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6 ~ 2023. 10. 31 🌱🪶 후기

2023년 6월부터 2023년 10월 31일까지 업로드된 탐카베 포스팅의 후기입니다.

분량이 많으니 한가할 때 킬링타임용으로 읽어주세요.

#으로 검색하면 다음 타이틀의 내용으로 넘어갑니다.

# 그날, 수면을 채우던 해 질 녘 노을의 온도

그렇게 싸운 후 두 사람의 졸업식은 어떨까에 관한 화제는 아마도 이 cp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의 관심사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둘이 상대도 안 해야 맞겠지만 졸업 이후로도 학술지 등을 통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니 이 정도는 날조해도 괜찮지 않나 했답니다.

오타쿠들의 인식에서 졸업식이라고 하면 많이들 떠올리는 것이 그놈의 교복 두 번째 단추이죠.

그러나 아카데미아의 교복은 두 번째 단추를 떼어줄 만한 디자인이 아니고, 배경은 수메르이기에 그 네타는 어울리지 않겠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다 떠올린 것이 모자에 달린 각 학부의 엠블럼이었습니다.

원본이 된 트윗 타래입니다.

카베라면 가장 가깝게 지냈던 알하이탐에게 축하받고 싶지 않았을까요?

긴 학업을 마치고서 새로운 인생의 시작점에 서서 불안해할 사람들 각각은 저마다 가장 친애하던 누군가에게 격려와 축하의 말을 듣고 싶어 하기 때문에…….

카베 역시 이런 마음은 같을 테고 그렇기에 용기를 내어 알하이탐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데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부탁이죠……?

서로 실컷 험한 말을 퍼부으며 싸웠는데 자기 아쉽다고 찾아와 대뜸 축하해달라니요?

하지만 매우 이타적인 성격의 카베가 유일하게 이기심이나 고집을 드러낼 수 있는 상대는 알하이탐이기 때문에 이런 요구를 하러 찾아온다면 귀엽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찌 보면 가엾기도 하지만…….

그러나 알하이탐은 결국 선배가 해달라는 대로 해줍니다.

남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항상 본인 할 일이나 하는 알하이탐이지만 카베는 상대해 주잖아요.

이 성질은 알하이탐이 읽던 책을 덮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나는 너와 대화할 의사가 있다’라는 것을 소리와 행동을 통해 알려주죠. 카베라면 이 무언의 메시지를 잘 캐치해줄 테니까요.

(사실 지금 트위터에 서치방치를 위해 쓸 때처럼 무의식중에 카배라고 써버릴 것만 같은데 정신줄을 잘 붙잡아 보겠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온 카베였고 알하이탐은 그 마음을 알아차렸기에 순순히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넵니다. ‘선배’라는 호칭과 함께요.

이 이야기를 처음 생각할 때는 아카데미아의 강사 제의를 받고 계약 등의 절차를 위해 그곳을 찾은 카베가 과거의 그곳에서 알하이탐을 발견한다는 결말이었습니다만, 카베가 실장되기 전이라 여러모로 불확실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캐릭터 스토리가 무척 강렬해서(프러포즈 아냐??) 술집에서의 재회로 바꾸어 썼습니다.

카베가 고향을 떠나 홀로 고생하던 시간은 굉장히 외롭고 힘들었겠죠?

아마 본인이 그리던 따뜻한 시간들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둘이 함께하면서 공유하던 온기가 한때는 끊어졌지만, 시간이 흘러 그것이 다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기에 빛이 주는 온도 묘사에 신경 썼습니다.

체온, 온기, 온화 등 따뜻한 의미가 담겨 있는 단어를 평소에도 잘 넣는데, 평범한 이 단어들을 통일시켜 색다른 일체감을 주기 위해 이례적으로 ‘예열’을 사용했습니다.

둘 사이의 침묵은 어색하게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대화를 위해 서로의 템포를 맞추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노을 아래에서의 조용한 예열이 끝나면 밤이 찾아오죠.

이 글은 노을이 지는 해 질 녘에서 시작하여 밤으로 끝납니다.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카베가 고독한 밤을 보낼 일도 거의 없었겠죠?

단절되었던 온기가 다시 이어져 두 사람이 앞으로도 쭉 따스한 밤을 보내길 바랍니다.

BGM으로는 평소처럼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들었기에 따로 링크를 첨부하지 않습니다.

# 여행의 끝은 하얀 달이 뜨는 그대의 휴일

월요일 ~ 동트기 전 금요일 새벽, 금요일 아침 ~ 월요일의 경계 일요일 밤

시작은 솔로몬 그런디였습니다.

마더 구스 중 하나로, 월요일에 태어난 솔로몬 그런디가 화요일에는 세례를 받고 수요일에 결혼하고, 목요일에는 병들고 금요일에 악화, 토요일에 눈을 감고 일요일에 묻힌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명하기에 누구나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솔로몬 그런디의 플로우를 그대로 적용해도 괜찮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수메르는 해피엔드라 전부를 적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요일과 관련된 마더구스를 찾던 중 발견한 것이 『Monday's Child』였어요.

월요일의 아이는 아름답고 화요일의 아이는 우아하며, 수요일의 아이는 슬퍼하고 목요일의 아이는 여행을 떠나고, 금요일의 아이는 매력적이며 토요일의 아이는 열심히 일합니다. 그리고 일요일의 아이는 다정하다는 것으로 끝나는 마더구스랍니다.

이 내용은 전후편을 합쳐 전부 들어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월요일의 아이가 깨어나 화요일에는 우아하게 책을 읽고, 그 책에 커피를 쏟아버린 수요일의 아이는 슬퍼하다가 목요일에 여행을 떠나죠(푸스파 카페로 쁘띠 가출).

짧은 여행은 아이를 데리러 나온 동거인에 의해 끝나고, 아이는 토요일에 매력적으로 변합니다.

저는 른이 왼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카베가 어설프게나마 스트립쇼 비슷한 이벤트를 해주었으면 했어요. 다만, 카베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옷을 벗는 일이라고는 처음이기 때문에 서투르고 알하이탐은 그 어설픈 모습을 귀여워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염병이네요……. 하지만 귀엽잖아요…….

 원본이 된 트윗 타래입니다.

체위는 투표 결과에 따른 것인데……, 저의 취향과도 부합하는 것 같네요.

내가 다 해줄 테니 너는 가만히 있으라며 큰소리쳐놓고 나중에 쪽도 못 쓰는 카베는 귀여운 것 같아요.

인게임에 많은 술을 한꺼번에 구매하는 누군가에 관한 짧은 스크립트가 있죠.

화해하기 위해 사 들고 간 술을 알하이탐은 정말 활용할 것인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둘은 술을 마시다가 정말로 진한 화해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딱 한 번으로 끝냅니다. 알하이탐은 모종의 계획을 위해 금요일에는 반드시 출근을 해야 했거든요.

찾아올 카베의 생일 때문입니다.

원본이 된 트윗 타래입니다.

후편은 카베의 생일을 기념하는 글이었지만 업로드는 좀 늦어졌네요.

하지만 올해의 카베 생일은 마침 일요일이더라고요.

카베는 알하이탐의 생일을 위해 어떤 선물을 할지 미리 이 생각 저 생각을 할 타입이지만, 알하이탐이 매년 카베에게 주는 생일선물은 정해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해진 패턴대로 매년 같은 걸 주는 재미없는 남자여도, 알하이탐이기 때문에 카베에게는 특별한 것이죠(카베한테는 유잼일 듯).

저는 그것이 알하이탐이 카베에게 집중해주는 온전한 시간이라고 보았습니다.

원래는 저 트윗에서 뒷부분이 이어졌어야 했는데 이 글에 담기에는 너무 긴 내용이 될 듯하여 다른 기회에 넣기로 했습니다.

귀중한 종이책을 망가뜨린 데다 알하이탐으로 하여금 거액의 모라를 쓰게 한 이 작은 사건을, 죄책감으로 우울해하는 카베가 더 자신을 자책하는 이유로써 넣어 두었습니다. 원인이야 크게 다르지만, 무너져버린 카자르자레 궁을 재건하는 데는 많은 희생이 필요했잖아요. 자신이 어떤 아름다운 것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상당히 자책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알하이탐은 대수롭지 않게 해결했고, 결과적으로 그 책은 카베를 위한 선물이었다는 결말로 마무리했습니다. 구실로 데이트도 하고요. 약속장소를 정하지 않아도 어디서 만날지 안다거나 상대의 반응을 예측해서 차악을 택한다거나 하는 건 서로를 아주 잘 파악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죠. 이런 요소를 저는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넣어 두었습니다.

연인으로서 더 붙어 있고 싶지만 각자의 일 때문에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어른의 사정도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카베는 『월요일의 아이』에서처럼 토요일에 열심히 일을 합니다.

뜻대로 하지 못해 살짝 삐친 연하남의 귀여움도 쓰고 싶었어요. 알하이탐이 불만을 말하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듭니다.

흔한 소재인 ‘가슴 만질래?’를 쭉 쓰고 싶었는데, 대체 어디에 넣어야 할까 고민했어요. 두 사람에게 잘 맞는 형태로 넣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걸 드디어 써보는구나 하면서 당시에 매우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작은 솔로몬 그런디였으나 후반부터는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로 전환됩니다.

『월요일의 아이』처럼 요일을 노래한 마더구스는 어린아이들이 요일을 외우기 쉽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과 함께, 월요일부터 일요일의 아이가 각각 다른 인물이라는 설, 혹은 한 아이가 성장을 거치면서 겪는 변화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전부 카베에게 주었지만, 다정하다는 일요일의 아이 속성만큼은 알하이탐에게 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카베의 생일인 일요일에는 알하이탐이 다정하게 동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행복을 준다는 파랑새를 찾아 여행을 떠난 아이는 온갖 모험(고생)을 거치다가 결국 시간의 신에게 쫓겨 집으로 돌아오는데, 정작 그토록 찾아헤매던 행복이 집에 있었다는 건 제법 카베의 이야기와 비슷하지 않나요?

고향을 떠나 겪은 여행길이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돌고 돌아 결국은 집으로 돌아온 카베가 행복은 거기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으면 했습니다.

이 뒤는 수위로 따로 빼서 쓰려고 합니다.

타이틀에 ‘그대’를 써야 할까 ‘너’를 써야 할까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일본어판 번역의 君[kimi]가 주는 어감을 좋아해서 ‘그대’로 결정되었습니다. 이쪽이 ‘너’보다는 시적이고 정중한 느낌이어서요.

그리고 ‘하얀 달’이 들어갔기 때문에 달빛에 관한 표현을 되도록 틈틈이 넣고자 의도했습니다.

후편에서 카베가 깨어났을 때 비가 내렸다는 부분은 이 곡을 듣고 넣었습니다.

카베로서는 악천후겠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집 안에서 듣는 빗소리를 이제는 편안하게 느끼면 좋겠네요.

Bach in the Rain

# 늦은 여름밤 3.6제곱미터 위의 공방전

전력 주제를 사용했으므로 이 글만큼은 전체 분량이 이미지로 공개되었습니다.

원본이 된 트윗 타래입니다.

카베는 역시 무서운 이야기를 잘 못 듣지 않을까요?

하지만 호기심만큼은 왕성해서 무서워하며 들을 것도 같습니다.

오히려 영감이 조금이라도 있는 건 알하이탐 쪽이고, 카베는 영감이 단 1도 없다는 설정을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무덤덤하게 지나가듯 유령 이야기를 하는 알하이탐에게, 카베가 ‘어디서 읽었어? 제법 무서운데?’라고 물어보면 알하이탐이 ‘어릴 때 직접 겪은 일이야’라고 대답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직접 겪었다는 말을 듣고 카베는 뒤늦게 히이익 하는 것이죠.

시간제한을 정해놓고 써본 건 처음이었기에 이 글에는 평소에 넣던 은유나 세부 묘사가 없습니다. 중간중간 서술을 추가하면 소요 시간이 더 늘어나므로 처음부터 4,000~6,000자의 분량을 계획했습니다.

보통은 누워서 폰으로 타이핑을 하는데, 이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로 타이핑했어요. 기억에 남네요.

작은 트리거로 인해 되살아난 과거의 트라우마를, 알하이탐에게 기대어 다시 잠재운다는 결말입니다.

이들이 아카데미아에 다닐 적에는 ‘허공’으로 인해 꿈을 꾸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데 카베가 악몽을 꾸었다고 해도 괜찮은가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만, 결국 그대로 넣게 되었습니다.

과거부터 길게 이어져온 카베의 불안이 겉으로는 잘 티가 안 날 테지만, 그래도 알하이탐에게는 표출하고 나름대로 위로를 받았으면 했어요. 특별한 위로의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알하이탐도 잘 받아주는 중이고요.

타이틀의 3.6제곱미터는 침대 사이즈입니다.

# 키스 온 더 크림, 곧 따뜻한 커피에 녹아들 크림을 위하여

『 シエレトワール 』- 初音ミク｜cover by dtto.

굿바이 선언 (グッバイ宣言)┃Cover by Raon Lee

원본이 된 트윗 타래입니다.

알하이탐은 혼자 오래 살았으니 아침에 알아서 잘 일어나겠죠. 동거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무렵만 해도 혼자 일어났을 텐데, 각각이었던 생활이 같이 살면서 점차 융화되고 집에 누군가가 있다는 안심감에서 비롯된 나태가 그로 하여금 늦잠을 자게 만들었다……라는 설정입니다.

알아서 일어날 수 있으면서도 굳이 카베가 깨우러 들어올 때까지 잔다는 게 중요한 점입니다.

카베가 노트에 ‘녀셕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적어놨다는 것이 인상깊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떠맡아 잡일을 하는 게 아니라 알하이탐을 향한 호의와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하나씩 집안일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알하이탐을 챙겨주는 모양새가 되었겠죠?

집 안에 챙겨주는 누군가가 있는 상황에 익숙해지다 보면 사람은 누구든 평소보다 나태해지는 법입니다.

‘내가 5분만 더 자도 그 녀석이 깨워주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알하이탐이 조건 없이 선의를 베풀 타입은 결코 아니라는 걸 카베는 잘 알고 있으니 잡일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시작했겠지만, 알하이탐이 타인을 향해 이상을 언급한 일 자체야말로 카베의 ‘왜 받아준 걸까’라는 의문의 답이 아닐까 해요.

카베도 알하이탐의 침실 문을 처음으로 두드려 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한 번 드나들게 된 이후로는 노크만 하고 훅 들어오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시간마다 어디서 무엇을 할지 다 아는 사이잖아요.

카베는 남들보다 몇 배나 일을 더 많이 할 타입이므로 아침 역시 이를 것이고, 부족한 아침잠을 알하이탐의 침대에서 이런 식으로 채우면 좋겠어요. 상대가 알하이탐이니 나중에 ‘너 때문에……!’라는 식으로 퐁퐁거릴 수도 있으니까요.

넓고 폭신한 침대에서 따끈한 베개에게 끌어안기면 잠이 잘 오겠죠. 근육이 많으면 몸이 따뜻하다고 합니다.

알하이탐이 블랙커피 같다면 카베는 크림 타입이라고 생각합니다.

커튼을 쳐놓아 어두운 방 안은 커피 같은 어둠을 채워둔 잔 속이고, 거기에 설탕 내지 크림처럼 비쳐드는 빛을 이미지하면서 썼습니다. 노크한 뒤 문을 열면 그 안은 커피 색으로 가득한 침실이고, 그 안에서 휘저어져 녹아드는 크림처럼 카베가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죠. 과몰입 같지만 연인의 아침이니까요……. 다소 로맨틱해도 용서받지 않을까요?

그래서 타이틀의 ‘크림을 위하여’는 결국 ‘카베를 위하여’입니다.

카베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신을 넣을까 말까 하다가, 따뜻한 분위기로 전체를 통일하기 위해 전부 제외했습니다(다른 글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한숨 자고 일어난 카베가 눈을 떴을 때는 침대 위에 혼자였지만 준비해놓은 아침 식사는 비워져 있었다는 초반의 플롯도, 나중에 함께 식사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카베는 같이 식사하고 싶어 할 것 같아서요.

# 밤하늘에 던진 기억의 파편이 꽃을 피우기 위해 술잔 위로 떨어지는 보름 동안에

카베 아닌 카베가 뜻 모를 말을 남기고 사라진 날로부터, 진짜 카베와 주점에서 재회하기까지의 15일 동안 알하이탐이 일기처럼 남긴 메모입니다.

카베가 읽어서는 안 될 기록이기 때문에 어딘가에 숨겨두었다는 설정입니다.

15일은 갈 곳 없는 카베가 주점에서 보낸 기간이며, 그동안 알하이탐은 카베 아닌 카베를 위하여 술을 공양하다가 그 술이 떨어진 날 새 술을 사기 위해 들른 주점에서 진짜 카베와 재회합니다.

그리고 카베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 다음 진짜 그를 집으로 맞이하기까지의 날조인 셈이죠.

타인과 동거한다는 전제 자체가 어울리지도 않을 알하이탐인데, 대뜸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하는 건 무언가 사정이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카베 아닌 카베와 동거 예행연습을 하면서 익숙해지는 기간이 있어도 재미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원본이 된 트윗 타래입니다.

제가 언급한 소설은 일본 근대문학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찾아보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원문은 훌륭하지만 한창 습한 여름처럼 찐득한 묘사로 봄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첫 문장의 엄청난 임팩트와 섬세한 묘사가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므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부 묘사를 많이 넣는 타입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지만, 알하이탐의 기록물이라면 담백하게 쓸 것 같아서 최대한 덜어내고 상황 설명 및 당시의 심리를 간결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종이비행기에 얽힌 서브네타

비행기가 없는 세계에서는 종이비행기를 무엇이라고 부를까요?

폰타인에 비스무리한 비공정 같은 건 있지만 현대의 비행기 형태는 아니잖아요.

이건 게임이니까 그냥 종이비행기라고 하면 그만이겠죠. 하지만 그냥 종이비행기라고 표기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과거에는 저런 것들을 뭐라고 불렀는지 찾아본 결과, 옛날에도 사람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허공에 머물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었고 그것은 새의 이름이더라고요.

그래서 두 사람의 추억 속 종이비행기는 종이 새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추측만 할 따름이지만, 아무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면 티가 나지 않을까요? 전에 본 모 화가의 그림에 가득 담긴 애정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물론 화가가 일부러 표현하고자 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무의식중에 나오는 애정 또한 캔버스에 담겼을 것 같습니다. 보는 사람에게 그것이 느껴진다면, 카베가 애정을 담아서 그린 그림의 메시지도 알하이탐에게 전해지겠죠.

첫 음주에 관한 서브네타

첫 음주를 함께했으면 했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켕기는 짓은 서로를 공범 삼아 같이 해봤겠죠?

알하이탐이 술을 따르는 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만큼 술에 관한 소재가 쓰였습니다.

Vivaldi – Summer Violin Concerto

담담하게 쓴 도입부를 거쳐 장면을 전환할 때 이용한 여름 폭풍은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으로부터 왔습니다.

보통 여름이라고 하면 싱그럽고 활기찬 느낌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비발디의 여름은 극적이고 섬세하더라고요.

나무 아래에 묻힌 카베 아닌 카베를 칭할 때 시종일관 ‘그것’이라고 하는데, 이성으로는 카베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도 마음으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걸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의적으로 말도 걸지 않습니다.

그러나 카베 아닌 카베는 분명히 카베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 눈을 뜨고 일어설 때 어떻게든 자력으로 해내려 합니다. 진짜 카베와 같은 성격을 가진 그 무언가를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의식하게 되죠. 혼동할 것 같은 시기가 올 때 카베가 반드시 반박할 만한 내용을 학술지에 투고하는 알하이탐의 설정은 인게임의 게시판에서 가져왔어요.

Playing Love (Piano Version) 

카베 아닌 카베가 자력으로 일어서다 넘어지던 걸 받쳐준 그날 이후를 쓰면서부터는 이 곡을 들었습니다.

알하이탐은 이성적인 인간이지만, 불시에 오감으로 전해진 자극이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점차 감겨들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네요……. 그때의 저는……, 아마도?

진짜 카베가 수메르성을 떠나기 전에 나무 밑에 묻어두고 간 파편이 그의 모습으로 자라서 독립적인 무언가가 되어버리기 전에, 카베 아닌 카베는 밤하늘에 몸을 던져 본체로 돌아갑니다. 성체가 되기 전에는 장미 묘목과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자라고 자라면 바오밥나무 같은 존재가 되어 행성과 그곳의 주인, 즉 알하이탐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그렇게 되기 전에 돌아갔습니다.

카베 아닌 카베는 알하이탐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알하이탐도 마찬가지고요. 이 부분을 끝까지 고민했는데, 결국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으로 했습니다. 알하이탐의 이름은 15일 후에 재회할 완전한 카베가 불러주겠죠.

카베 아닌 카베를 인정하지 않던 알하이탐이, 방을 정리하기 위해 방문을 열었을 때 눈앞에 보인 풍경을 보고 생각을 바꾸어 술 공양을 하기로 결심하는 부분은 어린왕자로부터 떠올린 것입니다.

장미와 싸운 뒤 이별을 고하고 소행성 B612로부터 지구로 온 어린왕자는, 수없이 피어 있는 장미를 보고 나서야 자기 별에 있던 단 한 송이의 장미가 특별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과연 어린왕자의 내용에 이 두 사람을 빗대어 생각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가 있었지만, 카베를 그만큼 특별하게 여긴다는 점이 느껴지도록 쓰고자 했어요.

비록 부정했어도 그 수많은 종이 새와 안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나서야 여태 함께 지내오던 카베 역시 그의 일부였으며 카베가 자신에게 특별하다는 걸 인정하는 극적인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카베 아닌 카베와 진짜 카베는 역시 같지 않죠. 그때 방 안에 있던 종이 새들 안의 그림은 카베 아닌 카베가 그렸겠지만, 알하이탐에게 있어 진짜는 학생시절에 카베가 잠든 알하이탐에게 장난칠 때 날렸던 그 한 장이니까요.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정의하는 건 냉정하게 잘하면서, 단 하나의 대상을 향한 자신의 특별한 감정은 오랫동안 정의하지 못한 채 고심하다가 드디어 결론을 내리는 부분입니다.

마음을 인정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때는 사랑을 몰랐다느니 미숙했다느니 하는 문장을 넣지 않은 이유는, 알하이탐이 본인을 평가할 때 결코 저평가할 타입이 아니라고 보아서입니다. 그러한 성격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랑의 대상과 마찰을 빚었더라도, 그만큼 단단한 에고의 소유자인 알하이탐이기에 이 부분은 굽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점의 문제는 도입을 쓰기 전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일인칭으로 결정되었는데, 제가 왼의 시점을 이상하게도 힘들어하기 때문에 마음먹는 데도 쓰는 데도 오래 걸렸습니다.

알하이탐은 의견이 확실한 타입이라 이 글에는 말줄임표를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만, 딱 한 군데에만 들어가 있습니다. 그 부분에는 들어가는 게 더 좋으리라고 보았거든요. 왜 그 부분에만 들어갔는지는 읽는 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어린왕자는 자신만의 장미가 특별하다는 걸 깨달았고, 장미 역시 자신이 보호만 받아야 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잘 길들여진 두 사람이 서로를 책임지며 행복하길 바랍니다.

# 어떤 햇빛은 그대의 시선이 닿지 않는 저 깊은 곳에

재미있으셨나요?

저는 어이없어서 웃겼습니다……. 왜 갑자기 쓰고 싶었을까요?

이것이 어쩌다 한 번 섞여 있는 ‘머리 비우려고 쓰는 글’입니다.

그래서 다른 글과 다르게 문장을 길게 잇지 않고 되도록 짧게, 그리고 행갈이를 많이 했습니다.

제 취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어요.

둘이 물 위에서 끌어안고 밀착한 상태에서 대화를 오래 나누므로 그때 느끼는 체온이나 감촉을 쓸까 했습니다만 이건 동화풍이고……, 굳이 넣었다가는 섹슈얼한 뉘앙스가 되어 전체 분위기를 해칠 것 같아 제외했습니다.

원본이 된 트윗 타래입니다.

타이틀을 네 글자로 줄이면 단순히 고진감래입니다.

불운에 불운을 겪던 누군가에게도 결국 행복이 찾아온다는 걸 타이틀에 넣고 싶었죠.

어느 나라의 속담 중에 ‘구름 뒤에는 반드시 햇빛이 있다’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으며 너덜해진 카베지만 후배에게 주워져 잘 살고 있으니 결국은 행운을 잡은 게 아닐까요? 원래부터 카베를 위해 그 자리에서 쭉 기다리던 행운 같지만요.

구름 뒤에 자신만을 위한 햇빛이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도 결국 제 발로 찾아갔으니 잘된 일입니다.

카베처럼 근력 없는 디자이너에게 나무꾼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가장 무난한 ‘나그네’로 정해졌습니다. 떠돌다가 결국 머물 곳은 찾은 뒤 이름으로 표기되므로, 이러한 작은 장치를 위해서도 그 명칭이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Lullaby (Goodnight, My Angel)  / rionos (Cover) 

# 이름 없는 장미 정원에 네가 다시 찾아오면

Caribbean Blue

Grieg: Peer Gynt Suite No. 1, "Morning Mood"

제가 아는 곡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들으며 썼습니다.

전반은 Enya의 Caribbean Blue, 후반은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중 Morning Mood였습니다.

원본이 된 트윗 타래입니다.

어릴 적에 들었던 옛날이야기를 직접 겪게 되지만, 운명의 시험과 성장으로 인해 기억을 잃었던 카베가 결국 향수를 떠올리고 알하이탐을 찾는다는 스토리입니다.

처음 생각과는 별개로 카베가 아주 착한 동네 척척박사 선생님이 되었네요. 매드사이언티스트 그대로 가도 귀여웠겠지만, 그러면 개그가 되어버리잖아요…….

뱀파이어인 알하이탐의 설정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다 설명하면 몰입을 해친다는 판단하에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들어간 것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의 피를 두 번 흡혈하면 아침을 볼 수 있다는 것, 두 번째 흡혈 때 희생자는 잊어버렸던 흡혈귀의 이름을 떠올린다는 것, 운명의 상대의 피를 한 번 마신 흡혈귀는 다른 피를 마실 수 없어 장미로 연명하며 버틴다는 것 정도네요.

수메르에는 붉은 장미가 없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도입부는 제삼자가 카베 선생님에게 건네는 말로 하겠다고 미리 정해두었어요. 마을의 ‘선생님’인 만큼 가끔은 이런 시작도 괜찮으리라고 보았거든요. 구어체로 할지 문어체로 할지에 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만, 이 도입부의 화자보다 카베 쪽의 학식적 소양이 월등할 것이므로 예의를 차린 문어체로 결정되었습니다. 단순히 제가 문어체를 선호한다는 이유도 들어갔지만요.

그저 환상이라고만 생각하고 무작정 떠난 여행길에 붉은 장미 정원을 발견한 카베가, 그곳에서 장미를 돌보는 남자를 보고 흡혈귀임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 처음의 플롯이었습니다.

정체를 알아채지 못한 카베에게 흡혈귀란 어떤 존재인지 알하이탐이 하나하나 알려주다가 결국 알아챈다는 당초의 계획은, 카베가 장미 정원을 발견하는 데까지 쓴 직후에 바뀌었습니다.

얘가 그렇게 눈치 없는 타입도 아니거니와, 옛날이야기 속의 붉은 장미를 한밤중에 손질하는 남자란 딱히 없을 테니 바로 알아채겠죠. 직감으로라도 깨닫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쪽이 더 극적이니까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서 짧지만 확고하게 대답하는 알하이탐과, 그 목소리를 듣고 환상의 존재를 찾아냈다는 걸 카베가 확신하는 순간이 낭만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그들의 대화 자체는 길지 않지만, 인상적인 순간이 길게 이어지는 느낌을 받게끔 쓰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글에서 알하이탐을 사랑하는 카베는 다소 이기적입니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그가 과연 아침을 맞고 싶어할지, 그것이 옳은 일인지 고민했을 법도 한데 카베는 그런 과정 없이 알하이탐이 아침을 맞았으면 하고 바라거든요. 본인이 아름답다고 느끼니까 좋은 거 같이 보고 싶은 거죠. 알하이탐이 평생 맞지 못한 아침을 안타까울 정도로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그에게 아침을 설명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역시 사랑이 아니면 못 하겠네요…….

지나칠 정도로 이타적인 성격의 카베가 알하이탐에게만큼은 할 말 다 하는 것이 게임 스토리상의 성격이기 때문에, 카베가 알하이탐을 사랑한다면 역시 그런 면이 나오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래서 카베가 매일 아침마다 보는 알하이탐의 장미 정원이 아름답게 묘사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단 한 명밖에 없는 선생님으로서 바쁘게 살아가던 카베가, 옛날이야기 속 흡혈귀인 알하이탐을 만난 후로 되찾은 마음의 여유와 감수성을 발휘해서 아침을 이야기할 때는 꽤 귀엽지 않았을까 합니다.

어릴 때 그가 이야기해준 아침과 성장 후 어른으로서 만난 그가 이야기해주는 아침이 변함없이 아름답고 따스하다는 걸 알하이탐이 알았으면 좋겠네요. 단 한 사람을 위해 매일매일 이야기하는 아침이잖아요. 알하이탐의 마음에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다림이 보상받는 기분 아니었을까요?

알하이탐의 집안은 흡혈귀 혈통이라는 설정입니다. 운명의 상대를 찾아내어 결국 마법에서 풀려난 사례로 조모와 부친을 보았기에 전설이 사실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상태예요. 그러나 자신에게 기적이 찾아오리라고는 확신하지 못하다가, 어른이 되어 장미 정원에 다시 찾아온 카베와 만난 그때 자신에게 걸린 마법이 곧 풀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부분도 전부 잘려나갔습니다. 구구절절이 길면 지루하잖아요.

정원에서 흡혈하는 부분은 섹시함을 한……, 10~20퍼센트 정도만 섞고자 했습니다.

섹슈얼한 분위기가 과하면 전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뱀파이어의 흡혈이란 다소 에로틱한 뉘앙스로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므로 약간은 넣었습니다.

알하이탐이 처음으로 아침을 맞는 결말은 최대한 담백하게 서술했습니다. 그래야 읽는 쪽의 여운이 길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생각할 여지를 주기 위해, 그리고 몽환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완급 조절에 주의하며 썼습니다. 옛날이야기란 원래 다소 불명확한 부분이 있는 법이고, 그 공백을 상상하는 것이 즐거움 중 하나이니까요.