”

“꿈…”

어쩐지 부러웠다.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는 꿈이 있다는 것, 조금씩이나마 다가가는 추진력. 그리고 자유를 느끼고, 시원하고 기분 좋은 감각을 나 또한 느끼고 싶다는 욕구마저 들기 시작하면서 D 휠에 타는 것에 대한 겁을 먹고 있던 나를 지우고 있었다. 그럴까?가 아닌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으니까. 나는 두근거리기 시작한 심장 고동 소리를 자신의 손으로 느끼며 그 아이를 똑바로 바라본다.

“나, 나도 가능할까?”

“그야 물론이야!”

그런 짧은 대화를 나누며 나와 그 아이는 서로를 마주보고서 웃었다.

“그럼 나중에 오빠 분이랑 함께 라이딩 듀얼하는 루리를 볼 수 있는 걸까?”

“후후,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럼 린도 그때가 되면 나랑 함께 달려줄래?”

내 말을 듣고서 크게 웃던 그 아이는 포크에 벌써 하나 밖에 안 남은 사과를 집어 넣어, 그대로 내 입에 골인시킨다. 내가 당황하며 씹는 것과 말하는 것을 동시에 하고 있으니, 그 아이는 더없이 시원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바람을 타고서 함께 날아오르자!”

겨우 사과를 다 씹어서 목 너머로 넘긴 나는 그 말을 듣고서 활짝 웃는다. 그 아이도 내 웃음을 보고서 함께 웃는다. 나는 어쩐지 쑥스러워서 몸을 일으켜 빈 그릇을 들고서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그 도중에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은 그 아이와 함께 D 휠을 타고서 경기장을 달리는 자신의 활짝 날개를 펼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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